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lude

[SH/JW] 빈사의 의사선생 │ The Case of the Uncommon Cold - 1 본문

Sherlock_중편/시리즈

[SH/JW] 빈사의 의사선생 │ The Case of the Uncommon Cold - 1

topsecretum 기밀선녀 2013.09.19 22:00
#, , ,
  • 제목 : The Case of the Uncommon Cold
  • 저자 : fakinbrilliance
  • 등급 : NC-17
  • 줄거리 : 존이 독감에 걸렸다. 가장 지독한 증상 중 하나는, 단연 '셜록'이다.
  • 비고 : 기밀선녀가 번역한 글로 창작물의 권리는 모두 저자에게 있습니다. 의도에 맞지 않은 편집+오역 등이 옮겨갈 수 있으므로 불펌은 사양하겠습니다.





빈사의 의사선생The Case of the Uncommon Cold






“죽은 거야, 존?” 문가에서 셜록이 물었다.


존은 한숨을 푹 쉬었다. 셜록은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질문을 일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니, 저 질문은 셜록이 자신만의 룰을 깬 것이라거나(가능성 희박) 아님 존이 정말로 간밤에 꼴까닥 하지 않았을까 일말의 의심이 있어서 찔러보는 거겠다.


그래. 라고, 존은 대답하고 싶었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다 싶을 정도로 한껏 비참해져 있었으니까. 온 몸이 욱신거리는데다 코에 시멘트를 부은 듯이 꽉 막혀서, 꿈속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절절 끓는 사막의 모래처럼 마구 따끔거리는 목의 점액을 연신 삼켜야 했다.


죽어버린 거라고 셜록이 믿어주기만 한다면 알아서 혼자 나가 건들건들 런던을 돌아다니며 탐정질을 할 거고, 그럼 존은 다시 고단한 잠을 청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얘가 무슨 바보도 아니고. 문가에 서 있는 인물은 존의 미친 동거인이다. 시체 조각을 가져다가 온갖 실험을 하길 좋아하는 바로 그런 인물 말이다. 존이 재수없게 이 플랫에서 꼴까닥 해버린다면, 셜록은 의심할 여지없이 옳다꾸나 하며 그 유해를 과학을 위해 쓰겠지. 그럼 존은 냉장고 안의 불쌍한 넬슨 아저씨 옆에 나란히 머리를 두게 될 거고. (셜록이 부분 미라로 만들어 놓은 그 사람 말이다) 혹 운이 정말 좋으면, 해골바가지 옆 자리를 할당받을수도 있겠군.


“안 죽었어.” 거친 목소리를 내자마자 몸의 자가보호 본능이 마구 날뛰었다. 끙 하고 목에 들러붙은 가래를 힘겹게 집어삼켰다. 지난밤만 해도 그냥 목이 조금 따끔거리는 정도여서, 비타민 C를 좀 먹고 여덟 시간 푹 자면 괜찮아질 거라는 멍청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암, 멍청하기 짝이 없지.


들어오라는 말도 없었건만 셜록은 성큼 방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일반적으로 사람 사이에서 예의상 지키게 되는 거리란 게 있는데, 이 녀석은 싸그리 다 무시하고 존의 코앞으로 풀쩍 다가와 있었다.


경계선이 있다니까. 존은 몽롱한 머리로 생각했다. 언제 날잡고 이 녀석에게 지켜야 할 경계에 대해 단단히 일러줘야겠어.


날카로운 눈으로 샅샅이 훑어보는 탐정의 머릿속에선 분명 슈퍼컴퓨터보다도 정밀하게 정보를 체계화하고 있을 터였다. 증명을 완료한 것 마냥, 셜록은 한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입을 열었다. “쉰 목소리에다, 말을 한 뒤 목이 경직되는 걸 보니 부어서 아픈 거군. 눈의 점액층에 염증이 나서 눈가가 빨갛게 됐고. 베개에 침 자국이 났다는 건,” 존은 베개 위에 조그맣게 젖은 자국을 발견하곤 멋쩍어서 얼굴을 붉혔다. “입으로 호흡을 했다는 거야. 그러니 비강이 막혔다는 거고. 인상을 써서 눈썹 사이에 골이 잡힌 데다 한숨을 쉬면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는 건 두통이 심하다는 증거야. 그리고,” 침대 옆으로 딱 와서 말을 잇는 목소리만 들어도 뻔했다. “내 문자에 하나도 답장 안 했어.” 마치, “너, 아픈 거로군.” 꼭 비난하는 투로 말이다.


존은 입을 꾹 다물고, 눈길에 감정이 조금이라도 묻어나오길 바라며 셜록을 지그시 노려봤다. “참 주의 깊네 그러셔.” 걸걸한 목소리로 말하자 연거푸 재채기가 나왔다.


인상을 쓰는 셜록의 입가가 꿈틀 작게 처졌다. “너 지금 아프면 안 돼. 시간이 없어.”


“시간이라니?”


셜록은 재킷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홱 눈앞에 디밀었다. “레스트레이드가 문자했어. 새 사건이야. 드디어, 사건이라고! 난쟁이들이 연루된 3중 연쇄 살인이래, 존. 곡예단 난쟁이들. 일어나.” 알만하다. 녀석은 끔찍한 살육의 소식에 완전 흥분해 있었다.


“셜록.” 목소리가 꽉 막혀 나오는 탓에 목을 가다듬으려고 기침을 해야 했다. 짜증스레 존은 플랫메이트를 올려다봤다. “오늘은 일어나서 범죄 현장에 돌아다닐 수 없을 것 같아.” 그는 손등으로 눈을 문지르고 힘겹게 침을 삼켰다. 맙소사, 몸이 끔살맞게 아팠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 탐정 녀석은, 자명하게 드러나는 증거를 존이 못 알아채고 있을 때면 마구 날리던 신랄한 목소리로다가 쏘아붙였다. “일주일 만에 우리에게 사건이 찾아온 거라고, 존, 일주일 만에. 너도 심심했잖아. 물론 나만큼은 아니지만. 우수한 두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금방 지루함을 느끼니까. 이봐, 그만 노려봐. 사실이잖아. 우리 둘 다 지루해 있었다구, 그런데 이제 사건이 생긴 거고. 이럴 때 어떻게 침대에 퍼져있을 수 있겠어? 사건이 생겼다니까, 존. 3중 연쇄 살인, 줄타기 곡예사 난쟁이들.


존은 한숨을 푹 쉬고 다시 코를 풀었다. “네가 사건을 얻었다 이거지.” 목이 마치 모래를 삼킨 것 같은 느낌이라, 할 수 있는 한 명료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다. “난 감기를 얻었고. 그리고 ‘소형인’들을 지칭할 때 좀 정중한 표현을 쓰는 게 좋겠어.”


“3중 살인이라.” 셜록은 들은 척도 안 하고 휴대폰 화면에 노란색 경찰 테이프 너머 형형색색의 곡예단 천막을 찍은 사진을 띄운 채다. “곡예사. 난쟁이.”


존은 한숨을 쉬어버렸다. 잠시 그는, 그냥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숨어버릴까 진지하게 고려해 봤다. 그렇게만 된다면 다시 무의식의 세계로 꼴까닥 빠져버릴 수 있을 거다. 불행히도, 사지가 납덩이처럼 축 가라앉았고 이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뼈마디가 온통 욱신거려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하긴, 이불을 뒤집어 쓴다고 셜록을 단념시킬 수 있을 리도 없지만. 이 자식이라면 아마 그걸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일 거다.


그래. 여기서 최선의 행동지침은 그냥 기다리는 것이다. 결국엔 셜록도, 존이 오늘 밖에 나가 곡예단 텐트나 곡예용 밧줄 위로 범죄자를 쫓아다닐 만한 상태가 안 된다는 걸 인정할 거다. 그럼 저 녀석은 알아서 혼자 싸돌아다니러 갈 거고, 그땐 평화롭게 비참한 투병을 계속할 수 있게 되겠지. 그렇잖아도 병자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선혈낭자하지도, 협박 문구가 남아있지도 않고 그냥 골골대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셜록은 지루한 걸 싫어한다. 이제 몇 초 내로 저 녀석은 미친 듯한 폭풍 문자와 함께, 저 디자이너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홱 방에서 나가 참사 현장 속으로 곧장 뛰어들어갈 거였다. 늘 그랬듯이.


가장 비참한 사실은, 이렇게 아프고 지쳐서 땀을 흘리며 병상에 누워 앓고 있는 중에도, 존은 정말이지 필사적으로 셜록과 함께 따라나가고 싶었다는 거다.


내가 미친 거지. 대체 정확히 언제부터 정신이 홱 돌아버린 걸까 싶다.


돌연, 침대 위로 몸을 굽힌 셜록의 얼굴이 앞에 불쑥 나타났다.


눈을 깜빡였다. 셜록의 무시무시한 집중력이 온통 한 몸에 집중되는 일은 이제 낯선 일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뒷덜미의 털이 몇 가닥 솟을 정도로 노골적인 눈빛이긴 하다. 존도 지지 않고 마주 쏘아보며 힘없이 말했다. “그만 쳐다봐. 현장에 있는 시신이 된 기분이잖아.”


당연하지만 셜록은 싹 무시했다. 그렇게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면 집중력이 한 층 강화되나?


“어쩌다 이렇게 됐어?” 마치 존이 고의로 그랬다는 것 마냥, 물어오는 녀석의 목소리는 짜증 반 호기심 반이다. 어쩌면 녀석은 감기에 걸려 앓는다는 게, 존의 완벽한 평범함에서 기인되는 ― 즉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 일이라고 정말 믿고 있을 지도 모른다.


“몰라.” 존은 어깨를 으쓱 해보이다, 온 몸이 지끈대며 아우성치는 통에 곧장 후회했다. “아까 그랬잖아, 감기에 왕창 걸렸다니까.” 티슈 상자가 어디로 갔지?


“어떤 종류?” 허리를 펴고 그렇게 물으며, 셜록은 옷장과 침대 사이의 조그만 공간을 이리저리 서성이기 시작했다. “조류독감? 돼지 인플루엔자? 지긋지긋한 짐승들! 왜 자기네 질병을 다른 종에게 퍼뜨리는 거야?”


존은 한숨을 쉬며 손을 들어 찡그린 콧대를 짚었다. 그래봤자 터질 것 같은 두통을 가라앉혀주지는 못 했지만. “글쎄다, 아무튼 둘 다 아닐 걸. 그냥 보통 감기겠지, 아마. 그냥 일반적인 호흡기 독감일 거야.”


“일반적인 호흡기 독감?” 셜록이 우뚝 멈춰 창백한 눈동자로 째진 눈을 하곤 쳐다봤다.


셜록을 처음 만났을 때, 도통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으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수수께끼고, 방심하고 있을 때면 돌연 조각상처럼 조용해지는지라 더 그렇게 느껴졌을 거다. 하지만 근 1년간 세계 유일의 자문 탐정과 지내온 결과, 존은 꽤 많은 것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잘 모르고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지금처럼 셜록이 대차게 토라졌다가 순식간에 표정이 사라지고 생각에 잠기는 모습에 아마 당황할 것이다. 존도, 셜록과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적에 갑작스레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하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셜록이 낯설었다.


하지만 존은 이제 빤히 쳐다보는 셜록의 시선을 받아내는 데 도가 튼 인물이란 말씀이다. 강렬한 시선을 마주하는 건 물론이고, 그 안에서 얼핏 번쩍이는 광기와 눈썹 사이에 살짝 인상이 잡히는 모습도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매료되는 표정이다. 저런 얼굴을 했다는 건, 셜록이 무언가 의심쩍은 냄새를 맡고 답에 근접해가고 있다는 거고 또 누구든 셜록이 알아낸 대로 죗값을 치르게 될 거라는 뜻이다.


한 마디로, 이건 셜록의 추리하는 표정이었다.


구제 불능의 천재님 머리가 어떻게 돌아가든 결과는 엇비슷하니 존은 미리 순순히 항복할 준비를 하기로 했다.


셜록이 집중하느라 눈썹을 찌푸린 채 운을 떼었다. “가장 일반적인 감기 바이러스는 잠복기가 하루에서 나흘 정도인데 평균 이틀 후에 증상이 나타나지. 네 신체적인 조건은 대략 평균치니까, 그럼 이틀이겠군.”


짜증난 눈길에도 아랑곳않고 셜록은 술술 나머지 말을 풀어냈다.


“누가 너한테 옮긴 걸까? 이틀 전 우리는 레스트레이드에게 언더우드 사건에 대해 조서를 쓰려고 야드에 들렀지. 레스트레이드는 괜찮아 보였어. 물론 그게 증상이 나타나기 전이라 그 사이 병원균에 옮았을 수도 있지만. 하지만 레스트레이드는 아니야. 어제 바츠에서 봤는데 아무렇지도 않았어. 그날 앤더슨도 야드에 있었는데…아, 그렇지! 코 밑의 피부가 터 있었어. 최근에 휴지로 자주 닦았다는 분명한 증거지. 여기서, 그걸 앤더슨이 달고 다니는 꽃가루 알레르기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독감을 앓을 병원균이 발생했다고 보기는 무리야. 그리고 도노반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거칠었어. 보통 말하는 톤에서 거의 8단은 낮아졌지. 난 자연스럽게 그 동안 도노반이 다시 서비스를 제공했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는 거고. 앤더슨의 아내가 이번 주에 에딘버러로 출장을 가 있으니…”


“셜록.” 존은 급하게 말을 끊으려 했지만, 그래 봤자 축 처진 몸뚱이와 마찬가지로 무기력하고 불쌍하게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쨌든, 셜록이 섹스 이야기를 하는 건 지금 감기에 푹 절은 뇌로 감당해낼 수 없는 내용이다. 앤더슨과 도노반이 같이… 윽. 장염까지 걸리진 않았지만 갑자기 메스꺼움이 물씬 올라왔다.


“경사의 말투가 달라진 걸 고려해 보면 더욱.” 존이 고난을 겪든 말든 할 말은 다 하고 마는 탐정놈이다.


“셜록.”


“또, 아마 경사는 침대 위에서 소리를 많이 지르는 타입일 거라…”


셜록!” 사람이 필사적이 되면 없던 힘도 생기는 법이다. 거진 쌕쌕거리는 목을 쥐어짜 존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말을 멈춘 셜록이 멀뚱히 이쪽을 쳐다봤다. “왜?”


존은 헐떡이며 숨을 골랐다. “누가 날 감염시켰는지 추리해내 봤자 별로 나아지는 건 없는 거라구, 응? 게다가, 우리 몇 주 전에 사건 때문에 진료소에 계속 있었잖아. 그러니 이건 아무리 너라도 범인이 누군 지 집어낼 순 없을 거라구.” 분한 듯 셜록이 싫은 소리를 냈지만, 존은 활활 타는 것 같은 목으로 얼른 말을 가로막았다. “그런 건 됐으니까, 난 유동식이랑 감기약만 좀 먹으면 돼. 사라에게 전화해서 일 끝나고 잠시 들러달라고 전해줄래? 그냥 내가 감기 걸렸다고만 말해. 필요한 걸 알아서 챙겨올 거야.”


그랬더니, 셜록이 기다란 팔로 척 팔짱을 끼고 반항스레 존을 쏘아본다. “싫어.” 무슨 소리냐고 마주 쳐다보자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고 한층 반항적인 표정으로 성을 내는게 아닌가. “내가 플랫에 그 여자 들이기 꺼려하는 거 알잖아. 내 실험을 자꾸 방해해서 안 돼. 대체 뭐하러 불러?”


“사라는 의사고 난 환자니까. 그런 간단한 인과관계도 모른다면 너 정말 감을 잃은 거야.”


“너도 의사잖아.” 바득바득 고집스럽게 대꾸한다. “의학도로 공부하던 시절을 잊어버렸을 리는 없을 테고.”


“직접 진찰을 하면 병을 냉정하게 진단할 수가 없어.” 존은 훌쩍이면서 옷장 서랍 위에 있을 티슈 상자를 향해 손을 더듬었다. 그래봐야 사거리 밖이었고, 너무 지친 탓에 그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병원에서 써주는 처방전이 필요하다니까. 사라가 처방전을 써서 가져와줄 거라고.”


셜록이 그 말도 안 되게 긴 팔을 뻗어[각주:1] 옷장 위에 있던 티슈 상자를 홱 채어다가 침대 머리맡 서랍에 탁 올려놨다. 그 와중에도 나머지 몸뚱이는 기이할 정도로 꼿꼿했고, 얼굴은 완고한 반항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채였다. “그 여자를 집에 부르고 싶으면, 네가 직접 전화해. 난 빠질 거야.”


그 여자.


그 말에 존은 내심 움찔했다. 셜록은 사라의 이름을 거의 부르지 않는데다,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말할 때면 늘상 씹어뱉듯 했다. 한때 존의 여자친구였던 사람을 향해 그렇게 노골적으로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는 게 처음엔 놀라웠다. 사라는 누가 봐도 완벽하고, 좋은 사람이도 했으니까.


그래서 존은, 셜록이 사라에게 호감이 있는 건가 여러 번 생각해 보기도 했다. 세 살짜리 애처럼 팩팩 짜증을 부리는 녀석이니 로맨스 분야에 있어서도 비슷하게, 좋아하는 여자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수준의 감각이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각주:2] 녀석은 존과 사라의 데이트를 망쳐놓는 데 희한할 정도로 즐거워하는 것 같았고, 꼭 중요한 순간에만 나타나서 폭발 사건에 끌어들인다던가, 미친 무장 괴한들을 달고 온다던가, 혹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어느 화요일 밤에 성난 벌떼를[각주:3] 잔뜩 몰고 나타난 적도 있었다. 놈은 아무래도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아주 작정을 한 게 분명했다. 왠지 자신이 웬 미친놈의 인간관계 모의실험에 본의아니게 참여한 피실험자 A였던 건 아닐지 의심쩍기도 했었더랬다.


하지만 그런 쪽으로 의심이 더해갈수록, 점점 말이 안 된다 싶어졌다.


셜록은 지나칠 정도로 직설적인 데다, 녀석이 친구의 여자는 넘보지 않는다는 상식을 비롯해 여러 가지 섬세한 인간관계를 조금이나마 준수할 거란 환상은 아예 없다. 사라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분명 뭔가 말을 했겠지. 잠깐, 어디보자, 세 번째 데이트 때를 떠올려 보자. 그 데이트는 어떤 네덜란드 출신 코끼리 조련사와 연관되어 아주 좋지 않게 파토가 났었다. 사라는 의자에 묶여서는 잔뜩 화가 난 코끼리에게 금방이라도 밞혀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마침맞게 나타난 셜록에게 간신히 구조되었다. 그 탐정 녀석 어디서 시간을 까먹다 왔는지 몰라도 평소처럼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다. 어쨌든 사라는 목숨을 구해준 셜록을 와락 껴안았다. 여기서 만약 그게 녀석의 계획이었으면 그때야말로 좋은 기회였겠지만 ― 셜록의 반응이란 돌처럼 굳어서 뒤로 물러난 것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 정확히 말해서 차량 추격전 두 건, 인질극 한 건, 러시아 스파이와 칼부림난 사건이 또 한 건 있었다는 뜻이다 ― 사라가 (또다시! 젠장!) 죽을 뻔한 위기를 겨우 넘긴 후 존은 머리통을 한 대 얻어맞으며 ‘저녁 약속에 더 이상 관심 없고요’ ‘매번 데이트 때마다 목숨을 위협받는 일은 이제 사양하겠다’는 선고를 받았다. 지금도 직장 동료로서 친하게 지내고 있긴 하지만 요 근래 들어 사라가 플랫에 들르는 일은 뜸해졌고, 중요한 건 그 사실에 셜록이 은근히 기뻐하는 눈치다는 것이다.


그러니, 단연코 셜록은 존의 전 여자친구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거다.


사실 한번은 머리가 어떻게 됐었는지 몰라도 혹 셜록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닐까 상상해본 적도 있다. 물론 어처구니없는 환상이다.


자신이 백 퍼센트 헤테로는 아니라는 걸 자각할 만큼 존은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 대학에서 어떤 이탈리아인 녀석과 원나잇을 한 적도 있고, 굳이 그 때가 아니었더라도 군 생활을 하며 머잖아 깨달았을 사실이다. 그러니 지금 플랫메이트에게 끌리고 있다는 사실이 천지개벽할 일은 아닌 거다. 셜록은 눈에 확 튀고 두뇌 명석한 데다 절대 지루할 일 없는 인물이니, 존으로서도 거의 첫눈에 이 남자와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봄직 했던 거고. 물론 곧바로 딱 잘라 거부당했지만. 안젤로의 아늑한 레스토랑에 앉아 테이블 위에 빌어먹을 촛불이 아른거리고 있던 그때, 이 탐정놈은 스스로를 “일과 결혼했다”고 단호히 선언했더랬다.


한번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존은, 이제 상대방에게 단칼에 거절당하는 일은 이거면 충분하다고 마음먹고(자칭 안시아라는 숙녀에게 연타로 거절당하는 망신을 당한 후 더욱 그랬다), 셜록을 머릿속에서 ‘플라토닉’이라고 명명한 상자 속에 꼭꼭 넣어 굳게 잠가버렸다.


“존?”


존은 퍼뜩, 눈앞의 남자에게 도로 집중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멍하니 셜록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꼴이 딱 의심받기 좋았을 테다.


“미안.” 얼른 대꾸하며, 존은 이제 가까운 데로 와 있는 휴지를 한 장 뽑아 코를 닦았다. 애초에 이야기하던 화제가 원래 결코 좋은 소일거리라고 할 수 없건만, 현재 열감기에 절어 있는 몸뚱이에 더 악영향을 주는 건 아닐지 존은 의심이 가는 중이다. “생각에 빠져서.”


“그래, 너한테 익숙지 않은 영역이란 걸 알겠군.” 셜록은 딱딱하게 대답했는데, 어쩐지 거기에 원래의 신랄한 느낌이 빠져 있었다.


존은 눈을 감고 아까의 대화에 다시 집중하려고 애썼다. “알았어. 그러니까 사라한테 전화 안 하겠다는 거지? 좋아. 내가 직접 하지. 내 폰 어딨어?”


“몰라.” 셜록은 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가며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어디다 뒀는데? 엊저녁엔 갖고 있었잖아.” 되묻는 존의 음성은 수도꼭지에서 물 흐르는 소리에 묻힐 지경으로 작기만 했다.


셜록은 손에 유리잔을 들고 도로 욕실에서 나오더니, “물.” 마치 그 물질이 자신이 발명한 거라도 되는 양 당당하게 외쳤다. 어쩌면 본인은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내 폰 말야, 셜록.” 눈 너머에서 쿡쿡 쑤셔대는 두통이 더욱 격렬해졌고, 존은 연신 콧대를 문질렀다. 별 소용은 없지만 말이다.


“마셔.” 그런 존의 손에 물을 쥐어주며 명령하는 놈이다.


존은 한숨을 쉬었다. 진즉에 예상했던 것을. 녀석은 하다못해 자기 주머니 안에 든 휴대폰을 꺼내주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존의 휴대폰을 찾을 생각도 없을 터였고. 아무래도 아래층에 내려가서 직접 찾아봐야 할 것 같다…그것도 똑바로 설 기운이 있을 때 얘기지만. 한 두 시간 쉬면 되려나. 일주일은 걸릴 지도. 아니면 일 년 내내든지.


존은 물을 사방에 흘리지 않고 마실 수 있을 만큼만 몸을 일으켰다. 그것만 해도 남아 있는 기력을 거의 쏟아야 하는 일이었다. “너 여기 있으면 안 돼.” 그는 몇 모금 물을 들이켠 후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옮을 수도 있어.”


“이봐, 존. 설마 내가 너한테서 감기를 옮을까봐?”


존이 물을 반쯤 넘기다 막혀서 풉 뱉어내는 모습을, 셜록은 ‘가당키나 한 소리냐’는 눈으로 어이없게 바라봤다. “네가 아무리 천재적인 두뇌라봤자 독감까지 막아줄 수는 없을 걸.” 존은 그렇게 말하곤 숨을 고르며 티슈 상자 옆에 컵을 내려놓았다.


셜록은 컵을 홱 낚아채 다시 욕실로 향했다. “머스터드 가스[각주:4] 때도 그런 말을 하던데, 난 이렇게 멀쩡하잖아.”


“운이 좋았던 거지.” 아연했던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존은 움찔했다.


“운이 아냐.” 수도꼭지에서 물 흐르는 소리 너머로 셜록이 간단하게 말을 정정했다. “조금 관찰하고 셈만 하면 되는 일이지. 실로 뻔한 거라 누구나 할 수 있어.”


“아니. 멍청하고, 바보같은 짓이었어. 천만 다행이었던 거야, 셜록. 다시는 그딴 짓 하지 마.” 목소리에서 그때의 혼란스러웠던 감정이 묻어나왔지만, 존은 쉽게 진정할 수 없었다. 조각상처럼 당당하게 서 있던 셜록의 앞에서 가스가 뭉게뭉게 퍼지기 시작하는데, 폭발물 처리반은 아직 도착하려면 한참 멀었고 폭탄의 마지막 5초가 딸각이던 광경을 눈 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해야 했던 존의 입장으로서는 당시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기운 빠진 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다시는. 약속했어. 꼭 지켜.”


“그래.” 어쩐지 달래주는 투 같았지만 셜록은 그렇게 대답했고, 욕실에서 나와 존의 핏기없는 얼굴을 마주했다. 그의 얼굴에 어쩐지 걱정하는 기색이 스쳤다. “상태가 안 좋아질 것 같아?”


“뭐?” 존은 주제가 갑자기 바뀐 것보다도, 방금 본 게 믿기지 않아 (걱정하는 기색이라니?) 눈을 끔뻑였다. “이미 상태가 안 좋다구.”


“토할 것 같냐는 말이야, 존.” 이건 셜록으로서 놀라울 정도의 인내심을 발휘하는 거였다. “대야라도 갖다 줘?” 그러더니 이번엔 한 손을 존의 어깨 위에 다정하게 올리고,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눈빛으로 빤히 눈을 들여다보는 게 아닌가.


머릿속의 상자가 ― 근 일 년 전에 “플라토닉”이라고 명명하고 셜록을 집어넣어 뒀던 바로 그 상자가 ― 한 차례 격렬하게 요동쳤다.


뭐야? 대체 뭐냐고?


머리가 핑 돌았다. 셜록은 걱정이란 걸 하지 않는다. 뭐, 적어도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물론 저 동상같은 얼굴에도 진짜로 걱정하는 표정이 떠오른 적이 있었다. 그 때야 셈텍스 폭탄을 몸에 둘둘 말고 있던 데다 저격수의 빨간 레이저가 심장 위에서 점점이 어른거리기까지 하고 있었지. 이런 식의 평범한, 일상적인 일로 걱정해 주리라고는 저 고상한 녀석에게서 기대해본 적이 없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정보를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모르는 존의 머릿속은 마구 우왕좌왕하며 뒤섞여만 갔다.


언젠가, 폭탄에 둘러싸여 위협을 당하고 총알이 난무하고 집 냉장고에 잘라낸 사람 시체가 버젓이 들어있는 일이 일상인 삶으로 존의 세계가 바뀌었을 때 존은 잘 적응해 나갔다. 그런데 공동세입자이자 친구가 등을 토닥여 주며 걱정어린 눈빛을 해주는 일 갖고 멘탈붕괴의 전조 현상을 보이는 게 과연 정상적인 걸까?[각주:5]


존은 마음속에 셜록이 들어있는 상자를 더 튼튼하게 강화하고, 경고문을 더 만들어 겉에 덕지덕지 붙였다. 진즉 이랬어야 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셜록이 깜짝 놀랄 만큼 대단한 일을 해내거나 ― 아주 많이 드물게 ― 무심코 다정한 행동을 할 때마다 미리 경각심을 갖고 스스로를 단속해야 했던 거다. 그렇게 헤벌레하게 보냈던 나날동안 강화를 해왔더라면, 셜록이 들어있는 상자는 원자력 발전소마냥 튼튼한 요새가 되고도 남아야 했다. 그런데 이거 봐. 여전히 상자가 달각거리잖아.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그냥 친구 사이” “건드리지 말 것” “수작 걸 상대가 아님”이라고 쓰인 경고문을 더 붙이자 원래 있던 “플라토닉”이라고 쓴 글자는 조금씩 가려지고, 상자는 세계를 돌며 기념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은 여행가방처럼 온통 도배가 되어 버렸다. 위협적인 빨간색 글씨로 맨 마지막에 덧붙인 문구는 이러했다. “정신 건강에 해로움.”


“존?” 셜록이 재촉했고, 존은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그는 눈을 감고 잡생각을 몰아내며, 연료가 다 빠진 기계마냥 힘없이 베개 위로 흐물거렸다. “아니. 괜찮아. 장염은 없을 거야.”


“현장에 따라오지 않을 거면, 잠 푹 자둬.” 마침내 셜록이 그렇게 말하며 새 물을 채운 컵을 손닿을 거리에 올려놓았다.


“그래. 아무래도 네 말이 맞겠지.” 존은 이제 그만 피곤함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기로 했다.


“무슨 이상한 소릴 하고 그래.” 마지막으로 셜록이 대답했다. “당연히 내 말이 맞지.”


셜록이 방에서 나서기도 전에, 존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Part 2→




역자의 말


신경 못 쓰는 사이 한 달이나 업데이트를 못 했네요^^;;

홀연히 나타나서 밑도끝도 없이 갑자기 이런(?) 글을 올리는 이유는.... 환절기 감기에 걸려 골골거리던 중 이 픽을 발견했기 때문. 당시에 환자 존에게 감정이입해서 읽었는데, 어제 다시 보니까 그냥 환자가 아니라 늘 그렇듯 런던에서 가장 혹사당하는 남자 존완순이더란.

(이미 머릿속에서 개그로 변해버린....)


혼자 보기 아까운 글이라, 긴 글을 토막내서 가져옵니다.

남은 추석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제목은 셜록 홈즈 원작 '빈사의 탐정'의 패러디입니다.





  1. 나와라 가제트 팔! .... [본문으로]
  2. 위화감이 없다는 게 더 흠좀무-_-;;; [본문으로]
  3. 본문에서 Africanized honeybee라고 하는데, 일반 유럽 꿀벌보다 더 강하고 난폭해서 남미에서는 위험종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한다. 셜록이라면 이런 꿀벌로 양봉을 하고 싶어할지도 모르지;; [본문으로]
  4. 생화학전에 쓰이는 독성 가스. [본문으로]
  5. 님이 이상한 게 아니라 일단 그 상대가 셜록이라는 게 문제같습니다만.... [본문으로]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