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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lock]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 │ The Man No One Liked - 22 (완) 본문

Sherlock_장편/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

[Johnlock]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 │ The Man No One Liked - 22 (완)

topsecretum 기밀선녀 2015.01.28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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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최후의 용의자





22 : 레스트레이드 부인의 마지막 증언 │ Her Lordship





레스트레이드 부인은 존의 의자에 앉아 넋을 놓은 채 난로 안의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셜록이 술을 조금 가져다주자 그녀는 말없이 받아 잘금거리며 마셨다. 모셔온 생활이 오래였던 터라, 부인이 있는 곳에서 자리에 앉는다는 게 몸이 따르지 않았기에 그는 대신에 창가에서 서성이며 존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기다림 끝에, 반시간이 지나자 길가에 마차가 세워졌다. 서둘러 집 안에 들어온 존이 위층으로 올라왔다.


“죽은 건가요?” 방 안으로 들어서는 존에게 레스트레이드 부인이 멍하니 물었다.


존은 멈칫했지만 곧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부인.”


“드디어. 마침내 그 사람에게서 자유가 되는구나!” 그녀는 의자 안으로 힘없이 무너졌다. 셜록은 부인의 손에서 빈 잔을 거두어갔다.


존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렀고, “부인. 사건을 마무리하고, 그의― 그를 저택 안으로 수습한 뒤에 부인의 외투와 가방을 챙겨왔습니다.” 외투를 의자에 걸쳐놓고 가방은 무릎에 놓아주었다. 부인은 그것이 고양이라도 되는 양 쓰다듬었다.


셜록에게 다가온 존이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어떠세요?”


“일단 겉으로는 무사하신 것 같아요. 브랜디를 한 잔 가져다 드렸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셜록, 이런 부탁 하기 정말 미안하지만, 가서 찻물 좀 끓여 와줄래요?”


셜록은 존의 배려에 웃어주었다. “물론이죠, 존.”


물을 가지고 돌아오니, 존이 부인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주물러주며 달래고 있었다. 그는 셜록에게서 컵을 받아 설탕을 두어 덩이 푼 뒤 레스트레이드 부인에게 마시라고 권했다. 부인은 셜록이 누구인지는 물론이고 아예 셜록이 옆에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것 같았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제가 거기 왜 나타났는지 의아하겠죠.” 부인은 난로 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입을 열었다. 경황이 없다 보니 존과 셜록이 왜 거기 있었는지는 생각지도 못한 듯 보였다.


“저희에게 말씀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운이 나시는 대로 댁에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아니요, 전 오랜 세월을 이렇게 살았어요. 늘 그 사람의 밑에서 지배를 받으며…” 부인은 존을 바라봤다. “당신에게 말하게 되면, 이번엔 당신의 지배를 받게 되는 걸까요?”


“무슨 말씀을 하시든 영원히 여기서만의 비밀로 남을 겁니다.”


“하긴, 당신은 의사니까. 당신이었지요, 다알링 부인에게 말을 전한 사람이?”


“진료를 해 드렸습니다.”


“정말 친절하시군요.”


메마른 목소리에, 존은 못 들은 척 잠자코 넘겼다.


부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달래려는 듯 손가락으로 눈가를 눌렀다. “제가 남편을 매우 사랑한다는 걸 당신도 알 거예요. 이 세상에 그런 착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남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도 할 수 있어요.”


“물론 그러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그 사람은 근방에서 가장 정평이 난 청년이었어요. 잘 생긴데다 인성도 좋죠, 게다가 당연하지만, 부유하고요. 눈썰미 좋은 부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딸을 그 사람에게 시집보내려고 난리였어요. 제게는 그럴 기회조차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부인은 말을 멈추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보다 훨씬 옛날의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네요.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아홉 살이었고, 루이자 ― 캐롤라인의 어머니죠 ― 는 여섯 살 밖에 되지 않았어요. 아버지… 저의 아버지는 병을 얻어 누우셔서 전 15살 때 동생과 함께 숙부님 댁에 얹혀살았죠. 당시에는 노팅 힐에 살지 않았지만, 숙부의 소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집이었어요. 숙부는 저를 후원했지만, 적절한 드레스를 구할 만큼 돈이 충분하지는 못했죠.” 부인은 존에게 슬프게 웃었다. “우습지 않나요? 하지만, 그게 여자의 삶이랍니다. 전 앞으로 그 사람처럼 나이든, 그와 아는 패 중 한 명하고 결혼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진 빚이 있으니 절 사용하는 거라고요. 저를 사교계에 내보낸 것도 형식적인 일일 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게 처음으로 손을 내민 사람은… 레스트레이드 경이었죠. 저는 그 사람과 첫 춤을 췄어요. 그리고 열여섯 살 때도, 또 열일곱 살 때도…”


부인은 생각에 잠겨 미소를 지었다. 존은 댄스 카드[각주:1]가 꽃이나 여타 다른 기념품과 함께 어딘가의 책 사이에 끼워져 있을 것을 떠올렸다.


“그렇게 지내면서, 그 사람이 제게 어느 무도회나 파티에 나올 예정인지 묻고는 하더군요. 거기에 오겠다고요. 하지만 전 그렇게 많이 돌아다닐 여력이 없었어요. 그리고 한번은 제가 집에 말이 없다고 하자 그가 언제든지 타라면서 자신의 말 한 필을 빌려줬죠. 전 그이가 처음 제 손에 입을 맞췄던 그 때부터 그를 사랑하고 있었어요.”


거기까지 말한 부인은, 어두워진 얼굴로 무릎에 놓인 가방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처음엔 숙부가 매우 화를 냈죠. 아까 말했듯이, 저를 재물 따위로 여기고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곧… 절 그레고리와 결혼시켜서 얻을 것이 있다고 계산을 했던 모양이에요. 그레고리가 청혼을 했을 때 숙부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어요.”


부인이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사이, 끈기 있게 기다리는 존과 달리 창문가에 서 있던 셜록은 참을성 있게 견디기가 조금 힘들었다. 이걸로는 그 날의 일을 설명하기엔 아직 조각이 부족했다. 그렇지만 존은 부인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기에, 나서서 딴죽을 걸며 질문을 하기가 힘들었다.


“제…제 결혼식… 두 주 전에, 숙부가 이미 약혼자의 이름을 이용해 재산을 저당 잡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저는 그에게… 숙부에게 가서 이제 난 자유의 몸이라고 못을 박았어요. 나를 이용해서 레스트레이드 경에게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며, 또… 루이자를 데려와서 그 아이도 그의 그늘이 닿지 않는 데서 살게 해 주려 했어요. 그레고리와 이미 상의를 마친 것이었죠.” 부인의 눈이 내리감기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가 내 얼굴을 계속, 계속 때리고, 또 때리고… 그러더니 내 위에 올라탔어요.” 그녀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소리 없이 울었다.


존은 부인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부인, 정말…정말 유감입니다.”


“언제까지고 제가 자신의 소유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무슨 일이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더럽혀졌다는 것을 남편에게 말해버리겠다고 했어요. 그리고…오, 하느님… 그리고 제 어머니에게도 똑같은 짓을 했어야 했던 거라고 그러더군요. 자신을 버리고 제 아버지에게 돌아서는 꼴을 보고만 있지 않고 말이예요…”


존은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는 의자에 가까이 몸을 붙이고 조용한 목소리로 부인에게 말을 건넸다. “부인, 제가 남녀 간의 혼인에 많은 것을 아는 건 아니지만, 부군께서 부인을 사랑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지금 제가 부인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부군께 이 사정을 말한다 하더라도 절대 부인에게 탓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어느 여성도, 겁탈을 당한 것에 책임을 느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군께서는… 저 역시, 저 역시 부군께서 숙부에게 가 죄를 물을까봐 걱정하시는 마음을 이해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다면 저라고 다르지 않겠지요. 그러나 부군께서는 지성이 뛰어나실 뿐만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죠.” 부인은 차갑게 말을 잘라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다른 사내의 자식까지 기꺼이 키울 수 있을까요?”


존은 흘긋 셜록에게 시선을 던졌지만 아무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내 숙부가 결혼 한 주 전 날 강간했어요. 내 아들 피터가 결혼 후 아홉 달 만에 나왔고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말씀해 보시지요, 왓슨 박사님.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아이의 아버지인지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존은 비통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부인.”


“그래요, 그렇겠죠. 당신은, 어미가 되어서 자기 자식을 두려워한다는 느낌이, 그 죄책감이 어떤 느낌인지 아시나요? 뱃속에서 나오지도 않은 이 애가 자라서… 괴물이 될까봐 두려워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상상이 가나요? 피터를 낳고 나서 한동안 무척 마음앓이를 했어요. 전―전 적어도 그레고리만은 그 애를 사랑해주길 바랐어요. 하지만… 곧 딸들이 태어났고… 아버지들은 늘 딸을 더 사랑하지 않나요. 그리고, 그래서… 전 피터가 자라는 모습을 매 순간 지켜봤어요. 누구의 씨앗인지 혹시라도 내보일까 해서, 착한 모습을 보일 때나, 잔인한 모습을 보일 때 한 시도 떼놓지 않고… 심지어 전… 하느님, 용서해 주소서… 하지만 그 자는 천벌을 받은 게지요.”


“레스트레이드 부인, 그렇다면… 낙마한 사고는… 혹시라도…”


“애를 떼어버리려고 의도한 것 아니냐고요? 그래요, 왓슨 박사, 그런 짓까지 했지요. 당신은 악한 종자가 대를 잇는다고 생각하시나요, 박사?”


“아니요. 아닙니다. 아드님의 행동에서 어떤 특이한 것을 발견하신 겁니까?”


“그 애는 상대하기도 곤란하고, 까다로운 아이죠. 하지만 괴물은 아녜요.”


“그렇다면 부인께서는 좋은 어머니로서 좋은 아드님을 길러내신 겁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곱씹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잠시 기다렸지만, 부인이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아 더 물었다. “그렇다면 네빌 경이 그동안 이것을 가지고 부인을 압박한 겁니까? 숙부께서 피터가 당신의 아이임을 주장했습니까?”


“그는 절대 말을 많이 하는 법이 없었어요. 자신을 돕지 않으면 제 비밀을 누설해 버리겠다고만 했죠. 남편까지 도움을 종용하게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갑자기, 그 하인이 내게 와서, 그 얘기를 들먹이며 나를 협박했어요. 절 자신의 지배하에 두려고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견디기 힘들었죠. 그 하인을 고아원에서 데려왔을 당시에 함께 가지고 왔던 것이 있었는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찾아서…그 날, 그 날 저녁에…전해줬어요.”


셜록이, 부인의 시선 바깥에서 좀 더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것이야말로 그동안 의문에 감춰져 있던 비밀일 것이었다.


존은 그 움직임을 알아채고 대신 물었다. “그에게 뭘 주신 거죠?”


“출생증명서와, 모친이 고아원에 아이를 맡기고 세상을 뜨기 전에 남긴 편지를 가져다줬어요. 그가 네빌 경의 아들이라는 증거를요.”


숨이 막힐 듯 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제가 그 사람을 죽게 만든 거지요? 그 남자에게 괴물을 보내고 만 거예요.”


마침내 입을 연 부인의 목소리는 너무도 무덤덤해서, 존은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렇다면 부인은 숙부께서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의도된 목적이었나요?”


“아뇨! 아니…그래요… 모르겠어요. 어쩌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렇게 바랐을 지도 몰라요. 전 그걸 알고, 그 사람에게, 제 숙부에게 가서 빌었어요. 숨기지 말고 죄를 자수하라고요.” 처음으로, 비로소 부인이 고개를 돌려 셜록을 바라보았다. “날 믿어야 해요, 당신. 그것 말고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방도를 몰랐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지금껏 지켜오려고 호되게 노력했던 것들을 전부 잃어버리고 말았을 거예요.”


셜록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앤더슨이 돈을 요구했겠죠, 그리고 부인께서는 요구한 것 대신 그의 출생증명서를 주셨어요. 앤더슨에게 네빌 경이 흔쾌히 사생아를 반길 거라고 믿게 하신 겁니까?”


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가 아무리 무지했더라도 네빌 경과 같은 남자가 자신을 알아봐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자기 말고도 처지가 같은 사람이 몇이나 더 있을 거라는 걸 알았겠죠. 애쉬번햄 고아원은 그렌빌 보호소라고도 불린다죠. 어찌됐건 그는 협박으로 재물을 모으는 사람이었으니, 숙부에게 돈을 뜯어내거나 나아가서 같이 사기를 벌이도록 끌어들이려는 속셈 아니었을까요.”


“편지를 돌려보낸 사람이 부인이시죠? 앤더슨이 죽은 후에, 그의 방으로 가서 편지를 회수하셨어요. 그리고 짐작컨대 돈 역시 가져오셨을 테고요.”


“그래요, 하지만 그 하인이 숙부에게 당장 갈 것 같지는 않았어요. 적어도 다음 날까지는 기다릴 거라 생각했죠. 그런 일을 한 것을 당장에 후회했어요. 그래서 다시 가서, 숙부에게서 뭘 바라는 건지는 몰라도 설득할 수 없을 거라고 그를 단념시키려 했어요. 하지만 그의 방에 갔을 때는 이미 죽어버렸고, 숙부는 사라진 후였죠. 분명 출생증명서와 편지를 가져갔겠죠, 당장에 태워버리고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협박 편지가 있었다는 건 몰랐나봐요. 난 적어도 마지막 존엄성은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앤더슨의 얼굴을 덮어주고 방을 뒤졌어요. 협박을 받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게다가 그 짓으로 돈을 얼마나 모았는지 깜짝 놀랄 정도였죠. 하지만 물론, 돈은 돌려줄 수가 없었어요. 대신에 좋은 일에 쓰기로 했죠. 적어도 이제 도널드 찰스가 또 숙부의 투자사기에 말려들어 파산할까봐 걱정하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되었네요.”


“어째서 곧장 다알링 씨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으신 겁니까? 아니면 다알링 부인에게 라도요.”


존의 질문에 부인은 고개를 숙였다. “밀러가 얼마나 건달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모두가 알지 않나요, 정작 당사자인 클레어는 모르지만… 다들 클레어를 달래서 설득하려고 했었죠, 하지만 편지를 되돌려 보낼 수가 없었어요. 밀러의 지저분한 비밀을 탄로해도 좋을 입장이 아닌데, 마음대로 그런 일을 했다간 결국 똑같이 협박꾼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어요. 편지를 되돌려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밀러가 마음 편하게 지내는 꼴을 볼 수도 없었죠. 나중에 신문에서 이혼한다는 기사가 나오고 나서, 클레어가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다고 얘기해 줬어요… 그래서 이혼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싶었죠. 클레어가 법정에 증인으로 섰을 때, 난 진심으로 안도했어요, 홈즈 씨. 당신이 무고하다는 것이 밝혀져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를 거예요. 그 후에 난 다시 숙부에게 가서, 다알링의 누명을 밝혀달라고 또 빌었어요. 하지만 내 면전에서 비웃기만 하더군요.”


“그렇다면 오늘의 일은 어떻게 되신 겁니까?” 셜록이 끄덕이는 것을 보고, 존은 좀 더 물었다.


돌연, 레스트레이드 부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제 조카딸에게 접근하는 목적이 무엇이지요, 왓슨 박사? 그동안 그 애를 꾀어서 여기저기 뒤를 캐고 다니던 것이 아니었나요?”


갑자기 화재가 바뀌자 존의 낯빛이 희어졌다. “전… 저는 부인의 조카 분을 매우 높이 보고 있습니다, 레스트레이드 부인. 그러나,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이미 독신으로 살기로 했고, 캐롤라인 양에게도 처음부터 확실히 얘기해 두었습니다. 대신 귀중한 우정을 맺었죠. 저는 그녀를 제… 제 조사에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캐롤라인 양이 직접 자원했지요. 저희들은 홈즈 씨가 무고함을 믿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밝혀내는 게 저희 의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책망을 담은 투로 말을 맺었다.


“그래요. 그렇게도 빠르게 홈즈 씨의 재능을 알아보신 모양이로군요. 오늘 그 애가 와서 타이핑된 편지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듣고 알았어요. 배후에 이 모든 사실을 아는 누군가가 더 있다는 걸. 숙부가 위험에 처해진다면, 곧 제게도 위험이 닥칠 테니, 전 결국에 숙부의 저택으로 가서 먼저 나서겠다고 얘기했어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요. 또다시 절 때리며 협박하더군요. 그 이상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요. 문이 열리자마자 저택에서 도망을 쳤어요. 나머지는 제대로 기억할 수가 없지만, 안개 속에서 말이 뛰어나왔고… 여기 당신과 홈즈 씨가 이곳으로 절 데리고 왔지요. 거기까지가, 기억하는 전부랍니다.”


부인은 얘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계속 위엄 있는 자세를 유지하며 그날의 사건에 대해 아는 바를 전부 말해주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마치고 나자, 그녀는 힘이 쭉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제야 존은 알아챘다. 시선을 교환하니 셜록 역시 그랬고, 부인은 이제 궁금증이 채워졌으니 두 사람이 자신을 경찰에 끌고 갈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부탁드릴게요, 박사님.” 부인은 구슬픈 목소리로 조용하게 말했다. “부디 제 가족 ― 제 남편과 아이들, 캐롤라인 그 애를 비롯해서 우리 조카들 ― 가족들을 위해서 오늘 있었던 일은 아무 말도 말아주세요. 제… 제 가족들에게… 박사님의 의학적 소견을 이용해서 제가 정신이 나갔다고 해주세요. 아실 테지만 제 아버지도 그러셨으니 이상할 일은 아니지요. 아무도 얘기는 않지만 다들 그 사실을 안답니다. 애초에 그래서 우리 자매가 네빌 경의 밑에서 살게 된 거니까요.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차라리… 차라리… 진실을 알게 되면 모두 무너지고 말 거예요.”


“부인,” 의자에서 일어서며 그렇게 입을 연 존이었지만, 더 이상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대신 셜록에게 고개를 돌렸다. “홈즈 씨, 마차를 불러 주겠어요? 곧 따라 나갈게요.”


셜록은 수긍했고, 곧 둘은 복도에서 마주하고 섰다. 


“부인에게 되갚아주고 싶지는 않나요, 셜록? 남의 일에 휘말려 그동안 고생하며 부당한 일을 겪었잖아요.”


셜록은 문 너머에서, 무너지듯 앉은 채로 손을 내려다보고 있는 부인을 향해 눈길을 주었다. “오늘 낮에 그 질문을 들었다면 당연히, 그러고 싶다고 대답했을 거예요. 하지만… 부인은 오랜 세월을 학대당하며 보내왔어요. 어제 당신이 얘기한 대로 앤더슨은 완전히 비열한 놈이고, 네빌 경 역시 극악무도한 괴물이었어요. 살인자는 죗값을 받은 겁니다. 두 남자에게 얽혀 일어났던 비극은 이제 끝이 났어요.” 그는 존의 머리 위쪽으로 시선을 둔 채 잠시 생각했다. “난 부인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 부인을 모셔다 드리고, 유감스러운 소식을 지어서 가족 분들에게 전해줘야겠네요.” 말을 마친 그는 존에게 웃어주었다. “내려가서 마차를 불러올게요.”


거실로 돌아오니 레스트레이드 부인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 홈즈 씨와 제가 댁으로 모실 수 있게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아마 경찰과 몇 번 더 볼 일이 있을 겁니다. 일단 제가 다른 단서를 흘려놓았으니, 일이 이대로만 풀리면 내일 아침 경찰들이 찾아와 숙부님이 우연한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드릴 겁니다. 무슨 말씀을 하실 지는 부인과 경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레스트레이드 부인은, 도로 의자로 쓰러질 듯이 휘정거렸다. 정신을 잃는 것일까봐 존이 얼른 옆으로 가 부축하려 했지만 이내 부인은 자세를 다잡고 몸을 세웠다. “왓슨 박사님… 감사해요.”


“레스트레이드 부인, 부인이 하신 행동을 판단할 권리는 제게 없습니다. 저 역시, 제가 그런 상황에 처했더라도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박사님이 제가 피터에게 좋은 어머니라고 하셨죠. 옛날에 숙부가 한 말이 계속 떠오르는군요. 왓슨 박사님, 혹시라도 제 어머니가 아버지가 아닌 그 사람을 사랑했더라면, 서로 사랑했더라면, 제 숙부도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그 분은 원하는 것을 가져가는 법만 아는 사람이 아닐까요. 원하는 게 있으면 요청하거나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부인.”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존이 돕는 대로 외투를 걸친 뒤 셜록이 기다리고 있는 마차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그렉슨이 부인의 하녀를 대동하고 나와서 문을 열어줬다.


그렉슨이 레스트레이드 부인을 부축해 안으로 모시고 들어가자 소리를 들은 캐롤라인이 거실로 달려왔다. “왓슨 박사님? 가시기 전에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렉슨은 못마땅한 기색이었지만 존을 현관으로 보내놓고 캐롤라인이 얘기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뒤이어 나온 그녀는 동전만큼이나 커다랗게 뜨인 눈가가 빨갛게 변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외숙이신 네빌 경께서, 비극적인 사고로 운명하셨습니다.” 한숨이 섞인 존의 말에 놀란 캐롤라인이 숨을 들이켰다. 존은 단호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당신의 이모님께서 그곳에 방문을 하셨다가, 나오시자마자 안에서 사단이 난 모양입니다. 근처에 왕진을 간 터라 그곳에서 길을 걷고 있었는데, 일이 난 것을 보고 가서 부인을 댁으로 모셔올 수 있었습니다.” 한 번 물꼬를 터놓으니 지어놓은 대로 이야기가 매끄럽게 흘러나왔다. 의문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레스트레이드 부인을 빠르게 데리고 빠져나왔고, 또 단 한 번도 셜록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캐롤라인은 질문을 퍼부을 거라고 존은 생각했다.


“오.” 캐롤라인은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그럼… 거기서 무슨 일이 더 있었나요?”


그는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게도 거기까지는 내가 말해줄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수요일에, 지난번과 같이 만나게 되면 가능한 한 모두 들려주도록 할게요. 그리고 우리의 친구가 저번의 무례를 사과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는… 우리는, 당신의 진실한 벗이 되길 원하니까요.”


그녀는 조금은 지친 얼굴로 웃어주었다. 처음 겪은 모험이 기대했던 것보다 수월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네. 저도 마찬가지예요. 꼭 가도록 할게요. 안녕히 가세요, 왓슨 박사님.” 캐롤라인은 배웅을 하고 안으로 돌아갔다.


길가에 세워진 마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셜록은, 담배를 태워 하늘을 향해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날의 비극적인 사고를 일으켰던 안개는 어느새 사라지고 자욱한 구름 사이로 청명한 밤하늘과 희미한 달빛이 비쳤다.


“좀 걸을래요?” 가까이 다가오는 존을 향해 그가 제안했다.


“추운데요. 나 지쳤어요.”


“신선한 공기를 쐬면 머리가 좀 정리될 거예요. 그런 다음에 마차를 잡아도 되니까.”


“그건 그래요.”


존이 마차를 보낸 뒤 두 사람은 도심지를 향해 걸었다. 셜록은 걸으면서 존의 팔을 다정하게 잡았다.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그는 드디어 근심을 내려놓고 편해진 것 같았다.


“이제 좀 행복해 졌어요?” 라고 묻는 존은, 조금 날이 선 목소리였다.


“생각한 것만큼은 아니네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에서도 아니에요. 레스트레이드 귀부인의 사연은 비극적인 이야기고, 그래서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정의는 어떤 식으로든, 결국에 지켜지게 마련이죠.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래서 더, 빠르게 우리 사이가 단단하게 맺어질 수 있었어요. 그러니 만족스럽다고 합시다. 또 고무되었기도 하고요.”


“고무됐다고요?”


“모르겠어요? 우리, 나와 당신, 그리고 캐롤라인 아가씨는 진실을 얻기 위해 노력해서 결국 찾아냈어요. 레스트레이드 부인은 남은 인생을 계속 숙부의 영향 아래 비참하게 보냈을 지도 몰라요. 나도 사형당하고, 다알링 부인은 여전히 남편에게 속으며 살았을 겁니다. 봐요, 우린 이로써 비극으로부터 좋은 결말을 이끌어낸 거예요. 양심을 추구하는 우리의 마음인 거죠. 아주 옛날부터 난 그랬던 것 같아요― 의미 없는 일과를 보낼 때는 아니었지만… 여하튼 좋은 일을 했고, 흥분되고, 그게 중요한 거죠.”


그는 온 런던을 향해, 긴 팔을 펼쳐보였다. 


“여기 얼마나 많은 비밀들이 도사리고 있을 지 누가 알겠어요, 존? 바로 겉을 살짝 들추기만 하면, 저 멋진 문들 너머에, 혹은 커다란 저택의 보이지 않는 모퉁이에 얼마나 숨겨진 그늘이 많을까요?”


그리고 존을 향해, 벅차게 말을 이었다.


“저택에서 일하며 그렇게 많이 손님들을 관찰해 왔으면서도, 그 뒤에 비참하게 꼬인 비밀이 이리도 많았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이제 이 도시의 창문 너머를 들춰보고, 그 안의 사람들이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어떤 우연의 일치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어요. 거짓말처럼 이어지고 또 흘러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거죠. 여기, 바로 이곳이야말로 내가 연구할 분야인 거예요!”


존은 가로등을 사이를 지나가며 그림자가 졌다 사라지곤 하는 셜록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셜록의 마음속에 어떤 커다란 뜻이 있는지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사랑하는 사람이 열정이 담긴 눈을 반짝거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 - 완.

외전 : 그대만 있다면 →



역자의 말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는 사건으로 시작해서 사건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원래라면 복잡한 것을 피해서 적어도 로맨스 6할 : 사건 4할의 비중을 두고있는 글을 선택했을텐데, 왜 이 글을 옮기기로 했을까 돌이켜보니 아마 글이 끝날 때까지 사건의 중심을 놓지 않고 긴박하게 서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인상깊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가 누구냐 하는 것은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죠. 저는 그것이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된 앤더슨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결국 앤더슨에게는 그나마 남매처럼 사랑해주는 샐리가 있었구요. 네빌 경이라고 하자기엔 레스트레이드 부인이 끝까지 연민을 가졌지요. 또 늘 그렇듯, 만인의 소시오패스 영원히 고통받는 셜록은 말할것도 없이 존이 있고요. 


그나저나....

흛.... 끈기가 부족한 건 알았지만 2년을 매달리다니...ㅎ..ㅎㅎㅎㅎ...;;;;

게으름 팽팽 부리다가 최근엔 또 늦바람이 들어서는 스타트렉의 재미를 알아버렸거든요. 만세! 읽을 픽이 두 배!

한 작품에만 매달리기에는 인내심도 부족하고, 보여주고 싶은 픽도 너무 많아요. 번역하는 분들이 더 많아지길...!! (어서어서 입문하세요) 정진해야지요. 정진. 앞으로는 새로운 장편보다는 있는 글 보완에 힘쓰는 걸로다가. (...근데 스타트렉을 알아버렸잖아? 안될거야 아마)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는 외전이 더 있는데, 발렌타인 데이 특집이니 그날에 맞게 들고 오겠사옵니다. 총총..


  1. 무도회에서 자신과 함께 춤을 춘 사람의 명단을 기입한 카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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