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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lock] 우리에게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열정이 있다 │ Our Enthusiasms Which Cannot Always Be Explained - 1 본문

Sherlock_중편/시리즈

[Johnlock] 우리에게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열정이 있다 │ Our Enthusiasms Which Cannot Always Be Explained - 1

topsecretum 기밀선녀 2015.02.1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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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Our Enthusiasms Which Cannot Always Be Explained
  • 저자 : withoutawish
  • 등급 : Mature (성인)
  • 줄거리 : 221B의 냉장고에 아무렇게나 붙어 있는 목록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다. “콩팥, 부패가 적은 발가락 한 봉, 소 눈알 16개 (각막이 제거되지 않아야 함), 2기통 휴대형 화염방사기,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미개봉 초판본, 그리고 다음 달까지 최소 열 건 이상의 악랄하고 무시무시한 살인사건.” 그리고 그 옆에 단정하게 붙은 종이에는 간단하게 하나만 적혀 있다. “섹스.”
    이 목록 중 한쪽은 존의 것이 아니다. 만약 존 왓슨이 ‘거의’가 범람하는 홍수 속에서 살아남고자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적어넣었더라면, 셜록 홈즈가 그에게로 돌아온 이 시점에 다시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 경고 : 셜록 시즌2 이후의 이야기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본문의 사건은 셜록 홈즈 원작에서 '노우드의 건축업자'와 '악마의 발' 에피소드를 차용했습니다.
  • 비고 : 기밀선녀가 번역한 글로 창작물의 권리는 모두 저자에게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열정이 있다 │ Our Enthusiasms Which Cannot Always Be Explained






언젠가 때가 되면, 존 왓슨도 이 모든 것이 평범한 일상으로 느껴지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평범한 일상, 그건 매일같이 어느 소시오패스 녀석과 상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성심성의껏 쉬는 날 따위는 없이 매달려야 한다는 거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셜록 홈즈 상근직’에는 유급 휴가와 매주 보너스를 받는 등의 뒤따라오는 이점이 있어야 마땅했음에도, 존이 받은 ‘이점’은 이런 것이었다… 어떤 미친놈이 그가 좋아하는 캔 수프를 좋은 실험 매개체로 여겨서 만연하는 돌연변이 박테리아의 원상체로 만들어버린다든가, 아님 어디 사는 바보가 찻잔에 벌독을 타놨다며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걸 깜빡했기 때문에 허벅지에 스스로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주사를 놓아야 했던 적도 있다. 그의 생업이자 셜록을 돌보는 일에는, 사생활이라곤 없이 시간을 할애해서 야드로 달려가 화가 잔뜩 난 어느 형사님과 정기적인 협상을 보거나, 사건 현장에서 감정이 북받쳐 있는 목격자들을 달랜다거나 ― 하는 하나도 안 반가운 보너스마저 주렁주렁 뒤에 달려 있었다. 그런데도 오늘의 야단이 일어난 곳은, 지난 4년 가까이 이런 식으로 또 저런 식으로 비슷한 상황을 되풀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과장 않고 말해서… 이례적이기 그지없는 장소였다.


“진정해, 이 녀석아―”


“오, 난 진정하고 있어요, 존.” 말만 저 모양이지, 속은 증오심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다. 셜록은 얼음처럼 차디찬 눈빛으로 주변을 쏘아봤다. “죽은 사람처럼 차분하죠.”


언젠가 머지않아 그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련의 일들도 전부 평범하게 느껴지리라. 평범하다면 평범하지만, 아마 새로운 방식의 평범함일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평범이라는 단어와 셜록은 결코 연관시키려야 연관시킬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사이좋게 양보할 조망은 없어 보이는 관계란 말이다. 술에 비유하자면, 어우러질래야 어우러질 수도 없는데다 섞어서 마셨다간 큰일 나는 지독한 조합이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그는 지독한 거라면 알력이 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시절 열사병에 시달려 마시곤 했던 싸구려 칵테일처럼, 낡아빠진 새 플랫의 하얀 주방 싱크대에 지친 등을 기대고 맛도 모르고 물처럼 지독한 독을 목으로 넘겨댔다. 그렇게 하면 잠시 다른 사람이 되어, 눈물로도 달랠 수 없는 커다란 슬픔으로 가슴에 뻥 뚫려버린 구멍이 잠깐은 메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얘기는 그와 나누지 않았다. 11개월 전 기적적으로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셜록 홈즈에게서는 안부를 묻는 흔하디흔한 ‘안녕’이라는 말조차 없었다. 지금껏, 단 한 마디도. 3년간의 증발은 없었던 일처럼 존재가 죽어 있었다. 두 사람이 암묵적으로 피하고 있는 이야기 중에서도 절대 금기시되는 얘기라면, 단연 ‘M으로 시작하는 세 가지 화두’일 것이다. 모리아티, 제일 큰 요인이고, 다음으로 결혼(Marriage), 그리고 무엇보다도, 메리 모스턴. 무정하리만큼 차갑고 흰 그의 광대뼈 위로 주먹을 날렸던 일이 필연적이었던 것처럼, 시간은 흐르고 흘러… 허드슨 부인 홀로 지켜왔던 221B 번지로 다시 돌아온 후 그렇게 지금의 존 왓슨까지 오게 되었다. 셜록 홈즈와의 삶은,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듯 예측할 수 없는 전율로 가득한 전쟁터다. 친우가 검은 고수머리 소시오패스 버전의 나사로[각주:1]가 되어 무덤에서 되돌아왔으니 해방이라도 될 법 하건만, 존은 전쟁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도 다시 일 년이 되어가는 지금 그의 삶은 행복하다. 이 전부가 평범하게 녹아들어 그들만의 평범하지 않은 평범함으로 느껴지려면 아직 기다려야 했다. 언젠가는 다가올 일이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물론 존은 아직 ‘평범하지 않다’는 것에 불만은 없었다. 단지 그렇게 되었으면, 이런 고행도 어쩌면… 여정 정도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은 거다. 그것도 현재의 상황만 아니라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었겠다. 존은, 해러즈 백화점의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 아래 서서 어떤 사이코패스 놈이 허구의 인물을 향해 문제의 언어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어야 하는 처지였다. 마치 이 모든 일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인 것처럼, 상황은 존에게 뻔뻔하기만 했다.


“지금 딱 한 마디만 할게.” 존은 넘치는 쇼핑객들 사이를 뚫고 이쪽으로 급히 다가오고 있는 두 명의 무장경비를 확인하며, 숨죽여 경고했다. “또 경찰에 잡혔다간 구해주지 않을 거야, 다시는.”


“나도 한 마디 하죠. 어차피 보석으로 날 풀어줄 거였잖아요. 늘 그랬듯. 이제 입 다물고 레스트레이드 불러요.”


존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진심으로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솔직해지자. 셜록이 옆에 있으면 피곤하지 않을 때가 더 적었다.


“딱 그 얘기만 하려고 왔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수배자라서 까딱만 하면 체포해갈 테니 말이죠. 제게 보상금을 빚졌다는 걸 기억해요.” 자문탐정 셜록 홈즈는 인조털로 만든 흰 깃을 양 손으로 쥐어올리고 잇새로 으르렁거리는 중이었다. “크리스마스 서른네 번만큼의 가치가 있단 말입니다. 올해는 부디 진지하게 고려해 주세요. 예전에 한 번 분명하게 설명했지만, 전 살인사건이 필요해요 ― 이왕이면 참혹하면 더 좋겠고. 이번에도 약속을 모른 척 넘어가지 않도록 신중해 주세요, 산타 할아범. 그렇지 않으면 이번 연휴에 야드 사람들에게 시체를 선사할 사람은 다름 아닌 제가 될 수도 있다고요. 그게 노인장 손에 달려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말을 마쳤을 즘엔, 산타 클로스는 셜록에게 멱살이 잡혀선 거의 부츠 발을 대롱거릴 정도로 끌어올려져 죽음의 위협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눈 덮인 포근한 마을 모형과 반짝이는 전구 사이로 줄을 서서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소원을 말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아이와 부모들이 하나같이 겁을 먹곤 여기를 주시했고 말이다. 저 단란한 가족들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행복했다. 하얀 담장으로 둘러싸인 산타의 자그마한 동화마을에 웬 셜록이 뛰어들어 맨 앞에 새치기를 하더니, 산타 클로스를 붙들고 취조를 빙자한 협박을 가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좀 유하게 대처하면 좋으련만. 책임감을 느끼는 존이지만서도, 뭐 늘 그렇듯 백화점에 들어서자마자 셜록은 한 마디 말도 없이 반질반질한 높은 광대뼈를 들고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쌩하니 앞서 가버렸으니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도 그는 옆에서 한숨을 푹 내쉬며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역할이다. 아무래도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부적절함’과 ‘억압된 유년시절’에 대해 일장연설을 나누게 될 것 같다.


빌어먹을, 세상에.


터져 나오려는 화를 삭이려고 무진 애를 쓰느라 다리 옆에 나란히 놓인 주먹이 움찔거렸다. 저 놈의 성질머리가 어딜 가겠나. 이런 일이 또 일어나게 만들었다는 책임감은 차치하고서라도 존은 자신의 부주의 때문에 상황이 꼴좋게 됐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덕분에 블로그에 앞선 4년간의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골 때리는 얘깃거리가 나올 듯하다. 구경꾼들 앞에서 산타 클로스에게 살인사건을 선물해 달라고 보무도 당당하게 요구하다니. 차라리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까놓고 보니까 진짜 사양하고 싶은, 소름끼치는 장난인 걸 보니 잘못돼도 확실히 잘못된 현실이다.


“지금은 가만히 좀 있자구, 셜록. 응? 내가 그렉에게 알릴 테니까, 제발… 그냥 산타 클로스는 내버려 두고 경비원들이 알아서 하도록 맡겨. 네가 나설 때가 아니란 말이야.”


“적당한 때라는 게 따로 있어요? 언제? 티타임 후? 범인이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만들어놓고 도망간 후?”


“아니.” 존은 진정하자며, 마음속으로 딱 열까지만 셌다. “‘애들 안 보는 데서’는 어때?”


“뭐하러요? 애들도 산타 클로스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아요. 그리고 요즘 애들, 자기네들 부모가 가족사진이니 연하장이니 하는 것 따위를 마련하면서 여기 오는 것도 유행성 소비행태의 연장선이니 가만히 속는 척 해줘야 자기한테 돌아오는 게 있다는 것도 안다고요.” 탐정 녀석은 가차 없이 다그치고는, 여전히 놓아줄 생각이라곤 없이 아귀에 꽉 쥔 빨간 옷의 남자로 주의를 되돌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웃는 상을 내보이던 셜록의 얼굴은, 겁에 질린 노인을 마주한 순간 아예 제정신을 놓고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상황은 존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었다. “사회적 관습이 노인장을 자애로우면서 인정 많은 인물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라도, 여기 당신의 미취학 아동 추종자들에게 당신이 사실 산타 클로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게 되어 깊은 유감을 느끼는군요. 더불어서 산타 클로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도심지에서 불법 마약을 밀매하고 있다는 걸 말이죠.”


정말이지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저렇게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면서 서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존은 눈앞에 둔 죄인이 아르바이트로 상습적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널리 설파하는 데 보람을 느끼는 그저 평범하고 인자한 노인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바라는 건 많고 많다. 존은 무장경비 두 명이 코앞에 다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한 발자국 슬쩍 뒤로 빠져 걱정 가득 셜록을 바라봤다. 진짜 범죄자보다는 셜록이 더 걱정이다. 바라는 건 많은데 이번에도 이루어지지 않을 모양이다. 모든 게, 누구 때문에 상황이 더 나빠지기만 했다. 셜록은 이 현실에서 혼자 화가 난 사이코패스다. 감시카메라 너머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따위는 관심도 없는 거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울 것 없는 일이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고행의 연속. 존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오, 셜록은 알기나 하려나.


어쨌든, 이미 아까의 일로 한껏 지쳐버린 존 왓슨의 선택은 중재하지 않고 일단 가만히 있는 거였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뭐, 적어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 안다.) 두 명의 우락부락한 경비원들이 산타 클로스의 일터를 둘러싼 낮은 담장을 넘어 다가왔고, 이번에 존의 자리는 몇 발짝 더 옆으로 옮겨졌다. 두 사람 다 체포되어봤자 좋을 건 없었으니까. 예전의 실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생각이다. 둘이 나란히 경찰차에 밀쳐져서 수갑을 찬 채로는 정의는 커녕 법의 심판도 바라기가 힘들어지는 거다. 역시나, 셜록은 도시에서 출근한 가짜 산타 클로스와 아웅다웅하느라 바빠서 자기만의 세계에만 빠져 있었다. 결국 경비 한 명이 저 자문탐정을 거꾸러트려다가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의 멋진 빨간 벨벳 의자 주변을 장식한 가짜 눈 사이로 얼굴을 고이 묻어주었고. 웬 사이코패스의 손길에서 풀려난 노인은 그제야 위험을 자각하고는 얼른 꽁무니를 내뺐다. 하지만 담장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직감을 느낀 백화점 경비들의 처사로, 인자한 턱수염을 단 노인은 곧 셜록을 따라서 나란히 가짜 눈 속으로 얼굴을 동참하게 됐다. 주변에 서 있던 어른들은 아이를 데리고 돌아서거나, 더러는 휴대폰을 들고 당당하게 사진을 찍었고 배경음악처럼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히끅대며 울어댔다.


셜록의 대상은 아무리 어린 미성년자더라도 예외는 아니라는 걸 새삼 인정하고 나니, 어쩐 지 이 소란스러운 광경이 점점 평범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것 참 대단도 하지.


“쇼를 벌이고 나니까 즐거워? 꼭 이렇게 해야겠어?” 존은 휴대폰을 꺼내며 지친 기분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분명히 경고 했었지, 이 지지리도 말 안 듣는 놈아.”


가짜 눈 사이로 기어코 소리가 묻힌 대답이 들려왔다. “난 추궁을 하는 것 뿐인데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뿐이라구요.”


“아니지, 네가 한 건 살해 협박이었다고. 가상의 인물을 상대로 말이야. 그것도 산타 클로스 본인의 마을에서. 모르고 그런 짓을 한다는 게 말이나 돼?”


“상습범을 체포할 생각이었을 뿐인데요.” 그러더니 돌아보며, “어차피 이런 것, 놀랍지도 않잖아요?”


흥, 하고 무시한 존 왓슨은 다음 행동으로 휴대폰을 켜 최근 통화 목록을 훑었다. 이것저것 여러 이유 때문에 최근 열 통이 전부 레스트레이드였다. 이래저래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존 하나뿐만이 아니라 전화를 받는 형사에게도 말이다. 그래, 놀랍고 당황스러워야 마땅했다. 존은 저 셜록 놈이 아르바이트로 상상의 인물을 연기하는 사람을 잡아다 협박하느라 경비에게 잡혔노라고 설명해야 했다. 추가로 셜록이 산타 클로스와 나란히 수갑을 차고 가짜 눈 속에 처박혀 있는 동안 존은 떨어져서 경비원들이 지직대는 무전기에 대고 ‘체포’니 ‘경찰’이니 하는 얘기를 하는 걸 보고 있어야 했고, 우는 아이들과 화난 부모들의 고함소리를 배경으로 조그맣고 아늑한 산타의 마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혼란의 도가니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놀란다는 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뜻이고 역설적이게도 존은 그렇지 않았다. 3년간의 공백이 있었다곤 해도, 존 왓슨은 셜록 홈즈와 함께 있으면 갑작스런 돌발 상황을 예상해낼 수 있는 생득적인 능력이 찾아온다. 그러니 언젠가는 전부 평범하게 느껴질 일이었고,


분명 다시 평범해지는 이 느낌, 1년이 되어가는 지금부터다.


이런 삶이 즐겁다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어


네가 함께 있으면, 모든 게 나아져


“그럴 리가 있냐.” 존은 지친 미소를 지었고, 수신음이 흐르는 휴대폰을 귓가에 가져갔다. 어쩌다가 범죄자가 붙잡혔고 범죄자를 붙잡은 셜록도 덩달아 붙잡힌 경위를 설명할 차례였다. 피할 수 없으니 마음을 굳게 다져야 할 때였다. “놀랍지도 않아, 이 바보자식.”






존 왓슨은 로맨틱한 남자가 아니다.


시를 써본 적도 없거니와(셜록이 지나가면서 그의 글을 비꼬았던 적이 있었지만 그건 예전에 인터넷에서 대충 검색해서 가져온 시를 ‘당시의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이메일에 붙여넣었던 것뿐이고 직접 지은 건 아니었다.) 성별을 막론하고 끈적한 미사여구로 입발린 소리를 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소울메이트’나 ‘연인’이라는 말도 쓰지 않는다. 단지 사귀고 있는 여자들과 세 번쯤 잠자리를 가지는 정도로 진도가 나갔을 때 한해 그런 호칭을 붙이는 경우가 더러 있게 마련이다. (물론 섹스가 좋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좋지 않았다면 한두 번에서 끝났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걸지도 몰랐다. 3년간의 공백을 두고 존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계속 곱씹을 수밖에 없었으며, 어떻게 된 건지 그러는 사이 ‘괜찮다면 와요, 괜찮지 않아도 와요’와 ‘난 가짜야’ 사이에서 맴돌며, 어느 샌가 그는 셜록 홈즈에게 깊은 ____을 느끼게 되고 말았다. 호수처럼 깊은 애착과 동경보다도 더 심오한 무언가. 그냥 친구 사이도, 플랫메이트 사이도 아닌 그 무언가. 아무리 떨쳐내고 거리를 두고 잊어버리고 싶어도 뇌 속 깊숙이 각인된 ____은, 곁에 그 사람이 없는 자신의 육신을 덩달아 허깨비로 만들고 세상에서 존재 자체를 지워버릴 듯이 사납게 몰아붙였다. 셜록 홈즈는 존 왓슨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흐려버렸다. 그의 맞은편에 나란히 어깨를 함께해오던 소시오패스 친구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혹은, 죽은 것이라고 듣게) 된 다음에야 존은 알게 되었다. 그 후의 삶은 너무도 공허하고 허무했다. 마치 방영 조정중인 텔레비전 화면과 바닐라맛 아이스크림만 남은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존 왓슨은 가장 친했던 친구의 차디찬 묘비 앞에 서서 터져나오는 울음을 눌러삼키고 그의 마지막을 그리워하며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 사람을 ____한다. 이 얼마나,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인지. 그가 로맨틱한 남자였다면 ‘그건 사랑이 아닐까’, 하고 부를 수 있었을 법 했지만. 그는 로맨틱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이 감정을 얘기하지 않았다. 상담사 엘라도, 사랑했던 아내 메리도(M으로 시작하는 세 가지 중 하나, 꺼내지 않자는 무언의 약속이 있었던 주제다), 어느 누구도. 반년을 아내로 보냈던 그녀의 쇄골에 얼굴을 묻은 채로 그의 이름을 입 밖으로 아즈라히 흘렸을 때조차도. 이케아 매장에서 사온 가구들로 채운 조그만 새 플랫 안에서 처음으로 섹스를 한 후 존은 그렇게 그를 떠올리며 입술을 떨었다. 고맙게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의 흉터에 올라온 일그러진 피부를 문지르며 얼렀고, 이마에 입을 맞춘 후 182수 스웨덴산 이불 아래 몸을 말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메리에 대해서도, 그는 얘기하지 않는다. 절대. 절대로.


물론이지만, 그것이 심장을 후비는 고통이기 때문은 아니다 ― 그래,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의 세상에서 그녀가 떠나간 것은 당연히 고통스러웠다. 그는 지금의 무언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사랑했다. 그는 그저 그녀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편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녀와 헤어진 지 거의 2년이 지났고(그 테스트를 한 이후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배가 부르기 시작했지만 ― 아니, 아니, 아니다. 2년은 긴 세월이다) 무엇보다도 그녀에 대한 좋았던 추억을 묻어놓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여덟 달 하고도 반 전 처음으로 그녀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 셜록은 의도치 않게도 리젠트 공원 근처의 인도 음식점 안, 그녀가 좋아하던 아늑하고 외진 자리로 존을 끌고 가 독성 뿌리식물의 차이점에 대해 신나게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이 입술에 얹히는 순간, 존은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으며 맹렬한 분노가 얼굴에 떠오르는 모습을 봤다. 그건… 마음이 아팠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슴이 쑤셨다. 존 왓슨이야말로 이 세상 누구보다도 셜록 홈즈를 아프게 하는 것들을 막아내는 데 열심히인 사람임이 자명함에도, 정작 자신의 몫으로 돌아오는 고통에는 외면하는 법을 몰랐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하는 체력 단련을 위한 훈련, 대학 때 아침 8시 반에 있는 물리 화학 수업을 수강하는 것, 혹은 어떻게 하면 남자의 흉강 안에서 나뭇가지를 무사히 빼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따위의 일들이라면 물론 좋은 도전과제가 되어줄 것이다. 존은 도전을 좋아하지만, 11개월 전 여기 ‘죽지 않은’ 미친 사내가 그의 앞에 나타나고서부터 시작된 도전에는 쉬이 진이 빠지고 말았다. 갑자기 나타나서 존의 뼛속까지 뒤흔들며 몸을 떨고, 낯빛이 희어지게 만들고 만 그 남자. 뻔뻔하게도 그의 삶에 다시 얼굴을 들이밀고 ‘안녕’이라는 말 한 마디 해주지 않았던 바로 그 남자 때문에. 거기다 낯빛이 희어졌다는 그 대목마저도, 심장을 찌르는 듯한 배신감과 들끓는 증오로 감정은 이미 격렬했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기에. 입술 위로 곧 흩어져 나올 것 같던 그 말은 그의 가슴 안에서만큼은 현실과 다른 꿈을 꾸었다. 커피 테이블과 ‘키빅’ 소파 따위의 이케아 가구로 이루어진 플랫 가운데 우뚝 서서 꽉 그러쥔 손등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안녕—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거든, 안녕, 그런데 이 말은 하자—나 너를 ____해. 오른팔을 뒤로 젖혔다 뻗으며, 자신의 탐정에게로 달려드는 존의 마음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5년간의 전투 경력과 영국군의 훈련소에서 습득한 맨손 격투 실력을 모두 쏟아부어 그는 온 몸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존 왓슨은 자신과 셜록 홈즈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이건 간에, ‘사랑’이라고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여태까지 계속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거리 안은 꺼내지 않고 꽁꽁 숨겨둔 말들, 서로 모른 척 하고 있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11개월이 지난 지금 역시 말없이 살아간다. 그렇게 없었던 일처럼 덩그러니 남겨진 상흔에도, 그는 자신을 구속하던 싸구려 이케아 가구 더미를 떠나와 다시 한 번 무질서의 세계가 만연하며 권태를 집어삼키는 221B번지에서의 삶을 기꺼이 수용했다. 두 사람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날 허드슨 부인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존도 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렇게, 열한 달 동안 존 왓슨은 가슴속에 ____을 품고 달려왔다. 혼란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그는 누구처럼 가만히 앉아 사색의 시간을 가지며 삶의 의미나 실험 연구 따위의 것들을 곱씹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3년은 긴 시간이고, 이미 매듭이 지어진 것을 외면하며 살기에는 퍽 괜찮은 억제제였으리라. 그는 동성애자가 아님에도 남자인 친우를 ____한다는 가장 근원적인 사실 하나만큼은 변함이 없었고, 그건 그의 탐정이 세상으로 돌아온 이후부터였다. 싸구려 이케아 가구를 비추는 형광등 불빛 아래 홀로 환하고 아름답게 빛나던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 속에서 ____이 일어, 그들의 재회가 실제와 달랐더라면 ― 하는 상상을 멈출 수가 없다. 셜록이 ‘안녕’이라는 말과 함께 그의 앞에 나타났다면, 존은 녀석의 창백하면서도 멋들어지게 부풀어올라 있는 입술에 손끝을 한 번 가져다 댄 다음, 대답할 거다. 안녕,


지난 3년동안 내내 이 생각만 했어, 너를 ____해.


―그러고 나면 고개를 기울여 입을 맞출 거고,


―그러면 셜록의 길고 섬세한 손가락이 그의 허리로 올라오고, 그런 다음엔 존이 셜록의 다리 사이로 은근하게 무릎을 밀어넣고, 그 검은 고수머리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넣어 헝클어뜨리면―


아니다.


당연하게도,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뭐든 간에, 키스는 물론이고. 셜록은 셜록일 뿐이다. 그럼에도 가끔씩, 221B 번지에는 희미하게 그들을 감싸는 다정한 분위기가 피어나곤 했다. 그들이 다시 221B 번지로 돌아온 그날 밤, 셜록은 아무 말 없이 그의 침대로 들어왔다. 단 한 번의 일이었다. (아마도 존이 렘 수면 상태인 척 하는 동안 지켜볼 요량이었을 것이다.) 그 일에 대해서는 지난 11개월 동안 입도 벙긋하지 않은 채 없는 일처럼 지냈다. 말하지 않는 사실들, 두 사람이 서로 부자연스러울 만큼 오래 쳐다보고 있다든지, 이따금씩 나란히 소파에 앉아있을 때면 셜록이 몸을 웅크리고 누워 그의 무릎에 거의 머리를 누일 것처럼 다가온다든가, 혹은 셜록에게 찻잔을 건네줄 때 손목 안쪽에 혈관이 비치는 얇디얇은 피부를 거의 매만질 것처럼 의식한다는 사실 역시. 얼마나 아름다운 불협화음인가. ‘거의’ 가까워지는 거리와, 그리고 반대로 ‘절대로 말하지 않는 사실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흐린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선명하게 밝아오는 날도 있었다. 그 날 존은 신문을 읽고 있었고, 셜록은 자기 의자에 앉아 있다가 랩탑을 옆에 끼고 일어나더니 존이 있는 탁자로 와 바로 옆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언가가, 바뀌어 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조금씩, 정말 조금씩. 그러면서도 두 사람 모두,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도 이해할 일 없이 동시에 감히 나서서 손을 가져다댈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덩어리를 덮어놓은 것처럼 눈치를 보기만 했다. 그러니, 이 사실에서 조금이라도 뭔가 바꿔보려고 먼저 나설 사람은 없다는 것 역시 자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다시 그들만의 평범한 일상으로의 여정에 안착했다는 점이다. 한 번에 한 박자씩 천천히 발을 내딛고 있었다. 열한 달이 지났다. 소동은 막을 내렸고(뭐, 대형 건만 취급하자면) 원한은 묻어버렸다. M으로 시작하는 세 가지 화두는 꺼내지 않는 것으로 암묵적인 약속이 생겼고, 이젠 멀리 잊혀졌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두 사람은 이 여정을 퍽 잘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존은 셜록을 품고 지탱하기로 했다. 명분만 있다면 존은 셜록을 위해서 남은 삶을 전부 바쳐, 성심성의껏 쉬는 날 따위는 없이 기꺼이 그렇게 할 요량이었다.


산타 클로스 체포 사건이 지나고 이틀 후, 날은 혹독한 추위가 기다리는 12월의 문에 들어섰고 그동안 존은 레스트레이드의 노여움을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경위는 해러즈 백화점에서의 일을 도와주러 오느라 아들의 축구 경기를 못 보게 되었었다. 붙잡힌 산타 클로스는 역시나 상습범이었고, 경비들은 기업 이미지를 준수하느라 그다지 협조적이지 못했다. 그에 맞서 셜록은, 늘상 그렇듯이 가시를 마구 뻗대고 공격했다. 물론 목적어는 그곳에 있던 사람 전부다. (운동을 하다 온 모습 그대로)와서 달갑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레스트레이드의 몸에서 사리가 한 사발 나온대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전혀.


“자네에게 시민을 마음대로 체포할 권리가 있는 줄 알아? 제대로 조사를 받고 따라야 할 절차가 있는 거라고. 빌어먹을, 이거 원.” 레스트레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서류 두 장 밑에 이름을 휘갈겨 넣었다. 하나는 셜록을 훈방하기 위한 서류였고 다른 하나는 자비로운 산타 클로스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 노인을 체포하기 위한 영장이었다. “자네들 때문에 내가 크리스마스까지 목숨 부지하려면 기적이라도 일어나야겠군그래.”


뭐, 기적은 없어도 되겠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틀이 지난 오늘, 크리스마스까지 22일이 남았다. 두 사람은 거실에서 그들만의 평범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셜록은 기분이 좋지 않다. 잠옷 바지와 가운을 그대로 입은 채 창밖을 내다보며 바이올린만 낑낑대고 있는 중이었다. 대단하게 연주를 하는 걸 보면 마치 세상이 새로 재구성되어 음악뿐만이 산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도 되는 듯 했다. 밤 9시가 넘은 바깥은 어두웠다. 런던의 길거리를 비추는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창문 너머로 번득였다. 존은 막 세 번째 찻잔을 비워냈고, 그 날 아침 야드에서 받아온 사건 파일을 훑어보고 있었다. 레스트레이드는 이미 한 쪽으로 감을 잡은 듯 했다. (“내 생각에 노우드Norwood[각주:2]에서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놈 범행인 것 같아. 수법이 똑같거든. 간이 부어서 점점 대범해지고 있어.”) 경위는 자신의 직감에 썩 확신하고 있었지만, 레스트레이드가 늘 그렇듯이 그의 확률은 반은 정확하지만 반은 완전히 틀려버리는 수가 있었다. 셜록은 지금까지 사건파일을 들춰보지조차 않았다. 아예 바이올린 말고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섬세하고 잘난 뇌를 위해 사방에 쳐놓은 장벽 안에 틀어박혀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줄곧 연주를 하거나, 작곡을 하거나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두 가지를 병행하고 있었다. 적어도 존이 생각하기엔 그랬다. 존은 근무가 없는 대신 종일 잔업으로 바빴다. 드라이클리닝을 맡긴 후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진료소에서 다음 해 일정을 받아왔고, 기타 등등을 처리하느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겨우 한 시간 전이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셜록과 있을 때면 자주 있는 일이었다. 셜록은 마침내 꽉 다물고 있던 조가비 안에서 나온 건지, 다시 부산한 신경질쟁이로 돌아왔다. 잠시 후, 시선이 닿은 곳에서 셜록은 긴 허벅지 위에 바이올린과 활을 늘어뜨리고 이쪽으로 돌아서, 눈을 고정했다. 그에게로 향한 것 같은 눈동자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밝기만 하다. 하얀 조각 같은 그의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가 살며시 떠오른다. 저 웃음을 그동안 어찌나 그리워하고 또 그려왔는지. 저 남자의 곁에서 떨어져 있던 수 해 동안 그는 속이 텅 빈 장난감 병정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그 미소는 오로지 존 왓슨이 곁에 있을 때만 셜록이 남몰래 보여주곤 했고, 존을 마구 뒤흔들어 녹은 왁스처럼 흐물거리게 만들었다. 그는 찌릿, …무언가…가 가슴을 찌르는 감각을 무시하고 커피 테이블 위에 흩뜨려진 문서로 두서없이 시선을 흐렸다. 얼굴에 오르는 뜨거운 열을 달래느라 진땀이 빠졌다. 얼굴을 붉히는 건 의젓하지 못한 일이었다. 전혀.


결국 셜록의 움직임을 알아채는 데 약 3초가 더 걸린 이유는 그래서였다. 테이블 반대편으로 와서 선 셜록이 그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응?” 존은, 고개를 들지 않고 물었다.


“그러니까, ‘해서, 이를 종합해 봤을 때 작곡가는 ______’”


“아, 알았어. 잠깐만.” 그러면서 존은 사건 파일을 집중해 쳐다보면서, 이 안의 사건이 얼마나 참혹하든 좋으니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저 놈의 소시오패스를 달래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추가로 자신의 심란한 마음까지 진정시킬 만큼 시간은 넉넉하지 못했다. “됐으니까 입 좀 다물어 주지 않을래. 종일 말도 없더니 마침내 입을 열어서 한다는 게 또 이거냐. 난 장단 안 맞춰 줄 거야. ‘작곡가 맞추기 게임’ 따위 안 할 거거든. 솔직한 말로 내가 알 게 뭐야, 드뷔시든 쇼팽이든―”


“틀렸어요.” 쯧, 하고 셜록은 혀를 찬다. 존은 그 미소짓던 얼굴이 완전 싫다는 얼굴로 변했으리라고 쉽게 상상이 갔다. “둘 다 아니야. 차이코프스키라구요. 기교적인 측면에서 아주 색이 강하기 때문에 구별하기도 쉽죠. 존, 정말이지 클래식 작곡가에 대한 지식이 이렇게 철저할 정도로 한심한 수준일 줄은 몰랐네요. 그럼 이번에 확실하게 해두죠, 이게 싫으면 당장 클루도를 하든가요.”


“무슨 소리. 여기 사건을 두고?”


“벌써부터 지루해졌다고요. 게다가, 당신의 반응으로 봤을 때 클루도가 낫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어.”


존은 잠시 아래를 보고 생각을 짜내다, 마침내 셜록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말을 하기에 앞서 그는 몸을 앞으로 숙여 무릎에 팔꿈치를 기대고 깍지를 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첫 번째로 어떻게 하면 자신이 ____하는 남자에게 그럴듯한 설명을 할 수 있을지 골이 아팠고, 두 번째, 이대로 있다간 저 희디 흰 목덜미를 잡아다가 짤짤 흔들며 짜증을 털어낼 것 같았다. “좋아, 알았어. 내가 군대에서 훈련병 시절에 말이지, 그 뭐냐… 포로 훈련이 있었거든. 이틀간 정부에서 날 합법적으로 고문할 수 있게 만드는 거야. 물론 철저하게 제한된 거지, 현장에 정신분석가도 배치하고―”


“오, 대단하기도 하지. 무용담이라는 건가요. 3년간 이 흥미진진한 활동을 못 했다고 기어코 결손을 채우고 싶은 모양이죠? 계속 해봐요. 허드슨 부인도 티타임이 한 시간 반 전에 끝났을 겁니다.”


 “그만, 다물어봐. 그런 거 아니야 . 그리고 허드슨 부인은 안 와. 시간이 늦었다구. 그러니까 입 다물어줘. 어쨌든 하던 얘길 이어서, 그 훈련 중에 상자에 가둬지는 게 있었거든. 한겨울이었는데 땅도 꽝꽝 얼어 있었고, 추워서 진짜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 생각해봐, 상자가 제대로 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앉지도 못 하게 생겨서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거야. 그런데 바깥에서 시를 읊기 시작하더라니까. 러디어드 키플링이 쓴 <보병대의 행진Infantry Column>을 말야, 알지?—‘We're foot-slog-slog-slog-sloggin' over Africa, Foot-foot-foot-foot-sloggin' over Africa, Boots-boots-boots-boots-movin'up an' down again’[각주:3]—이걸 계속 반복하는데 그 몇 분이 거의 한 세월처럼 느껴져서―”


“그래서 요점이 뭔데요―?”


“요점은,” 존은 깍지 낀 손을 풀고 말을 마무리 지으며, 오크 무늬 커피 테이블 위를 선혈낭자하게 수놓은 척수와 장기의 사진에 시선을 맞추었다. “차라리 그거라도 너와 클루도를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이 말이지. 적어도, 이 지휘자 어쩌고 하는 것보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


이제 존은 사진을 들고 소파 옆 앤티크 램프의 은은한 빛에 비추어 목이 잘린 대사관의 시신을 살피는 데 집중했지만, 한켠에서 셜록의 얼굴에 실망과 비슷한 것이 왈칵 스쳐가는 것을 보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런 후 그는 원래의 무표정한 가면을 다시 뒤집어썼다. 복잡하기만 한 그의 심장 속 깊숙이, 어딘가 숨겨진 작고 여린 신경은 상처를 받은 것이다. 셜록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테지만. 어찌 되었건 그 누구도 그런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하긴 언제는 그러했던가? 둔탁한 소리가 작게 들려와 흘긋 곁눈질을 하니 플랫 저편에서 셜록이 바이올린을 도로 케이스 안에 넣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커피 테이블로 다시 사진을 내려놓는 그 5초도 안 되는 찰나에, 존은 자신의 오른편에 손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 나타나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는 클루도 파괴자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셜록은 거의 그에게 닿아 있었다.


거의.


“지루함을 줄여보고자 하는 내 노력을 그리 가차없이 묵살시켰으니, 괜찮다면 이제 사건에 대해 들어보도록 하죠.” 셜록은 사진을 가리키는 듯 손을 펴 보이며 그에게 명령 아닌 명령을 했다.


이것 역시 거의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둘만의 평범함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이 긴장감, 여기가 존의 사적인 영역이냐, 아니면 셜록의 사적인 공간이냐 하는 하등 부질없는 줄다리기다. 그런 경계선 따위 모래 위에 그은 선처럼 쉽게 흐려버릴 수 있었다. 그가 죽음에서 돌아온 후부터 그것은 점점 더 재미가 붙어갔다. 셜록은 너무도 가까운 곳에 있었고, 그래서 ― 셜록의 흰 목덜미 아래서 펄떡이는 심장의 고동마저도 여차하면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흰 목을 따라서 약동하는 피를 타고 위로, 위로, 곧게 올라가면 입술과 이어지고, 아이러니하게 피를 받은 입술은 창백하게 보이기만 했다. 그리고 그건 그의 한평생을 통틀어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움이다. 압박하듯 바로 옆에 다가와 다리를 꼰 채 앉아서, 기대하는 눈빛으로 존을 바라보는 셜록의 태도는 놀라울 만큼 차분하다. 그는 뒤로 물러나 둘 사이에 좀 더 틈을 만들어야 하나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만, 그러면 셜록이 당혹해 할 거고… 또, 존은 이래도 괜찮았다. 제길, 괜찮다 뿐이겠는가. 하지만 입 밖으로 그 얘길 꺼내지는 않았다. 그가 늘 마음에 품고 있는 말 역시 하지 않는 것처럼―


“빨리도 물어보는군.” 코웃음을 친 존은 흩어진 서류를 대충 파일 안에 갈무리해 셜록에게 건넸다. “살인사건이야. 피해자는 네 명이고, 각국에서 온 대사들인데 모두 웨스트민스터의 대사관에서 살해됐어. 목을 그어서 죽였고. 범행 방식이 비슷해서 레스트레이드는 지난달 노우드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의 범인과 동일한 놈이 벌인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알만하다는 듯, 혀를 차며 넌더리를 낸 셜록은 무릎에 올린 파일 앞장을 우아하게 걷었다. 눈을 가늘게 뜬 그는 대략 2초간 안의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았고, 맨 앞의 사진을 들어 조사한 뒤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눈을 휙 굴리는 데까지는 3초가 더 걸렸다.


이것도 거의 익숙한 거였다.


“아냐, 아냐, 아냐. 아니야. 레스트레이드에게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고 얘기해요. 블랙히스Blackheath[각주:4]로 가면 첫 번째 피해자가 여전히 살아있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보험 사기예요. 뻔하죠.”


맙소사, 그게 대체―


늘 그랬듯, 존은 할 말을 잃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익숙함으로 한 발자국 추가다.


“그리고 나머지 셋은?”


“나머지는 동일하죠, 그게 다에요.” 창백하니 파르란 핏줄이 돋아난 손목을 까닥해 셜록은 사건 파일을 테이블로 던져놓았다. “첫 번째 피해자는 두 번째 실제로 사망한 피해자의 부인과 간통을 했어요. 나머지 사람들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고, 세간에 얼굴이 알려질 대로 알려진 공인이니 자기 신상에 빨간 줄이 그일 바에야 살인을 하는 편이 낫다고 여겼을 겁니다. 그래서 살인을 하고 자기 자신도 죽은 걸로 위장했어요. 꽤나 똑똑한 수법이었죠, 말하자면. 최근의 연쇄살인 사건을 모방해서 치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두 번째 피해자의 아내는 두 사람의 생명보험을 챙겨서 이제 둘이 블랙히스에서 감동의 재회를 한 후 해가 저무는 바다 저 너머의 어딘가로 도피를 떠나겠죠. 로맨스야말로 가장 소름끼치도록 잔인하지만,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대단하죠. 그렇지 않나요?”


존은, 그래서 그걸 다 아는 사람이 죽음을 꾸미고 묘비를 세워 내 가슴에 못을 박았느냐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제 11개월이 지난 일이고 그런 것은, 얘기하지 않는 불문율이었다. 지금이라면 특히 그렇다. 해서 대신 존은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어떤 화제는 입에 올리지 않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언제나 그랬고, 또 언제나 그러하리라. 정말 기가 막혔다.


“으음,” 하고 입을 연 존은 가까워도 너무 가까운 곳에 있는 셜록의 얼굴을 보느라 멍해진 억양으로, 그에게 시덥지 않은 농담을 건넸다. “언젠가는 산타 클로스도 네 소원을 들어주겠지. 목록이라도 만들어놔봐.”


정적이었다. 그를 올려다본 셜록은 입을 열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까만 곱슬머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그렇게 하면 머릿속의 혼란스러운 것이 바로잡히기라도 한다는 듯 말이다. 셜록을 혼란시킬 수 있는 건 아주 예가 적으니 분명 뭔가가 심각하게 말이 안 된다고 받아들인 모양이다.


“뭐요?”


“목록. 크리스마스 소원 말이야, 이 바보야. 진짜 효과 있는 거라구. 뭐 전부는 아니더라도… 잠깐만 ― 그게 뭔지 몰라?” 


존 왓슨은 셜록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라곤 아무것도 몰랐고, 더군다나 남들이 봐도 특이하기 짝이 없는 홈즈 가 집안에서 크리스마스 소원 목록 따위를 적으며 아이를 키울지에 대해서는 더욱 알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요 탐정님과 함께한 시간이 헛것이 아니라면 그 역시도 간단한 것을 추리하는 능력이나 스킬같은 것을 배웠기 마련이다. 녀석이 소파에 퍼질러져 선잠에 빠져 있을 때 불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든가 하는 사실이 아니더라도, 존은 이국의 기숙학교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의 특징을 단번에 집어낼 수 있었다. 존은 셜록과 다르게 단지 태어날 때 입에 금수저가 물려있지 않은 것 뿐이었지만, 그걸로 유감인 점이 있다면 그 중 하나는 눈치가 약아진다는 거다. 하긴. 이런 걸로 남을 시기하는 것 자체가 전혀 생산적이지도 않고 당당하지 못한 짓 아닌가. 게다가, 자신이 신경쓰고 있는(또는 ____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잘 것 없는 이유로 부러움을 느낀다는 건 결국 무의미한 일이다. 어쨌든 셜록의 반응을 보면, 마치 존이 고대 룬 문자를 애들이 일기장에 쓸 법한 유치한 암호문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하기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뭐, 그럼 녀석의 인생에 크리스마스 목록같은 건 없었다는 거겠다.


“당연히 크리스마스 목록이 뭔지는 알아요. 근데 내가 왜 그딴 걸 써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거죠. 난 크리스마스라면 질색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쭉. 으, 지긋지긋해.”


물론 그것도 함께 살아오면서 존이 알고 있던 일이었다. 셜록은 분명 사슴뿔 머리띠를 쓰며 들뜨는 타입은 아니었고 명절에 파티를 연다든가, 캐롤을 듣는다든가 아니면 하다못해 지팡이 모양 막대사탕이라도… 여하튼 이 명절에 대한 모든 것을 통틀어, 셜록은 자신이 대부분의 인간들을 향해 대하는 태도 그대로 크리스마스를 취급했다. 그게 놀랄 일이었던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존은 들뜨는 기분이었다. 올 12월 25일은, 3년 만에 다시 221B번지로 돌아와 맞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다.


존은, 들떠 있었다. ‘거의’ 평범해지는 기분이다.


“크리스마스를 싫어할 수는 없는 거야, 그게 어떻다고… 이상하잖아. 왜?”


아아, 그것이 문제로다. 셜록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짓더니 천장을 보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부터 힘을 비는 듯 했다. 뭐 주체가 셜록이니 대상은 깨달음의 선구자들 정도가 되겠다. 예전에 딱 한 번, 뉴턴에게 기도를 올리는 건 들은 적이 있다. 뭐 이것 역시 그의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셜록이 천장에서 눈을 떼고 그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221C번지로부터 고개를 돌려 존을 봤을 때, 존은 그 눈빛 안에서 지독한 역겨움과 혐오, 여하간 온갖 안 좋은 건 다 들어간 것이 폭풍처럼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부럽군요, 존. 뇌가 그렇게 단순하니 사는 게 얼마나 편할까.” 녀석은 가시가 마구 돋친 말을 내던지고는, 틈도 안 주고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왜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냐고요? 난 크리스마스를 혐오하는 겁니다. 온통 어울리지도 않는 촌스런 색깔로 거리를 도배를 해놓고, 여기저기선 ‘이거 사줘’ ‘저거 사줘’ 쓸데없는 걸 사고 팔고, 이상한 음악까지 완전히 불협화음이라고요. 식물이란 게 대개 색이 녹색에 적색인데 겨울이 돼서까지 일 년의 반을 빨, 초, 빨간색과 초록색밖에 없잖아요? 매년 이 순간을 위해 이때까지 갈고 닦아온 실력을 펼쳐 소비 지상주의가 만연해지니,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자만이 살아남아 자본주의의 포식자가 된다는 겁니다. 게다가 애들은 왜이리 많은지, 없는 곳 찾기가 더 힘들다니까. 조그만 애새끼들이 벙어리장갑에 목도리로 무장하고 사방에 나와서, 텔레비전이고 가게고 공원이고 끊임없이 노래를 하는데다 돌아다니면서 눈사람을 만들어서 숭배를 하지 않나 시끄럽게 있지도 않은 산타와 빨간 코 사슴 타령을 한다고요. 그리고 캐롤, 오, 캐롤. 캐롤도 문제야. 가게고 어디고간에 온통, 평균 여섯 곡만 끊임없이 틀어놓잖아요. 그 사람들은 머릿속에 한계가 거기까지인가 보죠? 기생충도 그런 대뇌 피질에는 들어가기 싫을 걸. 이 시기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도처에 허접쓰레기 투성이라고요. 색깔이며 음악이며, 사람들은 하나같이 축제 분위기고 심지어는 ‘즐겁고’ ‘유쾌하게’ 지내야 한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압박까지 있다니까요. 모든 게 전통이라는 명목 하게 푹 찌들어 있으면서 어째서 전 세계의 콜라병마다 산타클로스가 그려져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아무도 진짜 유래는 몰라. 끔찍해요. 이맘때쯤 되면 온 세상이 아예 원더랜드 한 가운데 똑 떨어져서 돌고 돌고 돌다가 미친 모자장수가 크리스마스 화관에다 앞치마 둘러맨 채로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하는 거랑 비슷하다고요. 그래서 싫단 말입니다.”[각주:5]


존도 무척 노력했다. 웃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입가가 허물어지며 움찔대는 통에 얼른 손을 들어 웃음을 가려야 했다. 낄낄대는 것은 아주 의젓하지 못한 짓이었으니까. 특히나 플랫메이트가 약이 바짝 올라 위험 상태에 도달했을 땐 말이다.


“그거야말로, 정말이지 네 역사상 최고로 유치한 표현이었어. 네 어린 시절의 불안함을 광고라도 할 셈이야? 그만 둬, 당장.”


돌아오는 것은 작은 한숨소리다. 알만하다. 셜록은 가슴께로 두 무릎을 끌어안고 소파로 들어와 눕더니 공처럼 웅크렸다. 그러더니 싫어 죽겠다는 표정을 한가득 담고 그를 올려다보는데, 그건 좀 아쉽다. 늘상 그랬듯, 녀석의 까만 머리칼이 그의 무릎에 거의 닿아 있었다. 거의. ‘거의’ 가까워지는 거리와 ‘절대로 말하지 않는 사실들’의 아름다운 불협화음의 연장선인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사실만 직시해 보자고.” 그렇게 말하며 존은 다리에서 겨우 2인치 남짓 떨어진 곳에 고즈넉이 널려 있는 셜록의 곱슬머리 따위, 못 본 척 했다. “네가 어제 산타 할아버지에게 멋진 살인사건을 달라고 빌었지? 그랬더니 어떻게 됐는지 봐, 와, 하루 만에 사건이 생겼네? 벌써 네 명, 맞나? 네 명이나 죽었다구. 네가 3초 만에 후딱 해결해 버리긴 했지만 말야. 크리스마스 싫어하는 건 아니까 잔말 말고 목록이나 만들어봐. 그런다고 안 죽어. 혹시 모르지, 목록을 만들어 두면 크리스마스를 조금이나마 덜 싫어하도록 내가 만들어 줄 수도 있잖아.”


셜록이 뻗은 손은, 거의 닿을 것처럼 (정말로 닿을 것처럼 위험하게…) 존의 무릎 위를 넘어가 소파의 다른 쪽 끝에서 유니언잭 쿠션을 집어 돌아갔다. 그는 돋보이는 광대뼈 밑에 쿠션을 놓고 얼굴을 푹 묻었다. 영광스러운 그들의 국기도 그에게 오면 깔개 신세가 되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볼까요, 그런 쓸모없는 시도를 하느니 나한테 장기를 구해다 주는 편이 훨씬 더 쉬울 걸요. 당신도 잘 알고 있을 테고.”


존 왓슨은 도전 앞에서 도망치는 남자가 아니다. 이번에 그의 앞에 선 것은 지금껏 마주해온 도전 중에 가장 위대하고 커다란 놈이었다. 셜록 홈즈를 설득해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만든다. 셜록이 크리스마스에 빠지도록 만들 수 있으면, 그 다음엔―


거기까지는, 지금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그게 그렇게 갖고 싶나봐? 좋아,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이미 때려치웠겠지. 그래. 냉정하게 말하자구. 넌 절대 수월한 놈이 아니거든. 하지만 기대해도 좋아. 네가 크리스마스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어.”


“당신은,” 셜록은 팔을 괴고 몸을 일으켜, 거의, 오해할 만큼 경건한 목소리로 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의 눈동자 빛깔은 바다에 이는 물보라였다.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이상한 표현인걸, 존은 생각했다. 엄밀히 말해서 저 말은 틀리다. 존 왓슨은 어느 모로 보나 평범한 보통 사람이다. 여느 사람들처럼 보통 키에 평균 몸무게, 흔해빠진 머리카락 색(그리고 평균 이하의 스타일 센스도 있다고, 셜록은 냉정하게 덧붙였을 거다)까지 전부 존 왓슨 박사의 몫이다. 반면 셜록 홈즈라면 다르다. 눈에 확 띄게 개성 있게 생긴데다 멋지고, 좀 미친 게 문제긴 하지만 어느 모로 보나 인상 깊은 사내인 건 확실했다. 이 세계에서 존 왓슨을 엘리스에 비유하자면 셜록은 말할 것도 없이 단연 미친 모자장수였다.


“그래.” 존은 셜록의 허리를 두드려주고, 일어나서 요즘 만나고 있는 여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그만 이 문자가 마지막이 되기를, 마음속으로 열렬하게 바랐다. 지금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미친 공동세입자에게 방해를 받은 거라고 미리 변명을 세우며. “네 옆에 종일 어울려다녀서 그런가 보다. 오, 네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이제 좀 아려나?”






그 목록이란 것, 아무래도 존이 잘못 생각한 걸지도 몰랐다.


그날 오후, 소파에 무거운 엉덩이를 꼭 붙인 채로 셜록은 문자를 주고받으며 대사관 참사 사건의 전말을 추리해 레스트레이드에게 알렸다. 그리고 다음 날은 무슨 우주의 조화인지 이틀 연속 진료소 근무를 쉬게 되어 존은 이 틈에 이번 사건에 대해 블로그를 업데이트하기로 했다. ‘국가의 머리’라고 제목을 적으며, 존은 보나마나 이번에도 셜록이 무척 싫어할만한 작명센스라고 생각했다.


“그 제목,” 셜록은 불쑥 의자 뒤로 나타나더니, 글을 써내려가고 있는 존의 옆으로 허리를 숙였다. 목덜미에 닿는 그의 숨이 위험하게 가까워졌다. “진짜 넌더리날 만큼 터무니없는 말장난이로군요.”


잠시 존은 뒤돌아서 아주 친절하게 저 얄궂은 얼굴에서 웃음을 쏙 빼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입 다물지.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라구. 미리 선물 주는 셈 치고 조용히 좀 해줘.”


퉁명스런 대꾸를 들어놓고도 셜록은 그 날 내내, 지루함으로부터 한숨 돌리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어쩌면 근래 들어 가장 행복해 보였다. 그의 말만 들으면 연휴에 얻는 살인사건만큼 재미난 것도 없어 보였다. 빨간색이야말로 이맘때 한창 주가가 오른 색깔인 것이다. 존도 덩달아 행복했다. ____하는 마음으로 행복해서(마냥 좋은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셜록에게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겠다는 상상으로 즐거웠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못 갔다. 존은 그 날 오후 테스코에서 산 물건이 잔뜩 든 비닐봉지를 양 손에 든 채로, 셜록이 마트 입구 바깥에서 크리스마스 구세군 자선모금을 펴놓은 남자에게 멱살이 잡혀 짤짤 흔들리는 걸 떼어놓아야 했다. 마트에서만큼은 탐정짓을 못 하고 얌전하겠지 착각했던 게 잘못이었다.


존은 짐을 고쳐잡으며 셜록의 코트 소매를 붙잡아 질질 끌고 자리를 떴다. “일단 리스트를 써서 보여주기만 해봐. 그럼 내가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도록 만들어줄 수 있어.”


“어디 한 번 해보시죠.” 그렇게 쏘아붙인 셜록은 악의 가득한 모양으로 코트 자락을 극적으로 휘날리며 의사를 남겨두고 혼자 휑 가버렸다. 뒤에 남은 존은 서둘러 남자에게 사과를 하며 지폐 한 장을 기부하고, 언제나처럼 혼자 수북한 짐을 양 팔에 든 채 길을 나섰다.


좋지 않았다.


다음날 오후 존은 1)일이 끝나고(따로 요청받은 3교대 근무였다) 2)진료소에 새로 온 접수원인 안나와 세 블록 너머에 있는 태국 음식점에서 데이트를 한 후 3)집으로 돌아왔다. 큰일을 두 번(메리의 죽음, 셜록의 귀환) 겪고 나서 맞는 데이트는 그야말로… 재미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원래 딱히 관심이 지대했던 영역은 아니었지만서도, 즐겁지 않았다고는 못 하겠다. 그는 섹스가 좋았다(두 달 하고도 반 금욕상태라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녀들은 스스로도 어이없을 만큼 꾸준하게 바뀌었고, 회전문이 달린 것처럼 끝없이 왔다 지나가는 여자친구들에게 받는 애착조차도 그다지 반갑지가 않았다. 최근에 그에게 애정을 주고 싶어하는 연인은 첼시 출신의 키가 멀쑥한 금발 여자다. 킹스턴에서 막 졸업해 런던으로 왔는데, 셜록이 몹시 짜증을 부리며 자기 머리칼을 쥐어뜯듯이 하면서 고 계집애는 “심각한 파파 콤플렉스[각주:6]”라고 지적했더랬다. 하지만 존은 상관없었다. 만약에 당신이 플랫메이트를 ____하고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 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은 게이가 아니고, 더군다나 그 플랫메이트는 소시오패스인데다 당신을 마주 ____해줄 수 없다면 더욱,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래서 존이 그 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원래 저녁 데이트가 있는 날보다 훨씬 이른 밤 8시 44분경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221B의 방 역시 바깥의 어둠에 잠겨 고요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셜록은 외출한 것 같았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존은 남은 음식을 싸온 갈색 종이봉투를 식탁에 올려놓고 외투를 벗은 다음(이제 보니 어울리지도 않는 남색 체크무늬 남방과 버건디색 카디건 차림이었다. 정신이 어디로 나간 건지), 색색의 자두 색깔 액체가 담긴 시험관들 옆으로 열쇠를 꺼내놨다.


그러다 문득, 냉장고에 무언가 조그만 종잇조각이 붙어있는 걸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 가까이 다가가니 글씨가 보였다. 읽지 않아도 누가 썼는지 알 것 같다. 이렇게 글씨를 괴발개발 날려쓰는 사람은 이 세상에 유일한 자문탐정님밖에 없으니까. 조그맣게 한숨을 지으며 존은 일단 냉장고 문을 열어 포장해온 태국 음식을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시체들 사이에 대충 넣어놓고, 선반 가장 바깥쪽에 있는 맥주를 꺼내 열었다. 준비운동이라고 해두자. 이제부터 냉장고 문에 붙은 종이를 읽어볼 참이니까.




목록 (크리스마스)


콩팥(가능하면 양쪽 다), 혹은/여기에 추가로 해부용 시신 한 구(30대 후반, 신장 180cm 미만의 남성 선호),


부패가 적은 발가락 한 봉,


소 눈알 16개 (각막이 제거되지 않아야 함),


2기통 휴대형 화염방사기,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미개봉 초판본,


그리고 다음 달까지 최소 열 건 이상의 악랄하고 무시무시한 살인사건.




…그러니까, 목록을 써보라고 했던 건, 무척, 매우, 엄청난 실수였던 것 같다.


솔직히, 이렇게 되어서도 애초에 뭘 예상했던 건지 모르겠다. 셜록에게 평범한 걸 요구하는 건 과자봉지를 뜯으라거나 애완고양이를 찾으라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원더랜드 직행열차다.


돌아버리겠군.


이곳같이 문명화된 세계적인 대도시 안에서 (각막이 제거되지 않은)소 눈알 열여섯 개를 도대체 어떻게 구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더군다나 무슨 일이 있건 절대 녀석에게 화염방사기를 쥐어주는 일은 없을 테므로 셜록더러 안 된다며 설명을 해야 하는데 그것 역시 막막하다는 게 또 하나의 문제였다. 어차피, 생각할 시간도 없는 것 같았다. 주방의 은은한 불빛 아래 목록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던 그에게 어두운 거실 안에서 어딘지 흐뭇한 목소리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가 아직 옆에서 재워주지 않는 모양이군요.”


놀랄 일은 아니었다. 반사적인 긴장으로 땀이 배어나는 손에서 병을 놓치지 않으려고 힘이 바짝 들어갔을 뿐이다. 또 놀랍지 않은 것 하나, 아주 명백한 일이라는 듯 그의 상황을 읊어버리는 셜록의 목소리 속에서 스스로도 주체 못할 즐거움이 존도 알 수 있을 만큼 확연하게 들려왔다는 것. 주방의 뿌옇게 빛나는 등불을 등지고, 거실에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다가가니 과연 셜록이 예의 그 소파에 길게 뻗은 자세로 턱 밑에 두 손을 모으고 누워 있었다. 그는 낮에 입던 옷차림 그대로, 보라색 셔츠는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신발도 신은 채였다. 보나마나 그 마음 속 궁전인지 뭔지에 들어가 있었겠지. 존은 그렇게 생각하며 맥주를 한껏 들이켜고, 앞으로 다가올 무척이나 힘겨울 대화에 대비해 마음을 꼭 다잡았다. 어쩌면 어떻게 타협 같은 걸 잘 봐서… 아니, 집어치우자. 타협은 무슨 타협. 이건 진짜 미친 짓이었다.


“어젯밤부터 계속 이 모양으로 여기 있었던 거야?”


셜록은 잠시 생각해보는 표정이었다. “흐으으으음, 어디 보자, 그러네요.”


“이봐.” 일단 그렇게 입을 연 뒤, 존은 한 번 더 손에 든 맥주를 마셔뒀다. “이 목록 ― 셜록, 이건―”


“무슨 ‘목록’이요?” 녀석의 손끝 너머로 조소하듯 입술이 비틀렸다.


“네… 크리스마스 소원, 목록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아.” 한쪽 눈썹을 끌어올리면서 마침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꼴을 보니, 여전히 불쾌하다는 양이었다. “그거요, 맞아요. 당신이 내준 과제, 매우 지치고 지나치게 규칙에 얽매여 있더군요. 게다가 몹시 논리적이지 못해요. 산타 클로스라는 위인이 사람들이 ‘언제 잠들어 있는지’, ‘언제 깨어나는지’를 알 만큼 신통하다면, 당연히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도 알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이거 조금 불공평해요. 당신이 크리스마스 목록을 만드는 건 본 적이 없다구요. 그럼 증거도 없는데, 내가 원하는 걸 모두 받게 된다고 어떻게 장담하죠?”


뭐라고 대답할 말도 없는데다, 존은 현재 자신에게 구멍을 낼 기세로 열렬하게 쏘아보고 있는 셜록의 눈길을 회피할 방법도 몰랐으므로 대신 맥주나 한 모금 더 마셨다. 눈 깜짝 했다 뜨기도 전에 셜록은 신통하게도 화제를 완전히 뒤바꿔 화살을 돌려놓았다. 셜록 홈즈의 죽 끓는 듯한 변덕을 상대하며 산다는 것은 마치 앞인지 뒤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빠르게 팽이치는 동전을 모시고 있는 것과 어느 정도 닮은 점이 있었다.


이것 역시, 둘만의 평범한 나날인 것이다.


 “이거… 혹시 실험이라든가 하는 거야?” 존은 주방 문가에 기대 물었다. ”크리스마스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아니, 실험 아닙니다. 그리고 싫어하는 거 맞아요.”


“그럼 ―”


“존 당신도 목록을 만들어요.” 셜록은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손을 휘젓고 나서 도로 턱 끝에 손가락을 모은 자세로 돌아갔다. “나한테 억지로 시켰으니 당신도 만들어야 공평하죠.”


다시 한 번 한숨을 지은 그는 몸을 돌려 주방 카운터에 맥주를 내려놓았다. 이제 실험용 통제 집단 처지에서는 한 단계 벗어난 대우를 해주려는 모양이로군. 그리고 엔트로피 상태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식탁 위를 점령한 시험관과 금간 페트리 접시들 사이를 몇 번 뒤진 끝에 기적적으로 종이와 펜을 발견해냈다.


“다 쓰고 나면,” 셜록은 나른하게 손을 저으며 숨 돌릴 새도 없이 말을 이었다. “일어나서 준비해요. 새 여자친구와 4주째 만나고 있지만 당신이 생존해나가는 데 매우 중요한 한 가지를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으니, 이게 필요할 겁니다. 사건이에요. 낮에 레스트레이드가 들렀어요. 내가 이미 문자를 여덟 번이나 보냈으니 당신도 알고 있어야 정상인 겁니다. 그런데 계속 무시하더군요. 당신이 만나고 다니는, 수많은 문제들 중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가장 심한 그 여자와 노느라 그랬겠죠. 당신은 의사라서 문제를 고치는 걸 좋아하니까.”


존은 목록의 첫 번째를 막 적으려던 참이었지만, 그의 말에 고개를 틀어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이 대체 ― 셜록, 벌써 9시가 다 됐어.”


“상관없어요. 카톨릭 성당은 거의 항상 열려 있으니까. 좋은 일이죠, 이 기회에 고해할 일이 있으면 사양하지 말고 해봐요.”


“내가 고해할 게 어딨어?”


“조금 프로이트적 해석이긴 하지만, 굳이 예를 하나 말하자면―” 셜록이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목록 종이가 손에 들려 있었다. “무의식중에 당신이 크리스마스 목록에 ‘섹스’를 생각해놓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겠군요. 산타 클로스가 과연 그 소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밤에 몰래 들어와 당신 침대로 기어들어야 할 텐데 말이죠. 존 당신도 그건 별로 달갑지 않을 겁니다.”[각주:7]


존은 더 이상 어떻게 그걸 알았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 어떻게 보지도 않고 이쪽 상황을 아는지, 방금 별 생각없이 썼던 걸 어떻게 알아냈는지, 어떻게 늘 이런 상황이 되면 귀신같이 남의 속을 파헤치는지. 이제와선 결국 소용없는 일이었다.


빌어먹을. 될 대로 되라지.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제발 얼굴이 느끼는 만큼 빨갛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뿐이다. “부탁이니까, 닥쳐줘. 그래서 ― 무슨 사건이야?”


“끔찍한 이야기죠, 마음에 들어요. 총 다섯 명의 카톨릭 부제[각주:8]가 사건의 주제예요 ― 그 중 둘은 혈연관계더군요. 덕분에 얘기에 감칠맛을 훨씬 더해줬죠.” 음울했던 분위기가 한 순간에 흥분으로 바뀌며, 셜록이 벌떡 일어나 앉아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눈으로 존과 눈을 맞췄다.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문가로 가 코트를 집어 입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셜록은 입을 쉬지 않고 놀렸다. “그 다섯은 어제 오후 즈음에 교계제도인지 뭔지 하는 일을 상의하려고 한 곳에 모였다고 해요. 그 중 한 명, 모티머 트레게니스라는 사람이 모임에서 나와 집에 돌아갔어요. 최근에 아프리카에서의 선교 활동에서 돌아온 후 이상하게도 몸이 좋지 않았다더군요. 다음날 아침 트레게니스가 성당으로 돌아왔을 땐 그 사람의 친형을 포함해서 두 명의 부제가 장기가 적출되어 죽어 있었고, 다른 둘은 탁자에 모여서 그걸 비웃고 있더랍니다. 목격자는 없고, 거기다 트레게니스에겐 빈틈없이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어요. 여기까지의 정황으로 보아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용의자는 살아남은 부사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악마가 따로 없어. 환상적이죠. 이거 하나는 인정해야겠군요. 당신 말이 맞았어요, 존 ― 산타클로스가 정말로 기적을 보여준 거예요!”





Part 2 →



역자의 말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거다!하고 소개하기로 마음먹고 작가님께 허락까지 받았다가 너무 글이 어려워서(....) 이제야 가져온 크리스마스 특집입니다. 설날에 크리스마스 특집을 읽는 기쁨을 누려보아요. (....)

벅찬 실력으로 조금씩 번역하고 있어요. 처음 이 픽을 읽은 시기가 아주 예전이라, 셜록이 존댓말을 씁니다. 그 때는 셜록이 존댓말을 쓰며 빈정대는 것으로 상상하는 걸 좋아했어요. 최근에 다시 읽으면서 말투를 바꿔보려 했지만 설정상 왠지 연하남으로 밀고 나가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사정이 있는지라 고냥 고대로 존댓말 셜록을 모셔와봤사와요.


제목은 마크 헬프린이 쓴 소설 <윈터스 테일Winter's Tale>에서 인용했다고 합니다. 작가님의 머릿속 셜록은 이런 모습이라고.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열정이 있다. 뭔가가 우습다고 생각되면, 그들이 짓는 웃음의 강도와 길이는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의 깊이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들은 하이에나 무리처럼 웃을 수 있다. 뭔가가 그들에게 감동을 주면, 그것은 폴 리비어[각주:9]처럼 그들의 내면으로 흘러들어 거대한 군대처럼 모여 있는 감정을 일깨운다. (전행선 역, 출판 북로드)






  1. 성경에서 나사로는 예수에 의해 죽음에서 부활한다. [본문으로]
  2. 잉글랜드 중부의 한 지역. [본문으로]
  3. Rudyard Kipling은 19세기 인도 출신의 영국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대표작으로는 <정글 북>, <소년과 바다Captains Courageous>, <만약-> 등이 있다. 위의 문장은 반복되는 시의 구절인데 번역도 곤란하고 직역하면 의미가 없어서(....) 그대로 두었다. [본문으로]
  4. 런던 동남쪽의 지역. 바로 위에 템즈 강이 흐른다. [본문으로]
  5. 헉헉.... 불만 한 번 길다! [본문으로]
  6. 엘렉트라 컴플렉스, 파파걸 등으로 생각하면 될 것. 남자 버전은 마마보이. [본문으로]
  7. ....대체 왜 그게 그렇게 되는 건데? [본문으로]
  8. 카톨릭에서 주교(bishop)-사제(priest)-부제(beacon)로 이어지는 성직자의 계급 중, 사제를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개신교 식으로 보면 목사 밑의 집사로 생각하면 얼추 비슷하다. [본문으로]
  9. Paul Revere: 미국 초기의 은 세공가이자 미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애국자로 유명하다. (본문 역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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