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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20 : 용기 (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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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20 : 용기 (2/3)

topsecretum 기밀선녀 2016.09.13 14:30

길을 걷는 동안에도 둘은 서로 각자의 생각에 빠져 조용했다. 스스로의 생각 안에 맴돌 뿐이었는지 아무도 말은 없었다. 그렇게 대화 없이 십 분을 걷자 엿들을 사람이라곤 없을 벌판에 이르렀다. 결국 짐이 먼저 묻기로 했다. 한 가지, 확실히 알기 전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스팍.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내 결정의 동기는 지난밤에 설명이 되었다고 봐.” 그는 길 앞에 시선을 고정한 채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좀 더 정확하게 물어볼게. 오해하진 마, 네가 하는 얘기는 전부 알아들었어. 근데 모든 게 너무 갑작스러워서, 지금 나 무척 혼란스러워.”


스팍이 바로 대답하지 않아서 짐은 손을 내어 그의 손을 잡았다. 스팍은 조금 놀란 듯 잡힌 손을 내려다봤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네가 모를까봐 미리 얘기할게. 난 우리 둘 사이가 어떤 식으로든 틀어지는 게 싫어. 그래서 나도 너만큼 겁이 나.”


“벌칸인들은 절대―”


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헛소리는 꺼내지 않는 걸로 하자, 알겠지?”


스팍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인 후 시선을 낮췄다. “지난밤 말했던 대로야. 난 지구인들의 방식을 이해하기 힘들어. 논리적이지 못하고 비현실적이야. 아버지가 어머니를 향한 감정을 인정했음을 알고 난 뒤에도, 나는 그것을 쉬이 납득할 수가 없었어.”


짐은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 나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어색하고 거북했다. 싫다면야 도망쳐서 없던 일 하면 되는 거지만, 분명한 건 자신은 여기서 도망치지 않을 거란 사실이다.


“이전에도 지구인과 관계를 가진 적이 있지 않아? 우후라와?”


스팍은 그들이 걷고 있는 길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 의미로는, 그랬다고 생각해. 니요타 우후라는 외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일반적인 지구인 이상의 상당한 수준이지. 매력적이고 총명하며, 자신과의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 역시 갖췄어. 재능 많고 소질도 있어. 니요타는 파트너로서 내가 자신만큼, 애착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다는 사실을 수월히 받아들였어. 그걸로도 내가 그녀를 파트너로 선택하는 데 충분했지. 논리적이었으니까.”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네가 지구인의 방식으로 선택을 하면서 감정 대신 논리를 따랐다는 뜻이야?”


“감정을 전부 내친 건 아니야. 나는… 니요타를 좋아했어. 니요타의 자질이 뛰어나니 이성적 분석에 의하면 당연하다고 정당화할 수 있는 애정이었지. 그런 애정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그 이상의 감정은 절대 허용치 않았어. 그러면서도 막상 플릿에서 떠나면서 관계를 끝맺을 때가 되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 그녀와의 연애는 내가 가진 얄팍한 지식을 통해서 처음으로 내려본 인간적인 결정이었어. 당시에는 내 아버지가 어머니를 선택함에 있어서, 서로 차이가 많았더라도 만족스러운 혼인생활을 영위했기에 나도 그러한 선택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도 인간적인 결정이라기보다는 벌칸 쪽에 가깝지 않아? 가장 논리적인 선택을 하는 거니까.”


“벌칸의 선택은 단순한 논리성에서 그치지 않아. 그보다 더 복잡하지.”


그렇게 말한 스팍은 갑자기 손을 빼 등 뒤로 뒷짐을 졌다.


“스타플릿에서 은퇴한 후로 더욱 그랬고. 당시에 난 니요타에게서 비밀로 했던 사실이 있었어. 내가 떠나지 않고 스타플릿에 남아서 관계를 지속했더라면 언제고 드러났을 그 비밀이 그녀를 더욱 상처입혔겠지. 차라리 내가 떠나는 것보다 더.”


이해 못할 이야기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겹쳐보니 조금씩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비밀이라면…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겠지?”


“벌칸인들은 유아 때 또래와 성약을 맺어. 둘 사이의 유대는 서로의 육체가 성숙해졌을 때 완전해져. 그런데 나는 반만 벌칸이어서인지 남들 얘기만큼 그렇게 되지 않더군.”


짐작이 맞았다. “그렇지만 어찌됐건 성약은 맺은 거구나.”


스팍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트프링. 그녀는 엄밀히 말해서, 내가 아카데미에 왔을 당시에 이미 나의 아내였어.”


…이건 좀 충격이었다. 우후라가 열받았을 만도 했다. 그런데 스팍이 우후라와 헤어져 뉴 벌칸으로 갔다는 말은, 그렇다면…


“지금은?”


“아니야.”


커다란 의문의 퍼즐 조각이 하나씩 모이고 있었다. 왜 지난밤 스팍이 자신에게 오기로 결정했을까, 이건 그 커다란 의문의 한 조각에 불과했다. 다만, 스팍이 애초부터 답해주지 않았듯 왜 그가 뉴 벌칸을 떠났으며 스타플릿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는지에 대한 의문과는 일견 동떨어져 있었고, 그렇다면 짐에게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 얘기해 줄 수 있겠어?”


스팍은,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대답했다.


“짐. 얘기하고 싶더라도 쉽지가 않아. 이런 건 벌칸들끼리도 터놓지 않는 일이야. 그런 유형의 이야기를 외지인과 나눌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당신에게는 알 권리가 있다고 봐. 당신은 스스로를 내게 터놓고 잘 해주었는데도, 내가 드러낸 비밀은 거의 전무한 수준이나 다름없어. 그동안 난 당신에게 많은 것을 받기만 했어.”


“스팍, 네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내 얘기를 한 게 아니야.” 짐은 약간 성마르게, 여태껏 되풀이했던 말로 다시 그를 타일렀다. “더 알고 싶다 해서 널 협박하지 않아. 지금까지 안 것만으로도 괜찮아. 나한테 말할 수 없다거나 여의치 않다면 나도 이해할게.”


“그 반대야. 난 당신이 이해해 주길 원해. 당신이 이해할 기회를 얻는 유일한 길은 내가 직접 얘기하는 방법밖에 없겠지. 하지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어려우니…”


마침내, 스팍은 앞만 보던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 짐과 눈을 맞췄다.


“당신이 다른 편의 스팍에게 허용했듯이 내게도 기회를 준다면, 보여주는 걸로 대신하고 싶어.”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던 짐은, 그러다 곧 그의 말뜻을 깨닫고 예전의 기억과 기대감에 뒤섞여 아찔해지고 말았다.


“물론이지… 나도 알고 싶으니까.”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 스팍은 다시금 시선을 옆으로 흘렸다.


“…내가 보여줄 것은 사적인 기억이고, 마인드 멜드 자체도 상당히 내밀한 행위야. 집으로 돌아가 방해 없이 당신의 방에서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맞는 말이다. 여긴 사방이 뚫린 바깥이었다. 한창 자라고 있는 너른 녹빛 옥수수 밭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누가 오면 멀리서 보일 테니 피하면 그만이지만 어쨌든 스팍의 말이 옳았다. 여긴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할 만한 장소가 못 됐다. 그러다 문득, 아이오와 출신이 아니었다면 떠올리지 못했을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스팍을 콕 찔러 주의를 끈 다음 손가락으로 오른편을 가리켰다.


“따라와.”


짐이 옥수수 잎대를 해치고 밭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스팍은 황당했는지,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


“어디 가?”


“옥수수 밭에 숨는 건 아이오와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거거든.”


스팍은 머뭇거리다 따라나섰다. 덜 자란 옥수수들은 아직 가슴팍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바닥에 앉으면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 있으면 길에서 아무도 우릴 못 볼 거야. 날 믿어.”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이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수많은 역사가 만들어졌다는 말씀이야.”


“묻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히죽 웃는 짐이었다. “내 비밀을 다 아는 줄 알았지? 천만의 말씀.”


“그런 생각 추호도 한 적 없는데.”


갑자기 한껏 가벼워진 분위기였다. 둘은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안으로 향했다. 적어도, 같이 잠을 자고 서로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나쁜 신호는 아닐 거라 짐은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옥수수대를 헤치고 깊숙이 들어가는 동안 다시 조금 진지해졌다. 혹시 모르니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흙바닥이 조금 습했지만 그냥 털퍼덕 앉았다. 여기서 온 몸으로 뒹굴 것도 아니니까. 아마도. …아쉽게도. 이곳에서의 경험과 스팍의 맨살을 떠올렸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또 상상과 스팍을 겹쳐보고 있는 짐이었다.


흠, 목을 가다듬은 그는 천천히 그를 마주보고 앉는 스팍에게 다시금 집중했다.


“인간에게 정신 융합을 하는 것은 처음이야. 하지만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그런 거 같아. 자연스러운 습성 같은 거랄까. 손 닿으면 바로 확. 처음에 스팍 대사가 나한테 그랬을 때도 뭘 하려는 건지 몰라서 그냥 어리바리하게 있었거든.”


“나보다 셀 수 없이 많을 정도로 이걸 익혀왔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스팍은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다, 이내 손을 들어 짐의 관자놀이와 입가에 조심스레 손가락을 얹었다. 고개를 살짝 틀어 그의 엄지손가락에 입을 맞추고 싶다는 충동이 약간 들었지만 금세 색다른 감각에 집중을 빼앗겼다.


스팍 대사와의 그것과 달리 이번엔 융합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스팍 대사에게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던 반면, 지금 이 스팍은 주저하고 있었다. 둘 사이의 의식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무언가 느껴질락 말락 했다. 그런 후 닿은 손가락 끝이 살짝 위치를 틀었고, 드리워진 걱정 사이를 뚫고 신기한 감각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는 느껴지는 것에 집중하려 눈을 감았다. 스팍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겁을 먹었다. 그러면서도 걱정을 미뤄두고 논리적으로… 아니다. 논리 역시 저편으로 밀려가 있었다. 스팍이 보여주려 하는 것은, 농도 짙은 감정 그 자체였다…


지금부터 나의 기억을 보여줄게.




이 다음 부분은 여기서 이어서 읽으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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