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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JW]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 (The Man No One Liked) 17 본문

Sherlock_장편/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

[SH/JW]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 (The Man No One Liked) 17

topsecretum 기밀선녀 2013.06.27 21:09





17 : 다알링 부인의 폭로 │ Mrs. Darling’s Testifies





법정에 나타난 다알링 부인의 모습은, 신문에 나와서 잘 알려진 이혼 소송 때 그대로의 차림이었다. 우아하게 주름이 달린 하얀 실크 블라우스 위로 세련된 진회색 울 정장을 입었고, 여우털 목도리와 깃털달린 모자까지 갖춰 착용했다. 비웃음을 살 만한 비운의 여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되찾고, 보복을 할 준비가 된 모습이다. 선서를 하며 성경 위로 올려진 손끝이 자그맣게 떨리는 모양을, 셜록은 볼 수 있었다. 내면으로는 방황을 겪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부인은 태연하게 그것을 잘 숨기고 있는 것이다.


도날드슨은 고개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출두 요청에 응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다알링 부인. 힘든 시기에 이렇게 공헌해 주신 점에 대해 모두 감사를 표하고 있을 것으로 압니다. 무례한 질문입니다만, 신문에 부인의 결혼생활이 끝났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더군요. 사실입니까?”


스미스가 곧장 이의를 제기했다. “재판관님, 지금 이 재판은 다알링 부인의 불운에 대해 논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굳이 저런―”


“재판관님, 부디.” 도날드슨이 양 손을 들어 양해를 구했다. “연관점은 머잖아 명확하게 드러날 겁니다.”


기자들이 앉아있는 곳의 분위기는 곧장이라도 터질 것 같이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다. 살인사건과 다알링 가 스캔들이 관련되다니, 이런 특종은 꿈도 꾸지 못했던 대서특필감이었다. 증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간 레스트레이드 경 역시 눈에 띄게 동요하는 모습이었다.


“계속하시오, 도날드슨 변호인.” 판사가 허락을 내렸다. “하지만 경고하건데, 선정적인 얘깃거리를 끌어낼 계략이라면―”


“재판관님!”


마치 어머니에 대한 모욕을 받은 것처럼 도날드슨이 분개한 표정을 짓자, 판사는 헛기침을 한 후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알링 부인, 계속하시지요. 11월 22일 밤 부인과 남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십시오.”


“저희는 밤 11시 반에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시내에서 남편의 일이 있어 그날 오후 칼리튼 홀로 내려가게 됐습니다. 그때 제가…제가 몸이 아팠고 피곤해서 저녁에 다른 손님들보다 일찍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돌아오자마자 바로 옷을 갈아입었는데, 남편이 어딘가 불안한 모습이었습니다. 넥타이는 끌렀지만 잘 준비는 하지 않더군요.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해서, 담배 냄새를 맡기 싫으니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아래층으로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부인의 얼굴로 아주 잠깐 표정이 드러났다. “저희들은 싸웠지요.”


“알겠습니다.” 잠시, 침묵을 지키도록 해준 다음 도날드슨이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그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사람이 떠났습니다.”


“어디로요? 집으로 떠났습니까?”


“제 말은, 저희 방을 떠났다는 뜻입니다. 레스트레이드 내외는 제 친구이지, 그의 지인이 아닙니다. 아무튼 그 때가 분명 자정이 지났을 때 즈음일 겁니다. 그 시각에는 다들 방으로 돌아가고 없었을 테니, 그가 어디로 무얼 하러 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돌아오셨습니까?”


“예. 어림잡아 한 시간 뒤에요. 저는 그때 너무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잠깐 졸았던 게 분명합니다. 깨어나자 그 사람이 욕조에서 목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목욕이요? 보통 그 시간에 씻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끄덕임에 맞춰 그녀의 모자에 달린 깃털이 가볍게 튕겼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전 그 양반이 스스로 목욕을 준비하는 법을 알 줄 몰랐거든요!”


셜록은 남몰래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말하는 다알링 부인 역시 욕조에 물 채우는 일조차도 직접 해본 적 없을 테지. 여기서 구경하는 노동자 계급 사람들에게라면 단연 좋은 우스갯거리다.


“당시의 모습에 대해 더 묘사하실 사항이 있겠습니까?”


“피부가 매우 붉어져 있었습니다. 바깥에 걷다 와서 뼛속까지 시리다고 하더군요. 이상한 것이, 그렇게 말하면서 이마에선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기 전에 그는 욕실에서 저를 물리고 목욕을 했습니다.”


“한밤중에 산책하는 것이 남편께 일상적인 일입니까?”


“아닙니다. 보통 어디든 걸어다니기를 혐오하는 작자입니다. 아주 한가한 인간이거든요.”


객석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져나왔다.


“가끔 그렇게 밤에 산보를 나가곤 합니까? 시내에 나와 있을 때면 마차를 타고 어디를 간다든가?”


그녀는 보드라운 가죽 장갑을 낀 두 손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가끔은요.”


“그러면 남편께서는 뭐라고 이유를 대시던가요?”


“클럽 모임이 있다고요.”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돌연 다알링 부인이 증언대 너머에서 왈칵 외쳤다. “이제 왜 밤중에 나돌아다녔는지 알겠군요!”


도날드슨이 진정하라는 듯 두 손을 내었다. “다알링 부인. 부디 제가 먼저 여쭙는 질문에만 답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숨을 깊게 들이쉬는 그녀의 양 어깨가 불룩 위로 솟았다. 부인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두 분이 그 일에 대해 다음날 아침 얘기를 하셨습니까?”


“예. 경찰이 왔을 때였습니다. 그, 그 남자, 그 하인이 살해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자기가 밤중에 나갔던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러길 하인 하나가 그냥 죽은 것 뿐인데 경찰들이 요란을 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그 당시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죠.”


“이후로 의견이 바뀌신 겁니까?”


“네. 지금은 남편이 셀 수없이 허다하게 많이 외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압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에 저는 그가, 그가 누군가, 여자 하인이라든가, 누군가와 밀회를 한 것이리라고 확신했었습니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목욕을 한 이유가 그래서라고요. 사실은 그 자가 그 하인을 살해한 거예요!”


법정 안은 완전히 폭발했다. 방청석은 난장판이 되어, 이 소식을 석간 발행물에 먼저 특종으로 내놓기 위해 몇몇 기자들이 앞다투어 빠져나가느라 입구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렇지 않은 나머지는 남아서 눈을 빛내며, 추가로 수집할만한 얘깃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앉았다. 레스트레이드 경은 그를 둘러싸고 질문을 퍼붓는 기자들을 피해 법정 밖으로 떠밀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선 얼굴이 벌게진 스미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알링 부인의 증언을 모두 서기의 기록에서 삭제해야 한다며 요구했고, 판사는 고함을 질러 법정 안의 소란을 애써 잠재우며 스미스에게 답했다.


“엄숙! 엄숙하시오! 검찰측에게 추후에 반대 심문할 기회를 주겠소. 앉으시오! 피고측, 계속 하시오. 하지만 내 경고하는데, 이게 거우 추측에 불과하다고 밝혀지면…”


소란스런 중에서도 도날드슨은 차분히 웃을 뿐이다. “재판관님, 재판관님도 이제 이것이 추측에 불과하지 않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계속 심문을 이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도로 증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알링 부인, 남편분으로 향한다기에는 참으로 가혹한 비난입니다. 왜 다알링 씨가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남자가 협박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알링 부인은 금세 다시 감정을 억누르고 차가운 얼굴로 돌아왔다.


한 마디 나올 때마다 거듭해 자극적인 폭로가 터져나오는 상황이라, 객석의 기자들은 하나둘씩 엉덩이를 들썩이며 곧장이라도 튀어나갈 듯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을 알아내셨습니까?”


“제가 남편에게 이혼 소송을 ― 그 사람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 했다는 소식이 퍼지고 난 후, 편지 몇 통이 담긴 소포를 받았습니다. 게중 대부분은 남편이 수도 없이 다양한…창녀들에게…”


객석에서 몇몇 여자들이 숨을 헉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다알링 부인은 모자 챙 너머로 흘긋 그쪽을 쳐다본 후 재차 얘기했다. “창녀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요. 그 소포 안에서는 이 여러 여자들과 남편 사이에 오고간 서신과 더불어, 호텔이며 옷값, 심지어 의료비 청구서까지 줄줄이 나오지 않겠어요!”


셜록은, 진행중인 재판에서 한걸음 비켜나 생각해 본다. 흥미로운걸, 부인에게로 편지가 도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의 편지가. 그것도 불륜이 발각된 이후에. 사건 직후에 다알링에게 편지가 바로 돌아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어떻게 앤더슨 씨와 관련되어 있을까요?”


“그 안에 남편이 그 남자, 앤더슨에게 돈을 지불할 시간을 조금만 달라고 빌며 부디 제게 얘기하지 말아달라고 애걸하는 편지도 있었습니다. 안쓰러울 정도더군요.” 씹어뱉듯 내뱉어진 그 말에서, 다알링 부인은 사실 지금 앤더슨의 이름도 겨우 말하고 있는 것임을 셜록은 알아챘다.


“그가 왜 외출 사실을 경찰에게 증언하지 않았는지 이제 이해가 가는군요. 추태를 숨기려고 그 하인을 살해한 거예요.”


“다알링 씨는 어디 계십니까, 부인?”


“개인 소유의 쥐꼬리만한 돈을 갖고 나라를 떠났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 그 여자들 중 하나도 데리고 갔겠지요.”


“이런 정보를 아시는데 왜 경찰에게 알리지 않으셨습니까?”


“저 형사에게 편지를 보내서 남편에게 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어요.”


“뭐라고 답변이 왔습니까?”


흥, 하고 코웃음을 친다. “전화를 해선, 너무 감정에 치우친 바람에 이성을 잃은 것 같다고 저를 아주 모욕하더군요. 굉장한 치욕감을 받은 저는 스코틀랜드 야드에 있는 저 형사의 상사에게 항의했습니다. 즉, 제 아버지의 친구이신 분께 말이죠.”


“감사합니다, 다알링 부인.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더 이상 질문은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스미스는 공연히 과장된 몸짓으로 종잇장을 추리더니 다알링 부인에게 심문을 시작했다.


“다알링 부인.” 그는 부드럽게 질문했다. “이런 누추한 사건 때문에 이 자리에 모시게 되어 진심으로 송구스럽습니다. 그간 많은 일로 중압감이 상당하신 것으로 압니다. 남편분께 매우 화가 나신 게 분명하지요. 다알링 씨가 그날 밤 한 시간 동안 외출하신 것이 확실합니까? 부인께서는 증인으로서 선서하셨습니다.”


객석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판사마저도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그제야 자신의 계산착오를 깨달았는지 스미스가 얼른 말을 바꾸었다.


“아니면, 참으로 유쾌하지 않은 가정입니다만 부인께서 처음에 짐작하셨듯 다알링 씨가 응접실에서 시중을 드는 하녀 중 하나와 밀회를 하러 나갔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다알링 부인의 입술이 가느다랗게 팽팽해졌다. “지금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아닙니다! 그저 부인께서 다알링 씨가 그 시간에 정말로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시지 않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밤중의 부재에 대해 경찰에게 알리지 않았던 건 다알링 씨가 자신의 무분별한 행동을 부인으로부터 숨기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럴 지도요. 하지만 도망쳤잖아요. 결백하면 왜 그런 짓을 하겠어요?”


“신문에 알려져 수치를 받고 사교계 내에서 낙오자의 처지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만으로도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하시진 않습니까?”


도날드슨이 반대를 가했다. “이의 제기합니다. 유도 심문일 뿐만 아니라 증인에게 원하는 답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에 판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스미스에게 경고했다. “다알링 부인께 마땅한 태도로 임하시오, 스미스 변호인. 계속하시오.”


스미스는 숨을 깊에 들이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부재하는 시간 동안 남편께서 무얼 하셨는지 아시는 바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다알링 부인.”


차가운 눈빛으로 다알링 부인이 대답했다. “모릅니다. 하지만 실로 앤더슨이 남편을 협박했고 이제 그 남자가 죽고 나서 남편은 나라를 떴습니다.”


“예, 그 협박 편지 말입니다. 그 편지들이 앤더슨 씨의 손 안에 있었다면, 그가 사망한 후 어떻게 부인에게로 보내진 걸까요?”


그래, 다시 이 문제로 돌아온다. 편지는 누구에 의해, 왜 돌려보내진 걸까. 셜록은 그날 밤 사건이 일어난 방에 제 3자가 존재했을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해 본다.


당황스러운 표정의 다알링 부인을 보니, 그런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본 것 같았다. “전… 글쎄―” 말끝을 흐리다가, 금세 다시 얼굴이 자신감을 되찾는다. “분명 누군가, 정직한 사람이 그 편지를 발견해 제게 보낸 거겠지요. 하녀들 중 하나일 수도 있고요. 방을 치우도록 지시하지 않았겠어요, 그…그 후에.”


“왜 남편분께서 그 편지를 같이 가져가지 않았을까요?”


좋은 질문이다. 앤더슨의 입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편지도 가져가지 않았을까?


“추측컨대 못 찾아냈을 겁니다. 원체 똑똑했던 적이 없었거든요.”


객석에서 다시 한 번 껄껄대는 웃음소리가 퍼졌고 이번에는 말로우까지도 슬몃 웃음을 흘릴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판사가 말했다. “스미스 변호인. 다알링 부인께선 성실하게 답변을 해 주신 것 같소. 더 질문할 것이 있소?”


여기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스미스가 체념하는 표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이 사건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배심원은 무죄를 선고할 것이다. 어느 일개 하인을 살인자로 지명하는 것보다 도망자 다알링을 수배하는 것이 더 흥미로울 테니까. “아니요, 더 이상 없습니다.”


배심원이 셜록에게 무죄를 선고하기까지 25분이 걸렸다. 그는 이제 자유다. 판결을 받으면서, 셜록은 안도감에 압도되어 다리가 완전히 풀리는 것만 같았다.


그는 서류를 갈무리하고 있는 변호인들에게로 다가갔다. “말로우 씨, 도날드슨 씨.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무능함을 싫어하는 것 뿐입니다.” 말로우의 대답에,


“그리고 멍청함도요.” 도날드슨이 한 마디 더 덧붙인다.


셜록은 웃었다. 존과 함께했던 그 일요일 새벽 이후로 처음 우러나온 진짜 미소였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요.”


“안타깝지만 저희는 이만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홈즈 씨. 런던으로 돌아가야 하거든요.”


“더 도와드릴 것은 없습니까?” 도날드슨이 물었다.


“아뇨,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셜록이 허리를 굽혀 작게 인사했고, 놀랍게도 두 사람 역시 일어나 마주 인사를 건넸다.


더 이상 남은 볼거리는 없었다. 다들 다알링 얘기를 하느라 바빠서 그를 잊은 지 오래였기에, 그는 유치장으로 돌아가 얼마 안 되는 소지품을 챙겼다. 헝겊 가방과 갈아입은 옷가지 정도였고, 사무원이 열없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짐을 종이로 잘 싸 끈으로 들려주었다. 톰슨 경위는 어디론가 간 것 같다.


떠들썩하게 괴롭혀대는 기자들을 피해 다알링 부인은 난리가 된 법정을 뒤로 했고, 레스트레이드 경이 부인을 차에 태워 런던으로 되돌아갔다. 셜록은 존에게 전화를 걸까 했지만, 전신국 안은 온통 기자들로 들어차서 자기네 신문사에 서로 먼저 연락을 하려고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칼리튼 홀로 혼자 걸어갔다. 반쯤 가고 있을 때서야, 저택이 텅 비어있으니 들여보내줄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불현 듯 떠올랐다. 분명 사냥터지기가 열쇠를 갖고 있겠지, 하며 계속 걷는다. 해가 지고 부지에 다다라 뼛속까지 시리도록 추워졌을 때 즈음, 반갑게도 오두막 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발견했다.


“홈즈?” 부름에 답한 사람은 사냥터지기 카터였다.


“저…저, 풀려났습니다. 무혐의로요. 저택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갈 데가 없습니다.”


카터는 조금 호기심이 어린 눈빛을 보냈다. “터너 부인이 안에 있네. 문을 열어줄 거야.”


“터너 부인 런던에 가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어, 감사합니다. 가보겠습니다.”


“음.” 그러곤 카터는 문을 닫았다.


그는 기다란 저택의 산책로를 걸어들어가서 부엌쪽 입구로 향했다. 벨을 누르며 셜록은 터너 부인에게서 방금 카터와 같이 차가운 냉대를 받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터너 부인은 문을 열자마자 그에게 양 팔을 감고 꼭 안겨들었다.


“오, 로비! 네가 결백하다니 너무 기쁘다. 레스트레이드 경께서 전화하셔서 범인이 다알링 씨였고 네가 석방됐다고 하시더구나. 네가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경찰들이 하도…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추운 데다 세워놓고 뭘 한다니. 왜 이렇게 비쩍 말랐니. 안 그래도 살집이 없는데. 들어오렴. 방금 막 저녁거릴 만들고 있었거든, 아궁이를 덥혀서 안이 따뜻하니 좋단다.”


부산히 안으로 들어가는 부인을 따라 셜록도 부엌으로 들어섰다. 바깥과는 극명히 다른 온화한 공기에 몸이 녹아든다. 자리를 잡은 그에게 터너 부인이 부산히 뜨거운 차를 내어 줬다.


“스튜 조금 만들었어, 여기 빵이랑 치즈도 있으니 같이 뜯어서 먹고. 분명 거기선 밥을 잘 얻어먹지 못했지?”


“감사합니다…?” 마치 부인의 호의가 놀랍다는 듯이, 자신의 대답이 의문형으로 들린다는 걸 말을 내뱉고 나서야 깨닫는다. “왜 같이 런던으로 안 올라가셨어요?”


“오, 주인어르신과 그렉슨 씨 뒤로 자질구레한 일을 해야 할 사람이 남아 있어야지. 이제 재판이 끝났으니 모두 런던으로 갈게다.”


부인은 수프와 빵 한 덩이를 차려주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분이…” 셜록이 입을 연다. “경께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말씀하시진 않으셨습니까?”


“내일 오셔서 얘기해 주실 게야. 아침에 다시 오셔서 저택 폐쇄를 확실히 하고 가신다는구나.”


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뜨끈한 수프를 한 숟가락 크게 떴다. 캐롤라인이 런던으로 올라가서 그나마 전해지던 바구니가 끊겼고, 감옥에서 배급하던 음식은 끔찍할 정도로 형편없던지라 이 수프가 고급 요리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고 빵을 뜯어 수프에 적셔 넘기기도 했다.


“상상이나 가니, 다알링이라니.” 터너 부인이 쯧쯧, 혀를 찼다. “불상한 앤더슨. 참, 정 붙이기가 어려운 아이였지. 하기사, 너도 가끔은 그러하더라만은.”


셜록은 그릇으로 시선을 떨군 채 말했다. “지금껏 제가 부인과 그렉슨 씨에게 잘못한 것들이 있다면 사과드릴게요.”


“에그머니, 얘야, 아니다! 난 그런 뜻이 아니라… 그냥 네가 입담이 좀 좋았다는 거야, 그런 뜻이란다. 앤더슨은 아주 조그마할 때 이곳에 왔지, 샐리와 함께.”


“샐리와 함께 왔다고요? 친척이 아니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같은 고아원에서 왔단다. 리틀 셰퍼튼에 있는 펀우드 고아원이라고, 몇 년간 거기서 아이들을 몇몇 데려왔어. 마님의 영향 중 하나란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하지만 셜록은 딱 눈길이 가는 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끄집어낼 수가 없었다. 긴장이 풀린 몸은 아직도 추위로 굳어 있었고, 경계심이 바짝 든 채로 보냈던 지난 몇 주간의 스트레스 때문에 그는 몹시도 지쳐버렸다.


“덜덜 떠는 것 좀 보렴, 애가 완전히 녹초가 됐네 그래. 따뜻한 데서 한숨 푹 자야겠다.”


“저…전 위에 올라가서 자도 괜찮아요.”


“말도 안 되지. 그런 추운 데에서 혼자 떨도록 내가 내버려 둘 것 같니. 그렉슨 씨의 휴게실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마. 불도 더 따뜻하게 때우고.”


“그렉슨 씨가 좋아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래, 뭐, 그렉슨 씨는 여기 안 계시잖니. 목욕도 하려니? 네 방에 가서 목욕용품을 가져오렴, 통에다 따뜻한 물을 받아놓을 테니. 난로 앞에서 목욕하고 난 다음에 곧장 자거라. 아무 걱정 하지 말어.” 그녀가 셜록의 손을 잡고 토닥였다.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고, 또 네가 범인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구나.”


셜록은 램프를 들고, 자신의 방까지 이어진 익숙하고 낡은 계단을 느릿느릿 올라갔다. 지나가면서 앤더슨의 방을 보니 침대가 휑하니 분해되어 매트리스만 따로 세워져 있었다. 자신의 방은 한 치도 변함없이 떠났을 때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동안 누가 옷가지에 신경써줬는지는 모르지만 모두 제자리에 들어가 있었다. 이상하게 이질적인 느낌이다. 더 이상 자신의 방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는 잠옷과 슬리퍼, 가운을 챙겨 아래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목욕을 한 후 셜록은 야전침대 위로 몸을 말아넣었다. 간이침대란 게 그렇듯이 딱딱하기 그지없었지만, 감방의 침상보다 훨씬 편안하단 건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셜록은 베개에 머리를 놓자마자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터너 부인이 문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에 시간이 순식간에 아침으로 변했다. “로비, 주인어른께서 전화하셔서 11시에 도착할 테니 보자고 하시는구나. 부엌에 커피랑 달걀 차려 놓으마.”


11시, 셜록은 저택을 가로질러 레스트레이드 경이 기다리고 있는 서재로 건너갔다. 걸어오는 동안 보이는 모든 가구 위로 천이 덧씌워져 있었고, 덧문이 단단히 내려와 창문으로 들어오는 겨울 햇빛을 빈틈없이 가리었다.


레스트레이드 경이 시선을 들었고, 미소를 지었다. 아주 흐릿하긴 했지만. “아, 홈즈. 그래… 다행이구만, 재판이 좋게 끝나서…음, 자네한테 다행으로 해결되었다는 말이네. 나는… 글쎄, 다알링이라, 누가 그 자라고 상상이나 했겠어. 지금에나마 부인이 벗어나서 다행이지. 불쌍한 사람, 언제나 아이를 그렇게 갖고 싶어 했는데.”


셜록은 뭐라고 응수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냥 이렇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음, 이것 참, 말하기가 곤란하지만… 이제 자네도 앞으로…있을 곳을 찾아보는 게… 그러니까 그게, 아무래도 어색해질 것 같아. 자네가… 일단은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자네 몫과 함께 앞으로 두 달분의 급료를 보태주겠네. 가고 싶은 데가 있으면 어디든 내가 기꺼이 추천장을 써줌세. 이해해 주겠지?”


“물론입니다. 말씀하셨듯, 분위기가 어색해질 겁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자네… 자네 갈 곳은 있나? 어머니 아직 계시지, 맞나?”


“예, 그렇습니다. 제… 런던에 제 친구들이 있습니다. 거기로 먼저 간 다음 어머니를 뵐까 합니다.”


레스트레이드 경이 잠시 시선을 바닥에 두고,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법정에서 내가 했던 말은…”


“지나간 일입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그렇지, 그래. 자네는 늘 훌륭한 고용인이었어.”


“감사합니다.”


“그래, 이제 올라가봐. 챙길 것이 있을 테니. 한 시간 뒤에 터너 부인과 런던으로 갈 계획이라네. 그 때가지 준비를 마칠 수 있겠나? 역까지 가는 길에 태워주지.”


“감사합니다. 다른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아니, 아니. 짐 마저 꾸리게.”


셜록은 뒤돌아 나가려다가, 문가에서 멈춰 다시 되돌았다. “저는, 전 언제나 경과 경의 가족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전에 없던 연대감으로 서로를 향해 웃음지었다.


계단을 오르는 셜록의 미소가 점점 커져 간다. 오늘 밤에는 그곳에 있을 것이다. 오늘 밤이면 존과 있을 수 있어. 기차에 오르기 전에 전보를 보내 존에게 소식을 알리기로 했다.







역자의 말


으으....이런 식으로 블로그를 방치해놓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또 이래 말도 없이 블록을 (일주일간) 폐허로 만들어 놨네요. 다음 주에는 정상으로 올라옵니다;ㅁ;


암튼 그건 그렇고. 이제 눈치채셨듯 다음 편은 드디어 열쇠가 필요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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