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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Fighting Gravity - 15 : 이해 (1/2) 본문

Star Trek_장편/중력을 거스르다

[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Fighting Gravity - 15 : 이해 (1/2)

topsecretum 기밀선녀 2016.04.2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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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벌칸은 느끼지 않는다 (2/2)






예상했던 대로 엄마가 왕복선이 정착하는 곳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게이트 밖에서 웃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손을 흔들고 있지 않는 게 다행이라 해야 할까. 짐은 스팍을 살짝 건드려서 엄마가 있는 쪽을 가리키고는, 그쪽으로 향했다.


역시, 엄마답게 크게 환영의 포옹을 해주었다.


“잘 돌아왔어.”


엄마는 잠시 꼭 안아주었다가, 민망해지려 할 때쯤 놓아주었다. 짐은 엄마에게 스팍과 인사를 시켜줘야 할 것 같아 입을 열었는데, 그 전에 엄마가 물러나서 벌칸식의 손동작을 해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Dif-tor heh smusma,[각주:1] 스팍.”


짐 만큼이나 스팍도 놀란 듯, 한쪽 눈썹을 올리더니 똑같이 손인사를 보냈다.


Dif-tor heh smusma, 커크 부인. 이곳에서 벌칸의 관습은 물론이고 언어를 마주할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어, 그러게.” 짐 역시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어떻게 아세요?”


무슨 말을 했던 건지는 몰랐지만 스팍의 반응을 보니 맞는 말을 한 것 같긴 했다. 엄마가 더 환하게 웃었다.


“나도 한때 스타플릿 장교였잖니. 네로의 침략으로 우리 두 종족간의 평화로운 관계가 와해되기 전까지만 해도 내 주요 분야는 그 쪽이었어.”


그랬다. 과거 연방과 로뮬란 제국 사이에 사소한 접전이 있긴 했으나, 실제로 함선간의 충돌로 번지기 전에 중립지가 만들어졌다. 네로가 나타나기 전에는 누구도 실제로 로뮬란을 본 적이 없었다. 기록에 따르면 벌칸과 지구 외교는 다소 까다로운 문제였다. 그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평탄했던 양측 외교는 켈빈 호 사건 이후 틀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가 자랄 때만 해도 긴장이 조금 악화되었다는 기억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스타플릿에서의 경력은 그 전부터였다.


“난 과학 부서에서 문화인류학를 연구했었어. 짐이 태어난 후엔, 로뮬란과 벌칸이 외향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별개의 종족이라는 확실한 진실을 입증할 증거를 찾고 알리는 일이 내 일의 일부였지. 사실 벌칸을 한 번이라도 만나봤다면 벌칸인에 대해 두려워 할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엄마는 조금 분한 듯 덧붙였다. “하지만 스타플릿 바깥의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


“제가 그런 인식이 변하지 않았다는 산 증인이 되겠군요.”


스팍이 대답했다. 스팍은 그런 차별 중에서도 어쩌면 가장 지독한 경우를 당했다는 게 문제였다. 돌이켜보면, 그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그다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울 일도 아니지… 여하튼, 그게 전부니? 들고 온 건 그게 다야?”


“네, 우리 둘 다 가볍게 하고 왔어요. 이게 다예요… 제가 먼저 보낸 짐은 도착 했어요?”


“응… 그래, 왔지.”


엄마가 갑자기 서먹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다. 이상함을 느끼기도 전에 엄마는 고개를 돌려 주차장으로 향했다.


“가자, 여기 종일 서있을 순 없잖니. 집에 가야지, 저녁때도 다 됐고…”


그간 여행한 얘기, 본즈네에 간 얘기를 간략하게 나누다 주차장에 다다르자 엄마가 가져온 차량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었다.


“와우. 언제 이런 걸 사셨대?”


거의 셔틀크래프트만한 크기의 커다랗고 요란한 색깔을 칠한 자동차가 눈 앞에 나타났다. 엄마가 운전석 쪽으로 가서 차 잠금을 열었다.


“아, 이건 샘 거야. 그것도 예전 일이지만. 아들이 셋이나 되니 이런 게 필요했지만, 외행성에 이사 가면서 이런 것까지 가져갈 이유는 없으니까.”


“맞아요.” 짐은 스팍에게 고개를 돌렸다. “앞에 앉을래?”


“뒷좌석으로도 괜찮아.”


스팍이 대답했다. 그가 뒷문으로 들어가 앉는 걸 보고 짐도 따라 들어갔다. 차체가 커다라니 좌석도 넉넉했다.


“샘은 당신의 형제야?” 스팍이 물었다.


“응. 내 형. 지금은 결혼해서 애가 셋이야. 최근에 데네바로 갔어.”


짐은 고개를 저어버렸다. 샘은 어렸을 때 짐보다 더한 사고뭉치였다. 그가 그리 빠르게 정착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짐은 문득 득 궁금증에 스팍에게 물었다.


“네게 형제나 누이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맞게 봤나?”


스팍이 그렇다고 했다. “내 존재부터가 이례적인 일이었으니까.”


“그래?” 엄마가 시동을 켜면서 뒤를 넘어다봤다.


“제 어머니는 인간입니다.”


스팍의 대답에 엄마는 조금 놀란 표정을 했다.


“우리 두 종족이 서로 유전적으로 어우러질 수 있는지는 몰랐는걸. 피의 구성이 다를 텐데…”


“가능하니 제가 만들어졌겠죠. 보조가 없이는 어렵다는 모양이지만 말입니다. 제 출생 이전의 선례를 하나 들은 적 있는데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유아기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엄마는 차를 끌고 주차장에서 벗어났다. “그렇다면 너와 너희 부모님께는 참 행운이구나.”


“그렇겠지요.”


스팍의 말은 늘 그렇듯 무미건조했지만, 짐은 스팍에게 불편한 주제라는 것을 눈치 채고 화재를 돌렸다.


“근데, 엄마… 예전엔 플러리였는데 이젠 이런 괴물을 몰다니 취향이 많이 변하셨네요?”


그의 십대 시절부터 엄마가 타고 다니던 이인승의 작은 자동차가 마중 나올 거라고 예상했었다. 엄마는 집으로 향하는 길을 타면서 대답했다.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 이제 탈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팔아버리려고 했거든. 샘이야 태울 사람이 많지만 난 뒷좌석이 필요 없잖니. 근데 생각해보니까 오랫동안 집 관리를 못 해서 이번 기회에 날 잡고 손을 보려고. 그러려면 옮길 짐이 많은데 이 차가 더 쓸만하더라고. 좌석이 눕혀지니 플러리보다 공간도 많고.”


“그렇겠죠. 여튼 잘 된 일이에요. 엄마가 플러리를 가져왔으면 자리가 없어서 스팍을 차 위에다 묶어놓고 돌아와야 했을지도 모르죠.”


그는 농담과 함께 스팍을 향해 빙그레 웃어보였다. 스팍은 그게 농담이라는 것도 모를 테였으니까.


적어도 엄마는 작게 웃어주었다. “그럼 큰일이지. 그건 그렇고, 여기 있는 동안 돌아다니려면 차가 필요할 거야. 플러리를 빌려줄게. 둘이 써.”


“…진짜요?”


놀라운걸, 엄마는 지금껏 플러리를 빌려준 적이 없었다. 엄마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엄마의 말투는 완전히 농담만이 아니라, 말 속에 뼈가 있었다.


“이젠 너도 운전을 어떻게 하는 지 충분히 깨쳤을 거라고 보거든.”


이런 말을 들어도 쌌다. 진담이 섞인 말이었겠지만, 짐은 농담으로 받아들인 척 했다.


“엄마, 잘 모르시나보네. 엔터프라이즈에서도 운전은 나 대신 헌신적인 조타수들이 알아서 해 준다구요. …그래도 고마워요. 잘 쓸게요.”


“아무렴.”


마지막 대답은 진지하게 하니, 엄마가 백미러 너머로 웃었다. 짐이 시선을 틀어 스팍을 슬쩍 보니, 스팍은 옆에서 뭐라고 하건 재미있는 점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알더라도 무시하는 걸 수도 있겠다. 그는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에 더 관심이 있었다.


고향집은 정거장에서 한참 떨어진 허허벌판에 있었다. 그야말로 구석졌달 수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가는 길에 차가 별로 막히지 않아 차를 타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금세 집 앞마당에 도착했다. 엄마는 작은 이인용 자동차 옆에 차를 세웠다. 스팍은 관심을 갖고 주변의 풍경을 관찰했다. 마당, 옥수수밭, 낡은 나무 울타리, 끝없이 펼쳐진 평탄한 풀밭…


“조용하군요.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겠어요. 제가 방문해보았던 다른 지구인들의 거주지와는 전혀 다릅니다.”


짐이 먼저 차문을 열고 자리를 텄다. 차에서 내리면서 엄마도 동의했다.


“당연히 그랬을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도심지로 나가서 살려고 해. 온갖 편의시설이 가까이 있어 편하니까. 하지만 스타플릿에서 일하다 보면 매일을 다른 사람들과 숙소에 가까이 붙어서 지내니, 번잡할 만도 하지… 짐의 아빠랑 나도 임무 끝날 때마다 조용하게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했어. 아무런 방해 없이 우리 가족끼리만 있을 수 있는 이런 집 말이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여기서 자라던 어린 짐은 싫었었지만, 이제는 수긍할 수 있었다. 엄마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스팍에게 말했다.


“여튼, 여기서 조금만 나가면 재미있는 데 많아. 얼마 안 걸려. 나중에 시내로 나가보자. 플릿에 들어가기 전에 어디서 뭘 하며 지냈는지 보여줄게. 오, 그리고 내가 파이크와 만난 곳도 보여줘야지. 우후라와도 그 때 처음 봤어.”


그러자 스팍이 놀라움과 경계가 섞인 이상한 표정을 했다.


“우후라 대위는 아이오와에서 당신을 만났다는 얘기를 한 번도 해 준 적이 없었는데.”


“놀랍지도 않지. 그 때 그닥 첫인상이 좋진 않았을 거거든.”


짐은 웃었다. 스팍은 잠시 묘한 얼굴로 그를 보다가 도로 고개를 돌려 부드러운 자연의 소리로 가득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런 환경에서 질릴 때까지 살아온 짐이었지만, 이번엔 곁에서 같이 자연을 즐기기로 했다. 5년을 대부분의 시간을 함선 내에서 보내고, 그 뒤로도 우주기지와 우주정거장을 오가느라 분주했다 보니, 이렇게 한적한 시골로 와서 저 멀리의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고, 단단한 땅을 밟고 긴장을 풀 수 있게 되니 좋긴 했다.


…방금 건 본즈가 할 법한 대사였다. 짐은 기지개를 편 후 차 안으로 들어가 가방을 꺼내왔다.


“엄마, 저녁은요?”


엄마는 안에 들어가면서 웃었다.  “언제쯤에나 물어보려나 했다. 준비 다 해 놨어, 몇 가지 데우기만 하면 돼…”


스팍은 배낭을 챙길 생각도 않고 여전히 풍경에 몰두해 있었다. 짐이 물었다.


“아이오와가 마음에 드나봐?”


“이곳의 풍경은 매우 흥미로워.”


“헤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걸 지루하게 보는데.”


짐은 그러면서 스팍의 배낭을 대신 집어들었다.


“그래서 다른 데로 가려면 차 타고 멀리 나가야 돼. 여긴 크기만 엄청 크고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으니까. 뭐가 보이려면 한참은 가야 될 걸.”


“그 반대야, 비어있지 않아. 언덕과 언덕이 이어져 대지가 펼쳐지고, 그 위에 수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분포해 있어. 일부는 경작되는 작물이고 나머지는 자연히 자라나는 식물들이야.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고, 그 외에도 다른 동물들 역시 보금자리를 틀고 숨어 있을 거라 생각해.”


“맞아. 딱히 특별한 것들도 아니야. 볼 건 별로 없어. 토끼, 메뚜기, 사슴 뭐 이런 거…밖에 없어. 가끔 코요테도 돌아다니고.”


“벌칸 행성은 이보다 훨씬 더 공허했어. 모래와 암석만이 끝없이 펼쳐진 불모의 사막이었지.”


“…그렇긴 하지.”


그렇게 비교하니까 아이오와가 대단히 흥미로운 곳처럼 보였다.


“그런 곳에서조차, 생명은 존재했어. 단지 메마른 표면에 가려져 있었을 뿐… 드물게 오는 비가 적시고 지나간 대지에는 꽃과 풀이 자라나. 태양을 피해 굴을 파고 숨어 있던 생명체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우리가 볼 수 없다 하더라도 늘 생명은 존재하고 있는 법이야.”


스팍은 무언가 더 말할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짐작이 갔다. 그래서 가만히 거기 서서 좀 더, 저 멀리의 대지를 바라보기로 했다. 풀과 뒤섞여 자라는 옥수수들이 산들바람에 흔들렸다. 잠시 그러고 있으니 두 사람이 왜 들어오지 않는지 엄마가 보러 나왔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 저녁식사라, 옛날 생각이 났다. 엄마는 임무에 갔다 돌아올 때면, 우주에 있는 동안 얼마나 아이들을 보고 싶었는지 증명하기라도 하듯 신선한 재료를 손질하고 오븐까지 동원해서 정성들여 식탁을 차렸다. 아마 그 때와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물론 아이들이 짐과 형에서 짐과 스팍으로 바뀌긴 했지만. 첫 대면에서 충분히 증명했듯 엄마는 벌칸을 잘 알았으니 식탁에 육류는 없었고, 간소하게 옥수수 빵과 샐러드, 되직한 콩 스프가 차려져 나왔다. 엄마는 작은 꼬챙이[각주:2]까지 준비해서 내왔다. 웬건가 싶었는데 스팍이 한쪽 눈썹을 들고 감사를 표하더니, 꼬챙이 하나를 들고 한 입 크기로 잘린 옥수수빵을 앞접시에 더는 데 사용했다. 입으로 가져갈 때도 그걸 썼다.


의아한 표정이 드러났는지, 엄마가 그를 보고 조금 웃었다.


“몰랐니? 벌칸인들은 음식을 손으로 만지지 않아.”


의아함의 대상은 스팍에게로 옮겨갔다. 분명 전에는 스팍이 음식을 손으로 집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묻기도 전에 스팍이 대답을 해줬다.


“지구에 온 후로 인간들의 방식에 익숙해져서 이젠 괜찮아. 물론 내가 가장 편한 방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


“흠. 기억해둬야겠는걸.”


덕분에 나머지 식사를 마저 하는 동안, 팝콘을 손으로 집는 것 외의 방식으로 먹는 수가 있을까 궁리하면서 보내게 됐다. 숟가락으로 떠먹는다면 그럴듯하긴 한데 웃길 것 같았다. 스팍이 꼬챙이를 이용해 식사를 하는 모습은 무척 기품있어 보였다. 이국적이라 해야 할까. 그렇지만 팝콘을 꼬챙이에 끼워먹으려 했다간 버리는 것만 더 많을 것 같았다. 젓가락이라면 또 모를까…


“그렇다면 넌 짐이 임무를 나갈 때 같이 가지 않을 모양이구나.”


식후의 디저트 시간, 스팍이 남부에서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엄마가 말했다.


디저트는 과일과 몇 가지 찍어먹을 소스가 나왔다. 그중 몇 가지는 스팍이 자신의 신체의 비밀을 알게 된 후로 피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스팍이 초콜릿과 더불어 최근에 알게 된 숙적(그러니까 카라멜) 대신 무가당 우유크림만 파고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스팍은 딸기에 크림을 지긋이 묻혀 입으로 가져갔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아직 확답이 돌아온 곳은 없으나 긍정적인 답변이 한 군데 이상에서 올 확률이 매우 높으므로, 저는 지구에 있을 겁니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네. 한편으론 아쉽기도 하고. 우리 아들이 저기 돌아갈 때 벌칸이 같이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입 안 가득 카라멜을 묻힌 사과만 아니었으면 한숨이라도 내쉬었을 거다. 스팍이 피하고 있는 소스는 전부 짐의 차지였고, 마침 짐은 과일을 손으로 집어 입에 던져넣는 대신 스팍처럼 꼬챙이를 쓰기로 한 참이었다. 어째 표적을 꽂기가 엄청 힘들었다. 하긴 입이 가득 차 있지 않았더라도 대꾸는 못 했을 것 같았다. 엄마가 그를 걱정할 만한 이유라면 한 무더기쯤은 있으니까.


그런데 뜬금없이 스팍이, 놀랍게도 이런 말을 했다.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커크 부인, 아드님께서는 함대의 최고급 기함인 엔터프라이즈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그런 함선에는 스타플릿의 최정예 장교들이 모집된다는 걸 아실 겁니다. 저 역시 잠시나마 그곳의 일등항해사로 근무했었고, 스팍 대사가 엔터프라이즈에서 보낸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짐의 승무원들이 함대 최고임을 제가 증명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짐이 플릿의 모범이 되는 우수한 능력으로 엔터프라이즈를 할당받았음을 감안해서라도, 그의 안전에 대해 염려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논리적으로라면, 그렇지.”


엄마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비스듬하게 고개를 기댄 채, 씁쓸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난 이 애 엄마예요. 자식 걱정 안 하는 어머니가 어딨어. 적어도 인간 어머니라면… 스팍의 어머니도 인간이라고 했으니 알겠지. 네가 지구 같은 안전한 M급 행성에 있더라도 어머니 된 입장에서 늘 걱정하실 거야.”


“제가 처음 지구에 왔을 때 어머니가 걱정하셨을 걸로 압니다.”


스팍은 대답하면서 딸기를 하나 더 집었다.


“우리 사회의 기준에서 보자면 매우 감정적인 분이셨죠. 하지만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


“아… 그랬구나.”


유감이라는 말이 뒤를 이을 거라 싶었는데 역시 아니었다. 엄마는 벌칸에 대해 잘 알았기에, 애도를 표하는 말이 무의미함을 알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벌칸들이 그렇게 말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편이 옳으려나. 엄마가 자신이 모르는 벌칸의 문화를 엄청나게 알고 있긴 했지만, 반대로 엄마는 모르는데 자기는 알고 있는 몇 가지 은밀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은근히 흐뭇해졌다.[각주:3]


“아버지께서는?”


“제 아버지께서는 벌칸 참사 당시 살아남으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때 돌아가신 겁니다. 존경받는 장로의 일원으로서 지금은 새로운 거주지에서 사람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계십니다.”


스팍은 들고 있던 딸기를 먹지 않고 잠깐 있다가, 말을 이었다.


“커크 부인, 아드님과 저는 어떤 면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희 둘 다 네로라는 로뮬란에게 부모를 잃었죠.”


엄마는 그와 짐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렇다면 너희가 네로를 물리친 게 아주 합당한 일이었구나.”


“딱히 그렇다고 할 순 없을 겁니다. 혈육을 잃은 존재는 저희만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함선에서 저희를 도와준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물론,” 스팍은 이렇게 덧붙였다. “결과가 매우 만족스러웠음은 인정합니다.”


그건, 한참 줄여서 말한 표현이었다. 예전의 기억이 생생했다. 그가 네로에게,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함선을 구해주겠다고 제안하자 옆에서 스팍이 뭘 하는 거냐고 물었다. 애초에 네로가 도움을 거부하리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평화주의자라던 벌칸이, 스팍이 거기에 반기를 들 줄은 예상 못 했던 거였다. 스팍이 그 일로 화가 났던 점, 또 그런 마음을 입 밖으로 꺼냈다는 점이 놀라웠다. 물론 그 후로 6여년이 지난 지금은 그를 이해하고 익숙해질 수 있었다.


짐에게 있어서라면 그 만족감이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었다. 그는 아버지를 모르고 자랐다. 그에게 있어 아버지는 역사 교과서나 안방에 장식된 무수한 훈장과 기념품에서 접하는 관념적인 인물일 뿐이었다. 엄마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 생일이 되면 애틋해지는 엄마의 표정, 스타플릿에 들어간 후로 그를 대하는 엄마의 태도에서 역시 아버지의 존재를 느꼈다. 그 모든 걸 지고 살아가게 만든 원인 제공자를 혼쭐내줬다는 게 짐으로서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디저트를 먹으면서 빠지기에는 다소 무거운 주제라서 그는 생각을 다른 데로 틀자고 마음먹었다.


“이곳에서도, 같이 만족스러워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어.” 엄마가 스팍에게 말했다. “네로와 처음 조우했을 때 8백 명이 살아남았어. 조지 덕분이지. 그 때 살아남은 모두가 그동안… 어떻게 보면, 숨을 죽이고 살고 있었던 것 같아. 25년간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우리가 당했던 걸까 곱씹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니 대처할 방법도 없었어. 그런 일이 또 일어난다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까봐 조바심을 내면서 말이야.”


역시, 디저트와 곁들이기에는 많이 무거운 주제였다. 짐은 초콜릿을 찍은 딸기를 입에 톡 던져넣으면서 밝게 화제를 바꿨다.


“뭐, 여튼 이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걸 알게 됐잖아요. 미래에서 로뮬란이 날아오는 게 흔한 일도 아니고.”


“우주가 잠재적인 위험으로 가득한 곳이긴 하나 확실히 그런 가능성은 희박한 일이리라 봅니다. 또한 당시에 주어진 정보가 거의 없었는데도 짐이 함선을 이끌고 그 상황을 대단히 훌륭하게 타개할 수 있었으니, 다른 위험 역시 감당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엄마는 다정한 미소로 답했다. “알지, 그럼. 알아. 솔직히 말해서 엄마는 네 능력을 잘 알고 있었어.


짐은 느긋하게 대꾸했다. “그럼요. 여기 아이오와에서 나, 자신감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꼬맹이였잖아요?”


엄마는 진심이 담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 쉴 시간이 생겼다. 스팍은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두 사람은 특별히 다른 일은 않고, 각자 가방을 풀기만 했다. 예상대로 스팍은 샘이 쓰던 방에 머물게 됐다. 샘의 방은 수년 전 샘이 결혼해서 이사를 나가고 난 후부터 비어 있었다. 그 때와 달라진 건 없었다. 단 하나, 벽에 주먹을 쳐서 구멍이 난 부분이 메꿔져 있는 것만 빼고. 구멍을 메운 회반죽의 가장자리만이 희미하게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짐은 모르는 척 아무 말 않기로 했다.


인정하자면 자신의 비논리적인 행동은 스스로가 원인이었다. 옛날 침대에 앉아 캐리어를 열면서 방을 둘러봤다. 일전에 스타플릿 편으로 보낸 상자 무더기 외에는 텅 빈 자신의 방을 보고 있자니, 임무에 나가기 전에 짐을 전부 치운 건 다름 아닌 자신인데도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 아카데미에서 마주친 적이 없었으니 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해.”


“그랬지.”


“뭐, 그럴 만도 했어. 내가 전 과목 수석으로 유명하긴 했지만, 그거랑 별개로 한 까칠 하는 놈이었거든.”


“당시에 우리는 접점이 제한되어 있었으니, 아마 그렇게 여겼을 지도.”


짐은 훗 웃었다. “것도 성질 많이 죽인 거야.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에는 더 날렸어. 파이크 만나기 전의 나를 봤으면 우리 엄마 걱정이 끊이지 않을 만 하다고 했을 거야.”


“내 추측이 맞다면 당신이 파이크 제독님을 만난 시기는 근 십여 년 전일 거야. 인간으로서 10년은 긴 시간이지. 인간이 지닌 가장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가 가변성인데,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경향이 있어. 그러니 어머니 슬하를 떠나서 독립한 그 시간 동안 당신 역시 많이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해. 당신 어머니께서는 얼마나 바뀌었는지까지는 모르시는 듯하지만.”


“예전 같았으면 스타플릿이 엔터프라이즈는 고사하고 셔틀 하나도 내주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함장인 걸 보면 나도 참 많이 변했어. 참, 내가 어떻게 파이크와 만나게 됐는지 모르지?”


“몰라.”


짐은 빙그레 웃으면서 일어났다. 리버사이드는 어린 시절의 추한 기억과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었지만, 많은 일을 겪고 다시 돌아오니 그다지 나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가자. 보여줄게.”






15 : 이해 (2/2) →



  1. 벌칸어로 ‘장수와 번영을’. [본문으로]
  2. 산적 만들 때 쓰는 나무로 된 그것 말고, 소용돌이 무늬가 박힌 철제 식기. [본문으로]
  3. It was kind of satisfying for Jim to realize… 짐이 속으로 혼자 웃으면서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너네 다 귀여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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