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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Fighting Gravity - 17 : 막다른 길 (3/3) 본문

Star Trek_장편/중력을 거스르다

[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Fighting Gravity - 17 : 막다른 길 (3/3)

topsecretum 기밀선녀 2016.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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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막다른 길 (2/3)






“난 널 믿었잖아. 너도 날 조금은 신뢰해 주면 안 돼?”


진심이었다. 스팍이 어째서 벌칸 이주지에서 떠나 연락을 두절했는지, 왜 스타플릿으로 돌아오려 하지 않는지, 또는 스팍이 어쩌다가 공항 밖에 나앉게 되었는지까지의 상세한 이야기같은 것들을 전부 알고 싶었다. 그런데 망설이던 스팍이,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이전에…단언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나는 당신을 친구로 생각하고 있어, 짐.”


짐의 안에 온기가 차올랐다. 술이랑은 상관없는 열기였다. 비밀이랄 것은 아닐 지 몰라도, 직접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고마워라.”


그는 그러면서 무심코 손을 뻗어 스팍의 손등 위를 덮었다. 스팍이 손을 뒤집어, 천천히 짐의 손바닥을 감싸왔다.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할게. 내가 당신과 아이오와에 온 것도, 가기 전에 하루 더 머물기로 한 것도, 당신의 감정적 요구를 충족해주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어. 같이 있던 시간동안 즐거웠어… 곧 헤어져야 한다는 게 유감이야.”


그렇게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처럼,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짐이 보기엔 부끄러울 구석일랑 전연 없었다. 물론, 지금 그에겐 스팍과 꼭 쥐고 있는 손 외에 다른 게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기도 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낮아진 자제력에 기어코 이 말이 나오고 말았다.


“나랑 같이 엔터프라이즈로 돌아가자.”


스팍이 대답하지 않아서, 다시 목소리를 냈다.


“엔터프라이즈로 돌아와. 지금 당장 가자는 게 아니야. 내가 복귀할 때 함께 오기만 하면 돼. 그럼 계속 같이 지낼 수 있잖아.”


머리로는 스팍이 거절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벌써부터 속이 답답하게 탔다. 기다렸지만 끝내 스팍은 대답이 없었다.


“그러지 말고, 생각해 보라구. 스팍.”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빤히 들여다봤다. “네가 내 과학 장교가 돼야 한다는 건 온 세상이 아는 사실이야. 다른 길은 없어.”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건 아닐까. 스팍의 흔들림 없는 눈빛이, 자신이 그를 보는 눈빛과 닮아 있었다. 자신이야 키스하고 싶은 눈으로 스팍을 보고 있다는 게 확실하고, 뭣보다 스팍이 저런 눈빛을 하고 있는걸? 그렇다는 건…


스팍의 엄지손가락이 짐의 손목을 부드럽게 쓸고, 맞잡은 손을 꼭 감아왔다. 목소리가 조용했다.


“짐. 이제 그만 당신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아. 가서 쉬도록 해.”


“집어치워. 돌아가기 싫어.”


“당신은 알코올을 과하게 섭취해서 차분히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야.”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애초에 여기 ― 아이오와에 오는 것부터도 싫었어. 나같은 게, 영웅은 무슨 영웅이냐고. 어차피 조지 커크의 아들일 뿐인데. 여기 사람들은 다 내 아빠를 알아. 여기만 오면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패배자가 된 것 같아. 안 오면 엄마가 슬퍼할 테니까 어쩔 수 없었던 것 뿐이야. 엄만 형이 가고 나서 이제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 거기다 난 이미 엄마의 인생을 충분히 망가뜨려 놨다구, 난 엄마한테 미안한 짓만 했어…”


스팍이 잡은 손에 조금 힘을 더했다. “짐… 계속 이야기하고 싶다면 나도 기꺼이 들어주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쉬는 편이 좋다고 봐.”


스팍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무척 진이 빠졌다. 하지만 지치고 속이 끓고 우울한 만큼이나, 뭔가…안정된 기분도 들었다. 스팍과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안정이었고, 옳았다. 이 기분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도 여전히, 스팍에게 입을 맞추고 싶었다. 아니면 한 방 먹여준다든가. 이 정도로 취한 후에는 싸움과 섹스 두 가지 모두 좋은 선택지였고, 마침 여기 있는 유일한 존재는 스팍 뿐이었다. 그렇지만 스팍이 좋았고, 방금 스팍한테서 친구로 생각한다는 말도 들었다. 스팍을 때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싸움과 섹스 두 가지를 합쳐서 거친 섹스라면 두말할 것 없이 제일 좋았다. 스팍이 지금 멀쩡해 보여도, 전에 한 번 취한 걸 봤으니까, 다시 한 번 긴장을 풀게 만들 수 있다면…


스팍이 자세를 틀더니 미묘하게 몸을 떼면서 손에 힘을 풀었다. “당신 어머니의 집으로 가는 게 좋겠어. 안전한 환경으로.”


“안전?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 그래서 걱정이 돼. 현재 당신의 상태로는, 제지할 것이 없는 이런 상황에서 충동적인 행동을 할 지도 모르니까.”


“빌어먹을.”


짐은 스팍에게서 손을 빼고 일어나려 했다.


“이래서 내가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한다니까. 그때는 비참한 애새끼였고 ― 지금 훨씬 나은 삶을 사는데, 절벽에서 몸을 던지는 짓 따위 안 할 거라구, 스팍.”


스팍은 풀린 손을 무릎에 가만히 올려두었다.


“그런 의미로 얘기하지 않았어.”


머리는 일어났는데 몸이 안 따라줘서 몸을 펴려고 몇 번 바르작대다가, 포기한 짐은 뒤로 벌렁 누워버렸다.


“그래, 뭐… 알았어.” 조금 후에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네가 있으니 어차피 바보같은 짓 하게 둘 리도 없지만.”


“짐. 집으로 데려다 줄게. 허락해 주겠어?”


…그냥 누워있기에는 너무 듣기 좋은 말이었다. 짐은 눈을 감았다.


“거긴 집이 아니야.”


“어째서?”


“엄마가 사는 곳이지. 리버사이드. 아이오와.”


한쪽 눈을 빼꼼 여니 스팍이 위에서 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짐은 그것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집이란 건 편하고 좋아야 돼. 너도 같이 있어야 하고. 엔터프라이즈만이…” 스팍에게 기대 일어나며 크게 말했다. “내가 평생 집이라고 부를 곳은 엔터프라이즈 뿐이야.”


스팍이 옆에서 어깨를 단단히 잡아 흔들리지 않게 해 주었다. 짐을 데리고 발걸음을 옳기면서 그가 말했다.


“지구인들의 그런 개념은 흥미로워. ‘집’이라는 말이 거주하는 공간을 지칭하는 단어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또 사람이 거주한다고 해서 반드시 집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사전적 의미에다 감상적인 의미가 더해지니까?”


“내게도 연관이 되는 개념이기 때문이야. 내가 벌칸 행성에서 자라긴 했지만,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유년기를 보냈기에 떠나온 후로는 돌아갈 마음이 없었어.”


짐은 멈춰서 그를 쳐다봤다.


“…깜빡했어. 스팍 대사가 네 동창 무리가 멍청이들이었다고 그랬거든. 그정도였단 말야?”


질문을 무시한 스팍은 짐을 재촉해 걸었다.


“그럼에도, 벌칸 행성이 없어지는 걸 보았을 때에는 내가 응당 그러하리라 생각했던 것보다 더한 감정의 반향을 겪었어.”


이해할 것 같았다.


“…저번에 엄마가 나한테 그러더라. 집을 팔 생각이라고. 아니면 내게 양도해 주신대.”


“갖고 싶어?”


“몰라, 나도.”


얼마 안 남은 술병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그러면서 혼자 비틀거리자 스팍이 한 팔을 허리에 감아왔다. 좋은 감각이어서, 스팍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기댔다.


“…그냥 태워버리고 싶어.”


“이해해.”


스팍이 고개를 끄덕이자 맞닿은 몸에서 움직임이 전해져 왔다. 의외지만, 스팍이 정말로 공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단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나한텐 엔터프라이즈가 있어. 거기가 내 집이야. 하지만 아직 부족해. 네가 같이 가야 더 완벽해. 엄마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네가 있어서 더 나은 거라구.”


다시금, 스팍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팍이 바닥에 앉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앉아 있는 동안 술이 확 올라왔는지 더 이상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스팍이 그를 부축해 펜스를 지나서 차문을 열어주었다. 그런 다음에는 기억이 없었다. 다시 깨었을 땐 스팍이 그의 다리를 잡고 차 밖으로 꺼내려 하고 있었다. 짐은 괜찮다면서 스스로 걷겠다고 객기를 부렸다. 걸을 순 있었다. 몸이 휘청거렸을 뿐이지. 집 뒷문을 열면서 몸도 같이 기우뚱 들어가 문과 함께 벽에 부딪히다시피 했다. 스팍이 뭐라고 말을 걸었다. 아니면 짐 자신에 대한 말을 한 것 같기도 했다. 어느새 엄마도 나타나 스팍과 말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의 이런 모습을 수도 없이 봤으니 이제와 민망해봐야 소용 없었다. 그냥 내려놓기로 했다. 그렇잖아도 이미 이 자리에서 그대로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몸이 다시 움직였다. 방향감각이 사라진 채 누군가에 기대 어디론가 이동했다. 침대 위로 자리잡고 나서야 비로소 방에 들어왔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스팍은 그를 달랑 들어다 눕힌 거였다. 벌칸이 얼마나 힘이 센지 잊고 있었다… 왠지 멋졌다.


그러는 동안 엄마도 계속 옆에 있었다. 엄마가 스팍에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짐과 있으면서 상대해주는 게, 벌칸으로서 쉬운 일은 아닐 거야. 저 애는 논리를 밀어두고 이 세상에서 제일 예측 불가능한 아이니까.”


“예측 불가능하지요.” 스팍이 대답했다. “하지만 짐이 겉으로 논리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와 있었던 시간이 힘들지 않았습니다.”


대화는 계속됐다. 하지만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서, 짐은 몰려드는 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18화, 아쉽게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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