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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Fighting Gravity - 15 : 이해 (2/2) 본문

Star Trek_장편/중력을 거스르다

[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Fighting Gravity - 15 : 이해 (2/2)

topsecretum 기밀선녀 2016.05.08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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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빌리겠다고 엄마에게 말하러 가니, 재미있다는 듯한 반응이 돌아왔다. 엄마는 벌칸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고, 짐은 벌칸이 당구치는 걸 봤느냐고 받아쳤다. 당연히 엄마는 본 적이 없었다. 짐은, 스팍이 갈 날이 되기 전에 언제 한 번 다같이 당구를 치러 가봐야겠다고 새겨두었다.


그건 나중의 즐거움으로 미루고, 오늘의 목적지는 조선소 옆 술집이었다. 술집이 생긴 이래로 그는 죽 이곳의 단골이었다. 모든 것이 어떻게 보면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술을 마시다 말썽을 부려 쫓겨나곤 하던 한량이 함장이 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짐은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가속 페달을 밟고 순식간에 제한 속도를 넘어 달렸다. 긴장을 풀고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거나 그렇게 하고픈 충동을 느낀 지도 참 오래 됐다. 하지만 오랜만에 예전의 자신이 각성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지금 여기는 아카데미는 물론이고 거기서 알던 사람들과는 한참이나 떨어진 외딴 곳이었다.


물론, 조수석에서 걱정되는 눈으로 속도계를 보고 있는 벌칸만 빼고.


“자각하지 못하는 건가 싶어 하는 말인데, 제한속도인 25킬로미터를 넘어서고 있어.”


짐은 오히려 속도를 더 올려서 스팍을 곯려주고 싶었지만 — 자신이 마을의 문제아 짐 커크로 아예 돌아간 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 그만 뒀다.


“그렇지만 주변은 허허벌판이고 아무도 없잖아. 날 믿어. 누가 오면 저 멀리서도 보이니까. 물론 경찰도 포함해서. 경험에서 오는 얘기야.”


그러면서 스팍에게 씩 웃어보였다. 의외로 스팍은 잠깐 생각해 보는 듯 하더니, 알겠다고 고개만 끄덕였다. 이번에는 짐이 놀랄 차례였다.


“뭐야, 법을 안 지키네 어쩌네 잔소리 할 줄 알았는데?”


“이 지역에 대해서는 당신이 나보다 잘 아니까. 당신에게 우리 스스로를 위험에 내몰거나 벌금을 물려는 의도는 없다고 봐. 따라서 당신이 이에 따르는 위험을 이해하고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을 최소로 유지하고 있다 생각해야지.”


짐은 조금 놀라웠지만, 한 결 좋아진 기분으로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네가 옛날의 나를 몰랐다는 게 왠지 다행이야. 날 알았으면 그런 정도의 신용은 국물도 없었을 걸.”


“그럴 지도.”


어쨌든 짐은 좀 더 속도를 올리기로 했다. 이번엔 차를 어디다 받거나 떨어트릴 생각도 없었고, 빠르게 달리니 기분이 좋았다.


목적지에 다다르면서 도로가 조금 막히기 시작했다. 너른 농장 지대 한 가운데 자리한 자그만 시가지인지라 유입인구가 많았다. 다행히 그 날은 일요일 밤이라 별로 붐비지 않아서, 주차할 공간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짐은 차에서 내리면서 말했다.


“여기에 차를 몰고 오니까 기분이 이상하긴 해. 여기 자주 왔는데, 그 땐 바이크를 타고 돌아다녔어. …내 바이크가 그립기도 해.”


그는 정든 바이크를 떠올렸다.


“지금도 말짱하려나 모르겠네. 신병 모집하는 셔틀에 오르면서 조선소에 근무하는 어떤 남자한테 줘버렸거든.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었지.”


두 사람은 건물로 향했다. 스팍이 물었다.


“이동수단을 남에게 양도했다고?”


“응.”


“그렇다면, 내 생각에 당신은 돌아오지 않으려고 작정을 했던 거로군.”


“당연하지. 할 거면 아주 ‘올인’하자는 상황이었달까. 그 시절의 삶의 모토라 할 수 있지.”


짐이 열을 내자 스팍이 한 마디 붙였다.


“현재의 삶의 방식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군.”


짐은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내부의 음악과 소음이 문틈을 타고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그리운 기분이 물씬 차올랐다. 그는 스팍에게 어깨를 으쓱 했다.


“글쎄. 내 생각엔 그런 삶의 방식의 이점을 깨닫고 이용하는 쪽에 가까운 거지.”


문을 열고 들어간 짐은, 내부의 모습에 환히 웃고 말았다. 여기저기 달라진 곳이 좀 있었다. 새 간판이 달리고, 테이블 배열도 바뀌었다. 스피커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멋진 음악이 쾅쾅 흘러나왔다. 전부 새로워진 것 같은데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십 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는 익숙하게 곧장 바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바에서 대기하고 있는 여자 종업원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종업원은 그가 스타플릿에 들어갔을 때의 나이보다 더 어린 듯 했다. 그는 가볍게 인사한 후 빈 스툴에 앉아 옆 자리에 와서 앉으라고 스팍에게 손짓했다. 바 너머의 벽에 낯익은 간판을 보니, 바뀌지 않은 것도 있는 모양이었다.


“버드 클래식(Bud Classic) 한 병 주세요. 그리고, 어… 제 친구한테는 얼음물 한 잔만 주세요.”


예전에는 함께 술을 마시지도 않을 사람과는 놀아본 적이 없었으니, 이런 요청을 하는 게 좀 이상했다. 그렇지만 스팍은 벌칸이었다.


“저도 같은 걸로 주십시오.”


놀랍게도 스팍이 그렇게 주문을 정정했다. 종업원이 선반으로 가서 병을 두 개 집어 가져다주었다.


“진짜 마시게?”


짐이 물으니 스팍이 고개를 주억였다.


“얼음물은 본래 있는 메뉴도 아닌 듯 하고, 이런 낮은 도수의 알코올은 맛이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할 뿐더러 내 신체에도 영향을 주지 않아. 종업원을 곤란하게 할 순 없지.”


짐이 고개를 드니 여자 종업원이 그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다 마시고 나갈 때 값을 낼 생각이었는데 짜증이 살짝 나서 미리 크레디트 스틱을 눌렀다. 값이 치러지는 소리에 놀란 여자의 표정을 보고, 그제야 짐은 여자가 스팍을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쪽으로 고개를 틀고 있는 스팍의 뾰족한 귀끝이 잘 드러났을 것이다.


“벌칸인이거든요.”


짐의 말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 민망한 듯이 자리를 피했다. 스팍의 뾰족한 귀를 보고 저렇게 까무러치게 놀라는 것도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소 인근은 원래 외계인이 돌아다녀서 스팍보다 훨씬 수상해 보이는 외행성인도 많이 봤을 텐데… 다시 생각해 보니, 여자가 놀란 건 귀 때문이 아니라 스팍이 꽤나 잘 생겨서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편 짐은 분위기에 섞여들어, 술 한 잔 걸치러 나온 아이오와 토박이처럼 입구에서부터 재킷은 벗어젖히고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함장은 고사하고 장교로는 보이지 않았을 거다. 예전의 자신처럼, 그날 밤의 자신에 더 가까웠다. 그는 스툴 째로 몸을 스팍에게로 돌려 앉고, 병을 열었다.


“해서, 파이크와 만난 일 말인데. 아, 우후라도. 이곳에서 우후라를 만났어.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스팍은 조금 호기심이 돋는 기색을 보였다.


“그녀가 사교적인 사람임은 알았지만, 취향이 좀 더 세련되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뭐 그럴 지도 모르지만, 이 근방엔 그 정도로 ‘세련된’ 데는 없어. 적어도 여긴 깔끔하긴 하잖아. 아무튼 그래서, 우후라가 여기 와서 주문을 했어.”


그는 어깨 너머의 문제의 장소를 가리켰다.


“술을 아주 대단하게 시키더라고. 돌이켜 보면 아마 친구들 것까지 같이 주문하지 않았나 싶어. 물론 나중에 안 건데 우후라, 그 정도는 우습게 마시더라고.” 그는 슥 웃으면서 덧붙였다. “하지만 당시에 난 이미 몇 잔 거하게 한 상태라서 살짝 오락가락해졌거든. 이 여자 대단하다 했지. 너도 동의하겠지만, 우후라는 정말 예쁜 여자잖아.”


“그래, 그렇지.”


어떤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그 때가 55년도 여름이었는데… 그 때 우후라랑 사귀고 있던 건 아니지?”


“그 후로 1년은 더 서로 면식조차 없었어.”


“다행이네. 너랑 알기도 전에 네 여자친구한테 취해서 들이댄 거였으면 입장 곤란해졌을 뻔 했어.”


“우리가 그녀와 각자 별개로 알게 되었으면서도 동일하게 그녀의 뛰어남을 주목했다는 건 어찌 보면 독특한 경우로군.”


“헤, ‘뛰어나다’니 너무 점잖은 표현이야. 난 우후라가 굉장하다고 생각했거든. 사실이잖아. 술에 안 취했어도 그렇게 느꼈을 걸. 여튼 집적거리면서 말을 붙여봤는데, 우후라는 상대도 안 해줬어. 나한테 이름도 안 알려주더라구. 그리고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그 때 딱 컵케익이 나타난 거야.”


“컵케익?”


“베이커 중위를 얘기하는 거야. 네가 기억할지 모르겠어. 우리가 네로와 맞서러 갔을 때 중위도 엔터프라이즈에 있었어. 사실 나 그때까지만 해도 누군지 기억 못 하고 있었거든. 나랑 스카티가 엔터프라이즈에 몰래 들어왔을 때 컵케익이 잡아다 함교로 데려갔잖아? 나더러 ‘컵케익’이라 부르더라고. 그래서 속으로… 헉, 그놈이잖아! 이랬지.”


그를 바라보는 스팍의 눈빛이 점점 당혹스러워졌다.


“어… 내가 좀 횡설수설하지.”


짐은 미안하다며 어깨를 으쓱 했다. 맥주 한 병째고, 아직 술에 취하려면 한참 멀었는데도, 눈에 익은 환경에 돌아와 있으니 기분이 마구 고조되었다.


“어쨌든, 처음에 컵케익이 여기 오고 난 다음에 무슨 얘길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나. 아마 내가 우후라한테 선을 안 지키고 들이댔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말하자면 사실이지. 내가 제대로 기억나는 건, 얘길 하다 내가 베이커 중위를 ‘컵케익’이라 불렀고 그 다음에 주먹이 날아왔다는 거야. 나도 맞받아쳤어. 그랬더니 갑자기 생도들이 싸움판에 우르르 몰려와서… 몇 명이었는지도 모르겠네. 셋이었나 넷이었나, 그쯤 됐을 걸. 바로 그 때 파이크가 나타났지. 몇 년 뒤에야 알았는데, 파이크는 상위 신입생 그룹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더라고. 겸사겸사, 엔터프라이즈가 잘 지어지고 있는지 보러 왔던 거였어. 엔터프라이즈가 다 만들어지면 그 신입생들이 장차 승선할 기회가 생기는 거지.”


“파이크 함장의 지휘 아래서.” 스팍이 뒤를 붙여 말을 마무리 지었다. “생도 때 그런 오리엔테이션이 몇 번 열렸던 것이 기억나.”


“넌 가본 적 있어?”


“나는 의욕을 고무시키는 외부의 자극 없이도 내 재능을 최선으로 발휘할 수 있어. 그러니 다른 함선에 배정을 받더라도 동일한 방식으로 내 임무를 해나갔을 테지.”


“…그렇네.”


의심할 여지없는 거였다. 벌칸의 실용주의적 태도란. 하지만 그래도 스팍은 아마 처음부터 엔터프라이즈가 좋은 함선이 되리란 걸 알고 있었을 거다.


“여튼 그래서 파이크가 나타나서, 싸움을 중지시키고, 그러곤… 솔직히 내가 왜 다른 생도들이랑 함께 거기서 쫓겨나지 않았는지 모르겠어. 술 마시고 싸우다 거기서 쫓겨난 게 한두 번 일이 아니거든. 뭐 파이크가 있으니까 그랬던 거겠지.”


짐은 잠시 멈춰 술을 들이켰다.


“내가 얼굴에서 피를 어느 정도 닦아내서 정리가 되고 나니까 파이크가 날 저기 저 테이블에다 앉혔어. 그러더니 내가 누군지 알아봤다면서, 나더러 아카데미에 들어오라고 했지.”


짐은 손짓으로 자리를 가리키면서, 그 때를 생각하고 웃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기네 생도들이랑 치고받고 난리를 피운 사람한테, 똑같이 그 무리에 섞이라고 그러는 거야. 난 무슨 이런 미친 사람이 다 있나 했어.”


“그런데도 당신은 아카데미에 등록했고.”


“…그랬지.”


그 부분부터는 좀 더 사적인 이야기였다. 그 주제를 왜 드러낸 건지 스스로가 놀랐다. 애초에 당연히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인 이 장소에 스팍을 데려온 것부터가… 스팍에게 그의 과거 무엇 하나 얘기할 의무는 없었다. 이전까지의 삶 대부분은 논리적인 벌칸인이라면 얕잡아 볼만한 것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설명하고 싶었다. 자신은 스팍이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을 비밀 몇 가지를 알고 있기도 했고, 스팍 대사를 통해 알게 된 사항도 조금이나마 있었으니 이렇게라도 해야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한 번도 남에게 이런 얘길 해본 적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스팍이라면, 예전의 삶을 떨쳐낸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확신이 안 섰다.


그는 맥주를 바닥까지 해치우고 빈 병을 들어 종업원을 불렀다. 더 마실 테니 운전은 스팍에게 맡기면 됐다. 두 번째 병을 열었다.


“파이크는 미친 게 아니야 ― 통찰력이 있던 거지.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 뭐 파이크가 심리학 쪽의 대가라거나, 혹 아니면 그냥 감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고. 내가 리버사이드에서 썩을 인물이 아니라고 하더라. 나에게 필요한 게 있다고. 그게 뭔지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사실 파이크 말이 맞았어. …파이크가 나한테 그렇게 도전장을 던지지 않았으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어.”


짐은 쓰게 웃었다.


“그 당시의 난 내 앞에 도전장을 던지는 거라면 뭐든 했을 걸.”


“어떻게 도전이란 간단한 표현 하나로 인해, 인연이 없던 무언가를 하도록 고무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더군.”


“그 도전이라는 게 말이지. 한편으로는 이런 의미도 담겨 있어. 거절한다면, 겁쟁이라서 그렇다는 그런 뉘앙스? 여기 리버사이드에서는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어. 누가 어떤 미친 짓을 제안하든 그대로 했을 거야. 그게 나란 놈이었거든.”


그것도 많이 생략하고 건너뛴 이야기라고 설명할 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숨겨왔던 이야기가 드러나는 거야말로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 중 하나였다.


그는 겁쟁이가 되기 싫어 스타플릿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큰’ 이유는 아니다. 짐은 그런 이야기를 남들에게서 감추고 30년을 살아왔다. 딱 한 번, 예전에 본즈에게 조금 흘렸을 수도 있겠다. 술에 너무 취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밤들이 있었으니까. 갑자기 떠오른 술 생각에 취하고픈 생각이 간절해졌지만, 오늘은 이것만 마시기로 했다.


“스타플릿에 들어가는 게 두렵지는 않았어. 애초에 여기서 충분히 인생 낭비를 하고 있기도 했고. 나는 도전할 과제가 필요했고, 파이크가 그걸 제공한 거야. 감사하게 생각해.”


스팍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몫의 술을 기울였다. 짐이 과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입 밖으로 꺼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된 거야. 난 술에 취해서 엉뚱한 여자한테 치근거리다가, 경호대 연수를 받는 웬 생도를 열받게 하는 바람에 스타플릿에 들어가게 됐어. 음, 웬 생도라고 하지 말고 우등 생도라고 하자. 지금은 엄호가 필요할 때 항상 컵케익을 데리고 다니거든. 여튼 할 일이 없어 도전장을 받아들이게 됐고.”


짐은 빙그레 웃으면서 짧게 요약해주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우리 엄마가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알 것 같아.” 스팍은 미묘하게 말을 틀었다. “정확히는, 알 것 같다고 결론내릴 수 있을 뿐이지. 지금까지 열거해준 정보에 의해 당신이란 인물에 대한 제한적인 인지를 할 수 있을 따름이야. 내가 아는 현재의 당신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껏 들려준 이야기에는 불완전한 부분이 있는 듯 하군. 엄밀히 말하자면, 당신은 주요한 이야기 몇 가지를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얼버무리고 있다고 봐.”


“…뭐, 그렇긴 해.” 신통하게도 스팍이 그걸 어떻게 맞췄을까 알 수가 없었다. “정신 놓고 살아서 그 당시 어땠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


“십여 년간 당신의 성격은 변했을지 모르나, 근본적인 지성은 현저히 변화하지 않았을 테니. 지금의 당신이 바보가 아니듯 과거의 당신 역시 바보였을 수는 없어. 그런 척 행동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추억의 장소에 돌아와 들떴던 기분이 조금 우울하게 가라앉는 것 같았지만, 짐은 스팍의 간단하고 논리 꽉 찬 확신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


“더 나아가서, 파이크의 관할 하에 생도들이 밤늦게 술을 마실 수 있었을 리 없어. 다음 날 아침 신병선이 출발하기 전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그 말인 즉슨 당신이 파이크와 대화를 나누었을 때에 취해 있었다 하더라도, 아카데미로 향하는 셔틀을 타고 이륙했을 시점에는 이미 당신의 정신적, 감정적 상태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을 테지. 이로 미루어 본다면 당신에게는 실수로 내린 결정을 돌이킬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는 것이지.”


“이봐.” 짐은 짐짓 기분 상한 척 삿대질을 했다. “분명 말하는데 고 때엔 내가 취해서 이것저것 말도 안 되는 짓 많이 저질렀다고.”


“당신은 지적인 인물이니, 가능성을 살펴보고 선택이 옳았다는 결론까지 내렸을 거라 생각해.”


“사실은 정 반대야.” 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바로 핵심인 거 아니겠어.”


거기까지 들어갔다간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은 주제로 넘어가게 된다. 스팍은 어떻게인지 그가 비밀을 한 토막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 맞아. 말 안 한 다른 이유들도 있어. 그치만 거기까지 파고들려면 일단 술이 좀 들어가야 돼. 그리고, ‘얘기하고 싶지 않은’ 건 나만 갖고 있는 거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즐거웠던 분위기가 어느새 우중충하고 어색해져버렸다. 이런 건 별로였다.


“있잖아. 우리 어디 가볼까? 나는 나발 불면 되고, 너는, 음… 글쎄, 초코바 같은 거 물고, 차 타고 아무데나 가보자. 풀어헤치고 노는 거야.”


스팍은 머뭇거리면서 뜸을 들였다. 그럼 그렇지. 무슨 생각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당신이 섭취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생소하지만, 정황상 짐작이 가는군. 조언하자면, 그렇게 하는 건 무분별한 생각이야.”


“그래, 당연하지.” 그래서 하는 거 아니겠는가.


“당신 어머니께서도 별로 좋아하시지 않을 거야.”


“그러게.” 짐은 한숨을 지었다. “있지, 왠지 우리 엄만 내가 저 우주에서 함장으로 책임을 지고 있을 때보다 지금을 더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멍청한 짓 하고 돌아다닐 때보다 더 걱정을 해. 술 취해서 쌈박질하고, 별다른 이유도 없이 난리를 피우고 다닐 때보다… 그 당시엔 적어도 무슨 짓을 하건 언젠가 집에 들어올 거란 걸 알았으니까, 그런 거려나.”


“연방 기함의 함장에게 요해지는 잣대는 비교적 엄한 편이야. 어머니께서 당신이 직무 중에 비논리적인 일탈을 강행한다고 생각하실 이유가 없어.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지휘권을 박탈당하고도 남았겠지.”


“알아. 하지만 우주에서는, 논리적이고 고결하게 산다고 해서 안전함이 보장되지 않잖아. 우리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생각해 봐.”


이런, 말하다 보니 이야기가 거기까지 갔다. 하지만 괜히 복잡하게 더 얘기는 않기로 했다. 스팍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후에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짐은 술을 마시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와 같은 삶이 전혀 그립지 않았다. 바보 같은 때였고, 그렇게 보면 지금은 참 사람이 다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함장인 것이 좋았다. 책임을 지고, 그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게 좋았고… 짐 커크에게, 아버지가 아닌 자신에게 사람들이 기대를 걸어준다는 사실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긴장일랑 완전히 풀어헤치고 예전의 자신처럼 바보 같기 짝이 없는 짓을 해보고팠다. 그런 충동에 스팍이 억제제가 되어준달까. 물론, 스팍이 곁에 있는 게 싫다는 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있나. 이런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것이, 의도했던 것보다 어쩐지 더 울적했음에도 그랬다. 그렇다고 조선소 술집의 단골들 사이로 섞여 함께 밤을 재미있게 보낼 사람을 물색하러 갈 수도 없었다.


그런 쪽으로 생각을 뻗치다 보니 뭔가 퐁 떠오르는 게 있었다. 마침 스팍도 앞에 있고, 짐은 히죽 웃었다.


“그건 그렇고, 우후라와는 진도가 어디까지 나간 거야?”


스팍이 묻는 시선을 보내자 다시 물었다.


“혹시 너희 잤어?”


스팍의 눈썹이 움찔하면서 순간 이상한 눈빛이 스쳤다. 확실히 당황한 거였다. 대답하는 스팍의 어조는 멀쩡했지만서도.


“…당신이 상관할 문제는 아니라고 봐.”


“그렇긴 하지. 그냥 궁금해서.”


짐은 가벼운 말투로 대꾸했다.


“속옷 차림까지는 봤냐 이거야. 난 봤거든, 어쩌다가. 아카데미에 있었을 때 우후라의 룸메이트와 그렇고 그런 일을 하려다가 그만. 그래도 뭐…”


당황한 듯한 스팍의 미간에 불쾌한 기색이 실렸다. 이번엔 경직된 대답이 나왔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전혀 당신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야.”


“백 퍼센트 못 봤다, 그치?”


짐은 이때다 하고 놀렸다. 성적인 걸로 벌칸을 놀리다니. 바보 같아도 이렇게 바보 같은 일이 없을 수 없다. 당연히 스팍은 싹 무시하고 할 말을 했다.


“덧붙여, 우후라가 자신을 향한 현재 당신의 태도를 알게 되면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것 같군. 단순한 호기심에서 여성의 성생활을 캐묻는 것은 몹시 무례한 짓이야.”


“누가 우후라에 대해 묻는대? 난 네 성생활에 대해 묻는 거라구. 너네 둘 말야, 엄청 화끈한 커플이었거든. 아, 생각해보니까 네 속옷차림은 봤던 것 같네.”


스팍은 이제 당황과 불쾌함을 넘어서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얼굴을 했다.


“…이거야말로 정말 비논리적이기 짝이 없는 화재의 전환이로군.”


“그치?”


짐은 병을 들고 한 모금 더했다. 술병을 위로 기울였다가 돌아오니, 스팍이 불쾌한 기색은 사라지고 우스운 기색이 어린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왜?”


스팍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당신이 판단을 잘못 할 만큼 상당한 양의 알코올을 섭취한 것 같지는 않은 듯 해.”


“이걸로는 기별도 안 오지. 아쉽게도.”


“그렇다면 당신은 고의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거지.”


스팍이 말했다.


“무척 비논리적이게도, 저녁 내내 내게 스타플릿에서의 복무를 시작하기 전의 당신이 흔한 한량이었노라 확인시키려 했음을 고려하면, 당신은 설명을 하고 싶었다 추측할 수 있겠지. 그런 거라면, 지난 10년에 걸쳐 변화한 당신의 자세는 매우 뛰어나며 또 현저한 진보라는 것이 내 솔직한 의견이야. 당신이 과거에 다른 삶을 살았던 것을 내게 해명할 필요도, 이유도 없어.”


짐은 잠시 충격을 받았다. 스팍의 말처럼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아니,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어…난 저기, 그냥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고 그랬던 것 뿐이지만… 뭐, 고마워.”


“나는 벌칸이기 때문에 ‘가벼운’ 분위기를 필요로 하지 않아. 반면 당신은 다소 산만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현재 환경에 압도되어 있어. 이제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서, 달라진 지금의 당신에게 어울리는 활동을 하는 게 어떨까 싶어. 수년전의 제임스 커크라는 사람은 사라지고 현재만 있을 뿐이니까.”


천천히, 짐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있지, 네 말이 맞아. 그럼 그렇게 하자. 이거 다 마시고 나서. 아, 그리고 너도.”


스팍은 컵을 반만 비운 상태였지만 고개를 저었다. “수분 섭취는 충분히 했어.”


어쩌다가 저런 식으로 말을 하는 남자와 친구가 됐을까? 스팍의 말대로라면 맥주가 아니라 물이었다. 뭐, 싫은 건 아니지만. 한 입에 남은 술을 털어 넣은 후 짐은 서빙을 한 종업원에게 후한 팁을 올려 값을 치렀다.


그는 스툴에서 일어나면서 물었다. “내 차 운전할 수 있겠어? 취한 건 아닌데 그래도 안전이 우선이니까…”


“미래에서 만들어진 전혀 낯선 구조의 우주선을 조종할 수 있다면야 지구의 일반적인 차량 역시 수월하게 몰 수 있으리라 생각해.”


“하긴, 저건 복잡한 기계는 아니니까.”


“하지만 처음이니 제한 속도를 준수할 생각이야.”


“괜찮아. 그 정도는 참을 수 있거든.”


짐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치고, 같이 주차장으로 향했다.


집으로 곧장 돌아가지는 않았다. 리버사이드 중심가에서 멀리 벗어나 너른 옥수수밭 사이를 가로지르던 중, 스팍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 스팍이 뭔가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짐은 조금 웃었다.


“문제는. 오히려 그 반대야.”


스팍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떠올랐을 뿐이다.


“지구에서는 대도시 위주로만 돌아다녔다고 했지?”


스팍이 갓길에 차를 주차했다. 이 길로 빠지는 곳은 전부 농장뿐이라, 집도 몇 채 없어서 다른 차가 보일 리 만무했다.


“이런 시골에는 와본 적 없는 거야?”


문을 열고 나오면서 스팍은 그렇다고 했다.


“뭐, 내가 처음으로 우주에 나갔을 때 본 것만큼 장관은 아닐 지도 모르지만.”


짐은 차 앞으로 가서 스팍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그러는 사이 헤드라이트가 자동으로 꺼졌다.


“그래도 뭐랄까, 여전히 멋진 광경이야. 너도 보면 조금은 놀라울 걸.”


위를 가리키는 그의 손을 따라간 스팍은,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았다.


“광경이라 함은 밤하늘을 얘기하는 건가?”


별로 감흥 받은 기색은 아니었다. 뭐, 어차피 그러리라 바라지도 않았다.


“응. 도시에서보다 훨씬 별이 많이 보여. 여기도 대기오염이 조금 있긴 하지만.”


“그래, 그것이 논리적인 추측이겠지.”


반응 같은 건 아예 기대도 말았어야 했던 건가 보다. 스팍이 여기에 오는 과정에서만 해도, 몇 십 광년의 우주를 우주선 창문 너머로 모두 보았을 것이다. 게다가 스팍은 벌칸이라, 아름다운 광경에 감동을 받는다거나 하는 인물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래도 조금은 실망이 들었다


짐은 두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뭐, 나는 마음에 들어. 늘 그랬어. 여기 사는 건 내 성격에는 좀 지루했지만, 그래도 하늘은 흥미로웠어.”


“그렇군.”


별 반응이 없어, 차로 돌아가자고 말할까 싶던 참에 스팍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커다란 도시에서만 거주했던지라 지구에서도 육안으로 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있는지 여태껏 몰랐어.”


짐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스팍을 쳐다보곤, 슬그머니 웃음지었다. 조금 나아진 반응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우주에서 직접 보는 것만큼 멋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썩 나쁘지 않지?”


“그래…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 드는군.” 스팍이 대답했다. “당신의 종족이 옛부터 별을 낭만스럽게 묘사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퍽 묘하다고 생각했었어. 별이란 것이 먼 우주에 있는 천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전이라고는 하나, 밤하늘에 희미하게 빛나는 빛의 점들이 그런 수준의 매혹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은 이상하게 보였지.”


확실히 나은 반응이다. 짐 역시 본네트에 기대 다시 별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이제 이해할 것 같아?”


“지구인들은 많은 것에 매력을 느끼곤 하지.” 스팍이 말했다. “매력적으로 광이 나거나 반짝이는 물건들은 그 쓰임에 무관하게 대게 당신의 종족 사이에서 값진 대우를 받았어. 인공적인 빛과 산업 오염 물질이 만들어지기 전 시대의 이 행성의 하늘은, 지금의 풍경과 매우 닮았을 거라 생각해. 너르게 펼쳐진 밤하늘에 반짝이는 빛은 대기의 상태에 따라 약간씩 파동하고, 그러면 마치 지구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보석과 같이 반짝이겠지.”


짐은 웃었다. “밤하늘을 수놓은 다이아몬드처럼?”


스팍이 그를 보고 대답했다. “그런 가사를 들어본 적 있어. 예전엔, 감상적인 지구의 노랫말이 으레 그러듯 그것 역시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이제 보니 그 생각이 틀린 것 같아?”


“이 경우에는, 어쩌면.”


뒤로 손을 모으고 차렷 자세로 별을 감상하는 스팍을 보고 있자니, 또 놀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넌 벌칸인이니까, 별을 보고 새삼 감상적인 기분이 된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잖아.”


스팍은 시선을 하늘에 고정한 채 살짝 고개만 저었다. “단지 이 발견이 흥미로웠을 따름이야. 그리고 어느 정도 혼란스럽기도 해. 이 사분면의 성좌도(Star Charts)에 대한 지식이 있으니 지구 표면에서 관측할 수 있는 주요 항성과 별자리 대부분이 식별 가능하지만, 두드러지지 않은 별들은 다소 모습을 확인하기가 어려워.”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벌칸 행성의 태양이었던 별은 보이는 듯 하군.”


분명 어려웠을 거다. 벌칸의 별을 보기 가장 최적의 위도에 있었던 날에는 막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시각 무렵에 스팍이 설탕에 취해 버렸더랬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짐은 스팍이 얼마나 자주 그 별을 봤을까 궁금해졌고, 그러다 보니 스팍을 놀리고픈 마음이 단번에 쑥 수그러들었다. 짐 역시 벌칸의 태양이 있는 자리를 알아서 고개를 들어 찾아보기로 했다. …말을 꺼낸 쪽은 스팍이니, 어쩌면 이제 이런 얘기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벌칸의 밤하늘은 어땠어? 이거랑 비슷해? 아니면 완전히 다를까?”


“다른 태양계이니 물론 성좌의 배치가 다른지. 우리 조상들은 각기 다른 성좌에 저마다의 이름을 붙였어. 우리의 태양은 수명이 오래된 만큼 지구의 그것만큼 빛나지 않고, 벌칸 행성의 대기 역시 얕아. 낮에는 특정한 행성 몇 가지를 볼 수 있지만, 벌칸의 대기는 본래 모래 섞인 바람으로 흐릿해서 밤에조차도 제대로 된 별을 보는 경우는 드물어. 유난히 청명한 날을 제외하고는, 지구의 대도시에서 보는 밤하늘과 비견할 수 있겠군. 벌칸의 사막 한가운데서 바람이 잦아들었을 때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이것과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을 거야.”


“으음.”


대답한 후에 가만히 저 위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난데없이 웃음이 나왔다.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 말이지. 더 엔터프라이즈로 돌아가고 싶어져.”


“음?” 스팍이 고개를 내려 그를 봤다.


“그곳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별이 보여. 여기서 보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돼. 모두 몇 개인지, 어떤 것들인지 확인해 볼 엄두도 안 날 정도로. 엔터프라이즈를 끌고 아무도 가본 적 없는 별에 갈 때마다 대원들이 새로운 걸 찾아내. 별로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중력장 때문에 전자파 파동이 이상하다거나, 분자 구성만 다르지 지구의 잡초와 똑같이 생긴 식물에 불과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새로운 건 새로운 거야. 우주는 넓어. 어디를 가든 항상 새로운 게 나타나지. … 그리고 떠올려 보면, 한참도 더 옛날에 난 리버사이드에서 볼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찾아내고 다녔었어.”


짐은 차의 후드에 손을 받치고 몸을 기댔다.


“내 내면으로는, 그 이상의 것을 바란다는 걸 늘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파이크 제독은 술집에서 당신과 마주쳤을 때 그것을 알아본 거겠지.”


“그래.”


너무 명확하게 보이는 사실이었던 걸까. 단지 짐 스스로가 잘 모르고 있었을 뿐.


스팍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몰라 초조했다. 애초에 말을 더 할 지 아닐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침묵이 슬슬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스팍이 뭔가 더 말을 했어야 옳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스팍이 무방비한 침묵을 불쑥 가르고 들어왔다.


“당신이 숨기고 있는 이야기가 있는 듯 하다고 종전에 얘기했었지.”


“그래. 네 말이 맞다고 내가 그랬고.”


“그 때 마저 못 다한 말이 있어.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고, 사실 나 역시 여전히…”


스팍은 거기까지 말하다 뒤를 흐렸다. 짐은 눈을 내려 그를 봤다. 스팍이 거의 모든 상황에 높낮이 없는 무미건조한 말투를 쓰는 인물이 아니었더라면, 지금 스팍의 목소리는 굉장히 어색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당신이 제안한 적이 있었지. 내가 말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기꺼이 듣겠다고.”


스팍은 짐과 눈을 마주치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벌칸은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지 않아. 지구인의 방식에 가깝겠지만, 당신에게 같은 제안을 하려고 해. 당연하게도, 그걸 받아들이는 데에는 나보다 당신이 더 수월할 것 같군.”


깜짝 놀란 짐의 얼굴에 이내 서서히 웃음이 퍼졌다. 뭐, 스팍이라면 그게 ‘공평’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거다. 아니면 그저 이야기가 궁금했다거나 뭐 그런 시시껄렁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물론 스팍이 진심인 거라고 믿고 있지만—적어도 스팍은 친구‘처럼’ 행동하고 있긴 했다. 좋은 의미일 거라 여기기로 했다.


일단은 “고마워.”라고 말하면 된 것 같았다. 너무 많이 넘겨짚지 않기로 하자. 스팍이 친구답게 구는 것도. 스팍의 제안을 냉큼 받아들이고 싶은 자신의 마음도.


“그치만 말이지. 전에도 얘기했지만. 술 몇 잔 들어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들도 있어. 아니, 술 몇 잔 가지고는 택도 없겠다. 더 마셔야 돼.”


“당신이 원한다면.”


진심인 건가? 짐은 큭큭 웃었다. “됐어. 내가 취해서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데. 너한테 그런 강요 안 해.”


“내가 비슷한 상태에 처해 있을 때 당신이 날 돌봐 줬지. 입장이 바뀌었는데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건 불공평한 일이야.”


진심이라지만 하여간 혼자 심각했다. 짐은 고개를 저어버렸다. 불공평하다니. 불공평할 리가 없다. 왜냐면 스팍은 취해 있었을 때 무진장 귀여웠으니까. 반대로 자신은… 그렇지 않다. 스팍의 앞에서 과하게 바보스런 짓은 하지도 못 할 거다. 왜냐면 저 녀석은 스팍이고, 또… 여튼, 무척 끌리는 일이긴 하지만 왜 그러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너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다시 한 번 고맙다고 했다. “글쎄, 언젠가는 그렇게 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오늘 밤은 그냥 집에 가자.”


스팍은 고개를 주억였고, 그 다음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보니 쌀쌀해졌다. 그가 쌀쌀함이 느껴진다면 스팍은 이미 많이 추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이제 그만 차에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내 개인적인 사족이지만.” 시동을 켜면서 스팍이 한 마디 했다. “이전의 미숙하고 철없는 당신의 페르소나를 개략적으로 본 결과, 난 장성한 지금의 당신을 훨씬 선호한다고 말하겠어.”


조수석에 앉은 짐은 스팍을 향해 빙그레 웃어주었다.


“잘 됐네. 나도 그래.”






16: 눈길 →



역자의 말


퇴고 따윈 없다. 

앞으로도 쭉.

이 아니라 원래 요 파트가 좀 이야기가 중구난방 합니다.

짐은 머리가 복잡하죠.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사이인 엄마의 집에 와 있는 데다, 옆에는 신경쓰이는 사람이 있어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말수도 적은 남자.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대꾸 올려붙이는 스팍도 좋지만요. 이렇게 수줍수줍한데다 우수에 젖어(?) 별도 보고 늦은 밤 데이트도 하는 드라마 스팍 좋습니다. 좋고요.


띄엄띄엄 업데이트하느라 오랜만인데 고마워요. 계속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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