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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Fighting Gravity - 6 : 능력 본문

Star Trek_장편/중력을 거스르다

[Spirk] 중력을 거스르다 │ Fighting Gravity - 6 : 능력

topsecretum 기밀선녀 2015.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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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5장, 오해하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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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장

능력





짐은 그가 하게 될 축사에 대해 골머리를 썩히지 않기로 해두었다. 어차피 길지는 않을 것이고—그 편이 졸업생들에게도 좋을 테니까—여건이 좋지 않아도 그럴싸하게 조리 있는 언변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좋은 술에 대한 조언은 차치하고서라도) 몇 가지는 확실히 해두고 싶은 점이 있었기에 생각을 제대로 정리해 두고 싶었다.


그러한 이유로, 짐은 점심식사 후 패드를 들고 소파에 퍼질러져서 몇 가지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스팍은 책상에 앉아 터미널로 과학지인지 뭔지 어쨌든 샌님에게 딱 맞을 법한 글을 읽었다. 대화는 없었고,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각자의 일에 몰두해 있었다. 짐은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로 다른 사람과 한 공간을 공유해 본 일이 적었기에, 며칠 새 함께 머무는 숙소에 익숙해졌다는 건 하나의 변화였다. 썩 나쁜 경험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오히려 함장의 개인실에서 혼자 지내며 매일 홀로 밤을 보내는 건 약간 우울하기도 했다. 그래서 기회가 있으면 최대한 피해보려고 했었다.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었으면서도, 정말로 자신과 스팍이 작은 숙소 안에서 가깝게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놀라웠고 또 유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동안에는 함께 지내온 며칠 중 대부분의 시간에 둘 중 하나가 먼저 잠에 들거나 외출해 있거나, 같이 뭔가 하는 일이 있었다. 두 사람이 그저 함께 한 공간에 있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가 마무리된 후 그는 패드를 끄고 ‘다 끝냈다’며 편안하게 흐르던 정적에 마침표를 찍었다. 스팍은 그다지 납득이 안 가는 얼굴을 했지만 그 이상 토는 달지 않고, 자신은 중요한 일은 하고 있지 않았다며 글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던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 후, 두 사람은 짐이 생도 시절에 즐겨 찾던 술집으로 향했다. 아카데미 부지 바로 바깥에 자리한 그곳은 예전 모습 그대로, 바뀐 것이라곤 사람들뿐이었다. 졸업한 생도들과 돌아다니는 종업원들은 전부 새로운 얼굴들이었다. 제복 차림이 아닌데도 몇몇 생도들이 짐을 알아봤다. 안으로 들어서는 그에게 거수경례를 올려붙였고, 짐은 이곳에 쉴 요량으로 왔기에 그저 웃으며 편히 있으라고 답해주었다. 이곳으로 오기로 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 시원한 맥주에 느긋한 분위기는 여전했고, 또 당구대도 몇 년 전의 그 자리에서 나란히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큐대는 대로 바꾼 것 같은데, 뭐 그 점까지 원망할 이유는 없는 거 아니겠는가.


“이 게임의 궁극적 목표는 말이야,” 짐은 맥주병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당구대를 가리키며 스팍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바로 모든 공을 모서리의 구멍에 들어가도록 하는 거야. 저 흰색 공만 빼고. 이건 큐볼이라고 해 ― 네가 다룰 놈이지.” 그는 흰 공을 집어 테이블 끝에 놓았다. “이 공을 이용해서 다른 공을 움직이게 되는 거야. 예를 들어, 네가 5번 공을 사이드포켓에 들어가게 하고 싶다 치자.” 그는 공을 들어 포켓이 보이는 쉬운 각도에 두고, 병을 내려둔 다음 큐대를 가져와 테이블 위로 몸을 굽혔다. “그럼 두 공을 일직선상에 두고 치면 돼, 이렇게…”


스팍은 5번 공이 포켓에 들어가는 모습을 감흥 없이 지켜봤다. “내 감상을 말하자면, 그다지 벌칸의 정신을 요구하는 게임은 아닌 것으로 보여. 기하학을 적용하기에는 과하게 단순한 내용인 듯 한데…”


짐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냥 이렇게 쉽기만 한 게임이 아냐. 이건 그냥 예시를 든 거지. 중요한 건, 직접 공을 들어서 옮기면 안 되고, 멋대로 어질러져 있는 공을 아까 말한 방식으로 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거야. 봐, 큐볼이 저기 있지?” 그는 큐볼이 있는 반대편으로 돌아나가며 공을 가리켰다. “그리고 6번 공은 큐볼로 쳤을 때 바로 직선상에 들어갈 수 있는 포켓이 없어. 이렇게 되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해. 저 포켓으로 공을 보낸다고 해보자…” 쉬운 동작이었기에, 한 번 만에 6번 공이 사이드 쿠션에 맞고 튕겨져나와 깔끔하게 포켓으로 들어갔다. “이해 가지?”


스팍이 끄덕였다. “지금까지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두드러지게 도전욕을 자극하는 것 같지는 않군.”


“여기까지는 아주 기본적인 동작이었으니까.” 짐은 맥주를 들고 싱긋 웃었다. “아주 잘 하는 사람은, 한 번에 두 공을 각자 다른 포켓에 넣는 기술 같은 것도 할 수 있게 돼. 공에 회전을 줘서 가로막고 있는 다른 공을 뛰어 넘어간다든가 하는 고난도 묘기도 있어.”


스팍이 관심이 가는 듯 고개를 들었다.


“보면서 이해하는 편이 더 빠르겠지? 실제로 하는 걸 보여줄게.”


“그 편이 좋겠어.” 스팍이 큐대를 가져오는 동안 짐은 삼각대로 공을 모아 정리했다.


짐을 알아본 생도 몇몇이 이쪽에 관심을 보였다. 짐은 에잇 볼[각주:1]의 기본 규칙을 설명해 주고, 줄무늬 구가 어떤 것인지 보여줬다. 처음 몇 번은 수월하게 쳤지만 마지막에 공을 놓쳤다. 그는 허리를 폈다. “이제 알 것 같아? 쳐보고 싶으면 해봐 ― 아니면 내가 좀 더 설명해 줄 수도 있고.”


“이 정도면 적절히 이해했어.” 테이블 모서리에서 돌아나오며 스팍이 대답했다. “흰색 공을 이용한 연쇄 작용을 일으켜 나머지 색깔이 있는 공을 포켓에 넣으면 되는 거군. 그리고 줄이 둘러진 공은 들어가지 않게 피해야 하는 걸 테고.”


“그렇지, 바로 그거야.”


스팍이 큐대를 지탱하기 위해 테이블 위로 손을 짚고 몇 번 자세를 틀었다. 짐은 옆에서 함께 몸을 숙여서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손가락을 여기, 딱 놓고…”


스팍의 당구 경력을 연 첫 샷은… 각도는 정확했는데, 다만 힘이 들어가 공이 큰 소리와 함께 쿠션에 부딪혔고 한 개는 아예 당구대 밖으로 튕겨져 떨어져 버렸다. 짐은 웃음을 눌러삼키고 공을 주워왔다. “힘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익히려면 원래 시간이 좀 걸려. 어떤 건 힘을 빼서 가야하고 또 어떤 건 약간 세게 쳐야 하거든.”


“그렇군.” 스팍은 짐이 제자리에 올려준 공을 따라 테이블 다른 편에 자리를 틀며 목소리를 낮췄다. “기억해 두도록 할게.”


그 다음 몇 번의 샷들은 엉망에 난리도 아니었다. 어떤 공은 힘차게 날아오르면서 짐이 테이블 귀퉁이에 올려놨던 맥주병을 쳐서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병이 거의 비어 있던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벌칸의 힘이 이 정도일 줄이야. 벌칸의 힘을 직접 경험했던 적은 그나마도 단 한 번뿐이었기에, 이런 지경일 줄은 모르고 있었다. 짐은 킬킬대는 구경꾼들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새 맥주를 가지러 갔다. 하지만 그가 새 병을 갖고 돌아왔을 즘엔 스팍은 힘을 제어하는 법을 터득했는지 완벽하게 뱅크 샷[각주:2]을 성공해냈다. 짐은 고개를 끄덕여 칭찬했다. “잘 했어. 이 정도면 게임을 할 수 있을 거야.”


“이것은 간단한 동작에 불과해.” 스팍은 대답과 동시에 테이블 위로 몸을 굽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지금까지의 난점은 오직 필요한 힘의 척도를 계산하는 것뿐이었어.”


다음 샷 역시 공을 넣는 데 성공했다. “꽤 익숙해진 것 같은걸…” 짐은 스팍이 큐대를 움직이는 동안 칭찬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엔 공 두 개가 연달아 한 포켓으로 빨려들어갔다. “…꽤가 아니라 엄청 익숙해졌네.”


짐은 점점 오싹하기도 하고, 강하게 흥미가 돋는 기분으로 지켜보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어마어마한 놈 하나를 세상에 풀어놓은 듯 했다 ― 스팍은 공을 치고 나서 멈춰 생각을 한 후, 다시 한 번, 또 두 번 샷을 날렸다. 그렇게 세 번 만에 질서정연하게 공들이 차례로 당구대 위에서 비워졌다.


“기하학과 물리학의 원리를 접목한 흥미로운 게임이야.” 스팍이 허리를 세우며 짐에게 소감을 말했다. 마지막 공 하나가 포켓으로 떨어지는 순간 지켜보던 생도들이 휘파람을 불며 갈채를 보냈다. “매료가 되려고 하는군.”


“…다행이네.” 이게 정말 잘 한 짓이었는지 별안간 회의가 들려고 하지만 말이다. 짐은 병에 담긴 술을 한 모금 더 마시고 삼각대를 집어왔다. “이번엔 브레이크 샷[각주:3]을 해볼래?”


“그건 공들을 무작위로 흩뜨리기 위한 동작인 건가?” 스팍이 테이블 끝으로 가서 서며 물었다. “그렇게 하면서 공을 포켓에 겨냥해야 해?”


짐은 당황스러워졌다. “어… 공을 뿌리는 게 목적이고 포켓에 넣어도 되는데,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여기서 모든 공을 전부 포켓에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은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아.” 스팍은 짐이 공을 정렬한 삼각대를 벗겨내자 몸을 숙이고 집중해서 테이블 위를 샅샅이 가늠했다. “하지만 몇 번 안으로는 가능할 것 같아.”


큐대가 흰 공을 친 순간 공 세 개가 밖으로 떨어졌다. 스팍이 상체를 세우자 짐은 움찔 했다. 옆에서 구경꾼들이 환호하는 소리는 못 들은 척 하기로 했다. “이번엔 당신 차례지?”


“그냥 계속 해봐.” 짐은 그렇게 이르고는 앉아서 술을 들이켰다.


스팍이 다시 한 번 테이블 위를 비웠을 즈음에는 구경꾼이 점점 모여 무리를 이루었다. “이 게임의 규칙은 이상하군. 언제 당신의 차례가 돌아오는 거지?”


“절대 안 돌아올 걸.” 삼각대를 집어오며 짐은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팍은 꽤 잘 했고, 지켜보는 게 재미있었다. 스팍이 큐볼을 치는 족족 공들이 포켓으로 빠졌다. 말하자면, 거의 그랬다는 거다. 아직 힘 조절을 잘못 해서 실수를 할 때도 있었는데 점점 성공하는 횟수가 많아졌고, 처음에 게임이 시작될 때마다 짐도 몇 번 와서 치기는 했지만 그래봤자 스팍이 연달아 모조리 이겨버렸다.[각주:4] 얼마 지나지 않아 생도 몇이 찍어 치기 기술을 들고 와 도전장을 내밀었고, 짐은 공을 찍어서 튀어오르게 만드는 법에 대해 속성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그것만으로 스팍은 공에 회전을 주는 요령을 혼자서 터득했다. 짐은 가만히 앉아서 스팍이 선보이는 기술을 구경하는 것 외에 할 일이 별로 없었다. 확실히 대단한 볼거리였다. 스팍은 심심찮게 공을 날려서 밖으로 튕겨냈던지라 그 때마다 보는 사람들이 왁자하게 웃었다. 스팍은 구경꾼들에게 짧게 고갯짓을 보내는 것 외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찬사에 기뻐하는 것도 아닌 듯 했고, 그는 그저 자기 할 일에만 집중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짐은… 누구 말마따나, 흥미로워졌다.


그렇게 약 한 시간 정도 후, 계급 높은 장교가 한 명 들어와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술집의 손님들 절반이 스팍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 중 생도 몇몇이 뻣뻣하게 서 경례를 했고 곧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들더니 따라 인사를 했다. 누가 왔는지 알아챈 짐 역시 몸을 펴서 경례를 붙였다.


“쉬게.” 파이크 제독은 휠체어를 끌고 안으로 들어와 즐거운 얼굴로 짐을 올려다봤다. “금요일 밤에 여기서 자네를 보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군, 커크.”


“옛날 생각도 나고요, 안 그러세요?” 짐은 가까이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 휠체어에 앉은 파이크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런데 여기에는 대체 어쩐 일이세요? 제가 뭘 하고 있나 확인하러 오신 건 아닐 테고.”


“자네가 뭘 하는지 확인해줄 눈은 여기 많다고 생각하지 않나?” 파이크는 비죽이듯 야단을 쳤다. “내가 지켜본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 아니야. 당연히 마지막이 되지도 않을 거고. 물론, 자네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지.”


짐은 생긋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다들 건전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 제가 여기 있어서 그런 거겠죠? 여기 들어왔을 때 몇몇이 절 알아보긴 했는데, 지금쯤이면 술집에 있는 사람들 전부가 제가 누군지 알고 있을 것 같네요.”


“어찌됐건 얼빠진 행동만 안 한다면야 생도들이 뭘 하든 자유지.” 파이크는 사람들이 몰려있는 당구대 쪽을 쳐다봤다. “그래서, 저긴 무슨 일이지?”


일단 확실히 해두어야 할 건, 공식적으로 스팍은 여기 없는 사람이었다. “…당구를 치고 있겠죠.”


당구대 쪽에서 환호가 터져나오자 파이크가 그곳을 보고 웃었다. “게임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군.”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짐은 화제를 바꿀 궁리를 하느라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가서 계속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 기억으론 자네도 꽤 솜씨가 나쁘지 않았거든. 그런데 주변의 반응을 보아하니 자네와 겨루는 사람은 퍽 실력이 좋은 모양인걸.”


“…경기는 끝난 거나 다름없어요.” 단지 미련이 남아 큐대를 계속 들고 있던 것뿐이었다. “혼자 묘기를 모여주고 있죠.”


이런. 짐은 내뱉고는 곧바로 후회했다. “오, 그래…?” 파이크는 매우 흥미가 돋았는지, 짐이 막아설 구실거리를 떠올리기도 전에 당구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모여 있던 생도들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짐은 바보가 된 기분으로 따라나섰다.


파이크는 당구대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거진 한 눈에 알아보았다. 호기심이 놀라움으로 바뀌는 데에는 찰나도 걸리지 않았다. 파이크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파이크는 스팍을 봐서 기쁜 표정이라기보다는, 충격을 받은 듯 거의 걱정에 가까운 얼굴을 했다. 그러곤 입가에 의문을 담은 미소가 작게 떠올랐다. 짐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누군가가 테이블 중앙에 술잔을 피라미드로 쌓아올려 탑 두 개를 만들어 놓았다. 바텐더가 이걸 알고 있으려나 싶었다가, 이내 점원 두엇이 구경꾼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 탑 사이에서 공 두 개를 반대편 모퉁이에 있는 포켓에 각각 넣는 것이 목적인 듯 했다. 스팍의 깔끔한 동작과 함께, 공 두 개가 잔을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은 채 포켓으로 들어갔다.


스팍이 일어나고, 환호가 잦아들 때까지 파이크는 기다렸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스팍…?”


큐대를 옆으로 세우며 몸을 뻣뻣하게 든 스팍은 속내를 모를 얼굴이었다. “…제독님.”


“자네가 아직 이곳에 있었는 줄은 몰랐군.” 파이크가 조심스럽게 웃었다. “아니면 그냥 방문 차 온 건가?”


“방문 차 잠시 있는 겁니다.” 그의 눈이 잠깐 짐에게 향했다. 그는 뭔가 더 얘기를 하려는 것 같았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그래, 다시 보니 반갑군. 자네와 커크 둘 다. 물론 커크와는 이미 봤지만… 와서 앉는 게 어떻겠나? 얘기 나누어 본 지도 오래 되었군.”


스팍은 눈에 띄게 거북해 보였다. “글쎄요, 제독님.” 짐은 애써 쾌활한 척 끼어들었다. “스팍은 생도들과 한 건 하느라 바빠 보이는 걸요.”


스팍이 파이크와 얘기하고 싶지 않는 거라면(얘기하고 싶지 않은 게 빤히 보이기도 했고) 짐도 기꺼이 돕고 싶었다. 그렇다고 스팍이 파이크와 얘기하지 못할 이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파이크는 짐이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이해심이 싶은 인물이고, 직위로 보면 권위자들 중 가장 고약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스팍은 한때 파이크의 일등항해사이기도 했고, 첫 출항을 나서기 전에 이미 알고 있던 사이였을 것이 분명했다…


그뿐일까. 파이크는 빈틈없이 날카롭기도 했다. “…자네가 마침 옆에서 큐대를 들고 있군, 커크.” 파이크는 그를 돌아다보며 입가에 엄한 미소를 띄웠다. 그러니까 매우 스팍과 대화를 하고 싶다는 거였다. 짐이나 스팍 본인이 원하지 않는대도 말이다. “스팍과 얘기를 나누고 있을 테니 자네가 생도들을 상대해 주는 건 어떻겠나?”


“에이, 전 그렇게 잘 하지도 못해요.” 짐이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파이크는 이미 휠체어를 움직여 스팍에게로 향해 있었다. 스팍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는 두말없이 테이블에서 나와 가까이 있는 생도에게 큐대를 넘겨줬다. 어린 생도들이 눈을 반짝거리고 있어서 짐은 한숨을 쉬어버렸다. “알았어 ― 하지만 일단 저거부터 치우고 시작하자고.” 짐은 탑 두 개가 버티고 있는 쪽을 가리켰다. “누가 깨먹기 전에 얌전히 시작하는 편이 낫지. 나 진짜로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거든.”


짐은 우연히 스팍의 큐대를 넘겨받은 생도와 평범하게 경기를 하기로 하고—그 뒤로 그와 대결을 하겠다며 다른 생도들도 줄을 섰다—유리잔들을 치우고 나서 공을 정렬했다. 그러면서 술집 구석에서 스팍과 파이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쪽을 흘깃거렸다. 그냥 진 셈 치고 저기로 가볼까도 싶었지만, 아니다. 자신은 승부욕이 충만한지라 정말 제대로 된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도전을 마다할 사람이 아니었다. 어차피 저쪽으로 다가가면 두 사람이 하던 이야기를 멈출 테기도 했고. 게임을 하며 훔쳐보는 동안, 파이크는 정답게 얘기를 하다가 점점 심각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물론 반대편의 스팍은 완벽하게 표정 없는 얼굴이었고. 승부를 포기하다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는 첫 경기를 가볍게 이긴 뒤, 다음 생도가 와서 공을 정렬하는 동안 몇 번 더 스팍이 있는 쪽을 넌지시 쳐다봤다.


파이크의 얼굴은 심각한 표정에서 이번엔 다급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손짓을 하며 애타게 뭔가 말하는데 스팍은 텅 빈 얼굴 그대로 고개만 저었다. 무슨 얘기가 오가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짐은 파이크가 설득에 실패한 것에 실망하는 건지, 아니면 파이크가 스팍을 괴롭히는 것 같아 불쾌해지는 건지 스스로도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가 스팍을 설득해서 역시 자신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는 결과를 얻었다는 게 은근히 기쁜 걸지도 몰랐다.


그러다, 직구를 치기 위해 자세를 잡고 있을 때 갑자기 스팍이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커크. 오늘 저녁의 활동은 흥미로웠지만, 난 이제 그만―”


“신경 쓰지 말게.” 뒤따라온 파이크가 말을 잘랐다. “나는 그저 주변을 돌면서 확인 차 들른 것뿐이야. 이만 가봐야지. 함장, 그 전에 잠시 얘기할 수 있겠나?”


곁에서 스팍이 긴장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파이크는 두 사람의 상관임을 떠나서 그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럼요.” 짐은 스팍에게 미안해하는 미소를 지으며 큐대를 건넸다. “스팍, 나대신 여기 자리 좀 맡아주지 않을래?”


여기저기서 실망하는 소리와 함께, 돌아온 스팍(그리고 패배를 면할 수 없게 된 짐의 도전자)에게 쏟아지는 환호를 뒤로 하고 짐은 파이크의 휠체어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파이크가 휠체어로 다리를 대신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동안 파이크와 공식적인 연락을 주고받으며 화면을 통해 정면에서 얼굴만 봐온 터라, 제독이 다리를 다쳤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일 준비는 되어 있나?”


예상했던 질문과 달랐던지라 짐은 멈칫 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축사 말씀이시죠? 네, 괜찮아요. 뭐 논문을 적어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렇지. 적당히 짧게 끊으면 듣는 쪽에서도 좋아할 거야. 나도 어서 듣고 싶군 ― 현역으로 나간 후 많은 것을 배웠다는 걸 알고 있어. 자네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 중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 궁금하군.”


짐은 멋쩍게 턱을 긁적이며 웃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시잖아요.”


“아마도…” 파이크는 말꼬리를 흐리더니, 짐짓 엄격해 보이게 표정을 굳혔다. “시덥잖은 일로 골머리를 썩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거겠지?”


“누굴요? 저 말입니까?” 짐은 놀란 척 눈을 크게 떠보이고는 다시 침착하게 대답했다. “설마요 ― 처신 하고 있습니다. 함장이 된 이후로 얌전하게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대부분 그렇지.” 파이크는 달빛이 비치는 어둠 속에서 그를 올려다보며 웃음을 지었다. “자네가 잘 하고 있어 기쁘군. 내가 사람을 제대로 본 게 맞았어.”


“저도 그래요. 솔직히 저 말이죠, 제독님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했거든요.”


짐의 편한 대답에 파이크는 고개를 저어버렸다. “…짐?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그럼요. 말씀하세요.”


“개인적으로 하는 얘기니, 혹시라도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뭔지 알겠네요. 스팍에 대한 얘기죠?” 짐이 알고 있는 것이 사생활 침해가 되는 내용일 수도 있을 거다. 그래봤자… “사실은, 제가 오히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제독님에게 들었으면 하는 입장이라서요… 하지만 제독님이 뭔가 알고 계셨대도, 남한테 얘기하는 건 사생활을 침해하는 걸로 생각하셨겠죠, 안 그래요?”


파이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했다. “그렇겠지. 그러면 부탁 하나 하세. 그가 허락하는 만큼만이라도 자네가 그를 잘 돌봐줄 수 있겠나?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는 이해할 수 없어도, 자네와 스팍이 동료 장교 사이처럼 서로 어느 정도 신뢰를 맺고 있다는 걸 알겠네. 아무리 혼자 해나갈 수 있다 하더라도 홀로 겪도록 두는 것보단 낫지. 나는 그를 학부 시절부터 눈여겨 봐왔어. 그가 스타플릿에 좀 더 오래 있다 보면 다른 이들과 그런 건전한 관계를 형성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여겼네. 그런데 스팍이 그 전에 플릿에서 떠났고, 난 그게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지.”


“저도 전적으로 동의해요. 걱정 마세요, 이미 스팍이 사양하는 걸 부득불 도와주겠다고 여기까지 온 거니까. 그리고 스팍이 아직까지 저와 있는 걸 보면, 지금까지는 제가 꽤 잘 해가고 있나 봐요.”


“자네와 있으면서 술집에서 당구도 하고 말이지.” 파이크는 못 말리겠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친구로 지내 주는 것은 좋지만, 자네가 하고 다니던 것처럼 너무 물들이지는 마. 알았지?”


“스팍은 쉽게 물들고 그럴 인물이 아닌 것 같은걸요. 아쉽지만.”


“그래서 내가 그에게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이지.”


파이크를 따라 짐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래요.”


서로 생각에 잠겨 말없이 있다가 이내 파이크가 짐의 팔을 잡고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그만 게임으로 돌아가 보게, 커크. 내일 보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허물없는 분위기였기에 그는 경례 대신 정중하게 목례를 건네고, 다시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볼 것도 없이 스팍은 짐과 상대하던 생도를 쉽게 물리친 후, 기가 조금 죽어 보이는 다른 한 명을 상대하고 있었다. 반면 스팍은 이제 파이크와 마주해 곤란해질 위험도 없었으므로 아까처럼 꽤나 만족스러워 보이는 상태였다. 한편 짐은 다른 생도와 반대쪽 당구대에서 게임을 하기로 했다. 그녀는 가만히 보는 것보다 직접 해보고 싶다며 경기를 제안했다. 적어도 그 게임은 재미가 있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랄까. 게임이 끝난 후에는 맥주 한 병을 더 마시며 스팍이 스타플릿의 빛나는 인재들을 상대해 한명 한명 기를 꺾어주는 모습을 즐거이 구경했다.


“이 ‘당구’라는 것, 확실히 내 예상 이상으로 흥미로운 활동이야.” 돌아가는 길에 스팍이 감상을 얘기했다. “근 시일 내에 또 당구를 할 계획이 있다면 나 역시 기꺼이 동참할 의의가 있어.”


“그래, 그러자.” 짐은 히죽 웃었다. “그치만 그 전에 먼저 체스를 몇 판 둬야겠어. 왜냐면 너 말이지, 내 자존심을 완전히 뭉개버렸거든. 너 때문에 내 자존심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 전에 다시 채워야 할 필요가 있어.”


스팍은 놀랍다는 표정을 은근하게 던졌다. “당신의 자존심은 무한히 샘솟는 것인 줄 알았는데.”


짐의 웃음은 날큰하게 커졌다. “그럴 리가. 그래도 네가 농담을 던질 정도로 무드가 좋아진 거 보니까 확실히 한 번 더 가긴 가야겠네.”


스팍의 대답은 없었어도 분위기가 좋았다. 둘이서 시원한 밤공기를 가르며 캠퍼스로 걸어가는 동안 짐은 술이 들어가서 얼큰하니 기분이 좋았고, 스팍 역시 파이크와 이야기를 나눈 후인데도 그럭저럭 편안해 보였다…


파이크와의 대화라, 떠올리니 궁금했다. 그 얘길 다시 꺼내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듯 했지만, 그래도 스팍을 괴롭힌다든가 하려는 게 아니지 않나? 그저 짐은 궁금한 것뿐이다. 그는 숙소 건물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입을 열었다. 


“…그래서, 파이크 제독이 널 데리고 갔었을 때 말이지… 두 사람이 무슨 얘길 했는지 알겠어.” 제자리에 멈춰선 스팍을 따라 짐도 뒤돌아 그를 향했다. “제독님이 복귀하라고 제안했지?”


스팍은 머뭇거리는 것 같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였다.


“하지만 넌 거절했고.”


“그랬지.”


결국 공들여 쌓아놓은 느슨했던 분위기가 한 방에 사라지고 말았다.


“내게는 내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 현재 스타플릿에서 숙련된 인재가 부족하니 그런 제안을 이해할 수 있지만, 나는 복귀할 생각이 없어.”


“그래, 알아. 까닭은 몰라도 어쨌든 그건 네 선택인 거니까.”


“…고마워.” 스팍이 잠시 후 대답하고는 가던 길을 마저 나섰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천만에.”


하지만 숙소로 돌아와 스팍이 샤워를 하는 동안 짐은 합성기를 돌려 야식을 만들면서 계속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궁금했던 의문 중 하나는 답을 얻은 듯 했다.


스팍이 잠옷으로 예전 옷가지를 입고 나와 짐에게 침대에서 잘 차례라고 얘기했을 때 짐은 마침내 터놓고 물어보기로 했다. “스타플릿으로 돌아오지 않으려는 이유가, 미래의 네가 뭔가 한 얘기 때문이야?"


스팍이 의문스럽게 그를 응시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제대로 짚었다는 확신은 충분했다.


“그가 너한테 운명이라든가…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경고한 적 있어? 그래서 너한테 딱 맞는 자리를 버리고 다른 길을 간 건 아니야? 그렇지 않고서야… 플릿은 벌칸으로서의 네가 아니라 너 자체를 봐 주잖아.” 여전히 스팍은 말이 없었다. 그러다 짐은 한 가지 짚이는 점이 떠올랐다. “혹시 그가 칸에 대해서 경고한 거야? 그것 때문에 그래? 왜냐하면, 원래 그 사람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전부 정확하게는 얘기해주지 않거든. 내가 직접 해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말이야 ― 그런데 칸에 대해서는 말해 주더라고. 그 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어. 날 믿으라구. 그 함선과 마주치면, 곧장 최고 등급의 보안이 있는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는 안전한 곳까지 가기 전에는 절대로 그 범죄자들이 눈을 뜨지 못하게 할 테니까.”


“‘칸’이라는 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 스팍은 고개를 젓고 앞으로 시선을 둔 채, 짐이 앉은 소파 끝에 자리를 잡았다. “미래의 나는 스타플릿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운명에 대해 얘기했어.”


그건 또 새로운 정보였다. “칸에 대해서 말고는 그 이상 아무것도 얘기해 주려 하지 않던데. 그럼 칸보다 더 안 좋은 일이 있는 건가?”


“나는 칸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없으니 그것을 ‘더 안 좋은 일’로 명명할 순 없을 거야. 오히려, 말하자면 그것의 반대지.”


기다렸지만, 스팍이 확실히 말해주는 건 없었다. “…그럼 좋다는 거 아니야?”


스팍이 그제야 눈을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전에 설명했듯이, 운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내게는 불쾌해. 내가 결정을 내린다면 나 혼자만의 의지로 하고 싶어. 그리고 좋든 나쁘든 내 결정에 의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겠지.”


천천히 짐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얘기는 알겠어. 근데 내가 보기에, 운명을 피한다고 하면서 너 스스로 곤경에 빠져드는 것 같거든. 이렇게 어려운 길로 갈 필요는 없잖아. 길가로 몰려서 갈 데도 없고 식사도 제대로 못 하는데.”


“상관없어. 만약 내게 일어날 지도 모르는 것으로 예고된 일을 경험한다면 나로서는 그것을 불가사의한 우주의 힘에 의해 미리 예언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것에 책임을 갖는 쪽을 선택하겠어. 내가 플릿으로 돌아가서 그 ‘운명’이란 것을 겪게 된다면 내가 내린 결정이 온전히 내 것임을 증명할 수 없어지겠지.”


짐은 동의해줄 수밖에 없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해할게. 그건 네 결정이라는 걸.”


“그래.”


밤이 깊어가고 있어서, 이만 잠옷으로 갈아입을 때가 된 듯 했다. 자리를 비워줘야 스팍도 소파에서 잠을 잘 수 있을 테니까. 이것도 나중에 언젠가 소란을 한 번 치러야 할 거리였다.


그렇지만 침대를 정리해 두며 머릿속에 맴도는 것이 있어, 잘 준비를 마친 후 다시 거실로 나왔다. “스팍? 저기 말야.”


소파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있던 스팍이 눈을 들어 침실 문가에 선 짐에게 시선을 주었다.


“말하자면, 나도 운명같은 건 안 믿어. 다른 세계에서는 내 아버지가 살아서 내가 함장이 되는 걸 보셨다고 해. 근데 이곳에선 그런 일이 없었으니까, 다른 것들도 그렇지 않는다는 법이 있을까? 게다가 미래의 네가 온 시간대에서는 아직도 네 고향별이 무사히 있는 상태잖아. 그곳에는 중요한 일을 한 벌칸들이 그대로 살아있고, 또 우리 현실에서는 태어나지도 못할 벌칸인들도 있어. 네로가 미래의 기술을 가지고 왔다고 해서 우주에서 유일하게 운명을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지는 않거든. 그렇다면 누구도 운명을 피할 수 없다거나, 혹은 애초에 운명같은 건 없는 거라고 볼 수 있겠지. 어느 쪽이든… 적어도 말이지, 네가 대단한 일을 할 거라고 정해져 있다면 그게 뭐든 다름 아닌 네가 이뤄내는 거라고 생각해.”


스팍이 고개를 주억였다. “…내가 고려하는 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당신 역시 숙명이란 개념을 부인한다는 것을 확실히 하니 마음이 놓여.”


짐이 한 말이 스팍을 괴롭히는 점을 해소한 거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스팍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다른 사람과 생각이 같다는 걸 알게 되는 건 좋은 거 아니겠어? …어쨌든, 잘 자라, 스팍.”


“잘 자, 커크.”


꼭 하나가 거슬린다니까. “저기 말야. 날 이름으로 부른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거 아니거든. 넌 이미 스타플릿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게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 나도 널 이름으로 부르고 있기도 하고.”


“내 성을 발음할 수 없기 때문이지.”


“할 수 있었어도 널 스팍이라고 불렀을 거야.”


“할 수 있었어도 발음을 교정해줘야 하겠지.”


티격태격 하기에는 늦은 시간이었으니 짐은 그만 침실로 들어가기로 했다. 은근히 짜증도 났지만 우습기도 했다. 흠, 미묘했다. “연습하면 되는 걸. 두고 보자고.” 그는 밝게 덧붙였다. “어쨌든, 잘 자.”


“잘 자.”





제 7장, 마무리 →



  1. 1부터 15까지 써있는 적구를 테이블에 세팅한 다음 1~7까지의 단색 적구 또는 9~15까지의 스트라이프(Striped) 줄무늬 적구를 모두 넣고, 마지막에 8번 공을 넣어 승리하는 경기 방식. (출처: 엔하위키 미러) [본문으로]
  2. 공이 직접 포켓으로 들어가지 않고 쿠션에 부딪혀 나와서 들어가도록 치는 것. [본문으로]
  3. 당구에서 게임의 시작으로 처음에 정렬되어 있는 공들을 깨어 테이블 위로 퍼뜨리는 동작. [본문으로]
  4. 논리왕 스팍에서 당구왕 스팍으로 전직! (....)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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