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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lock] 우리에게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열정이 있다 │ Our Enthusiasms Which Cannot Always Be Explained - 5 본문

Sherlock_중편/시리즈

[Johnlock] 우리에게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열정이 있다 │ Our Enthusiasms Which Cannot Always Be Explained - 5

topsecretum 기밀선녀 2015.05.0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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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역설은 언제나 셜록 홈즈를 따라오는 개념인 듯 했다.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이 평범함이란, 약 6시간 전 시작하기로 한 그들만의 새로운 일상이었다. 존은 그것을 사랑했다.

하지만 이건,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존이 집중할 수 있는 거라곤 휑해 보이는 대학 병원의 대기실 안, 탁자에 올려진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 뿐이었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두 손을 깍지 낀 채로 얼마나 있었는지 몰라도, 맞물린 관절에 힘이 들어가 그만 감각이 얼얼해질 정도가 되었다. 고맙게도 병동의 간호사들이 피에 흠뻑 젖은 옷을 보고 옷가지를 가져다주어서, 존은 지금 아래위로 연푸른색 수술복을 입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원래 의사이고, 또 그것이 평생의 업이라 이렇게 되어야 할 운명일 지도 모르고, 혹은 간호사들에게 의사의 분위기가 풍겼던 걸지도 모른다. 레스트레이드가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레스트레이드는 새벽의 사건에 대한 파일과 보고서를 읽고 글을 쓰면서 얼굴에 아예 자리잡아버린 것 같은 깊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셜록은 이곳에 없었다. 셜록은 수술을 받고 있었다.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는 동안 그 외의 다른 세상은 ― 레스트레이드가 펜으로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소리, 벽에 붙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 피아노 선율 등, 모든 것이 흐려지고 흔적만 남은 채 사라졌다. 성당에서 들이마신 환각제가 남은 탓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네 잘못이 아니야.” 레스트레이드가 입을 열어 위로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그저…”

존은 말을 흐리며 지켜보고 있던 크리스마스 트리에 시선을 고정했다. 커봐야 30cm정도밖에 되지 않을 은색 트리에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작은 장식품으로 꾸며져 있었다. 보고 있자니 어렸을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대고모가 꾸미곤 하던 은색의 가짜 나무 화분이 떠올랐다. 존과 해리는 누가 트리 꼭대기에 별을 달지를 두고 매년 싸우곤 했다. 그리고 매번같이 누나가 더 컸기에 이겼지만, 그가 8세가 되고 누나가 9살이 되는 해 여름동안 3인치가 쑥 자라서 마침내 그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승리는 철학자와 바보들의 망상이다’…” ― 찬란한 반짝이, 은색, 그리고 붉은색, 붉은색, 또 붉은색 ― 이런 건 내가 크리스마스에 주고 싶었던 게 아니라구. 이 빌어먹을―

“왓슨 박사님?”

날씬한 갈색 머리의 여성이 그들의 앞으로 다가오며 수술용 마스크를 벗었다. 많아봐야 서른 셋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다른 상황, 다른 존 왓슨이었다면 분명 무척이나 호감을 느꼈을 여자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셜록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라는 사실에 더 관심이 많았다. 존은 그제야 현실 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벌떡 의자에서 일어섰다.

“네,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존 왓슨 박삽니다.” 존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네, 왓슨 박사님. 남자친구분은 지금 중환자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세요. 안타깝게도 크게 다치셔서, 총 여섯 군데 자상을 입었고 피를 많이 흘려서 지금 수혈을 계속 하는 중이예요. 폐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흉관을 삽입했구요, 소장에 천공이 생겨서 접합을 해놓은 상태에요. 왼쪽 신장이 영구적인 손상을 입어 완전히 못 쓰게 되었고―”

서류를 작성하고 있던 경위의 시선이 호기심을 담고 그의 얼굴에 와 닿는 것이 노골적으로 느껴졌지만, 존은 ‘남자친구’라는 대목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적을 하기에는 신경 쓸 다를 일이 많은데다, 솔직히 그렇게 불려도 이젠 괜찮았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신장은 두 개씩 있는 거라서.” 우스운 일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그래도 존은 힘없이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여의사는 입술에 웃음을 띠고 양 손으로 허리를 짚었다. 다른 세계의 존이었다면 확실히 관심이 지대하게 갔을 여성이었다. 그러나 어두운 성당에서 그는 한 몸 기꺼이 내던져 혼돈 가득한 셜록 홈즈와의 원더랜드 행 편도 열차 속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어차피 그 역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티끌조차도 없었다.

“그 부분에서 상황이 조금 심각해졌어요. 오른쪽 신장도 아예 조각이 났더군요. 현재 투석 치료를 하고 있기는 한데 상태가 좋지 않아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이식이 필요할 거예요. 지금 명단에 올려둔 상태구요,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순번을 당겨두었어요. 그렇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 주도 안 남은 상태라서 여러 모로 평소보다 약간 지원이 부족해요. 무슨 말인지 박사님도 아실 거예요.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요.”

존의 용감한 심장은 한 순간 펄떡임을 멈추고 고요해졌다. 산 넘어 산으로, 아이러니는 끝을 모르고 펼쳐졌다. 그래, 셜록의 크리스마스 목록에는 몰리도, 레스트레이드도, 이 지구에 사는 어느 누구도 제공해 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다. 존 왓슨만이, 그 목록을 이뤄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투석만 하면서 평생 기다릴 순 없어요 ―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존이 물었다. 목이 바짝 말랐다.

“매치가 되는 장기를 찾는 데에 달렸죠. 몇 시간 내로 찾을 수도 있지만 몇 주, 몇 달이 될지 모르는 일이에요. 명단에 올라간 환자가 차례가 오려면 평균 대략 1110일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역설을 짚고 넘어가니 역설이, 역시나 셜록은 그렇다.

이런 수준의 아이러니는 평범하지 않다. 이건 새로 찾아온 그들만의 특별한 평범함이다.

하지만 존은 그것마저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존 왓슨은, 셜록 홈즈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냉정하게 말해볼까요, 그런 쓸모없는 시도를 하느니 나한테 장기를 기증해주는 편이 훨씬 더 쉬울 걸요.”[각주:1]

물론 누가 봐도 존은 연인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남자친구로 보일 것이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연푸른색 수술복을 입고, 가짜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며 거의 네 시간도 전에 번을 물로 씻어냈는데도 손과 팔에서 셜록의 피냄새를 풍기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굳이 입에 올리지 않아도 명백하지 그지없는 사실을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한다. 그 사실에 몸이 떨리고 겁을 먹을 정도로 서로를 깊이 사랑했고, 이제야 막 그 사랑을 표현해내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터득한 참이다.

결국에 정말로 중요한 것이란, 바로 이런 사실인 것이다.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신장을 떼어줄게요.” 존은 그렇게 내뱉었다. “우린 혈액형도 같고, 조직 검사든 뭐든 얼른 합시다. 서류 가져다주시면 곧장 서명할게요. 원래 이런 거 허가되는 데 몇 주는 걸리는 거 알아요. 제가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을 한 명 아는데 연락을 하면 그 사람이 알아서 자연스럽게… 아니 부자연스러워도 어쨌든 절차를 빨리 진행할 수 있게 도와줄 겁니다.”

의사가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매치가 된다면, 산 채로 장기 기증자가 되시는 건데 그래도 정말 동의하시겠어요?”

“맙소사, 당연하죠. 그럼요.”

존은 그렇게 내뱉었다. 그의 유머감각은 몇몇 사람들에게는(사실은 대부분에게) 효과가 없었지만, 만약 셜록이 여기 있어서 레스트레이드의 옆에 앉아있었다면 뱀같은 호스와 기계에 여기저기 연결되어 생명을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고개를 젖힌 채 하얀 이를 한껏 반짝이고 웃으면서 즐거워했을 것이다. 셜록의 웃음을 볼 수 있다, 단 하나 그 생각만이 지금—아니, 영원히—그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존은 비딱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차피 그 녀석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져다주기로 한 거였으니까요.”



“천만 다행이었군요.”

약 72시간 후, 막 현실 세계로 되돌아와 흐릿한 눈을 뜬 존의 귓가로, 매끄러운 목소리가 병실을 가로질러 들어왔다.

“동생과 매치가 되는 사람이라니.”

존은 속으로 신음을 집어삼켰다. 눈을 그대로 감은 채 귀를 기울이니 중환자실의 심장 박동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두 사람 분의 서로 다른 신호음이 엇갈려서 방을 채우고 있었다. 물론, 그의 것이 아닌 다른 신호음을 자아내는 주인이 누구인지 존은 알았다. 제대로 의식이 다 돌아오기도 전인데 멋대로 대화에 끌어들이는 누군가의 형님 덕분에 말이다. 마이크로프트가 심문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홈즈 가의 형님이란 말 그대로 자비심이 없다. 기껏해야 2초 전에 깬 사람에게 이게 무슨 짓이람.

차분한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당신의 경우 통계적인 분석이 대부분 많이 어긋나지 않는 편입니다만, 내 어린 동생은 늘 어떻게 서라도 불순인자로 있어야 만족하는 아이인 모양입니다.”

존은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팔꿈치를 세워 지탱하고 몸을 일으켜서 눈을 뜨려는 찰나 격한 어지러움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뱃속이 비워지고 다른 걸 채워서 마구 뒤틀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환상적인걸. 지금껏 제정신으로 대기 수술을 받았던 기억은 하나도 없었으므로(세 살 때 편도선 수술을 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당시엔 너무 어렸으니까), 이 상황은 확실히 놀랄 만큼 새로운 정보다. 그는 잠깐 그 자세로 멈춘 동안, 주변의 모습을 둘러보고 정신을 조금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셜록과 함께 개인 중환자실에 자리잡은 중이었다. 방 안은 하얀 침대 두 개 뿐이었고, (쓸 일은 없을 테지만) 원한다면 두 침대 사이를 가를 수 있도록 중간에 푸른 커튼도 달려 있었다. 머리맡에 서랍이 따로 있고, 하나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소탈하게도 마이크로프트가 앉아 있었다. 어두운 방 안은 기계들의 온기로 희미하게 빛났고, 별나게도 아기자기한 느낌으로 창문을 따라 네모나게 둘러진 작은 꼬마전구의 불빛도 빼놓을 수 없겠다. 창밖의 어두웁게 물들어 있는 런던의 하늘을 보니 동틀 녘인 듯 했다. 아니면 아직 새벽일지도 모른다. 그 때 다시 토기가 밀려왔다. 제기랄.

“부탁이니까 좀―” 한쪽 팔꿈치에 상체를 지탱한 채 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만이라도 기다려 주면 안 되겠어요?”

“물론입니다.”

마이크로프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존은 간절하게도 이 말도 안 되는 이 아니러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문득, 크리스마스 소원 목록이 떠올랐다. 저 홈즈 형님이 크리스마스 목록에 대해 안다면 분명 이 모든 상황이 얼마나 아이러니하기 그지없는지 역시 잘 이해할 수 있을 테다―

“아, 참. 궁금해 할까봐 미리 말해드리지만, 우연하게도 두 사람의 크리스마스 목록이란 것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더군요.”

고맙기도 하지. 덕분에 병상의 의사는 깊은 한숨을 참아내야 했다.

홈즈 형제들이란. 그렇게 생각하며 존은 눈을 뜨고 마침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어느 쪽이건 사람 잡겠는 건 마찬가지군.

뻐근한 목을 한 차례 풀고 마이크로프트에게로 눈길을 향하니, 셜록의 쪽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마이크로프트가 보였다. 그는 전쟁과 평화―어쩌고로 보이는 서류들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들춰보는 중이었다. 그 쪽으로 몸을 조금 틀려고 하자 배 오른쪽에 살짝 당기는 아픔이 느껴졌다. 이제 몸속에 중요한 장기의 한 쪽이 제거되었다는 증거였다. 그러다 문득, 병원 이불에 뻣뻣한 옷감이 쓸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의료진들이 호의를 베푼 모양인지, 그는 가운형 환자복 아래로 간호사가 준 연보라색 수술복 바지를 입고 있는 채였다. 양말도 그대로였다. 좋은 일이다. 전혀 평범하지도 않고. 어찌 됐건 대기 수술이 긴급 수술보다야 나은 법이다. 그는 혹시라도 나중에 셜록 때문에 이런 비슷한 일이 또 생기면 꼭 이 병원으로 오리라고 마음먹었다. 이런 다짐이나 하고 있다니, 참.

마이크로프트는 파일을 홱 닫고 존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그는 무척이나 기뻐 보였다. 현재 자신의 재난덩어리가 왼쪽으로 6피트 떨어진 곳에서 의식을 잃고 누워 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거다.

“마음같아서는 나도 기쁘게 여기서 기다리고 싶습니다. 동생이 일어나면 피어나게 될 두 사람사이의 지독한 로맨스를 목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안타깝게도 필리핀에서의 일이 조금…급하게 되어 가봐야 합니다. 그러니 가기 전에 몇 가지 유념할 사항을 남기지요. 첫 번째, 여기서 지내는 동안 정신 병동으로 옮겨져 회복하고 싶지 않는 이상에야 동생에게 메타돈[각주:2]을 주는 것은 완전히 당치 않은 일입니다. 두 번째, 대략 엿새에서 여드레 정도 지나면 수술 부위가 어느 정도 나을 테고, 따라서 세 번째, 다음 주 크리스마스 이브 만찬에 당신이 오길 가족들이 고대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잘 지켜서 오도록 하세요. 3년 만에 동생이 크리스마스에 오는 것이니까요. 엄마는 셜록이 늦는 걸 무척 싫어하십니다.”

정부의 대단하신 양반이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에 초라고 명령을 한단 말이지. 존은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냥 무시해 버리기로 했다. 이런 때에 초대(를 빙자한 명령)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생각했다가는 안 그래도 상태가 좋지 못한 수술 후유증에다 없어도 될 스트레스만 더해질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나른하고 따뜻한데다 수술복 바지와 양말을 입고 있었으니, 모든 게 좋은 상태였다. 그래서, 이렇게 해나가기로 했다.

“셜록은,” 존은 한 번 웃음을 내뱉은 후, 새살이 돋아오르고 있는 옆구리의 통증에 몸을 움츠리며 대답했다. “늘 늦잖아요.”

“더 이상은 아니죠.”

그렇게 받아친 마이크로프트는 커다란 파일을 팔에 끼우고 일어섰다. 필리핀에서의 일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급한 것인 듯 했다. 동생이 죽어가는 것보다는 급하지 않아도, 셜록이 일어나면 존과 그 사이에서 벌어질… 로맨스, 보다는 급한 것이어서, 가봐야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게 다예요? 그냥 이렇게… 가는 겁니까? 여기 왜 왔는데요? 내가 이미 아는 내용들을 읊고는 크리스마스 만찬에 오라는 명령을 하더니 할 말 다 했으니 간다고요?”

마이크로프트는 존에게(그리고 아마도 외교관과 만나는 자리에서) 짓곤 하는, 예의 그 잘 지어진 매끄러운 미소를 보내곤 인자한 얼굴로 병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이 방에서 회복을 하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군요.”

“네, 고마워요. 압니다, 신경 써 주신 거. 이런 개인 중환자실은 진짜로 구하기 힘든 덴데. 그건 고마워요, 정말. 당신 동생을 대변해서 얘기하는 거기도 해요.”

인자하던 미소가 순간 날카롭게 변했다. 마이크로프트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코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작게 눈을 굴리며 혀를 찼다. 마이크로프트 버전의 기도인 것일까. 과학의 신을 향해, 혹은 홈즈 가의 형님이 믿는 누군가에게. 아무래도 윌리엄 피트[각주:3]일 확률이 제일 높을 것이다. 아니면 처칠이라든가. 그리고 추가로 MI5도 더해서.

“이 병실에는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앞으로 하루 이틀 동안 환자 모니터의 어떠한 이상 징후도 그냥 넘어가지 않도록 확실히 교육을 받은 간호사가 배정되어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당신이 현재 누워 있는 병상의 환자가, 물론 모든 의사들은 장기 이식 수술의 후유증을 알고 절대 선을 넘어 무리하려 들지 않을 테니, 이 방을 담당하는 간호사 모르게 저 침대의 환자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겠죠. 오, 침대라 함은 물론 내 동생이 현재 잠들어 있는 척 하고 있는 자리를 뜻하는 겁니다.”

아.

“추가로, 늘 하는 얘기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새겨 들으십시오. 당신에게 주의를 해야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내 동생에게 심히 부족한 개념을 깨어버리는 일과 같이 딱한 행동을 했을 시 당신에게 잠재된 위험이 찾아갈 겁니다. 그러나 저 애는 어느 정도 그것을 필요로 하기는 합니다. 지금 상황으로 미루어 보자면 명백하게도 그렇게 의심이 들 법하지요. 마지막으로,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은 위험을 좋아하죠. 그러나 이 병원의 간부들을…설득하는 일은 지난 사흘 동안으로도 충분했으니, 그 이상이 필요해지는 것은 나로서도 반갑지가 않습니다. 몸조심 하도록 해요, 존. 심장 이식은 다루는 것이 차이가 다른 어려운 일입니다. 내 대신 동생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미리 전해주시지요.”

말을 마친 마이크로프트는 끝으로 한 마디를 남긴 후 사라졌다.

“다음 주에 보도록 하지요. 오후 6시 정각입니다.”

번개처럼 지나가버린 대화의 충격에서 벗어나고 나자, 존은 그 다음 3분 동안 마이크로프트의 조언을 깔끔히 떨쳐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박수 측정기와 수혈팩이며 몸에 붙어 있는 것을 모두 떼어내 가지런히 침대 위에 정리한 후 자신의 자리 옆에 있는 기계를 조용히 껐다. 잘 하는 짓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는 의사니까, 알 수 있었다. 그는 꽤 기분이 괜찮은 상태다. 조금 지치긴 했지만 그 외에는 모두 좋았다.

존은 뻣뻣한 다리를 들어 셜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가 사랑하는 남자가 하얀 얼굴로 누워 수많은 호스와 바늘과 선에 얽혀 있는 모습에 어느 샌가부터 마음이 지독하게 아파왔다. 그의 아름다운 눈은 감겨 있었고, 파르란 핏줄이 돋은 손목 안쪽에 바늘을 고정한 테이프가 보였다. 목 아래쪽에 하얀 면 반창고의 끄트머리가 드러나 있었는데 빳빳한 병원 이불과 하늘색 환자복 밑으로는 반창고가 더 많이 붙어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장은 보고 싶지 않았다. 조금 이따가 확인하기는 할 테지만, 당장은? 아니다. 지금 당장은 이 남자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또 두 사람이 새로운 일상을 시작할 거라는 기대에 더 관심이 많았으니까.

셜록이 베개 위로 살짝 고개를 뒤틀었다. 존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듯 했다.

존은 이 녀석에게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가 입을 맞추고 싶은 녀석은 심장 박동을 아주 민감하게 잡아내는 장치와 연결되어 있으니 참기로 했다.

“안녕, 여기 있었구나.” 존은 고개를 숙여 잠에서 반쯤 깨어난 그를 맞이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셜록의 입술 위에 손끝이 닿았다.

눈은 꼭 감은 채로, 셜록은 체셔 고양이처럼 히죽 날큼한 미소를 지었다.

웃음을 꾹 누르며 존은 웃는 입가를 쳤다.

“어허.” 존은 애정 가득, 꾸짖으며 셜록의 입꼬리를 어루만졌다. “어딜 웃어 ― 너, 계속 깨어있었던 거지? 그렇지? 물론 그랬겠지. 이 교활한 자식. 그래, 나만큼 재미라도 봤기를 바란다.”

대답이라도 하듯 셜록이 눈을 떴고, 동시에 존을 올려다보는 얼굴에 떠오른 웃음은 체셔 고양이에서 찬란하게도 눈이 부신 미소로 바뀌었다. 그러더니, 셜록이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셜록은 모르핀과 옥시코돈 그리고 다는 몰라도 녀석에게 투여되었을 갖가지 약품에 반쯤 절은 채였다. 심장 박동 모니터가 삑삑대면서 마구 날뛰었다. 이대로 가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걸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늘 마지막에 가서는 괜찮아졌으니까. 뭐, 어느 정도는.

진정 좀 할래? 심박수 올라간다. 이러다 간호사들 오면 침대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게 된다구.”

안녕.

셜록은 놀랍게도 시키는 대로 웃음을 가라앉히고는 낮고 탁한 목소리로 느릿하게 인사를 건넸다. 똑바로 쳐다보기 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가 스며나왔다.

“당신 말이 맞았어요, 존. 크리스마스가 일찍 찾아온 거예요. 완벽해 ― 아니지. 그냥 완벽한 정도가 아니야. 끔찍하게 대단해요. 내가 당신의 일부를 가지다니. 이보다 더 좋은 소원이 있을 리가 없었어. 최고야. 크리스마스 최고예요.”

존은 황당한 기분으로 셜록의 창백한 손목 안쪽, 익숙한 자리를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맛이 갔네. 완전히 취했어, 너.”

“날 사랑하는 거죠.”

“그래, 맞아, 그게, 이런 식으로 고백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너답네. 너다워, 기억 나는구나. 그래. 좋은 추론이야. 나중에 어떻게 얘길 해야 하나 좀 걱정했는데, 어색한 대화를 건너뛰게 됐네.”

“당신은 날 사랑하고 내 몸 안에 당신의 장기를 나눠가졌단 말이죠.”

셜록은 생애 최고의 천지가 개벽하는 추리를 해낸 것 마냥 벅차했다. 진통제에 절어 반짝이는 두 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진짜 크리스마스예요. 크리스마스를 서른네 번 견뎌온 보람이 있었어. 최고의 선물이야. 신장을 원했는데 그것도 당신 걸로 받았잖아요. 오, 산타클로스. 정말 대단해. 사실은 단 한 번도 당신의 능력을 의심해 본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는 다 연기였어.”

“왜 이래? 다섯 살짜리로 돌아간 거야? 산타클로스가 세상에 어딨어, 이 바보야. 어쨌든, 맞아. 견뎌온 보람이 있었어.”

존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여 달콤하리만치 한껏 히죽이는 녀석의 입가에 가만히 입술을 얹었다. 셜록은 진통제에 흠뻑 취해있는 상태여서인지 옥시코돈 맛이 나는 것도 같았다. 환상적이다. 셜록이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힘없는 두 손을 들어 존의 얼굴을 한쪽씩 감싸고, 입술이 더 깊이 닿을 수 있도록 재촉했다. 덕분에 존의 자세는 무던히도 힘들어졌고 말이다. 하긴, 셜록 홈즈와 연관되어 쉬운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건, 세상천지가 아는 사실이다. 셜록이란 존재는 뛰어들 만한 가치가 있는 도전인 것이다. 이제 ‘거의’는 지나갔고, ‘말하지 않는 사실들’에 치여 난처해 할 일도 없다. 비가 멎고 홍수가 지나갔으니 남은 건 대화이리라. 서로에게서 배운 언어로 이야기를 하게 될 테다.

부탁이니까 잠시라도 가만히 누워있어줄래, 좀?” 입술을 맞댄 채 존이 말하자, 곧장 셜록의 손에 힘이 빠져나가더니 마침내 그를 풀어주었다. “확인할 게 있으니 진정 좀 해. 그 인도 신중에 뭐냐, 팔 많이 달린 신한테 잡혀 있는 것 같네. 문어랑 씨름하는 것도 아니고, 원. 가만히 있으라니까! 확인 좀 하게. 이 빌어먹을 자식아, 수술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움직이는 거야. 실밥이 터졌으면 어쩌려고. 어디 보자.”

“네, 의사선생님.”

“오, 계속 그런 식으로 해봐.”

존은 느지막이 웃으면서, 셜록의 환자복 여밈을 풀고 깃을 조심스레 젖혔다. 흉관에 튜브를 삽입한 곳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아래로는 셜록의 배가 거즈와 그 위를 감싼 반창고 사이에 거의 구분이 안 되리만치 창백해져 있었다. 존이 수술 자국 위를 살피는 동안 셜록이 그의 다른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는 마치 그것이 이 온 우주에서 제일 헤아릴 수 없으리만치 흥미로운 존재인 것처럼 들여다봤다.

“당신 손,” 천천히 속삭이는 소리와 함께, 셜록은 둘의 손을 엮고 존의 손등을 서늘한 뺨에 가져다댔다. “따뜻해요. 든든하고. 이걸로 사람을 죽였는데, 한편으론 나를 구원해줬단 말이죠. 아이러니하죠, 마음에 들어. 대단하다는 거, 알아요? 당신 몸에서 손이 가장 좋아요. 항상 그랬어요. 근데 이제 몸 속에 당신의 장기를 하나 가졌잖아요? 뭐가 더 좋은지 결정을 못 하겠어.”

“그래, 그래.” 존은 그의 몸에 도로 가운을 덮어주고 일어났다. “지금은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야 아무 소용없을 거야.”

몸에 대해 시적인 표현을 늘어놓는 행위는 아무래도 존이 할 법한 일이지만(존 스스로의 몸이 아니라 셜록의 몸이란 건 잠시 잊자) 존은 이렇게 진통제에 취해 상냥하고 포근한 셜록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 두 사람이 조금이라도 잠을 잘 수 있다면 그게 오히려 신기할 거다. 셜록의 약에 푹 절은 제임스 조이스[각주:4] 풍의 산문 낭송을 듣느라 즐거워할 시간도 부족할 테니까.

“오늘은 푹 자고 결정은 내일 하지 않을래?” 조용히 속삭이며 셜록의 물결치는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겨주자 녀석은 만족으로 한가득 찬 한숨을 달게 내뱉고는 나른하게 몸에서 힘을 뺐다. “그리고 앞으로 내년에는 말썽 저지를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마. 크리스마스 소원 목록이랍시고 ‘팔다리’나 ‘뇌’ 따위를 적어서 주지도 말고. 이미 내 몸에서 중요한 장기를 두 개나 빼갔으니까. 더 이상 내줄 생각은 없거든, 그러니 갖고 있는 것 잘 간수해야 할 거야.”

“두 개?”

그렇게 묻는 예쁜 푸른 빛깔의 눈동자가 스르르 감겼다. 이불 아래로 힘을 빼면서도, 존의 뺨에 얹은 손은 그대로였다.

“그래.” 묻고 답하는 역할이 바뀌게 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잘 생각해 봐.”

약 10초의 정적 후, 대답이라도 하듯 셜록은 정신없이 작은 침상이 마구 흔들릴 정도로 병실이 떠나가라 웃기 시작했다. 존 왓슨은 의사였으므로 거울 뉴런[각주:5]의 효과를 알고 있었으며, 덩달아 셜록을 따라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이었으리라. 존은 침대 옆구리에 앉아 셜록의 짙은 곱슬머리에 손가락을 엮고 밝아오는 고요한 런던의 아침을 만끽했다. 갑자기 그의 삶에 파고들어 자리를 튼 커다란 행복에 눌려 가슴 속이 뻐근하게 아파왔지만, 그래도 그는 좋기만 했다.



존 왓슨은 이 모든 것들이 곧 머지않아 둘만의 새로운, 평범한 일상으로 느껴질 거라고 확신했다.

오늘은 아직 그 날이 아니었다. 전혀.

“너희 부모님 댁에 거의 다 온 것 같아.”

존은 그의 무릎 위에 기대 세상모르고 졸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서 까만 잉크색 고수머리를 살며시 치워내며, 말을 걸었다.

그로부터 8일 후.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다. 두 사람은 두 시간 반 동안 기차를 타고 데번[각주:6]의 한 시골마을로 내려와 택시를 타고 달리는 중이었다. 그동안 존은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이곳은 상류층만으로 점거되어 있는 지역임을 알 수 있었다. 바깥은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다. 완만한 구릉 위를 얼룩덜룩하게 수놓은 하얀 눈밭 위로 널따란 정원, 저택, 심지어는 무슨 성 수준으로 커다란 집들이 이따금씩 스쳐지나갔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런 건 상관없다. 존은 그보다 훨씬 좋은 것에 정신을 쏙 뺏기고 있는 중이니까. 3에서 4마일 째를 달리는 택시 안, 셜록은 존의 무릎에 머리를 댄 채 몸을 말고 약 기운에 살포시 취해 숯빛 덩어리가 되어 열을 발산하고 있었다. 기차 여행을 하는 두 시간, 존은 셜록의 희디 흰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동시에 셜록의 머리칼을 만지지 않도록 열심히 스스로를 설득했다. 알고 보니까, 셜록의 머리칼은 다소… 민감한 부분이었다. 지난 주 내 두 사람의 병실에 간호사들이 불쑥불쑥 머리를 들어밀던 터에 어색한 상황이 무척 많았는데, 덕분에 입을 맞추다가도 바이탈 사인을 확인하거나 이식 수술한 자국을 달래는 등 딴청을 피워야 했다. 셜록의 말에 따르면, 지루하지 않는 거라곤 마침내 사건을 종결시켰다는 사실 하나였다. 셜록의 추리가 정확했다. 경찰의 조사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범행을 저지른 신부는 (스턴데일 신부라고 하는 듯 했다) 콩고 지역에서 거주하는 어느 여성과 사랑에 빠졌고, 카톨릭 교회로부터 혼인 허락을 거부당해 피의 복수를 시작했다. 이식 수술을 한 다음 날 레스트레이드가 두 사람의 병실로 찾아와 이러한 사건의 전말을 알려주었다. 물론 은근히 두 사람을 살피는 눈빛도 빠트리지 않고 말이다. 존은 듣는 동안 셜록의 침대 옆에 앉아 이불 위로 그의 기다란 허벅지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내 생각엔 정말로, 누구든 서로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권리가 있다고 봐. 그렇지?” 경위는 존의 자세에 대해서는 일부러 한 마디 않고 그렇게 의견을 말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은 회상에 잠겨 있을 여유가 없다.

흥, 하고 밑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그는 현실로 돌아왔다. “늘 그렇듯 환상적인 추리네요. 당신은 대단 그 자체에요, 존. 지금 막 클린턴 사유지를 지났으니, 20분 뒤면 도착할 걸요.”

존은 어떻게 그걸 알았느냐고 묻지 않는다. 어차피 이제 와서는 물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셜록의 머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절대로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을 테고, 또 어쩔 땐 그게 사실 그에게도 좋은 일일 거다. 그래서 대신 그는 셜록의 등을 달래듯 조심스레 쓰다듬어 주었다. 셜록 고양이처럼 몸을 말고 녹진하게 풀어져, 난로처럼 따끈따끈하게 열을 뿜었다. 존은 이식된 장기에 거부반응이 있지는 않을지 항시 눈여겨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다행히 아무런 증세도 없었다. 어찌되었건 존 왓슨은 의사이고, 사랑하는 남자가 탈 없이 낫도록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당연한 것이다.

“기분 좀 나아졌어? 너 엄청 따뜻해졌네.”

당신이 따뜻한 거죠.”

존은 코웃음을 치면서 셜록의 왼쪽 어깻죽지에 별 무늬를 그리는 숯빛 트위드 옷감 위로 손을 올려 쓸어주었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가 친구 하자고 하겠네. 걔네들도 너처럼 되바라지게 말대꾸 잘 하면 좋아할 거야.”

“아뇨, 아뇨, 아니야. 존, 정말이지 ― 논리적인 거죠. 당신의 평소 체온은 원래 나보다 높아요. 생각해 봐요. 이제 난 당신의 일부가 되어 있는 거죠. 평생 이렇게 좋아본 적이 없어.” 그의 무릎에서 셜록이 졸리게 웅얼거렸다. “여튼 이쯤 왔으니 도착하기 전에 슬슬 몇 가지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어야겠네요. 우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마이크로프트의 변화무쌍한 대화 방식에 대비해 마음 단단히 먹고 준비해야 좋을 겁니다. 의회에서 3백년간 축적된 공격 방법을 연마한 인물이니까요. 이미 엄마에게 연락해서 존이 좋아하는 위스키를 잔뜩 준비해 놓으라고 했어요. 저녁에 마시면서 흠뻑 취한 모습을 보고 싶어요. 집에 가보를 모셔둔 곳도 전부 보여줄게요. 부탁이니까 몇 개 망가뜨려줘요. 형한테 덮어씌울 거니까 괜찮아요. 엄청 재밌을 거예요.”

길 양옆으로 보이는 나무들은 서리로 뒤덮여 하얗게 빛이 났다. 두 사람이 탄 택시가 구부러진 시골길 사이로 천천히 들어가 어느 회색 빛깔의 저택 앞 커다란 원형 진입로에 다다랐다. 저택의 외관은 불을 밝힌 하얀 꼬마전구로 깔끔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저택이라. 존 왓슨은 지난 한 주 동안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을 보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곳은 그가 사랑하는 소시오패스 아무개의 어머니가 사는 저택이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지금 겁이 무척 나야 정상일 것이다.

셜록 홈즈에게 있어, 존 왓슨은 ‘평범한 보통 사람’이 아니다.

택시가 미끄러지듯 천천히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셜록은 마침내 몸을 일으켜 숨을 마시며 눈을 떴다. 아직은, 조금 멍해 보였다. 진통제를 처방받아 먹고 있는지라 약에 취에 푹 퍼진 모습이 귀여웠다. 역할이 바뀌니까 얼마나 재미있는지. 셜록은 따뜻하고 나른해져서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셜록의 보드라운 입술에 반, 또 바다 거품이 이는 듯한 빛깔의 눈동자에 나머지 반의 관심을 쏟느라 다른 거라곤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함께해오며 셜록의 수만 가지 다른 면을 많이 봐왔지만서도 이렇게 졸리고 헝클어져서는, 그가 이 세상에서 산소를 제공하는 유일한 존재인 것마냥 눈을 빛내며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존은 금세 마음에 쏙 들고 말았다. 마음이 몰캉해지는 이 즐거움을 어느 것에 견줄 수 있을까. 앉아만 있으면 지루했던지, 셜록은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는 웃기 시작했다. 존은 그의 목에 손을 올리고 뒷덜미의 솜털 같은 머리칼을 살며시 쓸었다. 운전석에서 택시기사가 쳐다보고 있지만, 홈즈네 엄마가 번쩍번쩍한 저택에서 걸어나와 기다리고 있었지만, 존 왓슨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는 새로 잡은 이 행복을 절대로 느슨하게 놀려둘 생각이 없었으니까.

“도착했어.”

“준비해요.” 셜록이 말했다. “그리고 이제 존 당신은 내 거라는 걸 명심해요. 물릴 수 없으니까, 당신이 내게 준 것도, 우리 사이도. 늦었다고 생각해도 소용없어요. 우리 집에 캐묻기 좋아하는 사람이 둘 있는데 겉으로는 어느 정도 자비를 베풀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종교재판이라도 하듯 인생이 샅샅이 파헤쳐질 거예요.”

“상관없어.” 존은 나긋하게 말하며 셜록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하지만 확실히 내 사적인 공간을 가질 권리는 없어진 것 같네. 종일 나한테 달라붙어서 잠만 잘 생각이야? 그렇게 편해?”

“당연하죠.” 셜록은 느지막한 한숨과 함께 존의 목, 피가 뛰어오르는 부분에 입술을 문질렀다. 존은 새까만 곱슬머리 안에 얼굴을 묻은 채로 더 이상 기쁠 수 없을 것처럼 웃었다. 그 역시, 휘황찬란한 빛에 감싸여 천 개의 조각들로 찬란히 흩어질 것만 같이 벅차올랐다.



존 왓슨은 머지않아 이 모든 것이 새로운 방식의 평범함으로 느껴지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도 아직은 그 날이 아닌 것 같다.

“대학 시절에 축구를 했군요. 셜록에게서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 없어서 말이죠.”

“아… 그게, 네, 그랬죠.” 사실 그런 얘기는 해본 적도 없었다. “장학금 제도의 일환으로, 1학년 때―”

말을 건넨 여인이 우아한 마호가니 식탁 위로 고급스런 크리스털 잔을 내려놓자 맑은 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앞으로 손을 포개고 자신만만한 웃음을 넌지시 비추며 그를 건너다보았다. “물론 왼쪽 발목이 골절되었던 것으로 알 수 있지요.”

“왼쪽 무릎 측부 인대가 파열된 것도 알 수 있죠.” 식탁 끝에서 마이크로프트가 따분한 듯 덧붙였다. 그러고는 잔 속의 호박색 브랜디를 휘 돌리고 나머지를 단숨에 마셨다.

“저, 그게―”

그냥 골절만 있었어.” 존의 오른쪽으로 약 2인치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남자가 대신 쏘아붙였다. “정말이지, 마이크로프트. 혼자 1848년산 한 병을 모두 마셔버리기 전에 그쯤 하는 게 어때. 지금 남아 있는 것까지 합쳐서 뇌세포가 전부 없어져 버리겠군.”

마이크로프트는 눈을 굴렸다. 엄마는 흥 하고 즐거운 웃음소리를 내뱉고는 돌연 셜록에게 날카로운 눈길을 보냈다. 물론 존의 탐정님은 시선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눈을 돌리고 모르쇠였다. 한편 존은, 눈을 둘 데 없이 식탁의 나뭇결을 바라보는 동안, 요리사가 낮부터 준비했다는 접시 위의 햄처럼 도마 위에 올라 샅샅이 까발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현재의 상황에서 딱 한 가지 제대로 알 수 있는 건 이제 존은 홈즈 가의 기별한 저녁 만찬을 연례행사로 매 해 견뎌야 할 처지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잠시 두어 번 눈을 깜박였다. 포크로 고기를 쿡 찔렀다가, 중국 도기에 부딪치면서 그만 생각보다 큰 소리가 나고 말았다. 그들은 앞서 말한 저택의 짙은 마호가니 색으로 꾸며진 식당에서 과하게 기다란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식탁 위는 크리스털 글래스와 본차이나 접시[각주:7] 사이에 얌전한 색으로 울긋불긋하게 꾸며져 있었다. 식사에는 단 네 사람 뿐이었다. 엄마는 식탁의 윗자리에 자리했고 마이크로프트는 무슨 이유엔지 그 반대에 떨어져 앉았으며, 존과 셜록은 나란히 옆을 두고 앉았다. 만찬은 하나같이 비싼 음식들로 다양하게 차려져서, 제 3세계 국가에 사는 난민들을 모두 먹여 살릴 수 있을 법할 정도로 한 상 그득했다. 그나마도 여기 네 사람 중 셋은 음식보다 존을 관찰하는 데 훨씬 관심이 지대해 보였다. 그건 좀 애석한 일이다. 음식들이 무척이나 맛있었으니까.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런 때 아주, 무척 겁을 낼 것이다.

“나도 골절이라고 본다.” 엄마는 절대 지지 않고 장남에게 톡 받아쳤다. 마이크로프트는 예의 그 ‘어련하시겠냐’는 공손한 미소만 지었다. 셜록은 눈을 휙 굴리고는 존의 허벅지에 다리를 알아채기 힘들 만큼 조금 더 붙여왔다. 그에게서 스며나오는 진한 짜증을 존은 느낄 수가 있었다. …뭐, 역시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약간 불편하고 어색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거기다 말할 것도 없이 음식 맛까지 대단했다. 그러니 괜찮은 것 이상이었다. 어쨌든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이런 일,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을 만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는 거다. 그리고 지금까지 본 바에 의하면 엄마(성함은 바이올렛 홈즈라고 하는데 하지만 존은 앞으로도 이 분을 엄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는 무척 근사한 사람이었다. 물론 엄마의 앞에서 상당히 위압되긴 했다. 그녀는 샤넬 차림에 케임브리지에서 학위를 딴 후 MI5에 곧바로 모집된 여성 세대 중 한 명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했다. 머리칼이 은은한 흰색으로 세어가는 나이임에도 그녀는 두 아들처럼 호기심 가득한 탐구적인 태도는 똑같았다. 영민하게 반짝이는 눈은 아들들보다 조금은 따스했다.

언젠가 그의 곁에서 저렇게 나이가 들 셜록의 모습은 어떨까, 존은 무척 궁금해졌다. 그 동안 함께 보낼 수없이 많은 크리스마스는 또 어떻고. 존은 그의 옆에 앉아있는 이 남자가 눈처럼 하얗게 센 머리에 안경을 쓰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며, 점잖지 못하게도 벌컥이며 뛰는 심장을 달래야 했다. 그 때가 되어서도 셜록은 여전히 멋질 것이다. 누구나 사랑을 하면 그렇게 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 날은 먼 훗날의 얘기가 될 것 같다.

“골절이었습니다.” 존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의학부를 졸업할 때까지 썼던 등록금을 모두 합친 돈보다 더 비싼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이번엔 마이크로프트에게 말했다. “그리고 인대 파열도 있었고요. 그러니 엄밀하게 따지자면 두 분 다 맞겠네요. 그런데 그건 축구를 하다 다친 건 아니고―”

무릎에 퍽, 주먹이 들어왔다.

“―의학, 연구를…하다가… 으음, 뭐라 해야 하나, 공부를 너무 열중해서 한 모양이에요. 그러다 넘어져가지고 친구네 2층 발코니에서 떨어져서 다쳤죠.”

 “아, 의학 연구 말인가요.” 마이크로프트가 잔을 옆에 내려놓고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그 시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는 게 좋겠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간 당신이 남긴 행적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 어느 정도 삼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

존도 어느 정도 그의 옆에 앉은 남자에 대해 자제를 하고 살 필요가 있다고 생각은 했다. 그러나 존 왓슨은 <보병대의 행진>과 아프가니스탄의 작열하는 여름 태양에서 살아남았으며, 위스키 병을 친구 삼아 뼈가 시리는 외로운 밤들과 바람이 불던 옥상을 견뎌내었다. 이렇게 지난 5년간 겪을 만큼 겪고 볼 만큼 봤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 갈 길은 멀었다. 그도 셜록 홈즈만큼이나 미쳐버린 건 아닐까?

어쩌면, 두 사람은 원래 원더랜드에 있어야 맞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식사를 세상에서 가장 문제 많고 또 가장 멋진 가족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에, 무척 두려워 마지않을 거다. 하지만 존 왓슨은 그렇지 않았다. 셜록의 손이 그의 손바닥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존은 손목의 혈관을 따라 엄지로 어루만지며, 맞닿은 곳에서 자신의 몸으로 울려퍼지는 셜록의 강한 심장 박동으로부터 용기를 얻었다. 존은 위스키를 한 모금 더 마시며 웃음을 삼키고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네.” 그는 침착하게 마이크로프트의 눈빛을 마주했다. “그 당시에 대해 얘기해 보죠.”

존 왓슨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계속



역자의 말


오래 기다리셨죠. 다음 편이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크리스마스 목록으로 시작을 했으니 크리스마스로 마무리를 지어야겠죠.

처음에 제가 사정이 있어서 셜록을 존댓말 연하남으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 사정이란 게 바로 이것이어요.


"날 사랑하는 거죠. 당신은 날 사랑하고 내 몸 안에 당신의 장기를 나눠가졌단 말이죠.(아드레날린↑↑)"


이 부분을 꼭 존댓말 연하남 버전으로 써보고 싶어서....음....(....) 제 사심 가득한 번역이었사와요.



이번 편에서 이런 것을 배웁니다.

1. 세인트 존 오오오 성스러웟 2. 숯빛 덩어리가 된 셜록이라면 달콤하게 굴 수도 있어 3. 둘이 좋아 죽는구나ㅠㅠ 달다ㅠㅠ 4. 오오 성자 존

저도 세인트 존을 갖고 싶어요! 숯색 셜록 난로 갖고 싶어요~




  1. Part 1에서 크리스마스 목록을 적어보라는 말에 셜록이 한 대꾸. '기증'이라는 말만 바뀌었다. [본문으로]
  2. 헤로인 치료제. [본문으로]
  3. 19세기 영국의 정치가이자 총리. 윌리엄 윌버포스와 함께 영국에서 노예제도를 폐지시키는 공을 세웠다.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2006)>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이 역할을 맡았다! [본문으로]
  4. 20세기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대표작으로는 <율리시스>를 저술했으며, 영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율리시스>는 난해하기로 유명해서 읽어보면 (셜록의 헛소리같은) 소설을 읽다 시간과 공간의 방에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본문으로]
  5. 타인의 행동을 관찰할 때 활성화돼서, 마치 자신이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신경세포. 타인의 행동에 공감하고 따라서 하게 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자세한 내용은 <a href="http://ko.wikipedia.org/wiki/%EA%B1%B0%EC%9A%B8_%EC%8B%A0%EA%B2%BD_%EC%84%B8%ED%8F%AC"><u>→위키 백과</u></a> 참고. [본문으로]
  6. 잉글랜드의 남서부 지역. [본문으로]
  7. 뼛가루를 넣어 만드는 중국식 도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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