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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rlock_단편

[SH/JW] 허무한 승리 (A Bleak Sort of Victory)

topsecretum 기밀선녀 2012.04.2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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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A Bleak Sort of Victory
  • 저자 : (익명)
  • 줄거리 : 유난히 힘들었던 사건 이후 셜록이 영양실조와 수면결핍 증세를 보이자, 화가 난 존은 결심하고 셜록의 식사와 수면 습관을 따라하기로 한다. 잔소리, 협박, 말다툼 등이 셜록에게 전혀 효과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존은 교묘한 방법을 쓰기로 하고, 셜록에게 비밀로 한 채 계획을 진행한다.
  • 작가의 말 : 존이 아파서 쓰러지고, 존이 뭘 하고 있던 건지 깨달은 셜록이 기겁하는 내용을 쓰고 싶었어요! 거기에 숨겨진 *감정*이 드러난다면 더 좋겠지요?
  • 비고 : 기밀선녀가 번역했습니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지금 그는 셜록이 승리감에 안달을 내며 추리를 해나가는 것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셜록의 생각 패턴을 따라가는 건 달팽이가 로켓 모형 따라가는 것보다 더 나을 바가 없었으므로, 존은 그만 두고 셜록을 지켜보기로 했다. 녀석은 요즘 통 먹지를 않았다. 눈그늘이 져 있는 걸 보니 잠도 안 잤다. 멍청한 자식. 저러다 얼마 안 있어 죽어버리고 말 거다. 


존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셜록은 뭔가 요기를 하라고 말해도 듣지 않고, 차와 토스트를 가져다줘도 매번 손을 휘휘 내저어 물리며 “일하는 중이다”고 쏘아붙였다. 아무리 애원한들 그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존은 에둘러도 말해보고, 그 다음엔 명령을 했고, 마지막으로 화까지 냈지만 ― 녀석이 콧등으로도 듣지 않아 이미 지쳐버린 상태였다.


갑자기 셜록의 말소리가 끊겨서, 존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공상에서 빠져나왔다. 셜록은 말을 하다 말고 허여멀건해서는 거진 반투명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창백한 얼굴을 하곤 자리에서 휘청거렸다. 존은 얼른 녀석의 팔꿈치를 붙들어 세웠다. 멍하니 눈을 깜박이는 플랫메이트의 모습을, 존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응시했다. 얼마나 됐어, 네가 먹거나 잠을 잔 지 사흘은 됐나? 그는 셜록에게 눈으로 물었다. 셜록은 그게 자랑스러운 일이라도 되는 듯이 피식거렸다. 여기서 머릿속의 줄이 딱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존은 바로 그 순간 결심했다. 계속 하라고 셜록을 놓아주면서 그는 냉혹하게 결심했다.


타일러봤자 듣지도 않고, 명령조로 엄하게 말하면 경멸스런 눈빛(‘넌 내 신발바닥에 붙은 껌이야’)만 받을 뿐이다. 결국 화가 나서 소리까지 질렀던 날은 세 번째 “집안싸움”이 되었고, 애석하게도 주먹다툼까지 했었더랬다.


이제 좀 더 교묘하게 접근을 할 때다.






이 일은 홀로 해낼 수 없는 거였다. 셜록에게 최소 한 주간은 사건이 없도록 레스트레이드에게 다짐을 받아야 했다. 이 일에 대해 설명을 하자 레스트레이드는 걱정스런 얼굴을 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말 필요하지 않은 이상 셜록에게 연락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존은 인터넷으로 단식과 수면결핍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검색했고, 커피 및 카페인이 될 만한 걸 사다 비축해뒀다.


셜록이 몸을 못 가누고 비틀거렸던 날의 다음날 저녁, 존은 실험을 시작했다.


처음 여덟 시간 정도는 가뿐했다. 피곤하지 않았지만 다만 허기가 의식의 가장자리를 조금씩 좀먹기 시작했다. 존은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셜록의 희미한 바이올린 소리를 친구삼아 책을 읽는 걸로 밤을 지새웠다. 알람이 정각 여섯 시를 가리키는 순간 존은 웃었지만, 기뻐서 짓는 미소는 아니었다. 셜록이 그 표정을 봤다면 저 인상좋은 얼굴에 서린 냉기에 몸서리치며 당황했을 것이다. 그건 군인의 표정이었다. 단단하고 단호하며 무서우리만치 거리감이 느껴지는.


그날부터는 약간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전쟁터에서는 몇 시간이고 깬 채로 버티곤 했었기에, 그의 정신은 집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그냥 카펫을 청소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것이라 해도 사막 안에서 부상병을 응급처치하는 일만큼 중요해졌다. 계단을 올라 방으로 향하는 것조차도, 바위절벽을 걸어 막사로 돌아가는 것만큼 다리가 무거웠다.


두 가지 도전에서 먹지 않는 편이 조금 더 힘들었다. 음식 없이 버텨본 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존이 저녁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걸 셜록이 금방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너 뭐 좀 먹어야겠어. 배달시키든지.” 셜록의 말에 존은 배고프지 않다고 대답했다. 셜록이 마지못해 인도 음식을 시켰다. 존은 TV로 몸을 돌려 그가 내쉬는 언짢은 한숨을 못 들은 척 했다. 골이 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셜록이 텔레비전에 대고 소리 지르는 걸 몇 시간 들은 끝에 존은 버티지 못하고 일어났다.


“나 나갔다 올게.”


셜록이 골이 난 게 분명해졌다.






땅거미가 지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존은 살짝 휘청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몽롱한 게 썩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몸속에서 술과 카페인이 뒤섞여 취한 덕분에, 별을 가로질러 보거나 새 세상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뭐, 동기만 주어진다면야) 이상한 기분이었다.


“존?” 계단 꼭대기에서 셜록의 목소리가 울렸다. 존이 이렇게 흐리멍덩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의 목소리에서 걱정되는 기색을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응, 셜록, 나야. 괜찮아.” 그가 대답했다. 이건 정말 어이없는 짓이야, 그의 머릿속 어딘가 간신히 제자리에 붙들려 있던 이성이 외쳤다. 하지만 이런 걸로 의지를 잃을 순 없지. 집중하자고! “괜찮으면 커피 좀 가져다줘.” 셜록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에 난 문으로 사라졌다. 이성이 조금씩 자리를 잡고 나서야 머리가 조금 맑아졌다. 그는 셜록이 준 커피로 카페인과 설탕을 섭취할 수 있었다.


“잠을 못 잤군.” 셜록이 말했다. 이쯤 됐으니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거의 47시간을 눈뜬 채로 보냈으니 눈 밑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을 테고, 휴식을 취하지 못한 몸이 긴장해서 움직일 때마다 움찔거렸다.


“악몽 때문에. 잠을 못 자겠어.” 존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대충 둘러댔다. “난 괜찮아. 전에도 잠 안 자고 버틴 적 있어.” 셜록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라는 거지. 존은 컵이 흔들리지 않게 두 손으로 꼭 붙들었고, 그런 그를 보며 셜록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날 밤은, 셜록에게 공손히 요청해서 바흐를 연주해 주기로 했다. 의자에 앉은 존은 바이올린 소리에 잠이 들까봐 걱정했지만, 지나고 보니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빈속에 들어간 카페인이 뱃속을 쑤셔대며 음악소리에 맞춰 마구 날뛰었다. 그는 셜록의 손가락이 현 위를 차례로 짚으며 자아내는 음계 하나하나가 살아나 신경을 거슬렀다. 마침내 연주가 모두 끝날 때까지도, 존은 맨정신에 눈을 반짝 뜬 상태였다. 셜록은 살며시 바이올린의 목을 잡고 받침대에 얼굴을 기대, 마지막 곡조가 조용히 공중으로 잦아들도록 느리게 활을 그었다. 존은 그의 손에서 조심스레 바이올린을 거둬 케이스에 돌려놓은 다음, 미소를 지었다.


열대 대양도 얼릴 수 있을 것 같은 미소였다.






수면 없이 버티기 시작한 지 사흘째가 되니 더 이상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지치는 기분을 무시하는 것도 더 익숙해져가고 있었고, 집안일을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셜록은 점점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말이다. (호기심, 아니면 걱정인 걸까? 알 수도 없을뿐더러 이 상황에 신경쓰고 싶지도 않았다). 느낌이 대단했다. 머릿속으로 도시 몇 개쯤은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네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알겠어.” 존이 멍하게 중얼거렸다.


“무슨 짓?” 셜록은 바르게 앉더니 그를 빤히 쳐다봤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젠장. “아냐. 아무것도. 난 샤워하러 잠시.”


찬물 샤워가 도움이 됐다. 샤워를 마치자마자 셜록이 욕실 문을 마구 두드렸다. “레스트레이드가 문자했어.” 잔뜩 신이 난 목소리였다. “밀실살인이야. 5분 줄게, 아니면 두고 간다!”


존은 웃지 않았다. 그 순간 셜록이 그 표정을 봤으면 깜짝 놀라고도 남았을 거다. 존의 얼굴은 단호한 의지만 남기고 텅 비어 허무해져 있었으니까.


그날 저녁도 무리없이 피곤함과 허기를 외면할 수 있었다. 이런 상태가 집중하는 데 더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두 사람은 밤새 잠복하고, 동이 튼 후 추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결국 아침이 밝았을 때쯤, 존은 한계가 왔음을 깨달았다. 잠을 잔 지 75시간이나 지난 데다 음식을 섭취한 것도 벌써 67시간 전의 일이었다. 이러다 쓰러지고 말겠군, 존은 차가운 아침 공기 사이로 헉헉대며 모퉁이를 돌아 셜록을 뒤쫓았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허무한 오기로만 가득 차 있었다.


82시간째. 셜록이 레스트레이드에게 추리를 마무리 짓고 있을 때 존은 몸이 멋대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구름 낀 하얀 하늘이 거무스름하게 변함과 동시에,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외쳤다. 몸에 덜컥 충격이 온 걸 보니 땅에 쓰러진 모양이다. 상관없었다. 눈을 감으니 이렇게나 좋은걸. 셜록이 좀 조용히만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존! 존! 눈 떠! 안 돼, 안 돼. 누가 구급차 좀 불러요, 당장.” 바로 귀 옆에서 셜록의 놀란 고함소리가 들렸다. 완전히 당황한 모양이었다. 존은 웃었고, 이번엔 셜록도 그걸 봤다. 알아차리기도 힘든 미소가 입가에 잠깐 스쳐간 것뿐이지만, 그걸로도 기분이 싸늘해지며 온 몸에 오한을 느끼게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셜록은 저런 표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그날 밤 수영장에서 본 모리아티의 얼굴이었고,


순전한 승리의 미소였다.


그 후 존은 정신을 잃었다.






존은 차츰 의식을 차렸다. 두 눈꺼풀이 딱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무겁게 눈을 짓누르고 있는 탓에, 힘들게 한 쪽씩 열어젖힌 다음 두어 번 눈을 깜박였다. 병원이구나.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금방 알았다. 셜록과 알게 된 후로 부상 입을 일이 수차례 있었으니까.


다만 다른 점이라면, 침대 옆 의자에 셜록이 저런 얼굴을 하고 청승맞게 쭈그리고 앉아있던 적은 전에 없다는 거겠다.


“잘 잤어?” 존은 지금이 아침인지는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지만, 어쨌든 인사를 건넸다.


셜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존을 뚫어져라 바라볼 뿐.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존의 얼굴에다 주먹을 갈기고 싶다는 충동과 당장 껴안고 싶어 미치겠다는 충동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 같았다.


결국 포옹이 이겼다. 녀석은 무섭게 달려들어 존의 어깨를 꼭 끌어안았고, 존은 그런 셜록의 머리칼에 얼굴을 묻었다. 몸 위로 올라와 완전히 꽁꽁 싸매버린 자세 덕분에 팔을 올리기가 힘들었지만 어쨌든 존은 손을 들어 셜록의 옆구리를 토닥여줄 수 있었다.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그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셜록을 달랬다. “괜찮다니까. 난 괜찮아.”


마침내 셜록이 감정을 추스르고 물러나 앉았다. 그리고 사납게 윽박질렀다. “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존은 눈을 감았다. 올 것이 왔군. “무슨 생각으로 그런 멍청한 짓을 했어? 거의 나흘간 잠을 안 잤다고! 사흘 동안 먹지도 않고! 갑자기 뭣 때문에! 어떻게 감히, 내가 얼마나 겁났는지 알아?” 맨 마지막 말은 내뱉을 생각이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엎질러진 물이다.


존은 천천히 눈을 뜨고, 차분하게 셜록과 눈을 맞췄다. 그런 후 조용히 말했다. “이제 내가 무슨 기분이었는지 알겠지.”


셜록은 그 말을 곱씹으며 조금씩 그 뜻을 알아차렸다. “네가 이런 게, 날 걱정해서라고?”


존은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빤히 바라보며,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이제부턴,” 그는 눈을 똑바로 뜨고 셜록과 시선을 맞췄다. 자신감이 샘솟았지만 동시에 무던히도 작아진 느낌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할 거야. 네가 식사 안 하고 잠도 안 자면, 나도 똑같이 안 먹고 안 자. 그렇게 하거나, 아님 아예 그런 짓은 그만 둬. 굶는 것도 안 되고, 잠 안 자고 버티는 것도 더 이상 안 돼. 절대. 수사 중이라도 예외는 없어. 알겠어?”


완전히 충격받은 셜록의 얼굴을 보며 존은 계속 말을 이었다. “난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어. 더 이상 네가 몸을 혹사시키는 꼴은 못 봐. 못하겠어.”


셜록은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존은, 셜록의 두 눈 너머에서 전에 없었을 감정이 터져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존이 자신을 걱정한다는 사실, 그래서 스스로를 위험하게 만들면서까지 셜록이 몸을 제대로 보살필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사실까지.


평소라면, 차갑고 무표정하기만 했을 그의 얼굴에 점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는 빙산도 녹일 수 있을 것 같은 미소였다. “이 바보.”


셜록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목이 꽉 메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말 대신, 존의 옆으로 올라와 목에 얼굴을 묻고 꼭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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