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lude

[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Fighting Gravity - 10 : 의존 본문

Star Trek_장편/중력을 거스르다

[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Fighting Gravity - 10 : 의존

topsecretum 기밀선녀 2015.05.23 00:00
#, , ,

← 제 9장, 표현

↑ 표지





제 10장

의존





놀라울 것도 없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불을 끄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짐은 잠에서 깼다. 깊은 새벽녘 그는 잠에 취한 채로 누가 방에 난방을 켠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곧, 여기는 자신의 함선이 아니고, 거기다 벌칸도 옆에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더운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다. 몸이 닿지도 않았건만, 담요 안으로 후끈한 열기가 끼쳐 온 몸을 감싸오는 통에 결국 담요를 젖히고 침대 안쪽으로 차서 밀었다. 남부의 초여름이라 어차피 굳이 이불이 필요하지도 않았으니까.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한 게 다행인 셈이었다. 다음번에 잠에서 깨었을 때는 팔다리로 옆에 있는 무언가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같이 잠자리에 든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요즘에 침대에 사람을 끌어들일 기회가 별로 없기도 했고… 그러다가 문득 스팍이 떠올랐다. 스팍? 그 생각에 화들짝 놀라 깼다가, 이내 품 안의 그것이 스팍이라기엔 너무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고 보니 그가 안고 있는 것은 시트와 이불 뭉치였다. 하긴, 스팍을 그렇게 껴안고 있었다간 스팍이 당장에 그를 깨웠을 것이다. 깨워서 침대 밖으로 차버리거나… …생각해보니 아니다. 스팍이라면 아마 최대한 짐이 깨지 않게 몸을 뗀 다음 베개를 갖고 바닥으로 내려가서 잤을 거다. 바보같이 욕심 없고 남에게 퍼주는 성격이니까.


안고 있던 게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자, 갑자기 무척 품에 사람을 껴안고 싶어졌다. 그는 원래 옆에 누군가를 두고 함께 자는 편을 좋아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안고만 있어도 좋았다. 그럴 때 보통 본즈가 좋은 상대였다. 짐은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소파에서 자고 있을 본즈 옆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렇지만 소파가 그렇게 넓지도 않은데다 안 그래도 본즈는 그간 짐의 이상한 변덕을 받아준다고 아량을 많이 베풀어줬다. 해서 짐은 여기에 얌전히 있는 게 좋겠다 싶었다. 고른 숨소리를 배경으로 바깥의 어슴푸레한 가로등 빛을 받아 스팍의 윤곽이 희미하게 빛이 났다. 검은 머리칼 사이로 하얀 귀끝이 뾰족 튀어나와 있었다. 스팍의 발가락을 봤을 때처럼, 충동이 불쑥 일었다. 손을 가져가서 만져보고, 또…


짐은 등을 대고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도저히 마음을 놓고 잘 수가 없군.


그렇지만 어느 새 도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다시 잠에서 깨었을 때 그는 모로 누워 담요에 돌돌 싸여 있는 채였다. 동이 트기 시작했으니 나가서 주변을 한 바퀴 뛰고 오는 게 좋으려나…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지만. 다리 사이의 그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니, 누운 채로 잠이 더 깰 때까지 가만히 있기로 했다. 조그맣게 삐져나온 귀끝을 쳐다보며 스팍의 숨소리를 들었다. 곧 스팍이 뒤척이더니 등을 대고 똑바로 누웠다. 그래서 이번엔 감긴 눈꺼풀과 자느라 살짝 허물어진 입매가 눈에 들어왔다. 스팍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아니, 벌칸은 꿈을 꾸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거기서 나아가서, 벌칸도 아침에 다리 사이가 설지 궁금했다.


…그래. 도움이 안 되는 생각이다. 짐은 벌떡 일어나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러 갔다. 스팍과 한 이불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따뜻했는데, 서로 살을 맞대고 눕는다면 얼마나 뜨끈할까. 스팍의 입술 안 역시 ― 아궁이 속처럼 뜨거울 것이다.


몸을 씻어내는 동안 생각해 봤다. 스팍과 거리를 둬야 하는 데 그런 환상을 하는 게 도움이 될 리 없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도를 닦는 기분으로 침대에 누워있을 바에야 해소하고 나니 이제 훨씬 몸이 편해졌다. 게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스팍이 잠을 자는 모습을 순수하게 바라볼 수가 있었다. 봐, 아무것도 아니잖아.


훨씬 낫군. 그는 휴가를 와서 길을 잃는 건 사양이었으므로 단말기를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직 이른 시각이어서 잠시 운동을 하기로 했다. 땀을 내고 또 샤워를 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가볍게 산책하듯 다녀오는 게 좋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남부라서 위치도 위치거니와 날이 더워져서 움직이면서 땀이 나지 않기가 힘들었다. 막 해가 떠올랐을 뿐인데 역시 여름이었다. 짐은 이웃들 사이로 지나가며 옛스런 건물을 구경하다—맥코이 저택뿐만이 아니라 주변에도 고풍스런 주택들이 있었고, 어떤 건 정말 오래되어 보이기도 했다—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니 조는 이미 일어나 방에서 나올 준비를 하는 중이었고 본즈는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본즈가 주방에서 머리를 내밀더니 들어오는 짐을 향해 눈썹을 올려보였다.


“아침 댓바람부터 어디 갔다 오냐?”


“그냥 이 앞에 몇 블록 뛰었어. 주변에 구경도 좀 하고… 거기다 뛸만한 공간이 생겼으니 임무 나가기 열심히 만끽해야지 않겠어. 운동 처방을 따르는 셈이니까 너도 만족하지 않아?”


“함선이 그렇게 큰데 무슨 공간 타령? 러닝머신이라는 문물을 들어봤으려나몰라…”


“러닝머신은 지루하다구.” 예전부터 골백번은 불평했기에 본즈도 그건 잘 알고 있었다. 짐은 탁자로 가 앉았다. “휴가 좋다는 게 뭐겠어. 본즈, 휴가 중인 사람한테 샐러드까지 먹일 생각은 아니겠지?”


“샐러드를 만드는 걸로 보이냐?” 본즈가 얇게 썬 과일과 여러 가지 토핑이 담긴 그릇을 가리켰다. “이건 조 먹일 거. 네가 벌써 일어났는지 몰랐거든. 샐러드 먹고 싶으면 얘기 해. 만드는 건 금방이니까.”


“고맙지만 아침식사론 됐어.” 짐은 빙그레 웃었다. 본즈와 있으니 금세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안나가 와서 짐에게 인사를 건네고,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팬케이크에 무척 좋아하며 갖가지 토핑을 끼얹었다. 그리고는 스팍이 아직 자고 있냐고 물었다. 여전히 내려오지 않았으니 짐은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 전화를 해둘 곳이 떠올랐다. 기억난 김에 식사하기 전 얼른 해치워야겠다 싶었다.


짐은 앞서 연락을 했을 때의 경험으로 현재 벌칸 이주지가 적절한 시각임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기에, 현관으로 나와 곧장 전화를 걸었다. 뉴 벌칸에 있는 스팍은 짐보다 시간차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듯 이렇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이네, 짐 ― 아카데미에서 나와 있는 모양이로군.”


“네, 조지아에 와서 본즈네 집에 있어요.” 짐은 작은 화면 너머의 인영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당신도 저랑 같이 와 있구요.”


그러자 예의 그 한쪽 눈썹을 올린 표정이 되돌아왔다. “그렇다면, 지난 연락 이후로 우리가 평화롭게 의견을 조율했으리라 보아도 되겠나?”


“어…네. 맞아요. 그러고 보니 그게 마지막 통화였네요. 그 때 스팍이 그런 건 반사적으로 툭 튀어나온 행동이라 해야 할까요, 무튼 제가 당신하고 얘기했다는 이유만으로 가버리는 건 비논리적이라고 결론을 내린 거 같아요. 같이 있겠다고 약속도 했고… 우리가 내기를 한 거 아직 얘기해 준 적 없죠?”


“침대를 내준 얘기라면 이미 알고 있네.”


“아뇨, 다른 내기요. 제가 이겨서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때 같이 가기로 약속을 받았어요.”


“매우 인상적이군.” 스팍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잘 지내고 있는 것인가? 그간 연락이 뜸했으니, 위급한 일은 더 이상 없었을 것이라 예상이 되는군.”


“전혀 없었죠. 솔직히, 저한테 조금은 마음을 연 것 같아요. 지난밤엔 제가 특별히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감사를 표하더라고요. 농담을 하려다가도 일부러 그만 두고요. 제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 원하지 않아서 그랬대요.”


“…흠. 수년간 그를 만나지 못해서 나로서는 그것이 발전의 의미인지 확신할 수가 없네.”


“믿으세요, 발전한 거예요. 그 녀석이 농담을 하려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발전을 한 거죠. 처음에 만났을 때만 해도 무척 뻣뻣해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간 저한테 편해진 거였으면 좋겠어요. 제가 너무 너무 잘 대해줘서 말이죠.”


“자네가 그에게 좋은 상대였다고 확신하네, 짐.”


짐의 얌전치 못한 말에 대한 대답이라기엔 지나치게 진지한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부정적인 뜻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네, 음… 저만 스팍하고 상대한 건 아니에요. 여기 오기 전에 파이크 제독님하고도 마주쳐서 얘기를 나눴어요. 저는 그 자리에 없어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자세히 몰라요. 그 때 스팍이 편한 기분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는 걸 알았을 거예요. 그리고 본인이 말은 안 하지만, 생도들이랑 당구를 치면서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조랑 같이 홀로그램 게임도 하고 ― 본즈의 딸이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조하고 만나본 적이 있나 모르겠네요.”


“조안나 맥코이? 지나치면서 본 적이 있지.”


짐은 빙그레 웃었다. “그럼 그쪽 세계에선 조가 당신한테 반할 기회가 없었겠네요?”


스팍은 약간 놀란 기색이었다. “그런 거라면, 나는 모르고 있었군.”


“완전히 애가 여기 있는 당신한테 뻑 갔어요. 아주 눈을 못 떼고 있다니까요. 여기 온 이후로 저랑 본즈는 완전히 찬밥 신세에요.”


“영문을 모를 일이야.”


“영문을 모를 일이라뇨. 당신이 얼마나 화끈한데.(You're hot.)” 그러면서 스팍에게 히죽 웃어주었다. “혹시 그쪽 세계에서 제가 당신한테 화끈하다고 한 적 있어요?”


“물론. 우리 종족의 평균 체온은 사막의 기후에 맞춰 상대적으로 높으므로―”


“고약한 건 둘이 아주 똑같네요.” 짐은 툴툴거렸다가, 문득 살짝 호기심이 들었다. “그러니까, 당신한테 매력적이라고 말한 적 있느냐는 거죠.”


“그래, 그랬어.”


갑자기 스팍은 이상하게도 멍해졌다. 이곳의 스팍과 닮은 모습에 그동안의 일이 떠올랐다. 저런 표정이라면 무슨 의미인지 알 것도 같았다.


“상황이 어색해졌겠네요, 그죠?”


“전혀 그렇지 않았네. 자네는 종족과 성별에 관계없이 다양한 개체로부터 매력을 느끼곤 했지. 나 역시 그 중 하나가 되어 어느 정도 반가웠어.”


흠, 끔찍하게 놀라지 않았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다고 여기 있는 젊은 스팍 역시 그렇게 느끼리라는 법은 없었으므로 짐은 대충 넘기기로 했다. 전화를 한 용건은 따로 있었다.


“여하튼… 조는 아직 며칠 학기가 남아서 학교에 가 있고, 오늘 집에는 저하고 당신, 본즈만 있어요. 셋이서 이 근방에 나들이라도 하면 좋겠다 싶어서 그러기로 했어요. 주변에 관광도 하고요. 해서 어제 저녁에 일정을 짜봤는데 한 번 보세요…”


일정 목록을 전송해 주자 스팍은 짐의 선택에 만족하며 이쪽의 나이대라면 관심을 가질 법한 장소들을 골랐다고 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자네와 함께 이런 명소들을 방문할 수 있다면 좋겠군. 지금껏 지구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어.”


“스팍 ― 저, 지구에 오래 있지는 못해요. 몇 달 더 있다가 다시 함선을 타고 나가야 해요. 그러니 혹시 여유가 있으면… 우리 직접 만난 적은 많지 않잖아요. 여기서 볼 수 있다면 좋을 거예요.”


하지만 스팍은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나의 오랜 친우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물론 끌리는 제안이지만, 지구에 있는 동안 젊은 스팍과 지내준다면 더없이 만족스러울 것이야. 짐 커크는 이미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어. 그러나 자네와 있는 그는 그렇지 않지. 그가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못하니, 자네들 사이에 누를 끼칠 만한 요인은 되고 싶지 않네.”


짐은 이해하기로 했다. “알았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그렇지만 나중에 일이 잘 풀리게 되면… 어쩌면 후에 스팍이랑 뉴 벌칸에 들를 수도 있겠죠. 그러고 보면 이주지가 어떤 모습인지 아는 게 하나도 없거든요. 특히 이곳이랑 비교해서요. 당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여기랑 닮았는지, 어떤 부분이 다른지… 벌칸에 가면 당신이 소개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 내게는 영광이지. 그러나 이 역시, 자네의 스팍이 그 역할을 하는 편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라 본다네. 물론, 그가 벌칸에서 발행한 후 많은 것이 바뀌었어. 언젠가 때가 되어, 자네와 그가 교제를 맺고 친한 사이가 된 후에 벌칸에 온다면 당연히 반갑게 두 사람을 안내해 주겠네.”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네요.”


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스팍의 제안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다니 참 희한했다. 그러면서 스팍 대사와 이곳의 스팍 사이의 차이점과 닮은 점을 가늠하다 보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왜 그 녀석이 당신한테 화가 나 있는지 아세요?”


“짚이는 점이 있네. 그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켰을 만한 일이라면, 지난번 얘기했듯이 내가 너무 많은 참견을 한 것이겠지.”


“네, 약간 그런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운명이란 것에 반발이 심하더군요.”


스팍이 한숨을 지었다. “나의 의도가 잘못 전해진 게야. 그에게 삶이 완전히 운명 지어져 있다는 암시를 주려 한 것은 아니었어 ― 단지 내가 얻은 평안을 그 역시 찾기를 바랐을 뿐이었네.”


“저도 대략 그렇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봤죠. 저만 봐도, 가만히 있는데 엔터프라이즈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라구요. 그건 제가 얻어낸 거죠. 그렇게 원하지 않았으면 얻지도 못 했을 걸요.”


“그러나 그는 자신의 미래를 원하지 않는 것 같군.”


“글쎄요, 그렇다기보다는…” 짐은 어깨 너머로 스팍이 아직 아래층으로 내려오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자신의 인과로 생긴 결과를 원한다고 하더라고요.”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한편으로 그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 걱정이 된다네.”


“아뇨,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거든요.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몰라도 본인은 당신의 말 때문에 크게 영향을 받고 그러지 않는대요.”


“그렇더라도, 그는 근심을 하고 있을 것이네.” 스팍이 자못 심각한 기색을 보였다. “돌이켜보자면 나 역시 당시에 두려움과 근심에 싸여 있었으니까.”


하지만 당연하게도, 스팍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벌칸은 두려움과 같은 나약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 녀석에게 무슨 말을 한 거죠?”


“그에게는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갈 자유가 있네, 짐. 자네의 몫이 아니야.”


“…옳은 말이네요.”


“정말 그럴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지나간 중얼거림에, 짐은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할 뻔 했다.


“네?”


“삶이란 묘하게도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 누구도 서로 동일할 수 없고, 또 어느 하나 완벽하게 개인이 될 수 없지. 각각이 가진 삶의 형태는 늘 변하면서 밀고 끌어당기며 어떨 때에는 서로 한데 얽히기도 해. 나는 지난 나의 삶이 나아갔던 방향에 만족하고 있네. 자네도 그렇게 느끼는가?”


그간 두 사람 사이에 쌓아올린 우정은 서로에게 큰 의미가 되었고… 그것이, 스팍이 말하는 의미일 테다.


“대부분은요. 하지만 개선의 여지는 늘 있는 법이죠.”


“물론이네. 그를 잘 돌봐주게, 짐.”


“그럴게요. 나중에 또 봐요.”


“그러세. 언제나 고맙네.”


본즈는 바깥바람을 쐬며 돌아다니자는 제안에 찬성했다. 소풍 첫날 시내로 나온 그들의 행선지는 동물원이었다. 본즈와 짐은 온 은하를 누리며 온갖 생물들을 봐온 터라, 예전에 사자 따위의 동물을 신기하게 여겼던 게 지금 돌이켜 보면 우스웠다. 아무리 먼 지역에서 온 동물이라 봤자 지구 안이었기에 익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동물원 안에는 외계 생물도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짐과 본즈에게는 아주 눈에 익은 것들이었다. 두 사람은 이번엔 그들이 있는 곳과 외계 야생 동물들 사이에 보호벽이 있어 다행이라며 농담을 끊임없이 던졌다.


한편 스팍의 경우 대부분의 지구 생명체에 생소해서, 관람하는 내내 생각 이상으로 들떠 있었다. 그와 짐은 본즈가 조를 데리러 간 동안 단둘이 남았다. 아마 조가 같이 관람하고 싶을 거라며, 학교가 있는 곳이 멀지 않으니 나온 김에 같이 다니자는 것이었다. 본즈가 없는 사이 둘은 극지 해양 생물관으로 향했다. 스팍이 커다란 수조 앞에 서서 펭귄들이 움직이는 걸 구경하는데, 완전히 매료된 그 표정이라니 재미도 또 이런 재미가 없었다. 스팍과 펭귄이라니. 쉽게 매치가 안 가는 요소들이다. 그런 얘기를 하자 스팍은 자신이 덥고 건조한 세계에서 성장했으므로 호기심은 당연한 결과라는 논리 꽉 찬 대답을 해주었다. 그는 추운 곳에 서식하는 수생 동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며 펭귄의 경우 특히나 흥미롭다는 거였다. 짐은 그다지 설득이 되지 않았는데, 조가 도착하고 나서는 더 그랬다. 짐이 조와 함께 펭귄을 보며 뒤뚱거리면서 걷는 것도 그렇고 정말 귀엽네 어쩌네 하는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스팍이 슬쩍 옆으로 와 듣고 있지 않는 척을 했다.[각주:1] 기념품 가게에 들러 스팍에게 커다란 펭귄 인형이라도 사다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침대에서 쫓겨나고 펭귄이 그의 자리를 꿰어찰 거다.


…사실은 내심, 그렇게 되더라도 스팍이 펭귄 인형을 끌어안고 있는 걸 보고픈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확실히 그건 놀림감이다.


다음 날은 비가 내렸다. 박물관을 탐방하기로 했는데, 자연사 박물관에 첫 도장을 찍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달까. 짐은 거대한 공룡뼈(bones) 화석을 발견하고 본즈(Bones)를 놀리느라 입이 바빴다. 어느 쪽 ‘뼈다귀’에 대고 얘기하는지 분간이 안 되게 혼자 신이 난 짐을 향해, 본즈는 눈을 굴리며 못 들은 척 짐이 공룡 화석과 대화를 나누도록 내버려 뒀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방송과 통신의 역사를 주제로 한 박물관이 있어 자리를 옮겼다. 스팍은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텔레비전에서 성간 통신기로 발전하는 초기 모델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살피며 ‘흥미롭다’를 연발했다. 짐은 그것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다 아팠다.


셋째 날이 되어 화창해진 날씨에 그들은 식물원에 가기로 했다. 관람료를 내는 동안 본즈는 짐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던졌는데, 당장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짐은 스팍의 점심도 직접 샀다.


말은 안 해도 스팍이 물에 굉장한 관심이 있다는 걸 본즈와 짐은 금세 알게 되었다. 놀라울 것도 없이 스팍은 사막 식물관에서 오래 머물면서 만끽했는데, 흥미 면에서 보면 반대로 열대지방의 식물들을 관찰하는 데 훨씬 관심이 지대해 보였다. 그런 후에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자연스레 점심거리를 들고 본즈가 추천한 대로 근처 호숫가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그들은 나무 아래 괜찮은 장소를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곳은 빈번히 셔틀이 머리 위로 윙 지나가곤 했지만 그래도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한적하게 식사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본즈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둘이 어떻게 된 거냐?”


스팍이 본즈를 향해 고개를 돌려 묻는 시선을 던졌다. 짐이 먼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너네들이 캠퍼스에서 어울려 다녔다는 것부터가 희한하니까 하는 말이다. 둘이 같이 여기까지 온 것도 이상하고. 스팍은 날 거의 알지도 못하는데 말이야. 게다가 봐봐, 내내 네가 다 비용을 대지 않냐. 지금만 해도 점심을 사주고 ―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짐. 네가 괜히 저 녀석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던 거 기억 하거든. 그래서 안 하고 있잖아.”


그러더니 그는 스팍에게 말했다.


“내가 참견할 바는 아니니까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거거든.”


“웬일로 조용하나 했더니 역시나 얼마 못 가는구만.” 짐은 한숨을 지었다.


“어려울 일도 아니야. 커크가 편의를 봐주고 있는 데에 대한 이유는 간단해.”


스팍은 일말의 부끄러움도 보이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나는 갖고 있는 자금이 없어. 한동안 이런 상태였지.”


본즈는 더 의아해진 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럼 지금 뭘 하고 있는데?”


“현재?” 스팍의 시선이 자신의 손에 들린 랩 샌드위치로 향했다. “점심을 먹고 있지.”


상황이 심각한 만큼 짐은 웃음을 터뜨리면 안 될 것 같아 꾹 참았다. 본즈가 쏘아붙였다.


“그런 식으로 말 돌리지 마. 지금 무슨 일 하고 살고 있냐고? 뭐 하면서 먹고사는 거야?”


“현재로서는, 일을 하고 있지 않아. 나는 이곳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동안 부랑자로 지냈어.”


스팍의 대답에 본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농담이겠지.”


“나는 매우 진지해.”


“대체 왜…”


본즈는 잠시 할 말을 잃어버린 듯 했다. 그를 알고 지낸 세월이 세월이니만큼 짐은 본즈가 화를 내기 일보직전의 분위기라는 걸 알았다. 스팍을 향한 화는 아니겠지만… ‘네게 화난 게 아니다’고 말해줄 만큼 친절한 성격도 아니었다.


“이봐, 스팍 ― 우리가 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네가 머리가 있다는 건 알거든. 너라면 뭐든 할 수 있잖아.”


“머리가 있는 것은 전형적인 해부학적 근골을 지닌 생명체로서 지녀야 할 부위를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그것이 나를 전능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지.”[각주:2]


“내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건지 알고 있잖아. 넌 똑똑하지 않느냐고. 직장을 구할 데가 없으면 왜 스타플릿으로 돌아오지 않고? 너라면 파이크 밑에서 최고급 기함의 일등 항해사로 다시 복귀할 수 있었을 텐데 ― 파이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네가 대단한 일을 할 만한 능력이 충분하다는 걸 알 거란 말이야.”


“유능한 자리라고 해서 그것을 최선으로 추구해야 하는 척도가 되는 건 아니야.”


스팍이 대답하자 본즈가 받아쳤다.


“그래도 거지로 지내는 것보단 낫잖아? 아무리 네가 집이라고 지낼 만한 곳이 우주에서 워프 이동하는 함선뿐이라고 해도 적어도 머리 기대고 쉴 수 있는 장소는 있는 거 아니겠냐고. 너도 알겠지만 엔터프라이즈에는 늘 너같은 사람들이 필요―”


“본즈.” 결국에는 짐이 끼어들어 막아섰다. “그만 해둬. 스팍이 결정한 일이야.”


“내 말이 맞다는 건 너도 인정하겠지. 넘버원은 이제 자기 함선이 생겼고, 술루는 물론 좋은 일등 항해사가 될 거야, 그래 ― 하지만 술루는 거기다 또 과학 부서까지 맡기에는 조타수 일로도 벅차. 우리한테는 빈자리가 있을 수밖에 없고, 스팍이―”


“알아, 본즈.” 짐이 차분하게 말을 잘랐다. “그건 내 문제지 스팍의 잘못이 아니잖아.”


본즈는 짐과 같이 스팍 대사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스팍이 엔터프라이즈의 빈자리를 자연스럽게 메우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남이 봤을 때도 그렇다면, 그건 정말 당연한 운명인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걸까?


“내가 해결할 일이니 스팍을 끌어들일 이유는 없어.”


“그건 네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야.” 본즈는 진지해졌다. “내가 네 의료장교니, 함께 갖고 가는 문제인 거지. 그리고 난 스팍을 끌어들이자는 게 아니라 단지 스팍이 선택권을 갖고 있었다는 얘길 하려는 거라고. 그것도 아주 좋은 선택지를.”


본즈와 둘만 있던 자리였으면 짐은 당연히 동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스팍이 함께 있었다. 다름 아닌 본인을 앞두고 두 사람이 당사자의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는 없었다.


“스팍은 원하는 선택을 할 권리가 있어. 너에게 일일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을 자유도 포함해서 말이야. 너도 스팍이 똑똑한 사람이라고 인정했으니까 알겠지만, 왜 스팍이 그런 선택지가 있다는 걸 모르겠어? 그렇지, 스팍?” 짐은 본인을 빼놓고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스팍에게로 말을 돌렸다.


“그래. 스타플릿에 복귀하라는 이야기가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나는 복귀를 거절하기로 했고, 설명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봐.” 스팍이 본즈를 향해 답했다.


“…그렇겠지.” 본즈는 마지못해 인정했다. “난 그저 내가 보기에 좋은 선택지도 있는데 이러는 게 논리적이지 않아 보여서 이러는 거라고.”


짐이 대꾸했다. “우리가 스팍의 일에 대해 전부 알았으면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잖아. 그리고 스팍은 우리에게 사적인 얘길 털어놓을 의무가 없어.” 그는 그러면서 스팍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본인 사정이니까. 남이 끼어들면 안 되지.”


“알겠어.” 본즈는 할 말이 없어져 조금 짜증이 난 듯 보였지만 물러났다. “미안하군, 스팍.”


“닥터 맥코이의 잘못은 아니지. 내 현 상황에 대해 아는 정보가 제한되어 있으니 그렇게 의문하는 것이 어느 정도 정당한 반응이야. 그러나 커크가 말한 대로, 내 정보를 이야기하는 것은 내 권리이고, 난 이 이상 설명할 생각이 없어.”


본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어봐도 되겠어? 왜냐하면 말이지, 네 사정은 모르겠지만…” 그는 가까이 몸을 기울이며 다시 비집고 나오는 불만을 담고 목소리를 낮췄다. “넌 그렇게 살 사람이 아니야. 그렇게 살아야 마땅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우린 서로 별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니야. 하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얘기라도 해줘. 기꺼이 돕고 싶어. 내가 그렇게 큰 도움은 못 될지 몰라도 ― 내 힘닿는 데는 사실 지구밖에 없거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도움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아. 그리고 내 계획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짐은 그간 말하기를 망설이면서 생각해 두던 계획이 있었다. 그는 스팍을 여기까지 데려올 수 있었지만, 이제 스팍이 애틀랜타에 따라왔으니 엄밀히 따져서 내기는 다 완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스팍은 원하면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 그를 잡아둘 수 있는 이유 같은 건 이제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짐은 기꺼이 스팍이 머물 곳과 음식을 구해다줄 마음이 있었고… 스팍이 진작 가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쩌면 조금은, 무언가 의미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짐은 좀 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짐은 이렇게 제안했다. “나랑 아이오와로 올라갈 거면 언제든 환영이야. 여기 계속 있을 생각이거나 샌프란시스코에 돌아가지 않을 거라면.”


스팍이 대답했다. “제안은 고마워. 고려해 볼게.”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예의상 하는 말인지 알 도리는 없었다. 늘 그랬듯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로 들렸다. 짐은 본즈가 무슨 말을 더 하지 않을까 싶어서 쳐다봤지만, 본즈는 살짝 얼굴을 찌푸린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짐이 보기에는 속으로 무언가 생각하는 듯싶었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다시 그 얘기가 나올 일은 없다는 뜻이었다.


세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했다. 오후부터 관광을 하고 장난을 치면서(대부분 짐과 본즈 사이에 그랬다는 거고, 스팍은 뭐 평소와 마찬가지로 조용하고 진지했다) 짐은 잠시 근심을 내려놓고 놀았다. 저녁이 되어, 홀로그램 게임을 하는 동안 본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내내 생각이 딴 데로 가 있는 걸 보면 분명 스팍에 대한 일을 떠올리고 있는 게 확실했다. 하지만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잘 준비를 마치고 자리에 누웠을 때 스팍이 말을 꺼냈다.


“오늘 낮에 내 사적인 권리에 대해 변호해 주던 것을 고맙게 생각해.”


난데없이 튀어나온 얘기에 짐은 잠시 당황했다.


“…아. 그거. 고마워 할 것까지야. 내가 평소에 하도 참견쟁이라서 그렇게 할 거라곤 예상을 못 했나봐, 그치?”


그는 침대에 올라와 이불을 덮으면서 스팍에게 히죽 웃었다.


“그 반대야.”


스팍도 짐의 옆으로 들어와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웠다.


“처음에 당신의 동기에 대해 거듭 오해를 했음을 시인할게. 그러나 사실로 당신은 그 뒤로 늘 내게 계속 조력을 보내며 내가 논의하길 원하지 않는 문제를 비껴가도록 신경을 써줬고, 그로써 내 경계선을 존중하고 있다는 걸 증명해 보였어.” 그는 짐을 향해 살며시 고개를 틀었다. “그렇지만, 당신은 역시 내 일에 대해 퍽 궁금해 하고 있으리라 생각해.”


“으음, 그렇긴 해.” 짐은 부인할 수 없었다.


“궁금해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 스팍은 다시 시선을 천장으로 향했다. “그동안 정중한 당신의 태도 덕분에 신뢰할 수 있었어. 따라서 내가 감사를 표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봐.”


“천만에.”


짐은 놀라운 기분이 들면서도,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스팍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스팍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역시 지금도 의문이지만 말이다.


“…솔직히 나야말로 정말 고맙다구. 나랑 같이 여행을 다니기로 해줘서.” 그는 팔꿈치를 짚고 모로 상체를 든 채 스팍을 건너다봤다.


“그랬지. 여기 머물러 있을 이유는 없고, 다른 곳에 일이 있지도 않으니까.”


무일푼의 그를 내기를 구실로 대륙 끝에서 끝까지 멀리 끌고 왔다고 생각하니 짐은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돌아가고 싶으면 얘기해. 비용은 내가 대줄게. 여기까지 끌고 온 건 내 잘못이니까.”


“그건 매우 논리성이 결여된 일이야. 당신은 내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야 할 만한 이유가 될 행동을 하지 않았어. 한편으로, 당신이 무슨 이유로 나를 동행시키는 것을 유익하다 여기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지만.”


“너는 좋은 일행이니까. 혼자 여행하는 건 재미가 별로야. 특히나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커다란 함선에서 몇 백 명이나 하는 재밌는 사람들이랑 5년을 함께 다녔으니 말이지.”


스팍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당신과 더 여행하는 게 싫지 않아. 아이오와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이 없기도 하고.”


“다른 지역이랑 비교하면 그닥 신기술이 넘치는 곳은 아니지. 내 고향 지역의 가장 큰 자원은 다름 아닌 커다란 평야야. 그 중 대부분이 농업에 쓰여. 그래도 한켠에선 내 배를 축조하는 데 쓰이기도 했지.” 그러면서 짐은 스팍을 향해 싱긋 웃었다. “엔터프라이즈와 나는 한 고향에서 함께 자란 거나 마찬가지인 거야.”


이야기를 곱씹는 듯 스팍은 다시 수긍했다.


“그럼 나랑 같이 가기로 하는 거지?” 짐은 벌써부터 기분이 들떴다. 스팍이 아이오와로 같이 여행할 거라는 것을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현재로서, 그것이 무난한 선택으로 보여.” 스팍은 역시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시선을 틀어 환한 짐의 미소를 마주보았다.


“잘 됐다.” 짐은 만족스레 침대에 누웠다. “…내일 엄마한테 손님이 한 명 더 있다고 미리 얘기해 줘야겠네.”


“현명한 생각이야. 그쪽에서 준비할 시간을 가져야 할 테니까. 방문에 앞서 미리 조정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있겠지. 예를 들면 잠자리 계획 같은.”


“…맞아.”


짐은 생각에 잠겨 고개를 주억였다. 샘 형이 결혼해서 다른 행성으로 이사 간 지 오래니, 엄마의 집에 남는 공간이 없어 걱정일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혼자 잠자리를 써야 한다는 게 과연 정말 편하기만 한 일일까? 더 이상 스스로도 확신이 가지 않았다. 처음에 조금 어색했던 분위기가 가시고 나니 스팍과 함께 자는 것이 꽤 괜찮게 느껴졌다. 어째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렇게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이유를 알 리가. 손가락 하나만 가져다 대도 스팍이라면 사적인 공간의 침해라고 여길 것이다.


그렇지만 이게 무슨 기분인지 몰라도,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제 11장, 기억 →



  1. 벌칸 귀여워! [본문으로]
  2. 대다나다… 벌칸의 가시 세우는 레벨은 차원이 다르다!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