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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SH] 너와 나 사이 (The Sum of Us) - 상 본문

Sherlock_중편/시리즈

[JW/SH] 너와 나 사이 (The Sum of Us) - 상

topsecretum 기밀선녀 2012.12.16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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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사이






존 왓슨은 셜록 홈즈와의 새로운 관계를 비밀로 해두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구나,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그러니까, 시큰둥한 셜록을 끌고 장을 보러 나왔을 때였다.


셜록은 슈퍼마켓에서 홀로 툭 튀는 미운오리새끼다. 갖가지 종류의 시리얼 상자 쪽으로 가선 시리얼들이 선반에서 뛰어내려 음악에 맞춰 탭댄스를 추길 기다리는 것처럼 뚫어져라 쳐다본다. 저런 행동 때문에 가끔 녀석을 데리고 나오는 것이다 ― 며칠간 떠올리면서 웃을 수 있으니까. 물론 셜록이야 저를 귀찮게 구는 데에 꾸준히, 소리높여 불평하지만 어쨌든 나중에 가면 알아서 분주히 움직일 거리를 찾아서는, 카트에 들어간 물건을 필요없다고 빼버린다든지 행복한 목소리로 실험에 쓸만한 걸 발견했다며 소름돋는 얘길 하곤 했다.


오늘 그가 꽂힌 건 마요네즈 같다. 어디서 찾아왔는지, 존이 카트에 넣은 우유와 식빵 사이에다 각기 다른 종류의 마요네즈 여섯 통을 모셔놨다. 존은 말없이 달걀 한 묶음을 더 올렸다. 녀석이 마요네즈로 대체 무슨 짓을 꾸미려는 건지는 몰라도, 흥미가 떨어지게 되면 남은 걸로 달걀샐러드 같은 걸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셜록은 통로를 이리저리 누비며 캔과 병에 붙은 성분표를 읽고, 이따금씩 물건을 고르던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충고하곤 했다. “이 사과잼 다당류[각주:1] 농축이 아주 기가 막힌데요? 탁월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이번 마실에서 가장 기막힌 건 농산물 코너에서 우연히 전 여자친구와 마주친 상황이다. 이름은 테시라고, 한두 해 전에 잠깐 사귀었던 다리가 삼천리인 승무원 아가씨다. 셜록은 토마토 부근에서 어정하게 배회할 뿐 끼어들진 않고, 대신 불쌍한 테시의 뒤통수를 뚫을 듯이 노려봤다. 테시는 미소와 함께 머리칼을 뒤로 휙 넘기며, 존을 향한 옵션이 열려있다고 분명하게 암시하는 목소리로다가 어떻게 지냈냐고 묻는 것이다. 덕분에 존의 뇌 어딘가에서 합선 오류가 일어났다.


“내 플랫메이트 녀석이랑 사귀는 중이야. 물론 녀석이니까 남자고.” 그렇게 불어버린 순간 주변 공기가 싸하게 얼어붙었다. 옆에 진열된 양상추마저 어색해서 자리를 뜰 판이다.


“어머. 그렇구나.” 테시는 호의의 표시를 보이려는 건지 이를 살짝 드러내며 웃었지만 도리어 어딘가 아파서 맛이 간 표정이 되어버렸다. 존도 맛이 가버릴 것 같다. 웃음을 참는 셜록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벌게진 걸 보니 더욱더. 그쪽을 흘긋 바라본 테시는 급히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유제품 코너 쪽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셜록은 천연덕스럽게 갑자기 브로콜리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존은 일렬종대한 애호박 무리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어버린다. 아무리 쳐다본다고 애호박이 위로를 건넬 리 없다. 뭐 원래부터 좋아하지도 않았으니.


“잘 됐어, 존. 아주 평탄대로야.”


“나 지금 테스코에서 커밍아웃했어.”


“그래. 그랬지.”


옆에서 히죽이는 셜록과 눈을 마주치자, 둘 다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터져버린다. 둘은 계산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머리 위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서로 킥킥대며 웃었다.


“나 이제 사람들에게 말할 준비가 된건가봐.” 셜록이 주머니에서 플랫 열쇠를 꺼내는 와중 존이 생각에 잠겨 말했다.


“무슨 말을 한다고?”


“우리 사이. 우리 이제 사귄다는 거.”


“아. 그래.”


안으로 들어와 계단을 올라가는 존의 양 팔은 봉투로 한가득인 반면 셜록은 짜증날 만큼 태평하게 주머니에 손을 척 넣은 채다.


“근데 넌 말해도 괜찮아?”


“무슨 말?” 벌써부터 마요네즈 성분을 머릿속으로 읊는 중인지 대답이 시원찮다.


“사람 말 좀 들어. 우리가 사귄다는 거 말야.”


“아, 그거. 응. 상관없어.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미 아는데다 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안쓰니까.”


그래, 그렇겠지. 셜록과 셜록의 가족 사이가 어떠하다는 일말의 힌트가 드러났다 하더라도 여전히, 셜록의 인간관계가 이런 식이라는 건 우울한 일이다. 어쨌든 허드슨 부인은 알고 계시는데다, 마이크로프트 역시 그랬다. 사정이 이렇게 저렇게 됐다고 딱히 말한 적은 없지만, 둘의 표정이나 옷매무새 등 약간의 힌트만 가지고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인물이니까.


“자, 존. 이젠 내가, 동생을 아프게 했다간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릴 거라고 말할 차례인가요?”[각주:2] 마이크로프트는 그렇게 즐거운 목소리로 물었더랬다.


“무슨 말 하는 지 아니까 그냥 그건 넘어가면 안돼요?” 존이 그리 말하자 마이크로프트는 언뜻 공손하지만 간담이 서늘해지는 미소를 짓고 플랫을 나섰다.


“너희 형님 무섭다구.” 존의 불평에 셜록은 그냥 으쓱 하고는 바이올린을 켤 뿐이었다.


어찌됐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사흘 밤낮을 그 생각으로 매진해 있다가, 어느 화창한 화요일 아침, 잠에서 깼을 때 품 안에서 셜록이 머리는 헝클어지고 입술은 살짝 헤벌린 채로 곤히 잠들어 있는 걸 발견했다. 그러자 마음속에 급격히 차오르는 행복감이란 너무도 크나큰지라, 아직 머리에 남아 있던 망설임같은 것들이 모두 말끔히 씻겨나갈 수 있었다. 마지못해 키스로 셜록을 깨우면서, 나 이렇게 행복하다고, 모두에게 알릴 기념비적인 첫 날의 시작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존이다.






맨 먼저 해리에게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아서, 불가피하게 계획을 바꿔 일단 마이크 스탬포드를 만나러 바츠에 들렀다. 개인적으로 소식을 전해줘야 옳다고 여겼다. 셜록과 만나게 해준 사람이 바로 마이크니까 그것만으로도 빚이 산더미라, 고맙다는 카드와 함께 커다란 꽃다발을 보내거나 런던 상공에 고맙다는 플랜카드를 단 경비행기를 띄운다거나 아무리 못해도 고급 넥타이 하나 정도는 선물해야겠지 싶다. 그러나 오늘은 충동적으로 들리게 되었으니 카푸치노 한 잔으로 너그러이 이해해 주길 바랄 따름이다.


“넌 정말 행운아야. 여긴 옛날에 쓰던 칙칙한 사무실을 지금도 그대로 쓴다니까.” 시험지 무더기를 내려놓고 마이크가 반갑게 커피를 받아들었다.


“그래, 그런 것 같다.” 존도 마주 미소지었다.


생각대로 마이크의 사무실은 정말 작았다. 그것도 온갖 전문 서적과 폴더가 사방에 꽂혀있고 나머지 벽면은 졸업장과 가족사진으로 도배가 됐다. 둘은 한동안 시시한 근황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이크는 시험지를 대강대강 훑어보며, 딸이 이번에 축구 경기를 하다가 쇄골뼈가 골절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의학도로서 아무리 공부해봤자 알고보면 기대하는 것만큼 바뀌는 게 많지 않다는 말도 했다.


“그래, 셜록과 사는 건 어때?” 어떻느냐고. 스탬포드의 질문에 꽤나 잘 지내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존이다.


“좋아. 진짜야. 아주 잘 지내. 같이 잠도 잔다니까?”


“뭐?”


“그냥 그렇다고.”


스탬포드는 컵을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그대로 멈춰서 빤히 이쪽을 쳐다보다가, 이제껏 존이 본 중 가장 웃긴 ‘으쓱’ 동작과 함께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 그렇군, 그렇지. 축하하네. 잘됐어. 정말로.”


“그런데 사실 가끔 가다 정말로 잘된 게 맞는지 회의가 들기도 해. 셜록 홈즈에게 말려든 게 아주 똑똑한 짓은 아니었을 지도 모르지. 그래도 지루할 날은 없어. 녀석이 어제 마요네즈 세 통을 터뜨려선 온 주방에다 다 범벅을 해놨더라고. 붙잡고 머리에서 그거 씻겨내느라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니까. 다 네 호의 덕분이야.”


둘의 눈이 마주친 순간 크게 웃음이 터졌다. 이런 기분을 느껴본 지도 얼마나 됐던가, 존은 마이크와 같은 사람을 친구라 부를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이걸로 지금껏 살인이 두 건이야, 셜록. 자네가 관심있을 줄 알았는데.”


익숙한 레퍼토리다. 레스트레이드가 꽤나 필사적으로 셜록의 도움을 요청하고, 셜록은 아직 제대로 옷을 입지도 않은 채 별 관심이 없다. 레스트레이드는 짜증이 제대로 난 모양이다 ― 관할 내 시체가 벌써 두 구가 나왔으니 그럴 법도 하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자문 탐정이 조금만 협조를 해줘도 아주 감사할 상황인 거다.


“아직 두 사건이 관련 있다고 밝혀진 것도 아니잖습니까.” 의자로 몸을 푹 파묻으며 툴툴거리는 셜록이다.


“그러니까 자네가 필요한 거 아니야. 그걸 밝혀달라고. 직감이 와서 그래.”


셜록은 흥 하고 레스트레이드의 직감을 경멸하듯 손을 내저어버렸다.


존은 둘의 토론에서 한 발 빠져서, 예기치 않게 맡은 추가 근무를 나가기 위해 소파에 앉아 구두끈을 매던 중이다. 아까 사라가 전화로, 당직 의사 하나가 병결을 내서 몇 시간 정도 진료 근무를 서 줄 수 있느냐고 부탁해왔다. 추가 근무 수당을 마다할 이유야 전연 없다. 어디까지나 셜록이 사건을 수사하지 않는 이상.


“마음 바뀌면 전화해. 젠장, 이 두 사건이 이어진 거라면 우리 직원들 아주 끝장나는 거라고.” 레스트레이드가 우울하게 말했다. 지금 나가봐야 하는데 레스트레이드가 플랫에 셜록과 단둘이 남는다는 걸 알았다간 그닥 좋아하진 않을 것 같다. 솔직히 그럴 법도 하지.


“알았으니까 둘이 그만 싸워요. 나 갑니다.” 그는 외투를 들고 지갑을 챙긴 뒤 셜록이 앉은 의자로 다가가서, “얌전히 있어. 늦지 않게 올게.” 한 손을 셜록의 어깨에 얹고 몸을 숙여 쪽 입맞췄다. 그렇게 서로 키스를 주고받고 나서 고개를 들었을 때서야, 지금 레스트레이드 앞에서 키스판을 벌였다는 걸 깨닫는다. 존이 마법을 부려 주머니에서 뛰쳐나온 원숭이가 영국 국가를 부르기라도 한 것처럼 눈이 휑뎅그렁해진 레스트레이드, 앞에서.


“어. 안녕.” 존은 어색하게 셜록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잽싸게 도망쳐 나와 계단을 내려간다. 뒤에서 셜록이 하! 하고 재밌다는 듯이 웃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레스트레이드 역시 그 뒤를 따라 내려오며 묻는다.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웃음기가 서려 있으니 아마 좋은 징조일 테다.


“제가 남자친구와 작별인사 하는 걸 보셨겠죠.” 그래서 존은 시인했다.


“아. 그래. 알았어.”


잠시간의 침묵 동안, 햄스터가 녹슨 쳇바퀴를 정신없이 돌리듯 옆에서 레스트레이드의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자네 둘이 그럼 언제부터…? 진짜 몰랐거든. 깜빡 속았지 뭐야. 그러니 내가 진짜로 눈치 빵점에 얼간이든지 아님 그동안 커플 아니라고 아주 진짜처럼 잘 속인 거겠지.”


둘 다인데요.[각주:3] 속으로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감히 입으로 꺼내진 않는다. 셜록이라면 그대로 말했겠지. 하지만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일반적 예의범절을 고수해야겠지 싶다. “최근이에요. 몇 달 정도. 사실 갑자기 일어난 일이긴 한데, 마음이 맞아서 이렇게 됐네요.”


“마이크로프트도 알겠지?”


“알죠. 그게 왜요?”


“아니. 뭐 그냥.” 레스트레이드가 코트 주머니에 손을 쑤셔넣으며 대충 얼버무린다.


“사실, 비밀로 해두는 중이에요.” 존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래, 알았네. 남들 눈 있는 데서 공공연히 애정표현을 하면서 비밀로 하고 싶다 이거지.”


“집에서까지 남들 눈치보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그래도 일단 주변에 사람 있는지부터 확인하지 그래. 나도 아직 이 상황을 뭐라고 기억해야 좋을지 헷갈리는걸.”


존은 큭큭 웃고 레스트레이드의 어깨를 토닥였다. 레스트레이드 역시 마주 웃으며 택시를 잡아주었다.






섹스를 나누기 시작한 후부터 셜록은 눈 깜짝할 새 나체로 잠드는 버릇이 생겼다. 반대할 이유야 눈곱만큼도 없다. 아침이 되면 셜록이 전라의 모습으로 침대에 길게 뻗어 있는데, 발딱발딱 서기엔 좀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건, 파블로프 반응과도 같다. 셜록의 우아하게 휜 등허리와, 볼록 솟은 엉덩이 선 위에 흰 시트로 기가 막히게, 아주 예술적으로 가려진 장면만 보면 뇌에서 혈액 공급 1순위를 거시기에다가 모두 몰아주는 거다.


“시발.” 숨을 들이키는 존을 향해 셜록이 늘어지게 웃어보인다.


“난 괜찮은데.”


“시끄러. 나 늦었단 말이야.”


“아니, 안 늦었어. 아직은. 늦고 싶어?”


“으이그. 시끄러, 입 다물어.”


존은 재빨리 옷을 입고, 또 이불만 대충 걸친 채 아침을 먹는 셜록을 간신히 피해 플랫에서 뛰쳐나왔다. 나중에 보니 천천히 셜록을 감상했어도 되는 상황이었다. 교대하기 두 시간이나 전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뭐 덕분에 평소에 근무 중 야드로 급히 달려나갈 때와는 달리 상사 사라로부터 보너스를 좀 더 받긴 했지만.


이젠 셜록만 문자를 보내는 게 아니었다. 화가 잔뜩 난 레스트레이드가 ‘자네 애인이 우리 감식반 테러하게 생겼어. 부탁인데 좀 말려줘’ 라고 문자를 했다. 해서 사회적 위협인물인 애인에게, 피해자 셋을 독살한 범행의 전말을 밝히자고 독려하는 데 딱 문자 네 통이 오고갔고, 마침내 흥미가 생긴 셜록은 열광적으로 수사에 임했다.


피해자는 모두 비소(arsenic) 중독으로 살해됐으나 그들 셋에게 공통되는 증거라곤 전무했다 ― 셜록마저도 공통분모를 밝혀내는 데 애를 먹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었고, 존은 이러다 다시는 밖에서 샌드위치 하나도 못 사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범인의 방식을 추론해 낼 수 있는 무언가 특정한 음식이 사용되었을 거라 확신하는 셜록이다. 덕분에 무계획적으로 온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며 한바탕 난리를 피워대서 앞으로 평생동안 셜록과 싸잡아 식당에 발도 못 들이게 될 지도 모른다고 위협을(대체 뭘 먹고 살란 말인가?) 느낄 정도였다.


각양각색의 음식이 담긴 자루 세 개(별로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와 함께 셜록이 연구실로 쳐들어왔지만 몰리는 전연 동요하지 않았다. 들뜬 모습으로 사과를 조금 잘라내 현미경 제물대 위에 올려놓는 셜록을 도와, 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각 샘플에 시약을 첨가하고 가까이서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존은 하릴없이 실험물품을 건네주거나 옆에서 서성였다.


그러다 셜록이 옆으로 던진 사과 반쪽을 잡아들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 “독 든 거 아니죠, 새엄마?”[각주:4]


“뭐?”


“아냐. 아무것도. 이거 먹어도 안전한 거지?”


셜록이 눈썹을 와그작 찌푸렸다. 그의 정신은 온통 실험 결과와 숫자와 존으로서는 발음하기도 힘든 갖가지 효소에 집중되어 있었고, 출처가 의심되는 음식에 둘러싸여서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허기를 거부하느라 날카로워져 있는 이유도 있다. “어. 괜찮아. 먹어, 그냥 사과야.”


씨익 웃고 한 입 베어문다. 잠시 그 입술에 셜록의 시선이 진득하니 고정되어 있다가, 다시 돌리는 눈에 웃음기가 담겨 있다. 존도 빙긋 웃으면서 셜록의 등에 어깨를 다정히 부딪친다. 그리곤 몰리의 책상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와 앉아 사과를 우물거리며 구경했다.


“그 사과 먹어도 괜찮은 거예요?” 몰리가 페트리 접시에서 눈을 들어 묻는다.


“아, 네. 셜록이 확인 했대요.”


“두 분 사이에 뭔가 바뀌었네요.” 그녀가 불쑥 물었다. 눈에 담긴 궁금증이 가려지지 않고 목소리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사람을 잘 읽는 거로군. 대부분의 시간을 시신과 보내는 여자가 살아있는 자들에 대한 통찰력 역시 높다는 건 인상적이다.


“그래요.” 대답은 간단하다. 괜히 말을 돌릴 이유 없으니까. 몰리는 똑똑한 여자였으므로, 이 두루뭉술한 답변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아.” 마주친 두 눈 사이로, 몰리의 마음속에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서는 갈기갈기 찢어져 넝마가 되는 게 모두 드러나보였다. 존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기분이 든다. “그럼 두 분. 두 분이. 아하.” 몰리는 애써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말을 이었다. “축―축하드려요. 잘됐네요.” 진심이면서 동시에 진심이 아닌 말이라 존은 잠시 어쩔 줄을 몰랐다. 포옹이라도 해주면서 다 괜찮다고, 바다에 널리고 널린 게 다른 물고기 아니냐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러면서도 솔직히 이렇게 알려주고 싶은 욕구 역시 몹시 강렬하다. 이봐, 내가 이 엄청나게 독특하고 유일무이한데다 예쁘기까지 한 미친 열대어를 잡았다고, 눈독들이지 마, 얜 내거야. 정말이지 그 정도의 소유욕을 느껴본 적이 전에 없었더랬다. 계몽적인 수준이랄까.


“고마워요.” 어찌됐건 존도 부러 미소를 지었다. 몇 초간 둘이 서로에게 가식적인 웃음을 짓는 동안, 저쪽에서 셜록은 줄기차게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순 의지력만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려는 건지, 피펫을 요술봉마냥 휘둘러대고 있었다.


“얼마나 됐어요?” 몰리는 최대한 상냥하고 친절한 목소리를 지어냈다. 그렇게 늘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얼마 안 됐어요. 한두달 정도.”


“아.” 몰리의 표정이 흔들린다. 잠시 시선을 돌렸다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작게, “난 정말 바보야.” 거의 속삭임과도 같이 읊조렸다. “죄송해요, 그러니까 ― 그런 뜻이―”


“괜찮아요, 알아요.” 존은 손을 뻗어 몰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다시금 거짓 미소가 오고간다. 몰리는 머뭇머뭇 물러나면서 곁눈질로 셜록 쪽을 잠시 흘긋 했다.


“실례할게요.” 몰리는 낮게 말하고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후다닥 달려가 복도 모퉁이로 사라지는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화장실 칸에 틀어박혀 울려나? 떠오르는 거라곤 그것뿐이다. 지금 이 상황에 어떻게 해야할지도 전혀 모르겠고 한편 이 운도 지지리 없는 숙녀가 안쓰러워 마음이 좀 좋지 않았다. 부디 몰리의 상처가 깊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중에 커다란 아이스크림 한 통이라도 주면서 같이 셜록 뒷담화를 실컷 해 풀 수 있을 정도라면 좋겠건만.


다행이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는 동안 셜록은 아무 것도 모르고 현미경 초점을 조절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존은 그의 허리에 팔을 감고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셜록에게선 아무런 반응도 없지만, 뭐 괜찮다. 그런 건 기대도 안했으니.


“이거 이상하군.” 셜록이 중얼거린다.


“왜, 네가 예상했던 결과가 아니야?”


“응.”


셜록은 주변을 둘러보곤 그제서야 실험실에 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몰리 어디갔어? 테스트 몇 가지 부탁해야 하는데.”


“잠시 시간이 필요할 거야.”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존이다.


“왜?”


“우리 사이를 알아버렸거든.”


“네가 말했어?”


“아니, 알아냈어. 사람 관찰에 능한 이가 세상에 너만 있는 게 아니거든.”


“아. 근데 왜 나간 거래?”


“잠시 시간이 필요하다니까. 그냥 내버려 둬.” 너라면 이해하지도 못하겠지. 빈자리를 향해 미간을 찌푸리는 녀석의 입가에 몸을 숙여 입술을 내리누른다. 살짝. 셜록이 애정표현을 덜 하는 만큼 이쪽에서 안심하고 싶어서. 셜록은 곧 다시 현미경으로 고개를 돌렸고, 온 정신이 제물대 위에 놓인 실험체로 몰려가버린다. 존은 이 따뜻한 몸에 조금 더 기대어 있다가 뒤로 물러나, 셜록이 하던 일을 마칠 때까지 충실히 기다렸다.






언제나 그렇듯, 셜록의 번쩍이는 기지로 사건이 해결되었다. 그리고 존은 남은 평생 절대로 컵 푸딩을 사먹지 않겠노라는 다짐을 얻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셜록과 맡아온 사건에 비교하면 이번 연쇄 독살범은 너무 쉽게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떠오르긴 했지만.


이틀도 안 되어 범인이 구치소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셜록과 존의 관계에 대해 아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전에 테스코에서 존이 예기치 않게 커밍아웃을 한 날, 셜록도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둘의 사이를 알고 있노라고 얘기했더랬다.


거짓말이다.


물론 존에게 이실직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 나중에 되어 문자로 간단하게 소식을 전하긴 했다. 다만 간단하게 보낸 문자의 내용은 덜 간단한 무게라는 거겠다. 셜록이 이 소식을 나누고 싶은 이가 있다면, 아마 딱 이 사람 하나뿐일 거고 실제로도 그랬다. 문자를 전송하고 나니 모든 게 희한한 만족감이 든다. 그리고 존이 왜 그리도 야단을 떨며 중요하게 여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의 행복감이란 건 공작새의 꼬리깃털처럼 툭 튀어나와 빛나면서 남들에게 보여줌으로서 만들어지기도 하는 거니까.



매년 요맘때쯤이면 과태말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당신도 오면 좋을 텐데. ― I


내가 멋대로 중앙아메리카로 떠났다간 존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걸. ― S


왓슨 박사, 상당히 당신을 싸고돌지 않아? 행적까지 신경쓰면서. 안그래? ― I


나에 대한 소유권이 있으니까, 당연히 보호적일 권리도 있지. ― S


내가 잘못 본 건 아니겠지, 방금 당신 왓슨 박사의 소유라고 한 거야? ― I


그래. ― S


그 사람 드디어 굴복한거래? 축하해, 나 이상하게 당신 둘이 자랑스럽다. ― I


‘굴복’이란 단어가 대략 적절한 표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맞아. ― S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숫총각이라고 할 수 없게 된 건가? ― I


맘대로 해, 하지만 부정확한 말이긴 하지. ― S



이따금씩 그렇게 이어진 대화는 급속도로 노골적인 영역까지 진행되었다. 그러면서 셜록은 존에게 해줄 수 있는 몇 가지 괜찮은 기술들을 습득했고, 물론 어디서 배웠는지 말하지 않았다.


존이 불평하지 않는 거야 말할 것도 없다.






몇 달마다 존은 옛 블랙히스 럭비팀 친구들과 만나곤 한다. 아프가니스탄에 다녀온 이후 존에게는 다친 어깨와 말을 안 듣는 다리 그리고 애새끼 플랫메이트를 얻었으므로 더 이상 럭비를 하지는 않지만, 이 친구들과 만나면서 돌도 씹어먹던 시절과 허구한 날 경기장 바닥에 넘어져 진흙을 한웅큼씩 삼켰던 옛 나날을 회상하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이제 다들 마흔줄에 다가서는 사내들이고, 대부분 결혼해서 몇몇은 차 뒷좌석에 아이용 시트를 설치해둔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건장하고 젊어서 이렇게 모여 술 마시고 왁자지껄 떠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존에게도 역시 있을 수 있었던 미래 중 하나인지라, 얼핏얼핏 평범한 삶에 대한 감회에 젖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무거운 중압감이 찾아온다. 이 친구들에게 셜록에 대해 말해야 할까? 그냥 있을까? 술잔을 잡고, 펍의 왁자한 분위기 속에 잠시 생각을 내려놓기로 한다. 목청 좋은 말소리들이 섞여 금세 요즘 사는 얘기로 흘러간다 ― 바로 지난달에 케브가 건강한 사내애를 얻었다. 조그만 얼굴이 그려진 사진이 서로의 손에서 손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착한 스티븐 녀석은 여름에 여자친구 조이스와 결혼할 계획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이제 발목에 족쇄가 걸려서 바가지 긁힐 일만 남았다나. 상당히 이성애적 상황에서 나오는 표현이고, 다들 이 모임에서 싱글 단 하나만 남기고 모두 여우같은 마누라를 얻어 정착하게 되는 것이다 ― 그 단 한 명이란 아주 고맙게도 존 해미쉬 왓슨인 거고.


“어때, 너도 슬슬 정착할 생각 없냐, 조니?” 존의 어깨에 팔을 떡 걸치며 케브가 물었다.


“내버려 둬, 우리가 부러워할 한 놈은 남겨야지!” 품절남 셋 중 아미르가 유쾌하게 한 마디 했다.


“옳소. 그리고 존한테는 절대 여자들 관심이 끊일 날이 없거든, 안그래?” 스티븐의 말에 존은 그냥 씨익 미소만 지었다.


“쪼끄만 덩치로 어떻게 늘 여자들을 줄줄 꿰고 다니는지 몰라.” 어깨를 툭 밀치는 엘리엇에게, 존도 지지 않고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 찌르며 답한다.


“그걸 섹스어필이라고 하는 거야, 자식아. 섹스어필.”


“그래도 무슨 소식은 있을 거 아냐. 요즘 만나는 사람 없어?” 케브가 압박해온다.


좋아. 때가 된 거다. 존은 결심했다. 맥주를 크게 한 모금 들이키고, 입을 삐죽 내민 채 끄덕였다.


“이거 봐라, 조니가 그럼 그렇지! 불어봐, 그 여자 이름이 뭐야?”


심장 뛰어대는 소리가 주변의 웅성임보다 더 크게 귓가에 울리고, “셜록.” 불안하게 이름을 읊어낸다.


“셜록? 여자 이름이 뭐 그렇대?”


“여자 아니야.”


순간의 정적과 함께, 어깨에서 케브의 팔이 떨어져 내렸다. 돌풍이라도 맞아 휩쓸려간 듯 팔이 닿았던 부분에 허무함만 남았다.


“뭔 놈 자식 이름이 그렇대?” 엘리엇의 말에 존에게서 살짝 히스테릭한 키득임이 터져나온다.


“잠깐, 너 게이 된거야?” 끼어드는 케브의 목소리에, 이 오래된 친구들 앞에서 괜한 얘기를 꺼냈다는 위험한 느낌이 감지된다.


“아니. 그렇지는 않아.”


“양성애지.”


“아니. 그것도 아니야. 둘 다 틀렸어.”


“하지만 남자를 만나잖아.”


케브는 납득하지 못하는 눈치였고, 이해하려고 머리를 굴려보지만 결국 실패하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아마도 스스로에게 간단하고 ‘동성애’라고 이름표를 찍는다면 군말도 없고 상황이 덜 난해했겠으나, 존은 셜록에 대한 감정을 그런 식으로 평범하고 무디게 표현할 수 없다.


“맞아.” 그래서 존은 말을 이었다. “그래, 나 남자와 사귀는 거 맞아. 거기다 그 녀석이랑 사랑까지 하고 있으니. 이상하게 들린다는 거 알아. 나도. 뭐, 완전 복잡할 수도 있고 엄청 간단한 얘길수도 있어. 말도 안 되는 동시에 아주 당연한 거니까. 말이 좀 희한하긴 하지, 그냥 난―“


“이렇게 갑자기 동성애자가 되는 사람이 어딨어.” 또다시 케브가 말을 잘랐다. 엘리엇은 솥뚜껑같은 손으로 초조하게 술잔을 잡는다. 그리고 아미르는 옆에 서서 존의 머리가 하나 더 솟아나기라도 한 듯이 입을 헤벌리고 쳐다봤다. “셜록이면 네 플랫메이트 아니었어? 그럼 언제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야?” 어딘가 비난조인 케브의 목소리가, 존의 고백에 기분 나쁘게 모욕이라도 당했다는 기색이라 존도 슬쩍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런 건 네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말에 가시가 돋혀나온다. “셜록은 날, 내 평생 느껴본 것보다 더 행복하게 해준다고. 내가 남자놈과 그렇고 그런 사이인 게 불만이면 그냥 닥치고 신경쓰지 마.”


“자, 자, 다들 진정하고…” 둘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스티븐이 끼어들었지만, 옆으로 밀어버리고 다시 말을 잇는다.


“아니, 저 자식 말투가 맘에 안 들어. 너 나한테 남자친구가 있는 거에 무슨 불만이라도 있어?” 남자친구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나오자, 두루뭉술하게 ‘남자를 만난다’는 이미지였을 때보다 동요하는 기색이다.


“그래, 불만 있는 것 같은데.” 케브가 씩씩대기 시작했다. “나쁘다는 건 아냐. 아니지. 널 비난하는 게 아니라 난 그냥 내 친구놈 중 하나가 갑자기 별 일 아니라는 듯 호모가 됐다고 말하는 게 문제라는 거라고.”


“내 누나도 동성애자라는 거 그동안 알고 있었으면서, 그럼 그것도 문제가 되는 거냐?” 호모라고. 존은 이런 일이 조만간 일어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두 귀로 생생히 그 말을 들으니 마치 은박지 구겨지는 것과 같이 허무하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씨발, 지금 네 누나 얘기하는 게 아니잖아. 난데없이 네가 얘길 꺼내니까 그렇지. 우리 다들 같이 목욕도 하고 그랬는데, 어?”


거기서 머릿속에 뭔가가 뚝 끊겼다. 바람과는 달리 순간 격렬한 분노가 눈앞을 가려서 존은 케브에게 물리적 공격을 가하지 않기 위해 평정을 되잡아야 했다. 덩치야 더 클지는 몰라도 존은 한다면 하는 남자고, 필요하다면 주먹이 나갈 수 있으니까.


“너 도대체 왜 그러는데?!” 존의 노호에, 아미르가 뒤로 물러난다. “내가 은근히 너한테 추파라도 보낼까봐 걱정돼? 그런 거야? 그럼 솔직히 터놓고 말해서 걱정 말라고, 난 네 펑퍼짐한 엉덩이에 손끝도 대기 싫으니까. 그래, 나 남자 사랑한다. 키 크고 예쁜데다 우릴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똑똑하고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엄청 더 나은 놈이야, 내가 사랑하는 녀석은. 그러니 지나가다 웬 게이한테 잡아먹힐까봐 별 같잖지도 않은 걱정 마시지. 내 말 믿어도 좋아. 왜냐면 난, 집에 가면 훨씬 더 좋은 선택지가 있거든.”


“지금 나한테 비난하기라도 하는 거야 뭐야?!” 화난 어조로 케브가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래 맞다, 어쩔건데. 보라고, 네가 나 거시기 달린 놈과 붙어먹는다고 어쩌고저쩌고 하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게 괜찮았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이야, 케빈, 에두르지 말고 그냥 곧이곧대로 얘기하지 그래.” 존의 곧은 시선에 케브는 빤히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구 또 할 말 있어?” 한명 한명에게 쏘아지는 분노의 눈길이란, 덩치가 작은 사람만이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눈빛에 갇혀있기엔 너무도 거칠었다. 아미르는 눈을 피했고, 엘리엇은 산만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안절부절 못 했다.


“내 생각에 케브가 말하려던 건…” 극도로 불안한 침묵 사이로 스티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지만 곧바로 존이 말을 잘라냈다.


“너도 저놈 편 드는 거냐? 진심이야? 이런 식이야? 네놈들이 이럴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어, 상상도.” 존은 거칠게 화를 냈다. “난 그저 너희들에게 솔직하게 말한 것 뿐이라고. 내가 어떻게 살고 있다고 말한 것 뿐인데, 그런데 니들이 나한테 이딴 개 헛소리를 해?”


그들은 조용히 존을 쳐다보거나 술잔으로 시선을 내리깐 채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래. 이것도 이제 다 끝이다.


“잘됐네. 나도 이딴 거 필요 없어.” 마지막으로 그렇게 내뱉고는 바에 쾅 소리와 함께 빈 잔을 내려놓았다. 지금 나가버리지 않으면 아마, 아니 분명 완전히 꼭지가 돌아서 이들 중 하나, 특히 케브를 붙잡고 코를 박살내게 될 것이다. 존은 외투를 집어들고 누구 하나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일어섰다. 길가로 나와서 거칠게 옷을 껴입는데, 얼굴로 가랑비가 부스스 떨어져 내리는 게 느껴지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간다. 대체 뭘 기대했던 건지 스스로도 모르겠다. 이보다 더 최악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나은 상황이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도대체 방금 스스로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존은 그걸 알아내느라 생각에 잠겼다.






역자의 말


오늘 호빗 재탕하고 왔어요. 하아....좋았어♡ 제가 정말 마틴을 무지 좋아하긴 하나봐요.

이 이상은 스포일러므로 뒷 얘기는 별채로^*^

커피 두 잔 시리즈의 마지막 편입니다. 본격 살림부터 차리고 사귀기 시작한 요상한 커플의 생존기가 되겠네요.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이 귀요미 커플, 계속 지켜볼겁니다:)







  1. polysaccharides. 셜록의 비꼼은 수준이 다르다; [본문으로]
  2. 니..님이 말하면 농담이 아닌데요 [본문으로]
  3. 같이 살면 닮는 겁니다.(4) 이거 확실해요. [본문으로]
  4. Not poisoned, stepmother? 백설공주의 계모가 준 독사과를 떠올려 보라. 조니 공주와 셜록 계모… 무서운 걸 상상해 버렸다…ㄷㄷ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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