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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Fighting Gravity - 7 : 마무리 본문

Star Trek_장편/중력을 거스르다

[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Fighting Gravity - 7 : 마무리

topsecretum 기밀선녀 2015.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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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장

마무리





짐은 자신이 졸업하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단순한 졸업식이 아니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 전에 이미 그에게는 엔터프라이즈가 있었고, 졸업을 하면서 훈장과 함께 정식으로 함선을 부여받았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졸업식 자체는 꽤나 침울해졌다. 그 날 엄마와 샘이 왔었다. 어색한 대화를 많이 하게 될 테니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엄마는 중요한 일이라고 뜻을 꺾지 않았다. 엄마는 울었고, 짐은…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라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듣고만 있었다. 최근에는 그러지 않았다. 엄마가 자신의 모습에서 죽은 아빠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 마음이 무척이나 편해졌다.


좌우간, 그가 생각한 대로 여느 졸업생들이나 가족들이 무수히 찾아와 교정을 채우고 수없이 이야기를 했으며, 또 졸업식을 지켜보았다. 그는 이렇게 마주한 올해의 졸업생들 중 자신의 경우와 비슷한 짐을 지닌 이가 없기를 바랐다. 하지만 불과 6년 전 네로에 의해 죽은 무수한 사람들이 그러했듯, 저들 모두가 누군가의 부모이자 형제이고 자녀였다.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아직 누군가의 그늘에 기대어 있는 수많은 졸업생들이 피와 성을 나누어준 부모 가족들의 기대에 미칠 수 있을지 초조함을 느끼고 있을 테고, 그런 그들을 짐은 좋은 추억으로 성장시켜 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다시 한 번 새기며 짐은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긴장되지는 않았으되 행사에 지루함을 느끼는 것 역시 아니었고, 다만 졸업생들에게 무척 자신의 말을 건네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열광적인 갈채 소리와 함께(내심 놀라웠지만 싫을 리가 없었다) 그의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그는 차분하게 제복을 정돈하고 일어나 제독들의 악수를 받으며 연단으로 향했다. 잡은 손에 힘을 꼭 주며 미소를 보내는 파이크에게 짐 역시 웃어주었고, 싱긋 웃는 얼굴을 그대로 대중에게 향했다.


“감사합니다.” 그는 대중의 환호에 목례로 화답했다. 누군가 휘파람을 날렸고, 그쪽을 향해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졌다. 짐은 휘파람이 들린 쪽으로 고개를 들어 고마움을 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네요.”


그러자 또 한 번 웃음소리가 퍼졌다. 그는 조금 진지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제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아십니까? 솔직히 터놓고 말씀드리자면, 제가 특별히 여러분과 다르게 갖고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조금 더 경험을 쌓았다는 것만 제외하면 여러분과 다르지 않아요. 제게는 함선이 있죠, USS 엔터프라이즈라는 멋진 기함입니다. 하지만 사실 제 것은 아니에요. 아쉽게도 저는 단지 함선을 빌려서 쓰고 있는 것 뿐이라 일이 끝나고 나면 반납을 해야 하죠.”


이를 드러내고 날름 웃는 그에게 다시 몇몇이 웃음으로 반응했다.


“거기다 제 제복에 여기 훈장 보이시죠. 번쩍번쩍한 게 아주 멋져요.”


그러면서 짐은 훈장이 빛에 잘 비치게 잡아 강조했다.


“대단한 영광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제가 이것을 얻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제 함선에 있는 사람들이 늘 하는 일을 똑같이 했습니다. 또 여러분 모두가 앞으로 하게 될 일이기도 합니다. 바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기 먼 우주로 나아가면, 함선에 올라 탐사를 하고, 전초 기지에서 근무를 하고, 또 새로운 이주지와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일을 합니다. 여러분은 그 중에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일은 쉬울 수 있고, 또 다른 어떤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차를 가감해서, 지난 약 4년간 여러분이 이곳에서 배운 것들은 통상적인 의사 결정을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무한한 우주의 세계로 발을 딛는 순간, 여러분은 매 순간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혹은 여기 사관학교에 남아 교육에 매진하며 다채로운 연구를 영위하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겠죠. 그것 역시, 여러분의 앞을 가로막고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상황이 올 때면, 대부분 스타플릿의 규정이 여러분에게 길을 안내할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교육과 훈련을 이수하는 동안 배워왔던 것이죠. 그러니 잘 기억하고 필요해질 때 조언을 구하십시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주는 무한함이 지배합니다. 정해진 규칙이 없이 항상 변화하며, 아예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곧, 바로 스타플릿이 여러분을 필요로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움직이고, 사유하고, 개개인의 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규칙과 원리는 그것을 따라갈 수 없으며 또한 극한의 상황에 대응해 변화할 줄도 모릅니다. 앞으로 여러분에게, 규정과 맞서야 하는 일이 찾아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절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여러분의 손에 달린 결정입니다.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여러분의 경험과 관찰을 자양분으로 삼으십시오. 여러분은 컴퓨터 속의 여느 정보보다 훨씬 빠르게 갱신되고 변화합니다. 저를 믿으셔도 좋습니다. 스타플릿의 어느 훌륭한 과학 기술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정신과 지성이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남을 명심하십시오.


여러분들 중 일부는 아마도, 이제 새로운 세상 밖으로 나가 시뮬레이션으로밖에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몸으로 체험하기 위해 떠나게 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무척 기분이 고양되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여러분은 함교에 선 순간, 혹은 여러분 몫의 임무를 부여받은 순간,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할 겁니다.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앞으로 1년 안에, 혹은 2년, 또는 3년차에 돌연히 어떤 일이 생겨 예기치 않게 급소를 찌르는 공격과 마주치게 된 순간, 셔틀에서 내려 이곳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 여러분에게 할당된 기숙사에서 생도복을 입었을 때 느꼈던 무력함과,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작아지는 기분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땐 진짜 일이 꼬여서 얼마나 답답한지 몰라요.”


또 한 번 낮은 웃음소리가 퍼졌다. 짐은 경험을 통해 그것이 모두가 겪는 문제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힘주어 역설했다.


“여러분 앞에 어려움이 닥치면, 물러나서 외면하지 마십시오. 받아들이세요. 그 경험, 그 기분을 붙들고 각인하십시오. 여러분의 자존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여러분의 한계를 정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이 자리를 맞아 여러분들에게 작은 비밀 하나를 알려드리죠. 이 우주의 모든 지각이 있는 생명체라면 전부, 동일한 어떠한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승무원, 머나먼 곳에 있는 미지의 세계에서 마주친 외계 종족, 혹은 여러분이 탑승하고 있는 함선을 공격하며 여러분을 노려보고 있는 적들까지 ― 그 누구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불안과 불확실성이 무엇인지 느낍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 모두와, 또 외계 종족과, 여러분의 적들 사이에서 결속을 만들어, 서로를 이해하고,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스타플릿에서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결정을 내리게 될 때 바로 그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여러분은 침략과 정복을 위해, 또 우주에 경계선을 짓기 위해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외부로부터 단절하고 있는 바로 그 경계선을 허물고, 우주가 지니고 있는 수많은 다양성을 발견해서 찬미하기 위해 우주로 나아가는 것이며, 또 그 다양한 문화가 각자의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번성해 나가도록 돕기 위하여 여러분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난 수년간 스타플릿이 여러분에게 가르친 궁극적 목표입니다. 거대하고 혼돈으로 가득 찬 우주에서 단 하나의 작지만 유일한 개체로서 성장할 수 있는 자원과 초석을 마련하고, 또 그 과정에서 서로를 도울 동료 관계를 형성해 주는 것이죠. 여러분은 스타플릿에서 요하는 그 덕목들을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이렇게 시험에 통과했습니다.”


산파적으로 시작된 박수 소리가 커다란 갈채로 퍼졌다. 그는 말을 멈추고, 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대중들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 봐도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운명을 믿지 않는 스팍의 생각에 왠지 동화될 것 같았다.


스팍을 떠올리니 잠시 집중이 흐트러지는 기분이었다. 스팍은 아마 지금 숙소에서 터미널로 이 축사를 보고 있을 것이다.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스팍이 이걸 보고 자신이 스타플릿의 장교로서 자격이 충분함을 납득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어쩌면 그가 말하는 스타플릿의 진정한 의의에 반대할 지도 모르겠지만…


뭐, 그렇다면 나중에 물어보면 되는 일이다.


“감사합니다.”


박수 소리가 점점 잦아들자 그는 목례를 보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간추려 말씀드리자면, 저는 함장이자 또 제가 받아온 찬사에 따르면 영웅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에게 특별히 제안할 것이 없군요. 여러분은 지금 스타플릿 아카데미의 졸업생으로서 필요한 것을 모두 지니고 있으며, 바로 제가 그러는 것과 같이 우주에 나가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마음속에 굳게 지니고, 위기가 찾아왔을 때 서로를 지탱해 나아간다면, 여러분이 이루어내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또 한 번 갈채가 흘렀다. 여기에서 축사가 끝난 것으로 보일 것이다. 뭐 예정대로라면 그랬다. 아마.


…에라. 될 대로 되라지. 지금까지 반응 좋았는데 뭘. 어떻게 되기야 하겠는가?


“마치기 전에, 여러분이 먼 우주로 장기간의 임무를 떠났을 때를 대비해 생존에 필요한 아주 중요한 정보를 알려드리죠. 제 경험에서 온 비결로, 늘 염두에 두고 있는 특별한 지침입니다.”


그는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잠시 뜸을 들였다.


“자기 몫의 술은 직접 챙기도록 하세요. 신디홀은 쓰레기에요.”


전에 없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오며 왁자한 웃음소리와 함께 졸업생들이 감사를 전했다. 짐은 제독들이 있는 쪽과 마주치지 않게 각별히 주의하면서, 환한 미소와 함께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축하합니다. 오늘 밤은 축제를 벌이세요. 여러분은 자격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64기 졸업생 여러분!”


하지만 연단에서 내려오며 제독들이 있는 곳을 슬며시 볼 수밖에 없었다. 게중 두 명은 아주 괴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웃지 않고 근엄함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뻔했다. 파이크는 이마를 짚고 있었는데, 왠지 이쪽을 향해 잠깐 웃는 것 같기도 해서 짐은 미소로 대답해 주었다.


그는 동급의 장교들이 있는 좌석으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자 넘버원이 옆에서 엄한 시선을 보냈다. “에이, 그럴 것 까진 없잖아. 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유일한 사실인데.” 그러면서 짐은 사람 좋게 웃었다.


“그럴지도. 하지만 그런 말을 하기에 적절한 때가 아니었어.” 넘버원은 더 이상 시선도 주지 않고 목소리를 낮춰 야단쳤다. “얼마나 많은 간부들이 이 행사를 보고 있는 줄 알아? 그것도 온 연방에서?”


“…그건 또 몰랐네.” 그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녀의 입술 끝이 자그맣게 말려올라가 웃음을 그렸다. “게다가, 그건 신참들이 결국에 스스로 알아내게 되는 것이니까. 크리스토퍼가 그랬어.”


놀라운걸. “와우. 진짜?”


그녀는 연단의 진행자에게 눈을 고정한 채로 고개만 끄덕였고, 짐은 열심히 웃음을 참았다. 사실 그렇게 놀랍지도 않았으려나.


행사가 끝나고 나서도, 마주치는 사람마다 모두 그와 악수를 나누고 찬사를 늘어놓는 덕분에 숙소로 돌아가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와 인사를 한 사람들 중에서 더러는 무슨 술을 좋아하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짐은 졸업생들에게 재미있는 기억을 남겨준 것이 기뻤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생도들의 웃음을 터뜨렸던 부분처럼 축사의 다른 내용도 그들에게 갚진 도움이 되었길 바랐다.


집으로 돌아오니 예상했듯 스팍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때?” 짐은 들어서자마자 물으며 제복 재킷을 벗었다. 깃 때문에 목이 근질거렸다. “어떻게 생각해? 보고 있었지?”


“사전의 준비 없이 한 축사임을 고려했을 때 어느 정도… 인상 깊은 연설이었어.”


“어제도 말했듯이 난 즉흥적으로 할 때 본 실력이 나오거든.” 짐은 재킷을 벗어 옷장 안에 걸었다. “그리고 말이지, 솔직히 연습 많이 했다구. 함선의 머리가 된 이후로는 이런 즉흥 연설을 늘 해야 하니까.”


“또한 겸손에 집중하는 자세는 보기 드물므로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어. 대화를 통해 타인을 고취시킬 때에는 대게 화자가 자신을 청자의 눈높이로 낮추기보다는 청자를 높이는 방법을 선택하지.” 스팍은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당신은 겉으로 행동하는 것만큼 자신을 높게 보지 않는 거로군?”


개인적인 문제에 너무 파고드는 건 별로였기에, 짐은 못 들은 척 넘어가기로 했다. “생도들한테 솔직하고 싶었어. 그 친구들도 이제 곧 알게 될 테니까. 광활한 우주 안에서 사실 우리 모두는 결국 먼지 한 톨만큼도 안 되는 작은 존재고, 순간 스쳐가는 생명이잖아. 워프에 타서 날아가면서 불식간에 깨닫는 거지. 고향별보다 커다란 행성과 수천 배는 더 큰 별무리가 있고, 또 이렇게 많이 봤는데도 여전히 세상은 끝도 없이 넓다는 걸 말이야.”


그 말에 스팍은 의아해진 얼굴을 했다. “인간은 보통 우주에서 자신의 존재가 극소함을 유년에 깨우치지 못하는 건가?”


“벌칸들은 그런가봐?”


짐이 휙 눈초리를 붙이자 스팍이 그렇다고 답했다.


“뭐 별로 놀라울 일도 아니네.” 짐은 제복 깃에 쓸려 가려운 목을 긁으며 대꾸했다. “어쩌면 인간은 머리가 그다지 논리적이지 못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 지구인들은 대게 시공간이란 개념에 폭넓게 이해하기 힘들어해. 아니면 다른 이유로 그냥 우리 마음이 일부러 이해를 회피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자신이 우주의 보잘것없는 일부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으면 하찮아지는 기분이 들 테니까. 우리 뇌의 방어 작용이라고나 할까.”


“달리 말하면, 인간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인위적으로 과장하는 자기 방어 작용이 내제되어 있다는 뜻이야?”


“…네가 그런 식으로 얘기하니까 엄청 나쁘게 들린다.” 짐은 투덜거리고는 설명해 주었다. “그치만 봐,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것대로 느낄 점이 있어. 내가 지쳐서 우울해가지고 있었을 때 본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물론 우주는 무척 광활하고 무한한 공간이고, 그 중에서 우리는 거의 알아보기도 힘들 만큼 작지.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렇게 커다란 세계인데 나라는 각각의 존재는 단 한 명밖에 없는 거잖아.”


“그것은 정확하지 못해.”


감정이 들어간 이야기니까 스팍이 그다지 신통치 못한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아예 그것을 부정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정확하지 못하다고?”


“이 우주에는 내가 두 명이 있어.”


짐은 인상을 써보였다. “너는 특별한 경우고. 게다가 어차피 그것도 틀려. 너희 두 스팍은 동일한 인물이 아니잖아. 경험이 다르니까, 또 각각 자아를 갖고 있고. 둘 다 스스로를 ‘나’라고 하는데 사실 두 명이 있다는 건, 내 요점에 살짝 어긋나는 거긴 하지만 말이야.” 그는 히죽이며 한 마디 덧붙였다.


스팍도 동의했다. “물론. 명백한 사실에 대한 진술은 이 이상 무의미하지.”


“그래. 더군다나 말이지, 그 사람은 너와는 다른 과거를 살아왔는걸 ― 적어도 네 나이 대부터 시작해서는 말이야. 게다가, 그리고 그 양반은 체스로 날 이겨버리거든.”


말하면서 짐은 샐쭉 웃어주었다. 스팍은 유심히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래?”


“응. 그러니 네가 절대 그 사람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결사반대를 한다면야…” 짐이 의미심장하게 말꼬리를 늘였다.


“긍정적인 약간의 공통점을 공유하게 되는 데까지 부정한다면 논리적이지 못한 일이겠지.” 그렇게 말하는 스팍 대사와 판에 박은 것처럼 닮아 보여서, 짐은 그와 이런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게 잠시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건 도전인 건가?”


“그럴 지도? 나 말고 네가. 오늘은 너랑 당구 안 할 거거든.” 그러다, 게임을 하기 전에 우선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먼저 뭐 좀 먹어야겠다. 그리고 동부 쪽에 해 지기 전에 전화를 해둬야지.”


짐은 재킷을 벗고 나서 곧바로 부츠도 벗어던졌지만 제복 바지와 셔츠는 입은 채로 두었다. 오늘은 아카데미의 중요한 날이기 때문에 날이 넘어가기 전까지는 혹시라도 다시 불려나갈 가능성이 있었다. 사실, 생각해 보니까 몹시 우스웠다. 1년 중 가장 큰 행사가 있는 날이니 이곳저곳에서 파티가 열리고 있을 텐데… 그런데 자신은 여기에 틀어박혀서 저녁내 체스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니. 그것도 벌칸과 말이다. 그리고 간식은 역시나 살짝 소금 간을 한 팝콘이 될 듯 했다. 뭐, 넘버원이 말했던 고위직들 중에서 짐 커크를 속임수로 함장석을 탈취한 야만스러운 주정뱅이쯤으로 생각하는 인사가 있다면야, 행사가 끝난 후에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생중계로 보여줄 의향도 있었다. 그거면 찍 소리도 안 나오게 될 테지.


불과 몇 년 전의 짐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파티가 열리는 날 밤에 그가 얌전히 체스나 한다는 걸 알면 천지가 개벽할 일이라며 놀랄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짐은 바로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중이었다.


화면 너머의 배경이 현관 앞 그늘진 처마 아래를 비치는 걸 보니 본즈는 바깥에서 휴대형 단말기를 사용하고 있던 듯 했다. 


“어이, 짐 ― 어떻게 됐어?”


“썩 괜찮았어. 나중에 잔소리는 조금 들었지만 그래도 나 말이지, 졸업생들의 구세주가 된 것 같아.”


물론 돌아온 건 익숙한 본즈의 찌푸린 얼굴이었다. “뭔 짓을 했냐?”


“약간의 내부고발을 한 것 뿐이야. 신디홀에 대해 경고를 좀 해줬지.”


본즈는 흥 코웃음을 쳤다. “그걸 먹고 좋아하는 놈이 있으면 문제가 있는 거다. 뇌 검사를 해봐야 해. 물론 내가 할 건 아니지만. 난 형평성이 모자란 데다, 지금 휴가를 무척 즐기는 중이거든.”


짐은 웃었다. 본즈가 편해 보여서 참 다행이었다. 뭐 괴팍한 말투는 여전했어도. 그는 티셔츠 차림으로 나무 벤치에 편히 앉아 무척 태평해 보였다. 주변에서 여자애들이 깔깔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안나는 어떻게 지내?”


방금까지 나른하게 풀려 있던 본즈의 얼굴에 빛이 활짝 폈다. “짐 ― 우리 딸이 얼마나 놀라운지 넌 모를 거다. 볼 때마다 신기해. 애들이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완전히 아기였는데 벌써 작은 숙녀가 됐어. 예전에 마누라가 날 쫓아냈을 땐 애가 조그마해서 겨우 제대로 된 문장을 배우고 그랬거든.” 그는 아련하게 추억에 잠겼다. “이젠 읽고 쓰는 걸 얼마나 유창하게 하는데. 벌써 두 가지 언어를 하더라. 거기다 새 외국어를 배우려는 중이야. 기하학도 하고, 생화학 과정은 아예 만점으로 통과했더라고… 물론 전부터 자주 연락을 했어도 많이는 못 봤거든. 사진도 받고 통화도 많이 했지만, 실제로 만나는 거랑은 다르지 않냐. 정말… 보고 싶어서 어찌 견뎠는지 모르겠다.”


“그래, 알아. 그랬을 거야.” 짐에겐 그에겐 아이가 없고 형제라고 해도 그보다 나이가 많아서 본즈의 입장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만한 경험은 못 해봤지만, 그래도 9년이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스스로도 세월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라면 더욱 변화가 극명할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딸이랑 함께 있잖아, 안 그래?”


“맞아. 그래서 휴가를 아주 즐기고 있다는 거야. 조슬린이 못 오게 했으면 어쨌으려나 몰라. 아마 플릿에 들어가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나 썩히고 있었겠지.”


“뭐얼, 넌 나이도 들고 그 때보다 신중해 졌잖아.” 얘기하다 보니 ― 그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본즈는 친구였기에 묻고 싶은 점이 있었다. “…조슬린 말인데. 그 쪽은 어떻게 돼가?”


본즈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여기 돌아와서 잠시 있어보니까, 왜 우리가 갈라섰는지 기억이 나더라. 그냥 그렇게만 말해두자.”


“이크.”


“그러게…”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긴장이 풀려 있는 건 여전했다. “웬일로 날 집에 들이나 했더니 기회를 주겠다더라고. 자기 없는 동안 딸내미 잘 돌보고 있으라나. 그러면서 지 집에 있는 사이 딴 생각 말고 조용히 있으라 안하나. 여긴 원래 집이었는데 말이다.” 본즈는 으, 하고 작게 싫증을 냈다. “하기사 조슬린은 예전부터 남을 휘두르는 성격이었어. 늘 자기 법에 따라서 일이 돌아가야 직성이 풀렸지. 반대로 난 항상 남들이 자기 멋대로 상황을 끌고 가는 걸 별로 안 좋아했고.”


“별로가 아니라 ‘엄청’이 아닐까.” 히죽이며 짐은 말을 정정해 주었다.


“그렇긴 해.” 본즈는 멋쩍게 인정했다. “어떻게 결혼하고 살았는지 그게 참 희한타 아니냐. 아무튼 간에, 멀숙한 머스마를 데리고 있던데, 한동안 사귀었던 모양이드라고. 우리 둘이 안 맞긴 했지만 그렇다고 전부인 앞길 막는 찌질한 놈이 되긴 싫은 기다.”


본즈는 말을 하면서 조금 기가 죽은 듯 보이긴 해도 충격 받은 것 같지는 않았기에, 짐은 그가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로서는, 본즈도 전부인보다 행복하게 지낼 자격이 있었다. 짐은 살짝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너, 사투리 나오기 시작한다.”


그 말에 본즈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말이다. 고향에 돌아오니까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본즈가 편하고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었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네. 딸이랑 둘이서.”


“그래 ― 일정 세워놨어? 와서 며칠 있다 갈 거지?”


“네가 괜찮다면야.”


“물론이지, 짐 ― 조슬린도 한동안 집에 없을 거고, 잘 데는 많아. 차편이 필요하면 말만 해라. 데리러 갈 테니까.”


“내가 알아서 갈게. 근데 본즈, 있잖아. 다른 사람을 같이 데려가도 괜찮을까?”


본즈는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하룻밤 이상 같이 부대껴도 좋을만한 사람을 찾았나봐?”


짐은 그냥 웃었다. “뭐 그렇달수도 있지.”


“우리 딸내미한테 나쁜 영향을 줄만한 인물만 아니면 된다.” 본즈는 그 부분을 강조했다. “내 열 다섯 살짜리 딸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라고. 엉덩이 싼 여자는 사양이야.”


짐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척 했다. “그 녀석을 엉덩이가 싸다고 할 순 없을 것 같은걸.”


“이번엔 남자냐? 흠, 뭐 그럼 싼 게 엉덩이 쪽이 아닌 모양이지.”


“마음대로 생각하셔. 어차피 관점의 차이지.” 짐은 생각할수록 우스워서, 어깨 너머를 흘긋 넘겨다봤다. “소개해줄 테니까 직접 보고 평가하는 건 어때?”


“됐어, 짐. 네가 앞뒤 안 재고 바보짓 하지 않기만을 믿는다.”


바랄 걸 바라야지, 짐은 이미 이 두 사람을 소개시켜 주는 게 재미있을 거라고 마음을 먹은 후였다. “잠깐만 있어봐. 내 생각에 너하고 정말로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


“설마 진짜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이 있는 거냐?” 주방으로 향하는 동안 본즈가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식탁에는 그릇이 치워지고 체스판이 올라와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스팍은 짐이 들어서자 고개를 들고 일어섰다. “당신의 친구라는 사람,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어. 목소리가 들어본 것 같군.”


그러고 보니 벌칸은 청력이 기가 막혔지. 그럼 스팍이 통화 내용을 줄곧 듣고 있었다는 거겠다. 깜빡하고 스팍에 대해서 본즈와 궁시렁댔으면 큰일 났을 뻔 했다. “정말로 나와 같이 가는 거지?”


스팍이 재차 동의했다. “전에 말했듯, 약속은 지키겠어.”


“좋았어, 그럼 둘이 다시 재소개를 해보자. 그치만 네가 누군지는 아직 얘기하지 마. 본즈가 널 알아보는지 한 번 보고 싶어.”


당연하게도, 안면이 익었는지 스팍이 화면에 비치자 본즈의 미간이 순간 좁혀졌다. “안녕하신가. 레너드 맥코이야. 짐의 함선에서 일하는 의사지.” 그는 자기소개를 하고 한참 오락가락하는 얼굴을 했다. “…구면이던가?”


“나야 모르지.” 짐은 스팍 대신 대꾸했다. 목소리를 들으면 금방 알 지도 모르니까 본즈에게 떠올려볼 시간을 주고 싶었다. “어때?”


본즈가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어디서 본 적이 있었는데. 스타플릿 사람인가?”


스팍은 이쪽을 보더니 짐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대답했다. “한때는 그랬지.”


그럼 그렇지, 라며 본즈가 혼잣말을 하듯 수긍했다. “애틀랜타나 올레 미스Ole Miss[각주:1] 쪽에서 온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내가 알 만한 사람은 스타플릿밖에 더 없거든. 의학 부서였나?”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는’ 않다, 라.” 본즈는 화면 너머에서 유심히 얼굴을 훑어왔다. “그럼 과학부서?”


“맞아.”


짐은 본즈가 스팍을 요모조모 뜯어보는 동안 뒤쪽에 서서 웃기만 했다. “분명 아는 사람인데.” 결국 본즈는 포기했다. “그냥 네가 설명해주지 그래, 짐?”


“동의해.” 스팍도 고개를 돌려 짐을 봤다. “나와 닥터를 두고 당신이 하고 있는 행동은 매우 비논리적이야.”


스팍!” 본즈가 깜짝 놀라 외쳤다. “스팍, 맞지? 그 뾰족귀는 안 보이지만.”


스팍의 얼굴에 떠오른 의아한 표정에 짐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하잖아, 스팍! 그거야말로 뻔할 뻔 자라고.”


“뭐가 뻔할 뻔 자라는 거지?” 찡그린 스팍의 표정은 깊어만 갔다. “그보다, ‘뻔할 뻔 자’라는 건 무슨 뜻이야?”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본즈는 반갑게 웃었다. “이것 참. 당신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당신네 행성으로 돌아갔다고 짐한테서 들었거든.”


스팍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후에 지구로 돌아왔어.”


“그랬구만… 그래서, 어떻게 지냈어?”


거기서 파고들면 스팍이 불편해할 것 같아서 짐은 얼른 끼어들어 화재를 틀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체스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어. 이 녀석, 체스 잘 두더라.”


“놀랍지도 않군.”


“어쨌든, 내일 날아갈 테니까 다같이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구. 어때, 스팍이 앞뒤로 싼 사람은 아니잖아?”


본즈가 웃음을 터뜨렸다. “스팍이라면 괜찮지. 벌칸인이야말로 우리 조한테 나쁜 영향을 제일 안 끼칠 인물 같거든. 그럼, 내일 온다고? 몇 시에?”


“정오 넘어서 그쯤 도착할 것 같아. 그리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나올 필요 없어. 주소 아니까 알아서 찾아갈게.”


“그래, 깔끔하니 좋네.” 본즈가 끄덕였다. “내일 점심은 나가서 먹으려고 했는데, 집에서 기다려야겠군.”


“좋아, 그럼! 이제 우린 체스를 하러 가야겠다. 시간 잡아먹었겠네… 너도 마저 하던 일 해.”


“나? 난 그다지 할 일 없어. 조는 다른 애들이랑 놀고 있거든.” 본즈는 웃으며 눈짓을 했다. “저기 앞마당에서. 난 불청객이 없나 감시하고 있는 거지. 사내놈들을 얘기하는 거야, 사내놈들, 짐 ― 애가 몇 살쯤 되면 머스마들하고 놀아난다고 하려나?”


“이봐, 열다섯이면 차고 넘치지. 난 그 반도 안 되는 나이부터 여자애들 쫓아다니고 그랬거든.”


“여기서 네 잣대는 사양이다. 넌 비정상이었고.” 짐의 비난에 본즈는 짐짓 엄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말이다, 짐 ― 우리 딸은 네가 아는 여자애들 중에서 제일 예쁠 걸. 왜 딸내미를 가진 아버지들이 하나같이 현관 앞에서 샷건을 들고 죽치고 앉아있는지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너도 기억해 두라고.”


“이크. 무서워라. 손 간수 잘 해야겠는걸.” 짐은 놀란 척 하면서 히죽였다. “다음 임무 끝났을 즈음엔 혹시 모르지만.”


“내가 맘 바꿔먹기 전에 조용히 체스나 해.”


눈을 굴리며 투덜거리는 본즈에게 짐은 히죽 인사를 건넸다. “네에, 아빠. 내일 봐요.”


“내일 보자. 당신도, 스팍. 다시 봐서 반가웠어.”


스팍도 화면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닥터 맥코이.”


통신을 종료하고 생각해 보니 껄끄러운 점이 하나 생겨 짐을 괴롭혔다. 정작 스팍은 껄끄러운 기색이 없는 듯 보였다. “본즈가 물어볼 때를 대비해서 몇 가지 말을 맞춰놔야 하지 않을까? 본즈는 보나마나 물어볼 거거든. 널 아는 사람들이라면 전부 네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고 싶어 할 거야.”


스팍은 생각해 보는 것 같더니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사실 자체만으로 충분하다고 보는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네가 그걸로도 괜찮다면 다행인데, 네가 왜 지구에 돌아왔는지, 왜 스타플릿에 돌아가지 않는지 누가 물어보면 대답할 게 있어야 하잖아. 그리고 넌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싶지 않으니까…”


“설명할 생각이 없는 것이지.” 스팍이 말을 정정했다.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남이 상관할 바가 아님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것 같군.”


한숨이 나왔다. 스팍은 거슬린다는 반응이라기보다는… 정말로 이해를 못 하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체스판이 기다리고 있을 주방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난 그냥 네가 불편할 일이 없었으면 해서 그랬던 거야.”


“이미 결정을 해두었던 바야. 생각해 준 것은 고마워.”


“그래… 그냥 혹시나 해서 짚고 넘어간 거였어.”


게임을 하는 중에 다시 한 번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파이크였다. “자네 아주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면했어, 커크.”


“…그런가요?”


“이사회에서 사령부로부터 전언을 받았네. 자네가 한 축사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 말이지. 글쎄 고위 위원 중 가장 높은 분이 말을 전하지 않겠나.”


짐은 조금 찔리는 얼굴을 지어보였다. “사령부에서 그게 전부 저 혼자 생각한 내용이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네요.”


파이크가 말했다. “듣자하니, 마음에 들었다더군. 자신이 졸업식을 할 때도 그런 조언을 해줄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하더군.”


짐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용을 보내 주지. 위원이 그것 말고도 자네를 많이 칭찬했네.”


“네. 감사합니다.”


파이크가 터미널로 손을 뻗어 입력을 하자 몇 초 후 짐의 화면 끄트머리에서 아이콘이 반짝여 자료가 송신되었음을 알렸다.


“그럼 중요한 일은 이것으로 다 마쳤고… 계획대로 내일 아카데미에서 출발할 생각인가?”


짐은 끄덕이며 대답했다. “애틀랜타에 갑니다. 닥터 맥코이와 딸이 지내는 곳에 방문하려고요.”


“그래 ―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군.” 파이크는 거기까지 말하고 조금 뜸을 들였다. “스팍은 어떻게 할 계획인지 알고 있나?”


“저와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파이크의 얼굴을 놀라움으로 활짝 펴지게 만들 때면 짐은 성취감마저 느꼈다. 


파이크는 확실히 기쁜 모습이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건가?”


“내기로 걸었죠.”


그가 의아하게 물었다. “당구에 건 것은 아닐 테고.”


“아닙니다. 체스였어요.” 파이크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에 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손을 들었다. “왜 다들 제가 체스를 잘 한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는 거죠?”


“자네는 당구 실력도 나쁘지 않았어. 하지만 자넨 벌칸이 아니잖나.”


“뭐어, 전화 받았을 때에도 체스로 깔아뭉개고 있던 참이었는걸요.”


파이크는 웃으며 알았다고 했다. “계속 하려면 이만 놔줘야겠군. 잘 놀다 오게, 짐. 맥코이에게도 안부 전해 주고. 그리고, 스팍도.”


“그럼요. 몸조심 하세요. 아, 방금 그거 넘버원 목소리 아니에요?”


“여기 있네.”


파이크가 터미널을 조금 틀자 옆에 넘버원이 화면으로 다가왔다. 짐은 인사를 보냈다. “인사 미리 해두려고. 나 새 임무 나오기 전에 먼저 나가는 거지?”


“그렇게 될 모양이야.”


“자리 잡고 나면 연락 줘. 한 번 찾아갈게. 당신은 대단한 일등 항해사였어. 그러니까 멋진 함장이 될 거야.”


표정이 적은 그녀의 얼굴에 보기 드문 진심어린 미소가 떠올랐고, 그것만으로 임무 중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고마워, 짐. 당신과 함께 수행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 …그리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새로 채울 사람은 찾았어?”


“아직. 하지만 내가 누구야. 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나이 아니겠어.”


“물론 알지. 함께 일한 지가 몇 년인데.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꼭 알려줘.”


넘버원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마무리를 짓자 파이크가 화면으로 몸을 숙이며 말을 걸었다. “그것에 대해서 지난밤에 생각을 해 보니, 좋은 해결책이 있지 않겠나? 자네도 알겠지만…”


짐도 수긍했다. 파이크의 뜻이라면 명확했다. “저도 그 생각 안 해 본 건 아니에요. 저 역시 그러고 싶지만, 일단 상황을 봐야겠죠.”


통신을 마치고 주방으로 돌아왔을 때 스팍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조금 놀라웠다. 짐이 파이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그저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을 선택한 것이기도 하겠다. 하기는 언제는 안 그랬던가.


그래도 말문이 트인다면 좋은 부가 작용이 되겠지만 말이다.


여느 때처럼, 짐이 이겼고 스팍은 결과가 논리적이지 못하다며 체스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런 후에는 간식을 가져와 영화를 보는 동안 스팍에게 패드를 빌려주었고, 스팍은 책상으로 갈 필요 없이 소파에 같이 앉아 읽을거리를 검색했다. 특별할 일 없는 평범한 시간이었음에도 그래서 짐은 더 좋았다. 평화로운 시간이 지속되어 준다면 이런 식으로 계속 스팍과도 좀 더 같이 지낼 수 있을 테니까…


이내 스팍은 아침에 번거롭지 않게 미리 가방을 챙겨두자고 제안했다. 정말로 스팍이 여행에 동의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짐은 자꾸 묻지 않기로 했다. 귀찮게 했다간 마음을 바꿔먹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대신 짐은 가방을 싸면서 이렇게 물었다. “출발하기 전에 혹시 할 일이 있으면 먼저 해결하고 가도 좋아. 인사해둘 사람 없어? 처리할 일이라든가…?”


“이 지역에서 볼 일은 없어.”


“그럼 조지아로 가기 전에 들르고 싶은 데 있어? 셔틀로 가면 어디든 금방이니까 ― 시간대 변경되는 곳이라도 얼른 갔다가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출발하면 되거든.”


스팍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어디에도 특별히 할 일은 갖고 있지 않아. 어디로 가든 환경만 적합하다면 상관없어.”


왠지 짐은 그 말에 무척 슬퍼졌다.





제 8장, 관심 →



역자의 말


사족1) 사투리 말이죠. 본즈가 쓰는 미국 남부 사투리가 억양이 강해서, 우리말로 옮길 때 마찬가지로 억양이 강한 동남 사투리로 바꿔보았는데 애초에 외국어 방언을 우리말로 치환한다는 게 넌센스인지라-_-;;; 대강 뽀인뜨만 살짝 바꿨습니다.

부산 사투리는 1도 몰으겠읍니다....몰으겠어서 검색해서 찾아봤시유....;_;

본즈보다 나중에 나올 미스터 스콧이 걱정이여요. 영화에서 보셨지요? 스코틀랜드 방언은 말투 자체가 독특하거든요. 그래서 역시 말투가 특징인 서남 방언을 고려해 보고 있어요. 요것도 살짝 맛만 주는 정도로요.

아무튼 동남 방언 아시는 분은 조언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어유.. 암만 생각해도 어색한 것 같아서리.


사족2) 넘버원은 누구냐 하믄 스타 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파이크 함장님의 일등항해사였던 여성입니다. 이 글에서는 엔터프라이즈에서 스팍 대신 짐의 일등항해사로 근무했다는 설정이에요. 




  1. 애틀랜타는 조지아 주의 주도. 올레 미스는 미시시피 대학교의 애칭이다. 미시시피 주와 조지아 주는 미국 동남부에 인접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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