Interlude

[SH/JW] 빈사의 의사선생 │ The Case of the Uncommon Cold - 2 본문

Sherlock_중편/시리즈

[SH/JW] 빈사의 의사선생 │ The Case of the Uncommon Cold - 2

topsecretum 기밀선녀 2013.10.06 22:51
#, ,

←Part 1






Part 2





일어나 보니 머리맡 서랍 위에 비싼 은쟁반이 곧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었다. 흐릿한 눈을 들어 깜박였다. 쟁반 안에는 따끈하니 김이 나는 차와 닭고기 스프가 담긴 그릇, 그리고 별스럽게도 조그만 핸드벨이 놓여 있었다. 한쪽 모서리 밑에 깔끔하게 끼워져 있는 종이도 발견했다.


존은 멍하니 몸을 일으켜, 베개에 기대 반쯤 일어나 앉은 자세로 손을 뻗어 쪽지를 빼냈다.


존,

셜록이 나가면서 네 몸이 편치 않다고, 외출해 있는 동안 너를 봐달라며 부탁하더구나. 필요한 게 있음 바로 부르렴, 아래층에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아래층의 허드슨 아줌마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쪽지를 내려놓고 섬세한 무늬가 그려진 찻잔을 들었다. 꿀을 탄 뜨거운 차가 부드럽고 아늑하게 목구멍을 감쌌다. 뼛속까지 영국인인 존은 행복한 마음으로 감사와 존경을 담아 한 단어를 읊는다. ‘차야.’


차 한 잔을 온전히 다 넘길 때까지 그는 셜록의 공헌에 미처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 다음엔 스프를 몇 숟가락 떴고, 허기를 때우고 나니 배출욕이 머리를 들어 용변을 보기 위해 힘겹게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다리를 침대 밖으로 내려놓은 순간, 얼음처럼 단단한 무언가에 발이 세게 부딪혔다. 존은 억 소리를 내며 눈 깜짝할 사이에 다리를 방어적으로 움츠렸다. 이게 다 어떤 미친 인간과 동거를 하면서 연마한 반사신경 덕분이다.


빼꼼 얼굴을 빼 침대 아래를 쳐다본 결과 존의 발을 공격했던 그 물체는, 다름아닌 대야였다. 속이 깊은 (물론 텅 빈) 스테인리스 대야. 이게 뭐지 싶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대야를 들었다. 존은 멍하니 그걸 쳐다보다가, 문득 그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조그만 약봉지와 휴대폰을 발견했다.


처방전을 들어 읽었다. 감기약이었다. 그것도 제대로 된. 오호라. 결국 셜록이 사라에게 전화한 거로군. 휴대폰의 잠금을 풀자 화면 한쪽 끝에서 편지봉투 아이콘이 반짝이고 있었다. 혹여나 그게 셜록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일까봐 (녀석이 정기적으로 되풀이해 보내는 거니까)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문자메시지를 열어본 존의 얼굴에는 금세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감기약 먹어.

혹시 몰라서 대야도 갖다 놓음.

SH


상자의 뚜껑이 위험하게 달각거렸다. 존은 비집고 나오려는 미소를 집어삼키고, 마음을 다잡았다. 부풀어오르는 기분을 억지로 가라앉혀서 무거운 자물쇠와 경고문을 더 달았다. 이대로 가다간 언젠가는 셜록이 들어 있는 상자가 자물쇠와 경고문과 견고한 벽으로 요새처럼 커져서, 다른 것이 들어올 자리도 없을 정도로 가슴 안을 꽉 채워버릴 것 같았다.


존은 한숨을 쉬고 힘겹게 두 발로 일어섰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난 뒤 존은 진료소에 있는 사라에게 전화해 일주일 교대를 부탁했고, 마지막에 문득 생각이 나 덧붙였다. “그리고 셜록에게 처방전 써 줘서 고마워요.”


“셜록 씨요?” 되묻는 투가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못 봤는걸요. 여기 왔대요?”


존은 잠깐 당황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녀석이 진료소에 간 게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처방전을 구한 걸까. 정말이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음 주에 봐요.”








다시 눈을 떠 보니, 목 안이 숟가락으로 텅텅 내리친 것처럼 꽉 부어 있었다. 존은 따끔거리는 목으로 침을 꿀떡 삼키고 눈을 깜빡여 흐릿한 시야를 거둬냈다. 창문으로 스며들어온 불그스름한 햇빛이 벽지의 촌스러운 무늬 위로 네모나게 드리워 있었다.


해가 지고 있네. 아니, 해가 뜨는 건가? 얼마나 자고 있었을까? 시계가 걸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시계가 아니라 셜록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녀석은 옷장서랍 옆에 서서, 산발을 하고 팔꿈치까지 셔츠 소매를 걷어올린 채였다. 한 손에는 전극 한쪽 끝을 들고.


그다지 요양에 좋은 풍경은 아닌걸. 존은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도 열 때문에 꾸는 이상한 꿈일는지도 모른다.


존이 보는 동안, 셜록은 서랍 위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전선을 조심스레 무언가에 가져다 댔는데 그게 생긴 게 꼭…


“그게 사람 발이 아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드네, 셜록.” 존의 거친 목소리가 방 안에 조용히 울렸다.


“왜?” 셜록이 물었지만, 방금 잘린 발에서 발가락이 움찔했기 때문에 이쪽의 대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 것이었다. 녀석은 흐음, 하더니 전극을 갈무리해 내려놓고 공책에 무어라고 휘갈겨 썼다.


“왜냐하면,” 존은 눈썹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 목이 아프지만, 이런 건 확실히 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여긴 내 방이고, 난 아프니까. 그러니 현재 여기는 병실이라는 말이야. 병실로 누구 건지도 모르는 발목을 뜯어와서 실험을 하면 안 되지, 셜록.”


흥 하고 짜증을 낸 셜록은 눈을 가늘게 치뜨고 어깨 너머로 존을 노려봤다. “뜯어진 거 아니야.” 지금 그 얘기가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아니, 일부러 화재를 돌린 것에 가깝겠다. 녀석은 회피의 달인이니까.


물론 셜록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니다. 보이는 대로 말하자면 발 자체야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아치에다 다섯 개의 예쁜 발가락이 붙어 있는 아주 잘 생긴 놈이다. 유일한 문제는 거기에 붙어 있어야 할 나머지 약 90퍼센트의 몸뚱이가 어디로 사라지고 없다는 거다.


“그렇잖아도, 신경 반응성만 시험하고 있는 거야. 오염된 혈액이나 전염성 병균같은 건 없어. 네 감기 바이러스가 실험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


“공동세입자로서 알려주는 건데, 우리 집에 웬 미친놈이 하나 있어. 조심해.” 존은 지그시 셜록의 등짝을 노려봤고,


“소시오패스겠지.” 셜록은 눈을 휙 굴리며 자동적으로 표현을 정정했다.


존은 입을 꾹 다물고, 자신의 서랍 위에서 움찔대고 있는 발 한 쪽을 빤히 쳐다봤다. 이것도 경계선이 있는 거야. 존은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이럴 때야말로 단호히 마음먹고 엄한 충고의 세계에 발을 딛어야 할 때라구.[각주:1]


그러는 대신에 그는 베개에 기대 몸을 일으켜서, 머리맡 서랍 위에 있는 물잔을 쥐었다. 이게 발톱 살균에 쓴 더러운 화학물이라든지 여타 기분나쁜 무언가가 아니라 그냥 물이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봐도 별 이상 없어 보였지만, 셜록과의 생활에서 아무리 사소한 일도 너무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현재 콧속이 퇴근 시간대의 런던 지하철역보다 훨씬 통행 정체된 상태인지라 냄새를 맡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뭐, 물론 그냥 셜록에게 물어볼 수도 있는 거다 ― 그래, 저기 떡 하니 서서 시신에서 떼어온 발에다가 찌르고 건드리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바로 그 놈 말이다 ― 하지만 물어보는 건 왠지 패배를 인정하는 일 같았다. 그럼 아주 살짝 맛만 보자. 조금만 이상하면 바로 뱉어낼 거다. 셜록에게 대처하는 자세랄까.


“걱정 마.” 셜록은, 이제 나무 서랍 위에서 스타카토로 일정한 리듬을 타고 있는 발가락에서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물이야.”


존은 크게 한 모금 들이켰다. 설마 이런 걸로 거짓말을 했으려고. 목이 아프긴 하지만, 삼키니 시원하고 괜찮았다. 몸에서 물을 필요로 했으므로 억지로라도 한 컵을 모두 마셨다.


빈 잔을 내려놓으며 그는 저 발가락이 툭툭 서랍을 치는 소리가 왜 익숙하게 들리는지 깨달았다. 본인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셜록이 낮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농담 아니고 정말로) ― 안 그래도 저음인 평소 목소리보다 한층 더 낮았고, 곡조는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존은 황당한 얼굴로 탐정 쪽을 응시했다. 셜록이 대단한 음악가임은 알고 있었지만, 잘린 시신의 발로 존의 서랍 위에서 박자를 맞춰가며 Bad Romance[각주:2]를 흥얼거리는 모습은 초현실적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저거 꼭 여기다 둬야 돼? 다른 데다 둘 수도 있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셜록은 전극을 내려놓은 다음 펜과 공책을 집으며 손을 놀렸고, “아주 중요한 실험이야.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해.”


존은 그런 셜록을 바라보며 휴지를 한 장 뽑아 코를 풀었다. “알아. 네가 시신을 잘라다가 뭘 하든 중요한 연구라는 건 알겠는데, 그걸 왜 여기서 보고 있느냐는 거지.”


“넌 아프니까.” 그 말을 하며 셜록은, 붙잡고 있던 펜과 공책을 모두 치워놓고 마침내 존을 향해 몸을 돌렸다. “너도 계속 주시하고 있을 필요가 있어.”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 감기 때문에 그래. 존은 스스로에게 엄하게 일렀다. 이건 그냥 감기에 걸린 것 뿐이야.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상자 위에도 경고문을 한 장 추가했다.


“수사는 어떻게 됐어?” 될 수 있는 한 빨리, 자신의 표정에서 뭔가 눈치채기 전에 다른 곳으로 셜록의 주의를 흐트러뜨려야 했다. 뭐 읽을 건덕지가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본인이 깨닫기도 전에 귀신같이 남의 생각을 알아채는 남자와 있을 때면 주의하는 게 현명하다는 거다. 다른 생각 있었던 거 아니다. 전혀. 존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에 속으로 못난 자신을 원망했다.


셜록은 의심쩍은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더니, 한참 지나서야 도로 몸을 돌려 잘린 발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재미없었어.”


“그럼 해결했다는 거군?” 얘기하다 보니 궁금해졌다. 셜록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들려주는 건 절대 질리지 않고 계속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수염난 여자가 범인이었어. 팬터마임 연기자 중 하나가 그 여잘 차고 며칠 전 사자 조련사에게 집적거렸다더군. 흔한 치정 싸움이야.”


“그럼 난쟁이들은 어떻게 된 거래?” 존은 그렇게 말했다가 금방 입을 합 닫았다. 확실히 셜록의 나쁜 짓은 금방 옮는다니까. 녀석이 그것 보라는 듯 씩 웃었다.


“마임 연기자가 줄 위에서 외발자전거를 탈 때를 노린 사건이었어. 밀드레드, 그 수염난 여자가 밑의 안전망을 건드리고 줄에도 하중을 받으면 끊기도록 손을 써놓은 거지. 줄을 조사해 보니 금방 드러나는 사실이더군. 그런데 우연찮게 바로 그 세 명의 ‘소형인’들이(녀석은 일부러 그 단어를 강조했다) 먼저 공연을 하도록 순서가 바뀐 거야. 불행한 사고였지.” 그는 말을 마치고 다시 공책을 들며 존을 향했다.


“반대로 그 연기자에게는 행운인 거였네.”


“그렇지만도 않아.” 셜록은 입가를 삐죽이며 냉소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 남자가 간밤에 제발로 사자굴에 뛰어들어 심한 상해를 입은 모양이야. 경솔하게도 조련사에게 수작을 걸어보려고 훈련 펜스 안으로 몰래 들어간 거지. 사자에게 왼쪽 다리를 물리고 손톱으로 목을 베인 후에야 조련사가 짐승을 진정시킬 수 있었어. 곧 응급실로 실려갔는데, 후두부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나봐.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만큼 낫겠지만, 다시는 말을 하게 될 수 없을 거라고 하더군.”


존은 그 얘기에 비웃어줘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가 쉰 목소리로 한 마디만 꺼냈다. “정말 끔찍하네.”


“적어도 그 사람은 이미 무언의 대화에 통달해 있으니까.” 무미건조하게 셜록이 대답했다.


“이상하지 않아? 그런 거.”


“뭐가?” 셜록은 다시 발을 찌르고 있다가 어깨 너머로 물었다.


“수염 나는 여자, 난쟁이, 아니 소형인. 왜 사람들이 그런 걸 구경하려고 돈을 내는지 알 수가 없어. 그리고 그런 걸 보여주려고 극단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더 이해가 안 가고. 그러니까…이상하잖아.”


놀랍게도 셜록이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게 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지.”


존이 무슨 뜻이냐는 표정을 하자, 셜록은 도구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더니 맞붙인 양손 너머로 빤히 시선을 보내왔다. “호기심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야. 열 개의 검은 공과 하나의 빨간 공이 있으면, 사람은 자연적으로 빨간 공에 눈이 가지. 반대로 빨간 공 열 개와 검은 공 하나가 있으면 검은 공이 튄다고 생각하는 거고. 인간이라는 종은 특이한 것에 현혹되는 습성이 있어. 왜냐하면 그것은 새로움을 의미하고, 즉 새로운 것을 보고 느낌으로써 세상을 보는 눈을 점점 넓혀갈 수 있는 거야. 서커스는, 옛날식으로 표현하면 ‘변종 극단’이라 할까, 결국 인간의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해 만들어진 사업일 뿐이지.”


“알았어.” 존은 느릿하게 물을 한 모금 마셔 목을 식힌 뒤 말을 이어갔다. “사람들이 왜 쇼를 보러 가는지는 그걸로 알겠는데, 그럼 서커스에 스스로 들어가는 건 어떻게 설명할래?”


“인간의 또다른 본능이지.” 셜록의 대답은 명확해서, 마치 기저귀 차림의 아기가 아니고서야 누구나 다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은 목소리였다.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하는 욕망.” 


존은 눈만 끔벅였다. 감기 때문에 뇌의 논리 회로가 맛이 갔든지, 아니면 앞선 감상적인 이야기들에 괜한 거부감이 느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셜록을 바라봤다. “내가 뭔가 이해가 부족한 건가, 넌 혼자 다니고 사람들의 그런 본능을 비웃으면서도 결국 인간이니까, 너한테도 속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거잖아?”


“어딘가에 속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게 오지 않아.” 셜록의 목소리가 조용하게 잦아들었고, 평소의 예리한 눈빛 역시 존이 아닌 그 너머의 다른 것을 보듯 초점이 약간 흐려졌다. “어쩔 땐 세상에 자신을 맞추는 것보다 세상을 자신에게 맞도록 바꾸는 게 더 쉬울 때도 있어. 그 서커스 단원들은 저마다의 기이한 특징이 중요한 재능으로 쓰일 수 있는 환경을 발견했지. 난쟁이든 수염 나는 여자든 한 손으로 철을 구부리는 차력사든 모두 다르지 않아. 사람들은 저마다의 조각이고, 각자 맞춰들어갈 큰 조각이 있어. 극단의 그 사람들은 자신이 정착할 곳을 찾은 거야.”


그럼, 윤리 의식 희미하고, 매너는 더러운 데다 극적인 연출에 일가견 있는 대단하신 탐정은? 존은 궁금해졌다. 아니면 형편없는 자기보호 능력에다 룸메이트 고르는 안목은 더 형편없는 부상당한 전역군인이라면? 그런 사람들을 위한 정착지도 마련되어 있는 걸까?


순간, 한 지점에서 생각이 멈췄다.


만약에 셜록이 정착할 곳을 찾게 된다면? 존이 아는 한, 셜록은 어딘가의 잃어버린 조각이 되지 못하는 늘 모나고 고집스런 애물단지였다. 녀석은 사회의 제약에 맞서고 규칙을 무시하며, 주변인들의 의견을 묵살하면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가 말한 커다란 조각 중에 셜록의 그것처럼 날카로운 지성과 가혹할 정도의 솔직함이 최고의 미덕인 곳이 있을까? 여기에서처럼 조롱을 받는 게 아니라 셜록에게 전임권이 주어지고 간섭 없이 자유로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면, 셜록은 그곳으로 떠날까?


그 생각에 심장이 덜컥 뒤틀렸다.


그런 상상을 하는 혼란스러운 자신의 마음이 두려워서 존은 베개에 도로 머리를 묻고 눈을 감아 외면했다. 난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지나 의학대학에서 생존해 총알이 빗발치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란 말이다. 그놈의 셜록 홈즈를 만나기 전만 해도. 그러니까 보통 삶으로 돌아가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아마. 셜록이 떠나버리기라도 하면, 다시 발붙일 곳을 찾아 가면 된다. 못할 게 뭐야. 못할 이유는 없다. 애초에 누구처럼 죽은 아무개를 토막내 냉장고에 모셔놓는 바람에 아침에 우유를 찾으려다 아무개 씨와 아침인사를 하게 만드는, 그런 인물과 살려고 존이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 적어도 다른 사람이라면 누구처럼 실험시랍시고 욕조에 템즈강 모형을 만드는 인물은 아닐 테니 욕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이쪽도 환영이다. 아마.


그렇게까지 타이르는데도 대체 무슨 이유에서인지 심장을 움켜쥔 듯한 먹먹함은 가시지가 않았다.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어차피 아무래도 상관없는 거였다. 셜록이 셜록만의 안식처를 찾을 확률이 대체 얼마나 된단 말인가? 백만분의 일? 천만분의 일? 그 전에 셜록과 교집합이 있는 인물이 있기는 한 걸까 ― 녀석은 천재 범죄 해결사에, 사회라는 범주에서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간주하는 이단아인데다 시신에 요상한 집착을 가지고 실험하길 좋아하는 미친 과학자인데도?


돌연 섬뜩한 생각이 머리를 강타했다. 존은 머리를 퍼뜩 들어 휘둥그레진 눈으로 셜록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절단된 발의 발가락이 소름끼치도록 하나하나 따로 노는 장면 역시.


“맙소사. 설마 그것 때문에 넬슨 아저씨를 냉장고에 계속 넣어 뒀던 거였어?”


“넬슨 아저씨?” 어깨 너머로 셜록이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그 머리 말이야.” 존은 셜록이 자신의 버릇을 모른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덧붙여 설명했다. (버릇이라 함은, 플랫에서 돌아다니다 어떤 어떤 시신 일부를 발견하게 됐을 때 존이 거기다 이름을 붙이곤 하는 행위를 뜻한다. 상담사가 말하길 그건 현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휘한 대응기제라고 했다. 존은 그런다고 정말 대응이 잘 되는지 확신이 안 가던 참이었다.) “냉장고에 든 망할 대가리 말이다, 셜록. 그래서 머리를 계속 갖고 있던 거였냐구? 너 닥터 프랑켄슈타인의 현신이라도 되려는 거야?”


이것 봐. 도노반 그 사람, 녀석이 결국엔 누군가를 죽이고 말 거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 충고하지 않았나. 확실히 그녀는 생각했던 것보다 존의 안위를 퍽 걱정해 주던 거였다.


“닥터 누구?”[각주:3] 본인이 이상한 건 절대 모르지. 녀석은 일말의 아이러니도 느끼지 못한 채 물었다.


“아니, 그건 닥터후 명대사고. 프랑켄슈타인 박사 말이다.[각주:4] 잠깐, 생각해 보니까 너라면 닥터 후도 재밌게 볼 수 있을 걸. 네가 정말 인간의 탈을 쓴 외계인이라면 몇 가지 납득이 가는 게 있네.”


“네가 지금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이해는 하는 거야? 열 때문인가?” 그렇게 묻더니, 셜록은 커다란 손을 들어 차가운 손바닥으로 존의 이마를 덮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상황을 이해하는 데 약간 뜸이 들었다. 아이가 걱정되는 엄마처럼 이마의 열을 짚어보는 저 사람이 바로 셜록 홈즈 놈이다, 저 사람이 바로 내 공동세입자 셜록이다…


안돼, 안 돼.


존의 머릿속 그 상자가 덜커덕거리며, 틈새로 그르렁 소리가 새어나왔다. 무언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상자 내벽으로 몸을 던지며 열어달라고 발톱을 세워 긁어대고 있었다.


존은 상자의 뚜껑을 쾅 내리쳐 더 굳게 닫았고, 동시에 셜록에게서 피하다가 헤드보드에 머리를 부딪혔다.


“윽, 으으.” 끙 하고 손가락으로 살살 만져보니 두피에 벌써 조그만 혹이 나와버렸다. “열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넌…세상에. 닥터 후, 프랑켄슈타인 말이야! 닥터 후도 모르는데 대체 그럼 그동안 티비로 뭘 봤던 거야?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은 고전이라고. 프랑켄슈타인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학교에서 권장도서라구.”


녀석이 갑자기 입가에 양 손을 모으더니 조용해졌다.


존은 저 레이저같은 눈길을 피하고 싶은 충동을 꾹꾹 억눌렀고, 아무것도 아닌 접촉에 과한 반응을 보이며 (의지를 배반한 채)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셜록이 무슨 추리를 해낼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열 때문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 아닐 수도 있고. 셜록은 거의 틀린 적이 없으니까.


“설명해 봐.” 녀석은 “차”와 “랩탑”을 가져오라고 명령할 때면 으레 그러듯 짜증나리만치 고압적이고 도도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존은 그 말의 뜻이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누군지 설명해 봐’ 라는 말인지 ‘왜 내가 가까이 가니까 수줍은 토마토마냥 얼굴이 벌게지면서 피하는지 설명해 봐’ 라는 건지 좀처럼 알 수가 없었다.[각주:5]


둘 중 그나마 안전한 쪽을 고르는 게 좋겠다.


“어떻게 프랑켄슈타인을 모를 수가 있어? 너 어릴 때 무슨 교육을 받으며 자란 거냐? 태양계부터 시작해서, 저번엔 공룡, 이젠 프랑켄슈타인까지?”


전에 얘기했잖아.” 셜록은 인내심이 팍팍 닳아진다는 듯 짜증을 부렸다. “난 쓸모없는 정보는 지워. 네가 믿든 말든 공룡은 이미 수백만년 전에 멸종했어. 이 땅에 없다고. 다시 나타날 일도 없고. 그러니까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는 존재인 게 당연하지.”


“알았어.” 존은 지금 기본적인 초급 교육에 대해 중요하니 어쩌니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아 대충 무마했다. “그래도 프랑켄슈타인을 삭제했다는 말은 못 믿겠어. 딱 네가 관심 가질 구역인걸. 잔인한 데다 고어하고, 사람 시체를 연구하는 거나…” 녀석이 관심이 생겼다는 듯이 눈을 빛내는 모습에 다시 한 번 존의 심장은 곤두박질쳤다. “거기다 고양이도 나오고.” 이럴 땐 얼른 후퇴다. “토끼도…복슬복슬하니 귀여운 동물들이 많이 나와. 왕자랑 공주랑, 사랑에 목숨 거는 장대한 이야기야. 유니콘도 있고. 유니콘 얘기 했었나? 프랑켄슈타인 그거 진짜 재밌는 로맨틱 코미디야. 너도 꼭 읽어봐.” 혹시라도 셜록 녀석이 제 손으로 시신을 살려낸다는 생각에 흥미를 가지면 안 되는 데다 존은 그런 걸 알려 줬다는 연대책임을 지기 싫었다.


“너무 뻔하잖아, 존. 반심리적 설득은[각주:6] 이미 내가 세 살 때부터 먹혀들지 않았어.” 도로 몸을 돌린 녀석은 갑자기 더욱 열성적으로 발을 찔러대더니, 이윽고 박자에 맞춰 새로운 곡조를 몇 가락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프랑켄슈타인이라…흠. 재밌겠는데.”


졌다. 존은 한숨을 푹 쉬며 베개로 쓰러졌다. 안 그래도 아픈 머리를 헤드보드에 박아놨으니 지끈거리지 않을 리가 있나. 코도 꽉 막혔고 목은 아예 사포가 된 기분이다. 그 중에서 가장 슬픈 사실은, 어느 날 집에 돌아왔다가 바츠의 영안실에서 시신이 짜깁기된 괴물이 찾아와 서로 조우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고 해도 결국 그게 본인 탓이라는 거였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셜록의 저음이 가사와 어우러지면서 귀에 쏙 박혀 정신을 온통 헤집어놓기까지 했다.


네 여자친구가 나처럼 섹시하길 원하지 않아?

네 여자친구가 나처럼 화끈하면 좋겠지?

나처럼…[각주:7] 


존은 자기도 모르게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솔직히, 셜록이 시신을 짜깁기하는 데 관심을 보이는 것과, 미국 히트곡을[각주:8] 흥얼거리는 초현실적인 상황 중 어느 쪽이 더 심각한 건지 모르겠다.


“병실이라니까, 셜록.” 마지막으로 부질없는 시도를 해봤고,


“그렇지.” 역시나 셜록은 맞장구를 쳐주며 공책에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나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말이다.


존은 눈을 감았다. 기운도 없는데다 셜록과 함께하는 복잡한 대화를 헤쳐나갈 정도로 뇌가 고성능이지 못한지라 그냥 몸을 데굴 굴려 녀석을 등지고 무시하기로 했다. 정말 도로 잠을 자고 싶었다.


연필이 종이 위로 사각이는 소리, 옷이 스치는 소리, 셜록이 숨을 쉬는 희미한 소리가 모여 존의 방을 그득 채웠다. 확실히 누군가 옆에 있으니 안정감이 드는 기분이다. 그건 마지못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흠, 정확히 말해서 사람 한 명과 십분의 일짜리 한 명이 더 있지. 저기 또 익숙한 리듬을 내고 있는 발 말이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드려는 찰나 그는 저게 무슨 멜로디였는지 기억이 났고, 그땐 이미 취소하기엔 늦어버린 후였다.


그렇게 존은 본의아니게 자는 내내 셜록의 밀크셰이크가 모든 남자들을 스코틀랜드 야드로 이끄는 악몽을 꿨다.[각주:9]


이게 다 열 때문이다.








천천히 눈을 뜨고 잠에 취한 몽롱한 정신을 집중해 봤다.


셜록이 어깨 위에 바이올린을 올린 채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섬세한 악기의 목을 감싼 기다란 손가락이 현을 눌러 멜로디를 자아내고, 드뷔시의 달빛, 나른한 음색이 달빛이 스민 대기 속으로, 따끈하게 녹아내리는 꿀처럼 부드럽게 흘러들었다.


존은 다시 눈을 감고 바이올린 소리에 빠져들었다. 이 별난 남자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각양각색의 모습들이 정말 모두 놀랍기만 하다. 이윽고 마지막 곡조가 잦아드는 소리에 긴 한숨을 내뱉었다.


“노래 좋다.” 목소리가 형편없이 갈라졌지만 존은 작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셜록은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뒤돌아 바이올린 케이스의 벨벳 위에 조심스레 악기를 갈무리했다. 그리고 조그만 송진 조각을 꺼내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매끄럽게 활에 바르기 시작했다.


셜록이 그 절차를 마치고 다시 바이올린을 들어 자세를 잡을 때까지 존은 가만히 바라보며 기다렸다가, 조용하게 물었다. “늦었는데, 안 졸려?”


“어.” 간단한 대답.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야?”


“내가 가는 게 좋겠어?” 녀석이 숯검댕이같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존을 응시해왔다.


“아니.” 너무 빠른 대답이었다. 침을 꿀꺽 삼키고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밖은 구름이 달에 걸려 뿌옇게 빛나는 중이었다. “여…여기 있어도 상관없어. 혼자 있는 것보다야 좋지.” 그는 셜록을 향해 애써 작게 웃었다. “네 악기가 업그레이드 된 것도 다행이고.” 그러고 보니 발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서랍 위에 전기 도구만 남아 있었다. 방바닥에 점점이 흩뿌려진 무언가도. 그건 너무 자세히 보지 말자구. 셜록이 또 무슨 난리를 피워놨는지 자세히 알고 싶진 않으니까.


경계선인 거지, 거기까지가.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쉬다, 문득 평소에 늘상 하던 의문이 퐁 떠올랐다. “날 갖고 무슨 실험이라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그동안 셜록의 숱한 비밀 연구에 저도 모르게 참여된 피실험자 A로 살아왔으니, 자연스레 의심이 가는 게 당연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저 탐정놈이 피부 조직 샘플이라도 가져간 거면 존의 의식이 없을 때 일을 마친 거겠다.


“아냐.” 셜록이 소리내 웃었다. “오늘은 내 실험 대상이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깨 위로 바이올린을 다시 올려놓는 녀석은 음흉한 미소를 해보였다.


시계를 흘긋 확인한 존은 ‘오늘’이라고 해봤자 겨우 두 시간 되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졌다. “그것 참…안심해야 하나, 아님 놀라야 하나 모르겠네.” 그는 결국 팔을 들어 눈을 덮었다.


“넌 아직 아프니까.”


사실이다. 여전히 뼛속 깊이 시렸고 온 몸에 베어난 촉촉한 땀까지 선연했다.


몽롱한 가운데 방금 일어난 것 같은 기억의 한 토막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 자는 동안 커다란 손이 이마로 올라와 열을 식혀주던 감각.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셜록은 대게 사람과 접촉하려 들지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과는. 나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늦었어.” 두서없는 생각 속으로 셜록의 낮은 음성이 끼어들었다. “약 먹고 다시 한숨 자.”


존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어른이고, 잠잘 시간 정도는 알아서 챙길 수 있단 말이다. 그래서 입을 열고 난 종일 잤다고, 오히려 쉬어야 하는 사람은 셜록 너 아니냐고 쏘아붙이고 하고 싶었다. 도통 잠이라곤 자질 않은 것 같으니까. 하지만 입에서는 대꾸 대신에 하품만 나왔다.


녀석은 활을 들어, 브람스 자장가의 포근한 첫 곡조를 자아냈다. 그의 긴 손가락이 느릿하고 우아한 움직임으로,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현 위를 짚었다. 잠깐 동안 마음 속의 경계가 허물어진 틈을 타 ― 저 손가락이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해졌다.


잠깐. 급히 눈을 돌리며 침을 꿀떡 삼켰다. 얼굴에 제멋대로 마구 열이 올랐다. 그딴 상상 하지 마. 쓸데없이.


그동안 조심, 또 조심해왔다. 그런데 망할 감기 한 번 걸렸다고 지금껏 세워놓은 방어벽들이 모래성이 바스라지듯 너무나도 쉽게 허물어지고 만 것이다.


하루 사이에 잔뜩 어수선해진 방 안에 부드러운 음악이 흘렀고, 연주하는 동안 셜록은 반쯤 감긴 눈으로 가만히 존을 응시했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저 창백한 빛깔의 눈동자 너머에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푹 자둬.” 바이올린 소리가 가라앉은 후. 놀랍도록 다정한 목소리로 셜록이 일렀다.


존은 길게 한숨을 내쉰 뒤, 셜록의 말대로 했다.








열에 앓는 동안 의식의 수면 위로 벗어났다 잠기길 반복하며 불편한 잠을 청하는 사이사이 몇 번 모호하게 깨어났던 게 기억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정확히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창밖으로 흐르는 햇빛을 가늠해 보건데, 요 사흘 간 가장 깊게 잠들고 있는 거라는 추측이 간다.


눈을 뜰 때마다, 셜록이 곁에 있었다.


셜록은 종일 무언가를 하느라 분주했다. 실험을 하고, 엄청난 타자 속도로 웹사이트에 업데이트를 하고, 그 다음엔 ― 하느님 맙소사 ― 어떻게 찾았는지 몰라도 책장이 너덜너덜해진 <프랑켄슈타인>을 꺼내 읽기도 했다. 분명 해부학 서적 사이에 뒀던 건데. 이래서 존은 ‘셜록에게 텔레파시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의문을 옛날에 포기했었더랬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셜록은 하고 있는 일에 골몰해, 존이 끙 앓거나 눈을 뜨거나 아님 기침을 하면서 깨는 것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치 녀석이 우연히 존의 방에 들어와 버린 것 같달까… 아니, 정확히 말해 존의 방이 셜록의 주둔지로 바뀌고 어쩌다 보니 존이 여기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무엇인가 잘못된 거다. 자기 방에 누워있는데 침입자가 된 기분이라니. 사실 저 놈의 플랫메이트가 멋대로 쳐들어와 남의 침대 위에 발을 떡 올리고 앉아서는 한가하게 책을 읽는 거란 말이다.


그런데도 셜록의 존재로 인한 알 수 없는 편안함은 부정할 수 없었다.


잠에서 깰 때마다 녀석이 사라지고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 바깥세상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악랄한 범죄가 일어나거나 흥미로운 사건이 생기고 그게 아니더라도 셜록의 주의를 잡아끌 만한 복잡한 실험물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사건이 말라 비틀어질 정도로 부족하지 않은 이상 셜록은 보통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는 늘 존을 뒤에 단 채, 여기저기 꼬리에 꼬리를 물며 부산하게 움직이는 활동가였으니까.


뭐, 반대로 사건 없이 늘어지는 때면 한없는 권태로움에 빠져 소파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퍼져서는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방 안에 갇혀 있는 거였고 지루하다고 심통을 내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셜록의 행동이 뭔가 이상했다. 지치지도 않고 평소보다 더 가까운 거리 안에서 주변을 맴돌았다. 원래대로라면 런던을 뛰어다녀야 할 녀석이 잠자코 존의 방 카펫 위를 거닐었다. 실험실로 가지 않고, 존의 머리맡 서랍을 실험대로 썼다. 수사 요청이 오면 야드로 가는 게 아니라, 그저 레스트레이드에게 문자만 보냈다. 그야말로 런던 최대의 사건 현장이 존의 침실에 오롯이 모여 있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 셜록의 손이 닿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숱한 단서와 실험 도구들까지 모두.


그래서 존이 당황스러운 것이다.


차라리 셜록이 번갯불에 콩 볶듯 빠르게 읊는 추리를 헐레벌떡 따라가는 게 익숙하지, 이렇게 정적이고 차분한 셜록은 어떻게 대해야 옳은 걸까.


거기다, 정신이 또렷이 들 때마다 녀석은 분명하게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문가에서 옷장 서랍으로, 옷장에서 침대 발치로…


셜록이 천천히, 점점 가깝게, 너무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그게 성가셔야 옳은 거라고 말하는 이성과는 다르게,


존은 이게 꿈이 아니기만을 바랐다.


난 돌아버린 거야. 분명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내려놓은 존은, 다시 힘겨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Part 3→





  1. <i>This is probably one of those times when I should be putting my foot down.</i> 'put one’s foot down ~단호한 입장을 취하다'는 표현에 앞서 계속 발 얘기가 나오고 있으므로 의역했다. [본문으로]
  2. Lady Gaga의 노래. “난 너의 사랑을 원해, 친구로 남고 싶지 않아...” - 가사 中. [본문으로]
  3. “Dr. who?” 각주 4에 이어서. [본문으로]
  4. “No, not Dr. Who. Dr. Frankenstein.” [본문으로]
  5. 수줍은 토마토가 되려면 얼마나 얼굴이 빨개져야 하나요~*^^* [본문으로]
  6. Reverse psychology, 일부러 반대 내용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설득하는 심리. 쉽게 말해 상대방의 청개구리 기질을 이용하는 것. [본문으로]
  7.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Pussycat Dolls의 노래 Don’t Cha에 나오는 익숙한 후렴구 가사. [본문으로]
  8. 베네딕트의 목소리로 돈챠~를.... [본문으로]
  9. “My milk shake brings all the boys to the yard(뮤직비디오의 배경 Tasty’s Yard)” Kelis의 Milkshake에 나오는 가사. 이건 뮤비를 보면 존의 패닉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지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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