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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JW]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 (The Man No One Liked) 11 본문

Sherlock_장편/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

[SH/JW]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 (The Man No One Liked) 11

topsecretum 기밀선녀 2013.05.05 21:00





11 : 또다른 손님, 제인 │ The Other Guests - Jane





“왓슨 박사님, 댄스 레슨이라도 더 받으려고 오셨어요?”


아침 11시, 제인 라킨이 복숭아색 자수를 놓은 담녹색 기모노를 입고 나타났다. 등 뒤로 머리를 풀어헤친 채였고, 화장을 하지 않은 모습이 칼리튼 홀의 등유 불빛 아래 보았던 때보다 나이가 들어 보였다. 응접실에는 전깃불이 들어왔으나 스카프로 가려놓은 터라 방 안이 불그스름한 빛에 잠겼다. 그녀는 모리스식 안락의자에 앉아 존에게서 담뱃불을 얻어간 후, 편하게 등을 기댔다.


이제 질문을 날려야 할 시간이 왔다. 존은 열 길 물 속에 빠진 듯 갈피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놓지 않았기에 즉석에서 우발적으로 나와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는 거라곤 몇 통의 편지에 대해, 앤더슨의 손 안에 있었고 지금 사라져버린 그 편지에 대해 알아내야 한다는 것뿐이다. 누가, 왜 그 편지를 가져갔을까?


“만나줘서 고맙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요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번 주에 레스트레이드 경 댁에서 하인 하나가 살해됐어요.”


“네, 그래서 다른 하인을 구금했다죠, 그 예쁘장한 사람. 불쌍하긴.”


“예, 음, 그 하인이, 피의자로 구속된 그 하인이 제 청지기였습니다. 확신하건데 그는 범인이 아니에요. 그 청년이 그러니까, 어, 절 도와주는 동안 그에 대해 알 기회가 있었는데, 상당히 진실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제인은 잘 다듬어진 눈썹 한 쪽을 슬며시 치켜올리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사람을 끔찍이도 쉽게 믿네요, 그것도 끔찍이 빠르게.”


“그렇지는 않지만…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뒤지지는 않습니다. 군의관으로 살다 보면 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결백하다 이거죠.” 그녀에게서 약간 날카로운 대꾸가 돌아왔다. “이게 저랑 무슨 상관이 있죠?”


존은 터키산 카펫의 문양 위로 시선을 떨구었다. “물어보시니, 솔직히 말씀드려야지요.” 다시 얼굴을 들어 눈을 마주한다. “앤더슨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는…그가 제 편지 중 일부를 갖고 있었습니다. 전 그걸 돌려받고 싶었고요. 제가 그를 죽이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누군가가 같은 이유를 겪고 있던 것 같아요.” 편지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건 위험한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과연 이 미끼에 걸려들까.


놀랍게도 제인은 고개를 젖히면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떠들썩하게 웃어재꼈다. “당신에게도 많은 비밀이 있겠지요, 왓슨 박사님. 우리 모두 그러지 않나요?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든지간에, 앤더슨에겐 당신 편지가 하나도 없었어요.”


“예? 있었어요. 그 편지를―”


“아니, 없어요.”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걸 아는 이유는 어제 제 편지가 돌아왔기 때문이에요. ‘이제 안심해도 됩니다’, 라고 타이핑된 쪽지와 같이 왔더군요. 그걸 알고 싶으신 게 아닌가요? 약점을 잡힌 게 있었는지? 편지를 반송한 사람이 특별히 당신한테 개인적인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당신도 돌려받았지 않았겠어요?”


존이 입을 벌리고 그녀를 쳐다봤다. “편지가 반송됐다고요?”


“한 통이요, 네, 말 그대로.”


무언가 반짝 떠오른다. “타이핑된 쪽지라고 하셨습니까? 그것 희한하군요.”


“그럴 지도요. 전 편지를 돌려받아서 안심하느라 다른 데 신경 쓸 여한이 없었죠.”


“그럼… 앤더슨이 제인 당신을 협박하고 있었다는 겁니까?”


제인은 끄트머리만 남은 꽁초로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래요. 그 능구렁이같은 놈.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남편에게 내 편지와 호텔 영수증을 보여주겠다고 위협했죠. 응수하지 않자 그대로 이행했는데, 남편이 그 놈 면상에서 웃어버리더군요.” 그녀는 말을 멈췄다가, 곧 이어갔다. “신혼 초에 남편과 잠자리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것만 아니었으면 환상적인 커플이었겠죠. 그래서 우리 부부는 합의를 했어요. 그이는 그이대로, 저는 저대로 취미를 즐기자고. 유감스러운 건, 저와 면식이 있는… 한 젊은 사람이 부주의하게도, 서신에다 그쪽에서 쓰이는 예명을 적어넣었다는 거예요.” 그녀는 멍하니 가운 위의 자수를 만지작거렸다. “제겐 스캔들의 중심이 되는 것이 전혀 달갑지 않았지만 ― 오스카 와일드가 말하길, ‘얘깃거리가 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바로 얘깃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라고 했던가요 ― 그 사람에겐 비참하기 그지없겠죠.”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곤 유감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전 돈을 준비했어요. 일요일 아침에 협의를 보기로 했었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처지가 되었구요. 물론,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소유물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 게 아닌가 걱정했었지만요. 경찰은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어요. 그런 편지에 관심이 없을 테니까. 다만 앤더슨에게 공범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걸 알 수가 없더란 말이죠. 편지가 어딘가에 있고, 전 당신이 그 하인을 믿듯이 제 하녀를 믿었을 뿐이에요.”


“그 편지를 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쪽지도?”


그녀는 고개를 젖히고 다시 웃어재끼고는, “왓슨 박사님, 이런! 한 번 들통난 수법이 또 통하겠어요? 할 수만 있으면 마음껏 보시죠.” 벽난로를 향해 재를 털어냈다. “감상 떠는 것보다 안전한 게 낫지 않겠어요.”


인정하듯 존은 살짝 고개를 수그렸다. 제인의 솔직한 답변 덕분에 많은 걸 알아낸 게 사실이다. 그는 앤더슨에게 공모자가 존재할 가능성을 염두에 뒀는데, 어쩌면 이 요주의 인물과 앤더슨 사이에 다툼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편지가 한 장만 관여되어 있었다고 말씀하셨죠. 혹 그 때 객중에서 앤더슨의 덫에 걸려 있었을 만한 사람을 아십니까?”


“대체 우리 여자들이 모이면 무슨 얘기를 할 거라 생각하시는 거죠? 제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하겠어요. ‘오, 엘리스 부인, 귀하의 하인이 절 공갈협박했어요. 저와 같은 곤경에 처한 사람이 누가 있는지 아시나요?’” 그녀는 불신의 눈빛으로 존을 바라봤다.


“아뇨, 물론 아니죠. 대단히 솔직하게 답해주신 점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주 부당한 일이 일어났고, 저는 그 무고한 사람의 오명을 씻을 방도를 찾아보려는 겁니다. 해서 혹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알고 계실까 싶었을 뿐이에요.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그는 떠나려고 일어섰다가,


“왓슨 박사님—”


부름에 되돌아봤다. “네?”


그녀는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밀러 다알링의 과거를 조사해보시는 게 좋을 지도 모르겠어요. 부인 쪽의 재력이 상당하니, 그 사람 부정이 하나라도 드러났다간 크게 타격을 입을 거예요.”


“어떤 부정 말입니까?”


“바람피우고 있는 여자들이 몇 있어요. 지금도 런던에 정부를 몇 두고 있을 걸요. 부인 클레어는 남편이 개과천선했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 반대죠. 버릇을 고치는 남자들이 얼마나 있던가요.” 그녀가 슬프게 웃었다. “제가 이런 걸 알고 있네요.”


존은 다시 자리에 앉아 제인을 향해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 “또 다른 사람은? 짐작가시는 것이면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다시금 담배 연기 사이로 날카롭게 재어보는 눈빛이 지나간다.


“네빌 경이라면?” 먼저 운을 띄워본다. “저로선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흠. 능히 살인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지만, 그런 비밀이 흘러나간다고 신경을 쓸 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떤 류의 비밀인지?”


“저도 확실치 않아요. 불법 금융 거래 쪽에서 사람을 망하게 한다거나 하는, 제 소관이 아니죠.”


“찰스 부부같은 사람 말입니까?”


“이미 조사를 철저히 해오셨군요.”


“레스트레이드 부부나 그 가족은 어떻습니까?”


“그 쪽은 얘깃거리가 없어요.” 제인은 미소를 지었다. “친척과의 불화가 있긴 하지만, 레스트레이드 부인은 사랑스러운 여성이고 둘의 결혼은 완벽하게 보이죠. 물론, 아무도 없을 때 둘 사이에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서도.”


“그리고 그 자녀들도 뭔가 일을 벌이기엔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제 생각도 그래요. 루이자와 그 애 약혼자를 만나보셨으니 아시겠지요. 질이 나쁜 인간이라 보기 힘들죠. 시빌과 조나단은 어린애들일 뿐이고요. 또 피터나 엘리자베스에게서 역시 어떤 루머도 나오지 않았어요. 이번에 변호사와 결혼한다는 엘리자베스는 단 한 번도 가십거리가 된 적이 없었죠. 게다가 둘 다 지난주엔 저택에 오지도 않았고 말이에요.”


존이 웃었다. “그럼 아가사 여사만 남았네요.”


제인도 따라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상류 사회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일을 할 리가 없죠. 용납하지도 않을 거고.” 곧 표정을 가다듬고 말을 마무리했다. “다알링 부부 쪽이 역시 가장 의심쩍다고 봐요.”


돌연 우울해진 기분으로 존은 난롯가로 눈길을 떨궜다.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알링 씨 쪽에서 숨기는 구석이 있다면 절 그다지 환영하지 않겠죠. 더더욱이 제인 당신처럼 편지를 되돌려받았다면 말입니다.”


입술을 깨물며, 제인은 테이블에 놓인 상감 무늬 상자 위로 손가락을 두르렸다. “이 얘기 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 말은 늘 끊이는 법 없이 정보를 동반하지 않던가요.”


“클레어 다알링은 아이를 가지길 원해요. 몇 년이고 아이를 바라고 있죠. 혹시…정히 정보를 얻고 싶으시다면, 의사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보세요. 이것만 아니었으면 원래 절대 꺼내지 않았을 얘기인데… 전 불임이 클레어 쪽의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무슨 뜻인지는 아시겠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제인, 고마워요.” 그리고 덧붙인다. “증인으로 서주시기는 아무래도 어렵겠죠.”


“네. 그리고 제 이름은 언급하지 말아 줘요. 전 아직 상류층 인사들 집에 환영받고 싶으니까요.”


다시 그가 가려고 일어났다.


“왓슨 박사님―”


“예?”


“부디 과격한 방법은 쓰지 말아주세요. 당신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그 사람들 삶을 무너뜨리진 말아줘요.”


존은 고개를 끄덕였고, “누구의 삶을 무너뜨리는 건 제 소관이 아닙니다. 구하는 쪽에 가깝지요.” 제인의 부름에 나온 하녀에게서 모자와 코트를 받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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