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lude

[Johnlock]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 (The Man No One Liked) 1 본문

Sherlock_장편/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

[Johnlock]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 (The Man No One Liked) 1

topsecretum 기밀선녀 2012.09.2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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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초대, 그리고 만남 │ Introductions and Invitations





“홈즈 군!”


물론 셜록은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저 멍청한 목소리를 어떻게 듣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솔질하고 있는 모자에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신에 손가락에서 축 늘어져 있던 모자의 한쪽 챙을 잡아 능숙하게 폈다. 그는 나무 벤치에 걸터앉아 모자 위로 몸을 굽히고 있었다. 세심히 위아래로 펠트 표면을 쓸어내는 작은 솔빗에서 사락거리는 소리가 귀를 메웠다. 꼼꼼하게, 꼼꼼하게, 계속해. 그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은 채였다. 뻐근한 허리를 곧추세우고 눈앞으로 모자를 들어올려 챙이 빳빳하고 고르게 펴졌는지 살폈다. 앞까지 온 앤더슨이 한숨을 내쉬며 노려보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그는 마침내 평화로운 고요함으로 겨우 빠듯하게 채운 세 시간을 마지못해 깨야 했다.


“앤더슨 씨.”


그는 일부러 은근하게 강조하듯 인사를 건넸다. 아주 약간만이라서, 느릿하게 끄는 발음에 고의가 아니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뭐라고 일갈하면 그저 말이 꼬여서 그렇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솔직히 앤더슨을 약올리는 게 재밌었고, 이렇게 하면 아주 효율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곁눈으로 보니 앤더슨이 발끈해서 주먹을 쥔 채 이를 갈고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전에 그랬듯 그냥 ‘앤더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터너 부인이 주변에서 보고 있지 않더라도 예의를 차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쯤이야 유난스러울 일도 아니다.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예전만 해도 ‘특별 접대’를 해야 하는 날이면 방 마룻바닥 아래에 숨겨둔 ‘그것’으로 정신을 달래곤 했다. 앤더슨은 시종장으로서 원래는 셜록의 상사지만, 셜록이 훨씬 더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일을 더 잘 한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는 모멸적인 일이 주어질 거라고 예상하고, 그럴 때면 늘 그랬듯 무표정하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은 그는 앤더슨이 뭐라고 하든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태도로 도로 모자 위로 몸을 숙였다.


“오늘 저녁 시중 들 일이 있어.”


솔질을 멈추지 않고, 눈만 들어 앞에 선 남자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매우… 흥미가 돋았다. 주말에 저택에 오는 손님들의 대부분은 시종을 거느리고 온다. 왜 이 손님은 시종이 없는 걸까?


“누군데?”


모자는 바로 존재감이 잊혀져 그 손끝에서 위태롭게 매달렸다. 앤더슨이 가슴주머니에서 종잇조각을 꺼냈다. 셜록은 코웃음을 쳤다. 집사가 되는 게 유일한 꿈인 고용인 종자라는 놈이 주말동안 모실 손님의 이름조차 머릿속에 새기지 못해서야.


“왓슨. 존 왓슨이야. 듣자 하니 의사라는군.”


셜록은 허리를 펴고 앉아, 칼리튼 홀에 살게 된 후 외워뒀던 모든 가문 이름을 머릿속으로 살폈다. 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왓슨 가문은 여러 곳인데. 어느 분가?”


“글쎄, 그게 말이지.” 앤더슨이 조끼를 잡아당겨 펴며 은근하게 답했다. “그 중 아무 데도 아니라는 거야.”






바퀴가 자갈밭을 거칠게 구르는 우드득 소리와 함께 길 위로 자동차가 나타났다. 셜록의 옆에서 어린 하인 딤목이 깃을 만지작거리며 왼쪽 발을 바짓단 뒤에 초조하게 문질러 광을 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비웃음이 슬며시 떠올랐다. 그는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한 모습으로, 누구보다도 단정하고 침착하게 정립해 있었다. 양 손을 단정하게 옆으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작게 뿜어져 나왔다. 자동차에서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사람은 레스트레이드 경의 둘째딸 약혼자인 프랜시스 맬번이었다. 하지만 셜록은 그 뒤를 이어 내린 사람이 누구인지 순간 알 수 없었다.


왓슨 박사는 셜록이 상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자동차에서 하차해 살짝 입술을 핥으며 칼리튼 홀의 풍경을 훑어보았다. 이내 그의 입술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박사, 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꾸밈이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셜록이 지금껏 알고 있던 여느 전문직 종사자들처럼 경계심 어린 얼굴이 아니라 오히려 표정을 읽기가 쉬웠다. 저택의 풍경에 한 번, 또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줄지어 정립한 고용인들의 모습에 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셜록은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 곧 시선을 돌렸다. 박사의 눈길은 셜록에게 몇 초 더 머물러 있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존 왓슨 박사, 영국군에서 복무했고 전역한 군의관인 그는 자신이 왜 여기 와야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먼 친척으로서의 위치와 어머니의 고집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끌려오게 된 처지였다. 차에서 내린 그는 추운 자갈밭 위에 연병장의 사찰을 기다리듯 모여든 친척들과 고용인들을 바라봤다. 그는 평등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음에도 저택의 가솔들이 질서 있게 정렬해 있는 장관에 감동을 받지 않기란 힘든 일이었다.


존은 건축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았으나, 이 건물이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에 원래의 작은 저택을 증축해 지어졌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오후의 햇살이 빨간 벽돌을 밝게 달구고, 잘 다듬어진 관목 덤불 위로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러나 사실로는, 모든 것이 우습기가 그지없었다. 존이 세상사를 바르게 익힌 게 맞다면, 곧 혁명이 도래하게 될 것이었다. 이런 허식의 삶은 물거품이나 다름없었고, 다가오는 변화는 참사와 비애를 뒤에 남기고 지나갈 것이다. 그는 그런 것을 진작에 수없이 봐왔다.


존은 얼마 전 시내에서 만나게 된 레스트레이드 경을 금세 좋아하게 됐다. 그는 열린 사상과 사교성을 갖춘 지성인이었고, 그래서 이번 주말에 이곳에 초대받아 그와 함께 현 유럽의 세태에 대해 의견을 나누게 될 것을 기대했다. 분명히, 줄지어 선 고용인들의 대열에서 키가 크고 날씬한 하인을 발견하고는 갑자기 가슴에서 열기가 피어오르는 이 상황은, 그 때 예상했거나 기대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물론 모두가 똑같은 연미복에 줄무늬 조끼를 흠 잡을 데 없이 깔끔하게 다려 입고 서 있었지만 ― 이 저택의 집사로 보이는 자는 이 이하의 수준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 유난히도 그 흰 얼굴의 남자만이 홀로 돋보였다. 그는 높은 광대뼈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잘 생겼고, 뾰족하지만 곧은 얼굴선을 한 남자였다. 말랐음에도 사지의 굳건함이 살집 없는 그의 모습에서 병약함보다는 되려 활력감을 불러일으켰다. 존보다 5~6인치는 족히 더 큰 그의 검은 고수머리는 약간의 포마드 유를 써서 가라앉혔지만 그래도 부스스하게 곱슬져 있었다. 저 꼿꼿하게 선 머리털을 잡아당겨 흰 목을 드러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존은 몰래 전율했다.


그만 둬. 그는 스스로를 꾸짖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먼 이국에 있었을 때는 괜찮았을지 몰라도, 여기 영국 땅 위에서라면? 그가 우정을 쌓길 기대하는 새 친구의 집에서? 어림도 없다. 저 말도 안 되게 잘 생긴 얼굴을 바보같이 계속 흘금거리는 것 자체부터가.


하지만 저 청년의 시선이 이쪽과 잠깐 마주치지 않았던가? 그는 그게 우연이 아니란 걸 알 만큼 사교의 순리를 알았을 뿐 아니라, 억제하기 힘든 인간의 호기심이었다는 것 역시 잘 알았다.


레스트레이드 경이 손님들을 서로 소개시키고, 아직 날이 쌀쌀할 때라며 따뜻한 실내로 이끌었다. 존은 뒤를 따라가며 부적절한 상상들을 마음속에서 몰아냈다.






셜록은 차에서 짐을 내려놓던 일꾼에게 잔소리를 따끔하게 해놓은 다음, 운전사를 향해 부츠에 휴대용 술병을 숨겨 홀짝이지 않고는 단 몇 시간도 제대로 운전을 할 수 없는 거냐며 무능력함을 쏘아붙이고는 바삐 왓슨 박사의 짐을 들고 정리를 위해 방으로 올라갔다. 


왓슨 박사가 머물 동양풍의 방 안은, 장식용의 우아한 델프트 도기에 티끌 하나마저 없이 깨끗하게 닦여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는 커튼을 쳐 저물어가는 11월의 햇빛을 가리고 난로의 불을 뒤저어 불을 올린 뒤, 꺼내놓은 왓슨 박사의 옷가지를 정리하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딱히 비싸거나 최신 유행을 타는 옷들은 아니었지만, 깔끔하게 잘 관리해왔다는 것이 한 눈에 들어왔다. 왓슨 박사에게 착실하고 책임감 있는 시종이 있는 게 아닐까? 셜록은 날카롭게 다려진 셔츠와 잘 개켜놓은 재킷을 만지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부드러운 재질에 낮은 채도의 점잖은 색깔을 한 옷가지는 박사의 첫인상과도 닮아 있었다. 셔츠의 왼쪽 소매에 묻은 잉크 자국은 그가 왼손잡이라는 증거다. 구두굽이 닳은 모양에서 그가 한때 다리를 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방금 차에서 내리는 모습에선 다리가 불편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기에 셜록은 왼쪽 구두를 들어 밑창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 그 때 뒤에서 문이 열렸다.


셜록은 하마터면 신발을 떨어트릴 뻔 했다. 그는 간신히 자세를 가다듬고 서둘러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존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주 흥미가 있는 신발로 보였나 봅니다, 홈즈 씨.”


홈즈 씨.


그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른 대부분의 하인들은 물론이고 누구도 그에게 ‘홈즈 씨’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왓슨 박사라는 사람에 대해 셜록은 점점 더 흥미가 돋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존으로서는, 방에 들어서자 그 청년이 자신의 신발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내심 놀라고 말았다. 순간 기뻤지만, 한편으로 좌절감 역시 느껴졌다. 그의 청지기로 할당된 ‘홈즈’라는 하인이 바로 이 사람인 모양이었다. 이런 대단한 미인이 가까이 있다니, 아무래도 인내하기 힘든 주말이 될 것 같았다.


홈즈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야회복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박사님.”


홈즈의 낮게 울리는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존의 말투보다 우아한 억양이었다. 분명 모시는 사람들이 지위가 남다르니 갖추게 된 소양일 것이다. 존은 긴장된 웃음을 짓고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갑자기 방 안이 후덥지근해진 느낌이 들었다.


옷에 손을 가져가자, 홈즈가 즉시 다가와 겉옷을 벗는 것을 거들었다. 그게 바로 이 사람의 일이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거들지 않아도 된다고 미리 얘기했어야 했던 것을.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왓슨 박사님.”


존은 눈을 굳게 감고, 기다란 손가락이 뒷덜미를 스치는 감각을 무시하라며 자신을 다그쳤다. 그에게서는 옷에 먹이는 풀과 구두약이며 세제 냄새가 섞여 났다. 그렇지만 그 밑에는, 따스하게 데워진 몸에서 남자의 향기가 은밀하게 풍겨왔다.


“이것이 당신 일입니까? 옷 입는 걸 도와주는 게?”


“박사님의 착의뿐만이 아니라 필요하신 것은 전부 거들어드릴 겁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시면 됩니다.”


당신은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뭘 원하는지 모를 테지. 내가 무얼 상상하고 있는지 역시 알 리가 없을 테고. 당신이 그걸 알았으면, 당장에 당신 주인한테로 달려갈 거고 그럼 난 유치장에 끌려가거나 못해도 여기서 쫓겨나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게 될 거야.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다시 한 번, 홈즈가 하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했다. 존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회는 그의 편을 들어줄 것이었다. 그 생각에 인도에 있던 시절 다른 장교들이 하고 다니던 행실이 떠올랐고, 메스꺼워졌다. 그는 스스로를 다잡고, 절대로 이 젊은 남자를 곤란한 입장에 밀어넣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박사가 갈색 여행복의 깃에 손을 올리는 것을 보고 셜록은 얼른 가까이 다가가 외투를 벗는 것을 거들었다. 어깨에서 외투를 들어내기 위해 깃을 넘겨받는 찰나, 그와 손이 스쳤다.


당연한 것을. 바보같으니! 왜 생각을 못 했을까?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군인이니 하인은커녕 집사도 없는 게 당연했다. 그는 모든 일을 스스로 꼼꼼하고 바지런하게 해냈을 것이다.


박사의 목덜미 끝에 돋아난 가느다란 금색 머리칼에 손가락이 스친 순간 옅은 전율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이국의 태양에 그을린 자국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셜록은 내심, 자신의 반응에 놀라고 말았다. 그의 뒤에 서서 얼굴을 가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왓슨 박사는 채도 낮은 금발에 푸른 눈, 다부진 체격을 한 남자였고, 얄궂게도 모든 게 셜록의 취향이었다. 그렇지만 그에게 끌리고 있다는 걸 박사가 알게 되었다가는 일이 아주 고약하게 되기 십상이었다.


그는 왓슨 박사의 정면으로 돌아 나와 넥타이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박사가 목을 가다듬자 옷에 닿은 손가락 너머로 울림이 느껴졌다. 긴 손가락이 매듭 안으로 들어가 느슨하게 한쪽 끝을 밖으로 빼내는 동안, 왓슨 박사의 심장이 강하게 방망이질치며 목의 맥박이 펄떡이는 게 보일 정도로 커져갔다. 그래서 셜록은, 고개를 숙여 그 위로 입술을 스치고 이로 지그시 문 다음 그 자리를 핥는다면, 이 착한 의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아니, 사실은 그 자신이 미친듯이 그러고 싶은 것에 가까운 걸지도. 빳빳한 깃 너머로 희미한 홍조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박사의 눈동자는 동공이 활짝 열려 까맣게 보일 정도로 번득였다. 그래, 왓슨 박사도 그에게 흥미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이상의 진전은 달갑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추측을 확인해 보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셜록은 풀어낸 넥타이를 팔에 걸치고 박사의 깃을 마저 빼내기 위해 손을 올렸다. 원래 이런 것은 모든 청지기들이 하는 일이다. 옆에서 대기하면서 손님들이 벗은 옷과 커프스단추 따위를 건네받고, 바지를 입고 벗을 때면 휘청거리지 않도록 옆에서 지탱해주는 역할도 했다. 존이라면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까?


“홈즈 씨, 저기, 나는 알아서…” 박사가 목을 가다듬었다. “옷을 벗을 수 있습니다만.” 그의 낮은 목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잦아들더니 속삭이듯 말려들고 말았다. 또 셜록과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기도 했다.


셜록은 그에게 웃어주었다. “그렇다고 하시더라도, 박사님을 도와드리는 게 제 일입니다.”


셜록이 멜빵을 내리고 살짝 그을린 피부를 덮은 하얀 면 셔츠의 단추를 풀어내는 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박사는 외국 저 멀리, 아마도 아대륙(인도)에 있었을 것이다. 영국 북부의 가을 날씨에는 누구도 이리 살이 타지 않는다. 천천히 단추를 끌러내릴 때마다 드러나는 상체의 흰 피부에 비해서, 깃 위의 살갗은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로 확실한 경계였다. 난로 안에서 땔감이 타오르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왓슨 박사의 숨찬 숨소리만이 고요한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조그만 조개껍데기들이 습지를 떠나와 파도를 따라 표류하며 서로 부딪히듯 탁탁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셜록은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시간을 들였다. 마침내 입술을 핥으며 마지막 단추에 손을 올린 그는, 왓슨 박사의 앞섶으로 눈길을 내려보았다.


입술을 핥는 것을 그가 보고 있었다. 셜록은 자신도 모르게 박사의 입으로 시선을 향했다가, 곧 그의 어깨에서 셔츠를 내려주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그 때 왓슨 박사가 그의 손목을 붙들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저…상처가 있습니다만.” 그가 무안한 듯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기, 이건 내가…”


“박사님,” 셜록은 진정시키듯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확언드리건데, 당혹해 하실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는 잠시 멈춘 후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요, 왓슨 박사님…”


손목을 쥔 힘이 풀어지고 박사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희미하게 끄덕였다. “좋아요. 계속 하세요.”


셜록은 내심 미소짓고 끄덕인 뒤, 부드럽게 셔츠를 벗겨냈다. 왼쪽 어깨에 상처입어 울퉁불퉁하게 새살이 돋아난 피부가 드러났다. 완전히 아물었지만, 깔끔하게 낫지 않은 걸 보니 깔끔하게 관통된 총알구멍 주변으로 상처가 감염되어 흠이 진 모양이었다. 셜록은 자신도 모르게 거친 흉터 위로 손가락을 가져가 쓸어보았다. 왓슨 박사가 흠칫 놀라며 분명히 들릴 정도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저 감질날 정도로 희미한 미소라니, 큐피드의 활과 같은 모양으로 완벽하게 호를 그리는 입술에 모두 안다는 듯한 야릇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건 존 혼자만의 생각인 걸까? 자신의 반응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어서 그가 유혹을 보내고 있는 거라며 혼자 앞서가는 건 아닐까? 그는 당장이라도 이 남자의 얄상한 허리를 붙들고 야한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저 입술, 저 미소. 인내는 괴로울 만큼 그를 부추겼다. 순간 존은 넋이 나가 있었다. 마조우크와 어찌 이리 닮았는지… 그 사람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존은 추억에 빠져들었다. 정사 후 그의 침상 위에 누워서, ― 홈즈와 비슷한 ― 이국적인 빛깔의 눈동자를 반쯤 뜨고 그를 바라보았고 아름다운 몸은 나른하게 그의 곁을 지켰다. 마조우크와 홈즈는 너무도 닮아 있었다. 상류층은 아니지만, 상류층을 흉내낸 이상하게도 교양 있는 말투는 무척이나 듣기 좋았고, 푸른빛이 도는 눈동자며 빛깔 좋은 장난기 어린 입술마저 그랬다. 정말 심술 맞은 입이었지.  다른 점이라곤, 추억의 그는 우유를 섞은 부드러운 홍찻빛 피부였고 눈앞의 청년은 새하얀 크림 빛이라는 것 하나였다.


저 흰 피부 위에 씨를 뿌려놓는다면 아마 색이 비슷할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고는 존은 홀로 찔렸다. 이러다 바지 하나 버리게 생겼군. 인도에서 돌아온 이후부터는 금욕의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유명한 와일드의 스캔들은 존의 어린 시절의 한 때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와일드의 가족들 역시 불명예 속에서 절대로 구제되지 못했을 것이다. 존은 누이인 해리엇의 결혼 역시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기도 했다. 해리엇은 급진적인 사상 때문에 나이가 다 차서도 혼사를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맙소사. 그의 앞에 있는 이 남자는 완벽함 그 자체였다. 저 손이 은근히 자신을 쓰다듬고 있는데도 어떻게 이 이상 참고 모른 체할 수 있을까?


홈즈는 전신 거울 앞으로 존을 이끌어 옷걸이에서 빳빳한 리넨 셔츠를 꺼내왔다. 그는 존의 뒤에 서서 소매에 팔을 넣도록 거들고, 껴안듯이 몸을 감싸 단추를 잠가주었다. 착의를 도운다고는 해도, 원래 이런 자세가 아니라는 걸 존도 눈치껏 알고 있었다. 하지만 등 뒤에 닿은 홈즈의 몸은, 분명하게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거울 너머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제가 무례하지 않았길 바랍니다, 박사님…” 홈즈의 낮은 속삭임이 몸을 타고 그의 가슴으로 울렸다. 존은 입술을 핥고 뒤에 선 남자에게 등을 기댔다. 






Artwork by Whitesky





“이게 청지기가 하는 일입니까?”


“유일하게 좋은 점이지요.” 홈즈가 조용히 웃었고, 존 역시 키득였다. 계집애들 같이 점잖지 못한 웃음이라 언제나 웃고 나서 민망해지고는 했지만, 그 소리에 홈즈의 얼굴이 상냥하게 허물어졌다.


존은 키 큰 하인에게로 뒤돌아 가슴을 맞대고 나란히 섰다. 가빠진 숨 속에서 서로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시선이 입술과 눈빛을 배회하며 살폈다. 홈즈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존의 고개 역시 뒤로 기울어졌고, 입술이 닿을 듯이 가까워졌다. 둘의 숨이 한데 뒤얽혔다. 존은 이곳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치즈와 피클 샌드위치를 먹은 다음 사탕으로 입가심을 했고, 홈즈는 점심으로 진하게 우린 차를 마신 것이 전부였다.


“이름이 뭐지요?” 존이 속삭였다.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더 이상 홈즈라 부르고 싶지 않네요.”


셜록은 그의 진중한 표정에 놀랐다. “제 이름은 셜록입니다. 하지만 로버트라고 불리는 것도 들으셨을 겁니다.”


“왜요, 그게 가운데 이름입니까?”


셜록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왜 오늘 처음 본 남자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을 가르쳐주는지 스스로도 모를 일이다. 일주일간 만날 인연인데 감상적이 되는 건 아닌가. 하지만 그의 이름은, 그의 진짜 이름만큼은 알려주고 싶었다.


“아닙니다. 그러나 하인이 특이한 이름을 갖는 것은 주인에 대한 무례일 수 있기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제 어머니께서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하신 거지요.”


“그럼 위에서 당신 이름을…”


“아니요, 고용주라 해도 제가 내놓지 않은 것을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런 권리를 주지도 않았지요.” 그는 꿰뚫는 듯한 박사의 눈을 피해 흐려진 시선을 돌렸다. 


“존이예요. 존이라고 불러줘요.”


시선을 떨군 채로 셜록이 대답했다. “만찬에 가시려면 마저 옷을 입으셔야겠습니다, 선생―박사님―존.”


그는 존이 바지를 풀어내는 동안 무릎을 꿇고 신발을 벗겨주었다. 


이제 둘 다 서로 원하는 것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희한하게도 수줍어졌다. 존은 흥분을 숨기려고 뒤로 돌았고 셜록은 말없이 바지를 받아든 다음 새 옷을 건네주었다.


옷을 입은 후 몸을 돌리자 셜록이 다시 다가와 멜빵을 메어주고 가슴판의 단추를 채워주었다. 존은 그가 깃을 제대로 갈무리할 수 있도록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고마워요. 저녁식사에 늦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이런 자리에 익숙지 않아서.”


“저는 군대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곳에서는 사교 활동에 시간을 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쁠 것으로 압니다. 아프리카나 혹 아대륙(인도)에 계셨습니까?”


셜록이 매끄럽게 움직여 존에게 검은색 조끼를 입도록 도와주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목에 까만 나비넥타이를 매었다.


“아, 내가 군의관이었다는 얘길 들었습니까?”


“박사님이 직접 말씀해 주셨지요.”


“내가요?”


“저는 박사님이 의사라는 것만 들었습니다. 박사님의 몸짓을 보면 군대에 계셨다는 걸 알 수 있고, 그을린 피부는 남방 기후의 영향일 테니 아프리카 식민지나 인도 중 한 곳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존은 그를 날카롭게 쳐다봤다. “대단한데요. 그렇게 짚어내니 뻔해 보이지만, 솔직히 나조차도 알아채지 못한 것들이었는데. 늘 그렇게 할 수 있는 겁니까? 누구에게나?”


“신중하게 관찰하기만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읽어내기 매우 쉽습니다. 하는 말과 모든 행동에 다 겉으로 쓰여 있지요. 다리를 절게 된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그래서 내가 들어왔을 때 신발을 보고 있었던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모셔야 할 분들에 대해 충분히 알아놓으면 일을 하기가 수월해진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습니다. 굳이 시키려 들지는 않더라도 그 전에 미리 손을 봐두는 걸 좋아하시지요.”


“짐작대로예요. 돌아오고 나서 6개월간 다리를 절었는데, 공원 산책하는 버릇을 들여서 이젠 괜찮아졌습니다. 그 외에 나에 대해 아는 것은?”


“제게 끌리셨다는 걸 알겠습니다.”


존은 미소지었다. “빤히 보이긴 했죠. 계속 말해 봐요.”


“누이가 있으시고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그건 쉬웠지요.”


“가방 안의 사진을 봤겠군요. 원래라면 짐을 풀어줄 사람이 없었으니 깜빡 했군요. 잠깐 당번병이 있긴 했지만 그 병사가 진급한 후로 다른 사람을 요청한 적이 없었죠.”


“런던에 진료소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겁니다. 신발에 런던의 진흙이 묻은 것을 봤습니다. 사업이 더 번창하거나 부유한 고객에게 왕진을 하셨다면 새 옷을 구입하셨을 겁니다.

누이 분은 20대 후반임에도 아직 결혼을 안 하셨습니다. 아마도 혼사가 들어오는 곳이 없어서겠지요,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유보다는 급진주의자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아요. 누이분의 옷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죠.”


“맙소사! 놀랍네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놀라워요, 아주 비범해요.”


셜록은 미소를 지었다. 그로서는 좀처럼 짓지 않는 진심이 우러나온 웃음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는 것을 느꼈다. 진심으로 기뻤기 때문에, 익숙지 않은 감각에 기분이 이상했다.


“그럼 보통 사람들은 뭐라고 하는데요?”


“속임수라고 하지요. 주목받으려고 몰래 정보를 들어놨다가 방금 알아낸 것처럼 꾸며낸다고요.”


“음, 그럼 사람들은 전부 바보군요.”


“감사합니다, …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셜록은 부지런히 방을 돌며 존이 벗은 셔츠에서 깃을 떼고 여행하느라 흙먼지가 묻은 바지를 잘 걸어놓은 뒤, 경대 앞에 세면도구를 꺼내놓았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뒤에서 존이 끌어안았을 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허리를 감싼 존의 팔이 상상 이상으로 기분 좋아서, 온 몸이 쿵쿵 울려댔다.


“이제 뭘 하면 됩니까?” 존이 그의 귀에 속삭였다.


“아, 존, 왓슨 박사님. 저…저녁종이 막 울린 터라… 저는 옷을 갈아입고 식탁을 차릴 준비를 하러 가야 합니다. 겉옷을 입혀드리고 저는 내려가 보겠습니다. 아무 때나 내려오셔서 응접실에 계시는 손님들과 편하게 어울리시면 됩니다.”


옷장 문에 걸려있는 야회복 겉옷을 가져오려 움직이자, 존이 멈춰세웠다. 존은 불안하게 입술을 핥았다.


“혹시…혹시 오늘 밤 와줄 수 있습니까?”


“탈의를 도와드리는 게 제 직무입니다. 아침에 입으실 옷을 준비하고 밤에 편안히 자리하시도록 살펴드리겠습니다.”


“오, 물론, 당신의 의무겠죠.” 존은 그를 놓고 물러났다.


“하지만, 박사님 말씀이 그런 의무들이 모두 끝난 다음에 침실로 오라는 뜻이면, 기꺼이 그러겠습니다. 밤에 무언가 필요로 하시더라도 분명 이 저택에 익숙하지 않으실 테니, 시기적절하게… 절 부르실 수 있도록.”


그리고 셜록은 웃어주었고, 그 미소가 존을 아프게 했다. 가까워졌을 때 떨어지기 전에 키스를 하고 싶었지만, 셜록이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저 입맞춤 한 번으로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도 역시 알았다.






역자의 말


새 장편의 시작입니다. 얼핏 새침한 셜록과 얼핏 점잖은 존의 폴인러브, 제 에로스의 극치이지요.

이 글을 처음 발견하고 "바....바람직해!!" 하고 속으로 환호했을 정도로요.(다분히 제 취향이라는 게 함정....)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아서 전체적인 구도를 끝까지 지켜보려고 했었는데요, 역시나 최근에 설정이 살짝 바뀌었네요.

셜록은 스물 일곱, 존은 서른 하나고요(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

본문에 나왔듯이 20대 후반인 해리가 동생이지요. 자세한 것들은 이야기를 거듭하면서 차차 나오겠지요:)

이번에도 머릿말 표기 고거 까다롭네요. shouldbover 작가님의 표기를 따라 s/j로 적었지만, 존셜도 되고 셜존도 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너무 구애받지 마시고 편히 읽어주시길.  → 15.2.4. Johnlock으로 말머리를 바꾸었어요.

자, 천천히 시작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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