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lude

[Johnlock] 우리에게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열정이 있다 │ Our Enthusiasms Which Cannot Always Be Explained - 4 본문

Sherlock_중편/시리즈

[Johnlock] 우리에게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열정이 있다 │ Our Enthusiasms Which Cannot Always Be Explained - 4

topsecretum 기밀선녀 2015.04.04 16:00
#, , ,

← Part 3

↑ 처음부터 읽기






Part 4




셜록 역시 어느 정도 약에 취한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온전히 제정신이 아니라서 (하긴 언제는 안 그랬냐만은) 자정이 넘은 시각 눈으로 질척거리는 런던 중심부의 어딘가로 나가버렸다. 눈이 오기 시작하면서 추위가 한결 혹독해졌다. 반쯤 녹은 얼음 결정이 단단한 진눈깨비와 함께 허드슨 부인과의 대화 후 곧바로 문 밖으로 뛰쳐나온 존의 얼굴에 마구 퍼부어댔다. 물론 그는 셜록이 어디로 갔는지 추측해 볼 수 있었다. (‘희망의 영묘’라는 건 ― 아니, 늘 그랬듯 녀석은 최고로 드라마틱하게 살려고 열심이다. 얼른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이 지역에는 성당이 세 곳 있고, 그 중에서 두 곳만이 이번에 아프리카 선교 활동에 사제를 보냈다는 정보가 나왔다.) 재킷을 꼭 여민 두 손은 얼어붙었고(택시가 다닐 시간이 아니라서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달려야 했다), 심장이 요란하게 뛰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총과 함께 챙긴 손전등이 주머니 안에서 부딪히는 소리를 자아냈다. 무엇보다도 셜록의 자기 파괴적인 면모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심각했고 또 어떻게인지 그런 남자를 ____하는 그는, 존 왓슨은, 일찍이 창문가의 그 남자에게 다가가서 속내를 얘기해야 했음에도 참지 못 하고 집을 나와버리는 말도 안 되게 평범한 행동을 해버리고 말았다. 제길, 그래도 난 네가 무슨 짓을 하건 곁에 있을 거라고. 그는 무심코 번쩍이는 빨간 버튼을 눌러 그가 ____하지만 절대로 그것을 말할 수는 없을 남자에게 정말로, 절대로 원하지 않았던 일을 촉발시키고 만 것 같았다.


존 왓슨을 도박꾼이라고 한다면, 이건 조금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니다.


존 왓슨이 도박꾼이라면, 이건 무척 안 좋은 상황이었다.


이건 정말로,


무척


좋지 못한


상황이다.






셜록 어디 있는지 알아요?  ―JW


알 리가 있나. 단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살인사건의 검시 결과를 알려줬어. 용의자 한 명은 지금 구금중이고 다른 하나는 찾고 있는 중이야.


그리고 트레게니스와 그 가족들이 낮에 시신으로 발견됐더군. 셜록을 보면 얘기 전해줘.


곧 다시 전화해서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보고할게요.


술집은 다른 날에 가야 할 모양이군. ―GL






처음의 희망과는 달리 존의 추리 솜씨는 그동안 그다지 강화되지 못한 모양이었다. 첫 행선지는 허탕이었다. 한 명의 영혼조차(산 자든 죽은 자든)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향한 성 조지 성당은 달랐다. 무채색의 웅장한 건물 입구를 장식한 붉은 카펫부터 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빛나는 허울로 남겨진 고풍스런 돌기둥도 여기저기서 존재감을 주장했다. 마침내 두 번째 목적지에 도착한 존은 몸을 굽히고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셜록과 자신이 허드슨 부인이 ‘다퉜다’고 표현하는 귀여운 투닥거림이나 하기로 했다면 무척 사는 게 편해졌으리라. 주변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카톨릭 성당은 언제나 열려 있는지라 존은 주변을 수월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러나 텅 빈 주차장과 조용한 길가에는 사람의 형상은커녕 멀리서 흘러오는 발소리조차 담고 있지 않았다. 셜록이 뭔가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다면 여기서 일어난 일일 거라 생각하며 존은 말아 쥔 손으로 살며시 문을 밀어, 불 꺼진 회당 안으로 손전등을 비췄다. 좁은 빛무리가 어둠을 깨고 스며들어가 입구를 장식한 흰색과 금색의 아름다운 기둥을 비추고, 점잖은 아치와 짙은 빛깔의 나무 좌석을 드러내고, 또 다시 암흑 속 벽면에 늘어진 스테인드글라스에 색을 불어넣었다. 이윽고 손전등 빛이 흑백의 체크무늬 대리석 바닥을 따라 연단 위로, 또 제대 쪽으로 길을 만들자 그곳에 완전히 색다른 광경을 드러내었다.


안경을 쓴 나이든 사제 하나가 제대 근처에서 무릎을 꿇고, 어둠에 싸인 채 널브러져 있는 누군가를 보고 있었다.


정정하자. 안경을 쓴 나이든 사제 하나가 제대 근처에서 무릎을 꿇고, 어둠에 싸인 채 널브러져 있는 누군가를 보고 있었고, 그 누군가는 셜록이 아니었다.


존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살인이고 뭐고, 사망자 대열에 합류하지 않도록 셜록을 설득해야겠다는 게 처음 떠오른 생각이었다.


“누구시오?(Hello?)” 긴장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생양으로부터 고개를 든 사제가 이쪽을 보더니, 손전등 불빛에 잠시 어지러운 듯 했다. 어둠 속에서 사제의 검은 옷이 피를 흠뻑 맞아 요사스레 번들거렸다. 지금껏 아무에게도 발각되지 않고 저런 꼴로 탈출을 했다는 게 참으로 기적이었다.


제기랄, 존은 재빨리 입구와 예배실을 가르는 흰 나무 벽에 붙어 손전등을 감췄다. 빌어먹을 연쇄살인범조차도 마주치면 저렇게 평범한 말(Hello)부터 시작한다고, 셜록.


성당 구석에 붙어 모습을 숨겼음에도 존은 음산하게 일렁이는 한 개의 촛불을 본 순간 뇌가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왜 모든 일이 이다지도 어렵게 가야만 하는 걸까. 하지만 괜찮다, 전부 괜찮았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괜찮았다. 어차피 겪을 것, 빠르게 해치우는 게 최선이었다. 존은, 한 번의 동작으로 번개같이 총을 뽑아 안전핀을 풀었다. a) 군대에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고 또 b) 군대와 암흑 속에 너무 오래 있던 사람으로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손전등과 함께 총을 똑바로 조준한 채, 범인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초 내려놔.” 존은 좌석을 가로질러 큰 걸음으로 다가서며 명령했다. “당장.”


널브러진 시신으로부터 벗어난 사제는 고개를 들어 온전한 공포에 휩싸인 얼굴로 존을 올려다보았다.


“내려놓으라고―”


그 때 사제가 얼른 촛불을 꺼버리자 손전등의 좁은 불빛 바깥은 완전한 암흑에 휩싸였다. 사제는 날래게 움직였고 그를 향해 다가가던 존의 정면에서, 짙은 환각제 향이 얼굴에 훅 끼쳤다.


제길,


날 건드리다니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는 팔로 코와 입을 막고 세게 기침을 한 번 뱉었다. 뭐가 들어간 건지는 몰라도 폐가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셜록이 같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다시, 셜록이 여기 없는 게 다행이었다. 여기 있었다면 보나마나 뭔가 바보같은 짓을 했을 게 분명하다. 셜록은 휘황찬란한 빛으로 반짝였기에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을 거다―


왼편에서 작게 삐걱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알아챈 순간 그는 정신을 차리고 몸을 돌려 총과 손전등을 겨냥했고 사제가 좌석에서 펄쩍 뛰어내려 피하면서 칼을 치웠다. 그의 앞에 선 남자는 체크무늬 대리석 타일 위로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제야 사제를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게 된 존은 몇 가지를 알아차렸다.


1) 당신


여든 살은


되어 보이는군


수년에 걸친 군인 생활에 더해서 점잖지 못한 짓은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음에도, 존은 웃음이 나오는 입을 꾹 다물고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수고를 더 들여야 했다. 그보다도 제일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a) 미리 예상을 해서 입과 코를 막아두었고 또 b) 이미 이 약물에 대해 충분히 알 만큼 알았을 뿐 아니라 경험도 해 둔 후였기에 2) 그다지 약에 중독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제가 칼을 들고 서서히 주변을 돌며 기색을 살피기 시작했다. 존은, 사실 그다지 약에 취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에게는 상당히 중독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매우 운이 좋았음을 깨달았다.


“넌 날 못 죽여.” 소름끼치도록 조용한 억양으로 입을 연 사제는, 존의 목덜미를 노리듯 칼을 치켜들었다. “넌 아주 강력한 환각제에 취한 상태야. 더군다나, 난 신을 섬기는 사람이거든.”


오, 사제는 존의 도덕적 잣대를 몹시 오해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오늘의 도덕심이라면 특히 말이다. 존 왓슨은 물론 좋은 사람이다. ‘신을 섬기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좋은 사람이 할 법한 일이 아님에도, 존은 무엇보다도 영국인이었고 좋은 영국인이 으레 그러하듯 천주교가 아니라 영국 국교회의 사람으로 길러졌다. 어찌되었건 모두 차치하고서라도, 셜록 홈즈와 런던의 전쟁터를 누비며 살아온 지난 삶은 존 왓슨에게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줬다. 칼을 든 미친 사제의 그칠 줄 모르는 살육의 욕구만으로도 이미 증거는 충분했다. 그를 고깃덩어리처럼 탐욕스레 훑는 사제의 시선에 행동을 결정했고, 눈 깜빡하는 사이 미간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데 양심의 가책은 필요하지 않았다.


명백하게도, 자기 방어다.


그렇게 하기로 선택을 한 다음에 존 왓슨이 할 일은 확실해졌다. 그는 고개를 젖히고, 또 그 다음엔 몸을 굽혀서 약에 완전히 절어 있는 사람처럼 웃었다. 소리내어 가슴이 뻐근해질 때까지 웃어재끼는 동안 총을 쥔 손은 여전히 방아쇠에 올려진 채였다. 그러더니, 셜록과 있을 때 그러하듯 성당 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제는 뱅뱅 돌며 간을 보던 것을 멈추고 달려들어 목의 동맥을 향해 칼을 내질렀다. 존은 단번에 총을 조준하고, 그때까지 생각해 두던 멋진 결정타를 날렸다.


“기대를 깨버려서 미안하군, 안됐지만.” 존은 고개를 까닥인 후, 170cm의 몸을 곧게 펴고 사제의 두 눈 사이에 조준한 총을 발사했다.


늙은 사제는 흑백의 바닥 위로 무너졌다. 몸에서 빠져나온 피가 개울이 되어 체크무늬 타일 사이로 흘렀다.


존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어둠 속에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총을 다시 집어넣고 이번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손전등이 몇 미터 떨어진 곳의 나무 좌석 아래로 굴러가 성당 벽면의 스테인드글라스 한 조각을 푸른색과 붉은 색의 파편으로 빛내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손전등을 집어 들어 이 성당이 스테인드글라스 속에 기념하기로 한 끔찍한 장면이 무엇인지 살필 여유가 없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통제할 수 있게 되고 나니, 어느 센가 자신은 악명 자자한 살인사건의 한가운데에 휘말려 있었다. 정말 대단하기도 했다.


깜깜한 손전등의 빛무리를 빌려 문자를 적는 동안 그는 차츰 호흡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악인이라 할지라도 사람을 죽인 데서 필연적으로 돌아오는 들끓는 아드레날린에 혼란을 겪는 몸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 질 수 없는 것이었다. 하물며 전쟁터 한 가운데에서조차도 그랬음을― 그러나, 그럼으로 인해 그는 변함없이 감사했다. 거의 100퍼센트에 달하는 중독 없는 화학 물질이었기에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문자는 셜록에게 보냈다. 당연하게도 셜록은 늘 먼저다.


화내지 말고 들어


어쩌다가 성 조지 성당 살인사건을 해결해버렸어


감사는 나중에 받을게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답장해


―JW


그런 후에는 레스트레이드에게 연락했다.


성 조지 성당으로 오세요. 지금 당장.


조서 준비해 둬요. 방금 사람을 죽였으니까.


그리고 혹시 모르니 구급차도 불러야 할 것 같아요. ―JW


맙소사. 곧 갈게. ―GL


맥주 세 잔을 사야겠네요. ―JW


펍은 다음에 가는 걸로―


그리고 바로 그 때,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익숙한 문자 알림 소리가 그의 오른편으로 대략 20피트 떨어진, 예배실의 구석진 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온전한 암흑 속으로부터.


이건 평범한 일이 아니다. 예전의 평범함도, 새로운 평범함도 아닌 전혀 다른 것이었다.


피가 차게 얼어붙었다. 휴대폰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서, 존은 급히 손을 더듬어 그것을 낚아챈 다음 재킷 주머니 안에 쑤셔 넣었다. 손전등마저 잊은 채 그는 날래게 달려, 터질 듯한 심장을 붙들고, 공포에 질린 몸을 끌고 어둠에 잠긴 성당의 구석에 다가가 이렇게 입을 열었다―


“셜록?”


젖은 기침 소리가 작게 되돌아왔다. 그대로 바닥으로 내려앉은 존은 팔을 뻗어 완전히 깜깜하게 물든 앞을 더듬었다. 소리가 들린 곳의 타일을 짚으니 흠뻑 젖어서 미끄러웠다. 버티고 나아가려 했지만 미끄러워서 방향도 모르는 채로 계속 중심을 잃었다. 손이고 무릎이고 할 것 없이 온 몸에 피칠갑이 되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게 중요할 리가 없었다. 셜록이 여기 어딘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그건 전에 없이 제일 최악의 일이다. 상자에 갇혀서 <보병대의 행진>을 듣는 것보다 나빴다. 3년 전 핏자국이 말라붙은 푸른 목도리를 봤던 것보다 더 나빴다. 그리고 피 속에서 토끼굴로 빠져들듯 미끄러지고 있는 지금 그의 상황은 지금까지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버전의 원더랜드였다.


다시 한 번, 기침 소리와 함께 어디에선가 손이 나와 힘없이 그를 붙들었다. 그 손을 따라가서 존은 보이지 않지만 셜록이 흑백의 타일 위에 널브러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음 순간 채 2초도 되지 않아 셜록이 웅크리고 있음을 알았다. 존은 재킷을 벗어던지고 몸을 수그려 힘이 사라진 셜록의 움츠린 몸을 정면으로 돌렸다. 흥건하게 피에 젖어 따스히 물든 옷깃이 끔찍하게 시린 바닥 위에서 식어가고 있었기에 황급히 타일에서 떼어내야 했다. 셜록의 몸은 이미 더 이상 차가워질 수 없을 만큼 차게 식어 있었다. 이럴 순 없는 거다. 존 왓슨은 종교와 연이 없는 사람이지만 이곳은 성당이고 그는 유아 세례를 받았으니, 여기 품에 그의 탐정을 끌어안은 채 신을 찾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 듯 했다.


“안 돼… 제발, 제발, 안 돼― 셜록―”


핏기 없는 입술을 만진 순간 셜록이 힘겹게 들이마시는 가느다란 숨결이 손가락을 스쳤다. 어둠에 익은 눈 너머에서, 그가 ____하는 남자의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입술을 어루만지는 손끝은 피로 물들었다. 그러더니 손가락 끝에서 피부가 살며시 당겨졌다. 셜록이 웃어 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힘겹게. 어둠 속에서 환히 보이지 못했으나 짙은 하늘색의 반짝이는 무언가가 그를 향했다. 셜록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존은 가슴이 미어지는 일을 많이 겪었다. 여태껏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을 뿐. 그런데도, 지금 그의 품 안에 있는 존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심장을 짓누르고 무너지게 만들었다.


안녕—오, 하느님, 제발—지난 3년간 이 생각만 했어, 널 ____해. 존은 상처입은 자신의 탐정을 품 안으로 끌어안으며 생각했다. ‘거의’는 이제 지나가고 없었다. 꿈꿔왔던 장면과는 전혀 달랐지만 그래도, 드디어 마침내, 셜록이 그의 무릎에 닿아 있었다.


“아까…그거,” 셜록은 아픔으로 움찔 떨며 괴롭게 헐떡였고, 그런 그를 존은 더욱 단단하게 붙들었다. “당신이―마지막에, 그 결정타는 ― 문법적인 점에서―무척―”


존은 품 속의 탐정을 바닥으로 내던질 뻔 했다.


“피를 철철 흘리는 주제에 지금 내 문법을 지적할 생각이 들어? 너 제정신이야?”


“으음…끔찍해…당연하잖아요―난―”


“입 다물어.”  존은 명령을 내리고는 한 팔로 셜록을 붙든 채 나머지 손으로 상처를 확인했다. 셜록의 끔찍한 상태를 발견한 충격이 약간 물러가고 나니 의사로서 조금은 냉정히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어두워서 거의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셜록의 몸이 완전히 난도질이 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피 외에 밖으로 흘러나온 것은 없어서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안도가 됐다. 그러나 찢겨진 채 피에 젖어서 너덜거리는 옷 너머로 조심스레 상처를 가늠해 보는 동안, 존은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고통에 찬 셜록의 몸이 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에 입술을 깨물었다. 살면서 경험해 본 적 없던 극렬한 아픔을 호소하듯, 셜록의 가슴 속에서 흐느낌에 가까운 소리가 흘렀다. 존 왓슨은 자신의 고통을 쉬이 외면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에도, 더욱 명백하게 그는 셜록의 고통에는 겁을 덜컥 먹고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힘겨웠다.


존은, 다시는 그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셜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팔을 올리더니 말라서 뼈가 그대로 만져지는 앙상한 어깨를 감고 있는 존의 손을 가까이 가져가, 숨죽여 흐느낌을 삼키며 입술을 눌렀다. 품 안에서 셜록은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보다도 더 연약했다. 이런 건, 구역질이 날 만큼 싫다.


“어디가 아파?” 존은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재킷을 벗어던진 후 어둠 속에서 피가 흐르는 셜록의 복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바보같은 목소리가 나왔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어느 부분이 가장 아픈지 알면 그곳부터 지혈을 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 부분에서는 이 종잡을 수 없는 남자를 어느 정도 고칠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막 표면으로 끓어오르려는 다른 부분도 있어서, 더는 멈출 수가 없었다. 이미 알아버리고 난 후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전부요.” 쇄골에 얼굴을 묻어오는 셜록의 발음은 느리게 흩어졌다. “그리고 일절의 것이요. 소리와 분―”


“아니, 그만. 그만 해. 됐으니까 포크너인지 뭔지는 집어치워. 평생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입 다물고 가만히 들어줘, 알겠어? 지금 구급차가 오는 중이니까,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충분히 있다구.” 존은 목 안을 마구 할퀴는 두려움을 삼키고 셜록의 이마에 거의, 입술을 누를 듯 가까이 몸을 숙였다. “보통 사람들은 평범하게 대화를 시작할 때 남의 문법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안녕’이라고 인사부터 한다고. 지금 나, 너한테 할 말이 있으니까 잔말 말고 들어줘야겠어. 넌 많이 다쳤고 내가 널 구할 거야. 어차피 여기서 갈 데도 없고. 그러니까 지금 넌 모른 척 도망갈 구석이 없어. 들어. 부탁이니까 평범하게 좀 가자. 보통의 평범함 말고, 우리 식의 평범함. 너도 원하고 있는 거 알아. 다시 해 보자. 지금은 11개월 전으로 돌아간 거고 넌 내 플랫에 쳐들어온 상황이야. 어디 평범한 사람이 한 번 되어보자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때 뭐라고 말할까? 대답해봐, 지적 대마왕.”


“이러는 게… 무슨 소용이죠.” 잦게 토해지는 기침에 존은 조심스레 셜록에게 잡힌 손을 풀어 머리를 기대도록 감쌌다. “당신은 전혀―”


“알아, 난 전혀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네 말 무슨 뜻인지 알고 있어. 너만의 방식으로 내게 표현한 거지, 알아. 나도 해야 할 말이 있어. 네가 허락만 한다면, 하고 싶어. 우리 가끔 가다 완전 다른 언어로 얘길 하니까 서로 못 알아먹겠거든. 그러니까 지금 당장 내가 하는 언어를 배워줘야겠어. 그러고 나서 나도 바로 네 말을 배울게. 나중에 네가 괜찮아지고 나면. 너 내가 제일 아끼는 재킷에 피를 철철 묻히고 있거든. 그러니 그냥 말해 봐. 어서. 내가 듣고 싶어하는 거, 알잖아. 그러니까 잔말 말고 해.”


몇 초간 셜록에게서는 지친 숨결만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말하겠―아―” 피가 스미는 배를 한 번 더 누르자 셜록은 헐떡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안녕.”


이것이, 그들의 새로운 일상이었다. 이케아 가구가 넘치는 작은 플랫으로 셜록이 얼굴을 들이밀었던 11개월 전에 진작 시작되었어야 옳았던 평범한 일상이다. 그의 흰 광대뼈에 주먹을 날리고 나서 ‘키빅’ 소파에 앉아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야 옳았다. 이제 전부 해결된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거의’와 ‘말하지 않는 사실들’이 난무하는 반쯤 미쳐가는 삶 속으로 뛰어드는 게 아니라. 그렇게 둘만의 새로운 평범함이 시작되었다. 셜록이 맘에 들어하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이건 녀석한테도 좋은 일이니까. 그는 셜록을 위해 자신의 언어를 가르쳐줄 거고, 또 셜록은 자기만의 말을 들려줄 거다. 이렇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것이다. 셜록 홈즈를 돌보는 건 그의 상근직이고, 또 존 왓슨은 그것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절대로, 할 수만 있다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신과 싸우래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 처음으로 돌아가자. 다시 11개월 전부터 시작하자구.” 되뇌면서 존은 눈가에서 눈물을 한 줄기 흘리며 그를 좀 더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숨이 가쁘게 차올랐다. 지금껏 모르는 척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전부 털어놓아야 한다는 게 너무도 두렵고 무서웠지만, 꼭 해야 했다. “안녕, 사랑해. 이 나쁜 자식아. 알고 있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겠지. 오늘 나 없이 혼자 밖으로 나가버리기 전에도 알았고, 네가 죽었다 돌아왔을 때도 알았을 거고, 그 빌어먹을 옥상 위에 서 있기 전부터 넌 알았을 거야. 우리 사이에 말하지 않던 얘기들 많지, 하지 않을 얘기니까 꺼내지도 않았어. 너도 그랬고. 우린 결국 우리니까 앞으로도 그렇겠지. 그러니까 계속 나와 함께 있자. 그래야 쭉 더 얘기하지 않고 지낼 수 있잖아.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난롯가에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우리 시간을 나눠야지. 넌 내게 와서 키스를 하고, 아니면 그냥 내 다리에 머리를 기댈 수도 있는데 어쨌든 둘 다 좋아, 그러는 동안 난 으음, 하고 즐기느라 바쁠 걸. 어차피 내 삶에서 지난 5년 동안 그거 말고 다른 생각은 별로 해 볼 일이 없었거든. 아무튼 난 그런 얘기를 하지 않겠지. 너도 나한테 완전히 미쳐가지고 좋아 죽으려고 한다는 걸 말하지 않을 테고. 그렇게 풀리지 않을까봐 넌 겁이 나는 거지. 그것도 알아. 왜냐하면 우리, 어쩌면 우리가 함께 짝이 되고 서로 의지해서 나란히 이 난장판을 헤쳐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가지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비참하게 맴돌아왔으니까. 근데 이거 알아? 나도 무서워.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아. 하지만 난 네가 필요해. 내 옆에 있어. 다른 건 다 엿 먹으라고 하고 함께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 알거든, 그치만 맹세할게, 셜록, 정말 끔찍하고 무시무시할 거라구. 이제 우리만의 새로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자. 네가 ‘안녕’이라고 시작하면 나도 ‘안녕’ 하고 받아주겠지, 그럼 넌 나더러 ‘보통 사람이 아니다’고 할 거고,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 우리 식의 평범함이 되는 거야. 물론 서로에게 진짜 욕 나올 만큼 빌어먹을 때가 있을 테고, 또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되겠지. 우리 생활은 살인사건에, 시체 덩이에, 장기를 늘여 만든 장식품에다가… 옆집 터너 부인의 발코니에 창자가 떨어져서 난장판이 되느라 전부 완전히 혼돈 그 자체가 될 거야. 나는 그게 좋아. 그러니까 부탁이야, 내 옆에 있어줘. 안녕.”


그렇게 털어놓은 후 온 몸에 샘솟는 격렬한 안도감이란 두 뺨을 적시고 흘러내리는 눈물과는 거의 역설적인 감정이었다. 존 왓슨은 절대로 멋들어진 연설 따위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보통 그의 역할은 조용히 듣고 말없이 이해하는 거였다. 점잖은 것의 정도를 넘어선 것이려나. 그러나 다음 순간 그가 사랑하는 남자는 아름다운 얼굴에 찬란한 미소를 띠더니 그의 가슴팍에서 무언가를 말하느라 입술을 움직였다. 그것만으로 낯 뜨거운 혼잣말은 가치가 있었다. 100퍼센트의 가치가. 존은 엄지로 피가 눌어붙은 셜록의 검은 고수머리를 다정하게 넘겨준 뒤, 고개를 숙여 품 안의 남자를 한층 바짝 끌어안았다.


“뭐라고 한 거야?” 그는 슬프도록 차디찬 이마에 대고 속삭였다.


셜록의 목소리는 사라질 것처럼 낮게 가라앉아 있었고, 느껴지는 거라곤 가슴에 와 닿는 울림과 숨결 뿐이었다. 금방이라도 정말 사라질 듯 위태로웠다. 하지만 그 순간, 셜록은 미칠 듯이 행복한 얼굴로 웃었고, 그래서 금방이라도 그 표정이 천만 개의 조각으로 깨어져 흩어질 것처럼 보였다 ― 끔찍하게 다친 몸으로 상처의 모습은 녹록치 않았음에도, 그 어느 때보다도 셜록은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그는 휘황찬란하게 반짝이는 동시에 암흑처럼 꺼져갔다. 바깥에서 사이렌 소음과 달려오는 발소리가 성당의 고요함 속으로 가르고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 존의 관심은 전부 미소 짓는 셜록에게로 빠져들어 사랑하기에 바빴다. 셜록은 떨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감싼 손을 쥐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잡은 손을 가져가 존의 주먹 산등성이 위로 피 묻은 입술을 눌렀다.


“안녕…” 셜록은 그의 품 안에서 미약한 힘으로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 당신의 독백도 꽤 마음에 들지만… 그보단 조용히 하고 그냥 키스해주면 훨씬 좋겠는데.”


구급대원들이 성당의 문을 박차고 몰려들어오는 동안, 존은 그의 말에 따라 고개를 숙였다. 오, 기꺼이 따르리라. 그 역시 오래도록 원해왔던 소원인저.






Part 5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