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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SH] 사건을 위한 키스 │ Just A Kiss - 6 본문

Sherlock_중편/시리즈

[JW/SH] 사건을 위한 키스 │ Just A Kiss - 6

topsecretum 기밀선녀 2014.12.20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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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그리고 다시…



두 사람이 탄 택시가 베이커 가 앞에 도착했을 때, 검은 리무진 한 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시해.”


셜록은 그렇게 말했지만, 존은 한숨을 지었다. 정말이지 집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쓰러져 자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집이 있는 쪽을 흘긋 바라봤다. 가로등 불빛이 문에 장식된 놋쇠 주소를 비추며 이리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안 돼.”


가까이 가자 차문이 열렸다. 그는 안시아나 혹은 마이크로프트의 다른 부하직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으나, 뜻밖에도 안에 있는 사람은 마이크로프트 본인이었다. 그는 반대편에서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존은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대고 앉아 기다렸다. 마이크로프트의 관심을 끌만한 업적은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한참 먼 모양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시선조차 들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탈출했군요.”


아슬아슬했던 적이 한두번이여야지, 라고 존은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처음엔 일주일이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4주일이 걸렸잖습니까.”


“오, 그랬지요. 이런 일이란 게 워낙에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곤란하다는 웃음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들어 귓가에 가져갔다. “그래, 물론이지. 이제 그만 이리로 와.” 그리곤 잠시 반대편의 얘기를 듣더니 눈을 휙 굴리면서 전화를 끊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차창 밖으로 드리운 길가를 내다보며 장갑낀 손으로 턱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있으니 새삼 동생과 무척 닮아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문이 다시 열리더니,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한 셜록이 들어와 옆에 풀썩 몸을 묻었다. 차문이 쿵 닫힌 것을 신호로 차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마이크로프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다시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좋구나. 꽤나 감동적인 재회였겠어.”


셜록이 옆에서 몸을 꿈틀거렸지만 아무 말은 없었고, 존도 얼굴에서 불편한 기색을 지워버리기가 힘들었다. 그는 뜸을 들이다 마이크로프트에게 어색만 미소만 지었다. 하지만 마이크로프트가 살피는 눈으로 그를 마주 바라봤기 때문에 다시 고개를 돌려야 했다. 자신의 표정에서 무엇을 읽어냈는지 모르니 상상하기도 싫었다.


빌어먹을, 이것보다 더 끔찍한 상황은 없을 거다.


택시 안에서 셜록은 아무 말이 없었고, 존 역시 달리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거기서 추행한 것 미안해, 라고 하는 건 왠지 이상하고 네 얼굴로 문질러줘서 고마워, 좋았어―[각주:1] 라고 말하는 건 미친 짓이다. 사실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셜록이, 동공이 활짝 열린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그러다 스스로에게 놀랐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 차에 태운 건, 보고를 직접 받으실 생각입니까?”


“그건 다른 사람들이 할 겁니다. 내 관심은 당신이 가져온 데이터를 셜록이 분석하는 데에 있죠.”


배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감시하고 있었군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식으로는 아닙니다. 당신의 성급히 임무에 착수했고 뒤이어 셜록이 투입된 후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데이터를 가지고 탈출했을 거라는 추정을 했을 뿐이죠.”


셜록이 주머니를 뒤져 USB 메모리를 꺼냈다. 마이크로프트는 끄덕이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네가 잘 보관하고 있어. 도착하는 대로 분석을 시작하는 게 좋을 거다.”


“그건 집에서도 할 수 있어.”


“물론 그렇겠지.” 창 밖을 내다보는 셜록을 향해, 마이크로프트는 십분 이해한다는 듯이 가식을 떨었다. “하지만 내 말대로 하는 편이 모두에게 좋지 않겠니?”


그들이 탄 차가 어느 지하주차장 안으로 들어섰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곳이었지만, 안으로 겹겹이 있는 보안문을 지나면 지하에 있는 시설로 향하게 되어 있었다. 존은 여기 와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셜록은 어땠는지 모를 일이었다. 지난 한 달간 셜록이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는 몰라도, 임무를 위해 훈련을 받았다면 여기서 준비를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이라… 그 훈련은 지난 한 달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사명감만 가지고, 매일같이 임무가 종결되기만을 기다리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어려운 임무는 아니었던 것에 비해, 마음만큼은 외로움과 지루함으로 혹사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이 능력을 가지고 거기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건 순전히 재능을 썩히는 일일 뿐이었다. 그래서 현재 얻을 수 있는 정보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분발해 보자며 자신에게 되풀이해 재촉했던 것이다. 존은 자료를 물어와 직접 분석가에게 보내기로 했다. MI5의 분석가를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는 임무에 직접 끌어들이느니 그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도 그 분석가로 누가 올 것인지 알게 되기 전까지의 얘기였다. 오랜 세월동안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을 데려다 쓰려고 회유에 회유를 거듭했건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번에 셜록은 그 일에 직접 자원했다.


곁눈질로 셜록을 쳐다보니, 그는 텅 빈 얼굴로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그의 얼굴 위로 스치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여느 때처럼 형하고 있을 때의 표정이었지만, 존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때 짓는 담을 쌓아올린 표정도 더해져 있었다.


존도 고개를 돌려버렸다.






“탈출하는 데 어려움을 없었습니까?” 태블릿 컴퓨터 자판 위로 요원의 손가락이 빠르게 대화를 입력해 내려갔다.


“전혀요. 건물 안의 인원들이 전부 각자 맡은 일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계단을 통해서 쉽게 뒷문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아무도 목격하지 못했고요.” 몇 주 전에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고 넣어두기로 했다. 정부를 위해 일한다는 게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잊고 있을 뻔 했다.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존은 억지로라도 웃는 낯을 비췄다. 아마 셜록도 같은 진술을 했을 것이다 ― 좀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설명을 했을 것도 분명하고. 건물 입구에서 보안 검색을 마친 후로 두 사람은 갈라져 따로 진술을 하게 됐다. 예의 그 ‘의례대로’인 것이다. 지금껏 누구도 그에게 의례에 위배되거나 어긋나는 일을 부탁하지 않았고, 존 역시 기대하지 않았다.


요원은 잠시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가 존과 눈을 맞췄다. “우리 쪽 분석가가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왜 직접 데이터를 빼왔습니까?”


올 것이 왔군. “기다리는 동안 계속 자료를 분류하면서 중요한 걸 추렸습니다. 분석가가 처음 보는 사무실로 한밤중에 몰래 들어가게 하는 것보다야 제가 직접 하는 게 훨씬 위험부담이 덜하죠.”


그래서 밤중에 사무실에서 포르노를 보고 있다가 들키는 것으로 알리바이도 맞춰 놓았다. 발견한 다른 놈들이 옆에 동석해 하나씩 자기 물건을 쥐고 흔드는 것까지도 참았다. 끝나고 난 후 놈들은 의심 없이 나갔다. 그는 다시 다른 사람이 들어올 때를 대비해 뒤에 포르노를 켜놓은 채로, 약 15분간 컴퓨터를 샅샅이 뒤졌다. 컴퓨터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데 며칠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셜록과 함께 살면서 습득한 기술이다), 일단 컴퓨터에 접속하고 나서부터는 모든 데이터를 간단히 열어볼 수 있었다.


자료를 모두 가져오라고, 3주 전에 명령만 내려졌어도 일은 거기서 끝이었다.


“기존의 계획보다는 임무의 위험부담 쪽에 관심이 많군요.” 가벼운 목소리에 비해 요원의 표정은 날카로웠다.


“4주 동안 임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 곳에 있는 정보가 뭔지 알아냈고, 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알고 있었어요.”


“그럼 독자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홈즈 씨와의 관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존은 입을 다물었다. 무슨 관계를 말하고 싶은 겁니까? 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정말로는 에이전시에서 그와 셜록의 관계를 무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들을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도 셜록과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으니까. “제가 선택한 행동이, 임무의 완수와는 관계없이 셜록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뜻입니까?”


요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마주보며 잠시 대답을 미뤘다. “그래요.”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우리를 잘 모르는군요.”


“이번 행동은 중요한 데이터를 놓칠 수도 있었던 명백한 실수입니다. 그래서 분석가가 필요한 거죠. 자칫하면 이곳의 존재 이유를 위협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이런 일은 실패했다고 해서 다시 기회가 돌아오지도 않고―”


“셜록이 원하는 것은 다 가져왔습니다. 그 녀석이 천재이긴 하죠, 하지만 나도 바보가 아닙니다. 무능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현장에서 함께 일하기에는 홈즈 씨에게 감정적으로 심하게 집착을 하고 있죠.”


존은 흥 하고 비웃었다. “우릴 조사한 보고서가 상당히 많았나 보죠?”


“여긴 MI5입니다, 왓슨 박사. 탐정 놀이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애초에 MI5에서 관심 있는 건 바로 그 탐정놀이로 임무를 성공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존이 대꾸하자 요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셜록이 이 임무에 배치된 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솔직한 말로 오히려 강하게 반대했겠죠. 내 사명이 어디까지인지는 압니다만 결정을 내린 건 셜록이 온 다음입니다. 셜록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에 대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임무가 크게 성공할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겁니다. 내게도 그런 결정을 내릴만한 권한이 있었다고 봅니다.”


“성공만으로 이번 행위를 용납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박사의 기록에 확실히 보고되게 될 겁니다. 앞으로 박사와 홈즈 씨가 같이 일을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적는 편이 좋겠군요.”


“뭐라고 쓰든 니 마음대로 하세요. 관심도 없으니까.” 황당해서 눈이 휘둥그레해진 요원의 표정을 마지막으로 존은 일어나 탁상에 보안 명찰을 내던졌다. “그만두겠습니다. 마이크로프트가 무슨 말을 하건 상관없어요. 이 빌어먹을 곳하고는 이제 안녕입니다.”


요원의 살벌한 눈길이 뒤통수로 와 꽂히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무시한 채 문을 열어젖혔다. 밖으로 나서면 틈을 주지 않고 경비들이 와서 길을 막을 테고, 그 다음엔 아마 마이크로프트의 사무실로 안내될 확률이 높겠지. 상관없었다. 이제 상관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 당장은 집에 돌아가서 깨끗이 씻고 차를 마시며, 어떻게 하면 셜록과의 우정을 보전시킬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2분여 뒤 마이크로프트의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책상 뒤에서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중이었고, 그 너머에 셜록이 앉아 있었다. 그는 빠르게 랩탑으로 무언가를 입력하고 있다가 존이 옆의 의자에 앉자 어색한 미소를 보냈다.


“당신은 좀처럼 예상할 수가 없는 사람이로군요. 안 그렇습니까?” 마이크로프트가 눈도 들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존은 입을 다물고 성급하게 말을 뱉지 않도록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면서 셜록 쪽을 보니, 녀석이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 히죽 웃고 있었다.


“들었겠죠? 그만 둔다고 했습니다. 원하는 건 다 얻었잖아요. 아니더라도 셜록이 분석을 마치게 되면 그렇게 될 거고.”


“서두르지 맙시다, 존.” 마이크로프트는 의자를 돌려 그를 향했다. “지금 감정이 많이 격해져 있어요.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입니다. 긴 잠복 임무를 마친 요원들에게는 다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의례적으로―”


“의례적이고 뭐고, 때려치우겠다고요. 난 이딴 임무를 하겠다고 승인한 기억이 없어요. 단 한 순간이라도 나한테 정직하게 설명해 준 적 있는지 양심에 손을 얹고 말해 봐요.”


그 말에 셜록이 호기심을 가득 담고 이쪽으로 고개를 향했다.


“위험요소와 변수를 생각하면 임무의 사정은 늘 바뀌기 마련입니다.”


“난 일주일이 걸린다고 했던 임무에 참여한 겁니다, 이게 아니라. 내 첫 임무 치고는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이봐요. 당신이 단 한 주면 된다고 그랬어요. 내가 할 일은 잠복해서 자리를 잡고 분석가가 온다는 신호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요. 내가 그 추접한 놈들 사이에서 어떤 마음으로 한 달을 버텨야 했는지 압니까? 마이크로프트? 지금껏 법을 몇 개나 어겼는지 아느냐고요?” 그 중에서도 몇 가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냈던 지독한 날들마저도 무색할 만한 기억이라 존은 떠올리면서 몸서리를 쳤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임무상의 범법은―”


존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와, 사람 미치게 만드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럼 뭐가 문제인지 말해 봐요.” 마이크로프트도 날카롭게 응수했다.


“진짜 문제는 내 계약서에는 애초에 한 달이나 그런 곳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제일 끔찍한 게 뭔지 알아요? 그 한 달간의 일이 임무를 완수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고요. 난 투입된 후 첫 번째 주에 당신네들이 원하는 데이터를 가져다 줄 준비가 다 되어있었어요. 그런데 위에서 승인이 안 떨어졌다는 말만 하더군요.”


“그만큼 많은 시간을 공들여 해야 하는 일입니다, 존. 당신은 우리가 심어놓은 사람 중 하나고, 이건 나무가 아니라 숲 차원으로 봐야 해요. 이게 우리 방식입니다.”


“질리게 듣는 말이군요. 그러하시면, 얘기한 대로 때려치우겠다 이겁니다.” 존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존에게 사실대로 얘기해줘, 마이크로프트.” 입을 연 셜록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내가 직접 얘기하는 게 좋겠어?”


마이크로프트는 존을 보던 날선 눈빛을 그대로, 자신의 동생에게로 옮겼다. “무슨 사실을 얘기하는 거냐?”


“왜 한 달이나 걸렸는지 얘기해.”


“아무렴, 좋을 대로 해. 이번 일이 누구의 책임인지는 너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렇지?” 천역덕스러운 마이크로프트의 대꾸에 셜록이 이를 악물었다.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존은 속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고야 말았다. 셜록은 표정없는 얼굴로 그를 마주했다.


“존, 중요한 건 네가 아니었어. 임무를 위한 것도 아니야. 처음에 형이 네게 일을 제안했을 때부터 짐작했듯이, 이건 전부 내가 MI5를 위해 일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정교하게 짜여진 각본이었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헛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오, 그래. 그렇겠지. 물론 그러시겠지…” 목소리는 잦아들고, 얼굴에서 피가 싹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빌어먹을. 항상 중요한 건 너야. 네가 중심이고 나머지는 그냥 널 위주로 돌아가는 것뿐이지? 결국 나 같은 건―”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화가 치솟아서 제대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이럴 수가. 내 인생에서 한 달이 통째로 날아갔는데, 당신네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거로군?”


“존.” 셜록이 입을 열었지만, 존은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끊었다. 셜록의 표정은 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코 미안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 물론 아닐 거다.


“아니, 거기까지만 해. 두 사람 다. 이제 치가 떨리니까.” 그는 돌아서서 문으로 나와 복도를 걸어갔다. 그를 막 제지하려던 사람 둘을 눈으로 물리고, 그는 바깥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나갔다.


밖으로 나오니 동이 트고 있었다. 옅은 주홍색 빛이 지평선에 걸려 빛나고 있는데도, 왜 마음은 차게 식는지 모를 일이었다. 택시를 불러세운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셜록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존은 그렉과 시간을 나누며 술이 어떻게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마시다가, 세 명의 여자를 꼬시는 데 줄줄이 실패한 후 집에 왔는데 소파에 늘어져 신문을 읽고 있는 셜록을 발견한 건 그때였다. 셜록은 말은 하지 않고, 들어오는 존을 빤히 쳐다만 봤다.


존은 잠시 눈을 흘기곤, 외투를 벗어놓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저 녀석하곤 아무 말도 않고 곧장 방으로 올라가 버려야지. 며칠 더 앙갚음을 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주전자에 물을 채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결국 앙심보다 버릇이 앞서고 말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언제까지 꽁해 있느니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차 한 잔 가져다주면서 담판을 짓는 게 낫지. 그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카운터에 기대, 복잡한 머리를 가라앉혔다.


어쨌든, 결국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을 앞당긴 것 뿐이다. 며칠 더 두고보며 셜록이 계속 재수 없는 고자세로 나올 건지 감시만 하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다. 걱정했다고 한 마디 해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얘기가 어려우면 문자나 이메일도 있고, 하다못해 넌지시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으련만. 셜록은 조용하기만 했다. 연락을 취하지 않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존은 그가 먼저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거다.


머리를 짚으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아, 이런 건 정말 싫다. 친구에게 화가 나 있고 싶지 않았다. 앙심을 품으면 들쭉날쭉해지는 모난 감정에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게다가 셜록과의 사이에는 지금껏 수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 마디 말도 없이 두 사람 가운데서 떨쳐버리거나 지워낼 수 있는 건 없었고, 또 셜록을 향한 그의 마음은 버거우리만큼 크기까지 했다… 얘기가 왜 여기까지 흘렀지. 사실은 존 역시 몇 번을 고쳐 생각해봐도 그 마음이 무엇인지는 형용하기가 힘들었다.


좋다. 미루지 말자고.


존은 깊게 숨을 마시고, 소파로 다가갔다. 고개를 든 셜록의 얼굴에 살짝 겁을 먹은 표정이 스쳐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조금은 화가 풀리는 기분으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자, 셜록은 신문을 개켜 두고 꼼지락거리며 자세를 틀었다. 보기는 드물지만, 불안하다는 확실한 증거다. 좋은 신호야.


“분석은 끝났어?” 용기를 내서 먼저 말문을 텄다.


“그래. 단조롭기 짝이없는 일이었어. 돈세탁을 계획한 모양인데 눈에 보이는 뻔한 짓만 골라서 했더군. 밀거래나 다른 작업을 해놓고 너무 정직하게 기록을 잘 해뒀더라고.” 으레 그렇듯 신랄한 목소리였음에도 얼굴에는 긴장이 깃들어 있었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내서 줄 수 있는 정보였어.” 가볍게 지나가자고 몇 번 마음먹었는데도 막상 얘기가 나오자 존은 약간 까칠해질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어.”


셜록이 한숨을 쉬었고, 잠깐동안 둘 사이에 적막이 앉았다. 셜록은 눈치를 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네가 가고 사흘 뒤에 마이크로프트가 전화했어. 싫다고 했는데도 그 이후로 계속 연락하더군. 두 주가 지나고 나서, 내가 승인하기 전까지 널 계속 그곳에 잡아두고 있을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어.”


셜록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지만 거짓이라곤 한 점도 없었다. “그러니까, 마이크로프트가 널 매수한 거야…? 날 이용해서?” 수년이 넘는 시간동안 마이크로프트의 말에 꿈쩍도 않던 셜록을 쥐고 흔들 수 있었던 열쇠가, 다름아닌 였다고? 존은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말하자면 그런 거라고 생각해. 형은 이런 류의 현장 작업에 적합한 분석가를 찾아내기가 어렵다고 그러더군. 물론 웃기는 소리지, 어쨌든― 내가 계속 거부했다간 네가 몇 주를 더 그곳에 틀어박혀 있을지 모른다고 했어.” 셜록은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조용해졌다.


“적어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얘기해 줄 수 있었잖아. 그랬으면 내가 알아서 훨씬 일찍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구.” 셜록이 눈은 못 마주치고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에 존도 체념하듯 수긍했다. “알만 하네. 나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거였군.”


“처음엔 나도 잘 몰랐단 말이야.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기에는 정보가 한참이나 부족했어. 그곳에 가보고 나서야 내가 굳이 나타나지 않았어도 됐다는 걸 알았던 거고.” 셜록을 입술을 비죽이며 뜸을 들이다가 마침내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네가 없으니까 일상적인 생활이 좀 불가능해졌거든.”


존은 비어져 나오는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그랬어?”


“끔찍하게 지루하더라. 식사하라며 괴롭히는 사람도 없고, 냉장고 안에 실험물이 있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침에 뜨거운 물을 다 써버리는 사람도 없었고.”


존은 눈을 흘기는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그리고 이불을 빼앗아가는 사람도 없고 말이지? 누가 들으면 결혼한 지 10년은 된 커플이라고 생각하겠어.”


“그야, 우린 늘 아웅다웅하고 섹스는 하지 않으니 그렇게 표현해도 틀린 건 없겠네.” 셜록이 살며시 웃었다. 윽. 위험한 공격이었다, 저건.


존은 잠시 뒤 생각을 가라앉히고 나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곳 지하에서, 월린스가 나타나고 나서 말이야. 그런 일을 당하도록 널 몰아가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그러고 나서 스스로 양심이 찔리는 기분이다. 무의식중에 중의적 표현을 써서라도, 그 일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건 전에 널 거실바닥에 붙잡아두고 괴롭혔던 것의 앙갚음으로 돌아온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가벼운 대답이었다. 하지만 존의 귀에는 뭔지 모를 다른 것도 더 얹혀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게 아니야. 대체 왜 거기서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 땐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나봐.”


셜록은 어깨를 으쓱 하며 털어냈다. “정말 괜찮다니까. 우린 어느 정도 몸이 닿더라도 편하고 말이지. 난 아무렇지도 않아.”


존은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주억였다. 셜록은 보통 친구 사이에서도 골목길에서 키스를 하거나 증명을 한답시고 붙어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존은 지금껏 복잡한 일이니까 미뤄두자며 자문하는 것을 애써 피하고 있었다. 나아가선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고. 그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바로 그 사람은 다름아닌 셜록이니까. 어느 쪽으로 상상해보건 셜록이란 녀석은 절대 평범하다는 범주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 어느 것 하나 괜찮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개운하지 않은 정체모를 회색분자같은 요소들로 얼룩진 관계라는 거다.


그는 깊게 숨을 쉰 뒤, 셜록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무렇지 않다는 건 이해해. 하지만 내가 사과하는 이유는 그게 아니야.”


“너도 알고 있겠지만, 필요하면 할 수도 있었어.”


빤히 쳐다보는 눈길에 그는 꼼짝도 못 하고, 얼떨떨하게 되물었다. “뭘… 한다고?”


“탈출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럼 했을 거야. 정말로 네게 봉사하는 거라도.” 존의 눈을 피하지 않은 채 셜록은 그렇게 말했고, 존의 시선은 이내 살며시 벌어진 입술로 내려가 꽂혔다.


얼굴이 뜨끈하게 달아올랐지만, 셜록이 진심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감히 고개를 피해버릴 수가 없었다. 존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아버렸다. 무슨 말을 할 작정이었을까? 마저 계속 해볼래? 이건 확실히 아닐 거다. 존은 목을 가다듬고, 이해했다는 표시만 겨우 전할 수 있었다.


셜록은 조금 약이 오른 듯 빠르게 덧붙였다. “뭐, 남에게 오럴을 해준 게 꽤 옛날 일이긴 해. 그래도 할 수는 있었을 거야.”


“그러게. 그렇게까지 되지 않아서 다행이네.” 하지만 몸은 전혀 다행이 아니라며 반발했다. 입 안이 바짝 말랐다. 빌어먹을.


“내 이야기의 요는, 네가 애써 사과해야 할 일은 전혀 없다는 거야. 난 널 도우려고 그곳에 간 거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고 봐. 솔직히 훈련은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마이크로프트가 허락하자마자 그곳으로 갔어.” 그는 잠시 숨을 삼켰다. “이리 될 줄 알았으면 훨씬 일찍 하겠다고 했을 거야. 미안해. 형이 그렇게 고집스럽게 나올 줄은 정말 몰랐어.”


알만하다는 듯, 존은 코웃음을 쳤다. “네 형이라는 작자는 진짜 빌어먹을 놈이야.”


“35년간 네가 그 인간을 모르고 살아와서 망정이지.”


존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이 결국 널 MI5에 끌어들이려는 계획이었다는 거지?” 익숙해져가는 느낌에 노여움마저 자리를 내주고 조금씩 사라져갔다. 언제나 셜록의 그늘에 가려져, 영원히 누군가의 부산물 정도로 여겨진다는 데에 지쳐 있었더랬다. 적어도 전에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 무언가로서 당당하게 서고 싶었고, 나아가서는 셜록과 대등한 위치에 나란히 어깨를 하길 바랐던 거다.


하지만 바로 이게 그의 삶이 아니었던가? 이상하게도, 이제 보니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확실히 그것도 목적의 하나야. 아무래도 형은 나한테 확실히 알게 해두고 싶었던 것 같아.” 셜록은 그 말을 하더니 안절부절 못하면서 잠깐 얼굴을 피하고 있었다. “아무튼 지금엔 쓸모없게 됐지. 나도 거기서 나와버렸으니까. 네가 그랬던 것처럼 드라마틱하게 소란을 피우진 않았지만 말이야.” 존을 보며 그는, 눈가에 살풋이 웃음이 새겨질 정도로 즐겁게 미소를 지었다.


“네가 보고싶었어.”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국엔 존도 속내를 털어놓고야 말았다. “집도 그리웠고, 수사하는 것도 그리웠고, 네가 짜증내는 거, 식탁에서 실험하는 거, 전부 다― 난 겨우 이틀을 고민하고 잠복수사에 환상을 가지고선 내 자신을 사지로 내몬 거야. 진짜 미치도록 비참하더라.”


“그리웠다니… 다행이네.” 셜록이 슬며시 존과 다리를 부딪치며 대답했다. “네가 집에 돌아와서 기뻐.”


얼마간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리가 그대로 닿아 있는 채였다. 그렇게 마주하는 셜록의 눈이 얼마나 번쩍이고 눈빛이 얼마나 날카롭게 보는 사람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지, 존은 한동안 잊고 있었다. 존은 짙은 진솔함이 담겨 그를 향해 환히 열려 있는 눈길을 마주하며, 이렇게 생각할 뻔 했다. 셜록이 원하는 것이 더 있는 거야…


내가 왜 이런담. 왜 생각이 그런 데까지 뻗치는 거지.


“동감이야.” 존은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이제 원래대로 돌아왔네. 내일부터 새 사건을 시작할 수 있는 거겠지?”


“물론이지.”


존은 용기를 내 다시 옆을 봤지만, 셜록은 이미 신문으로 시선을 돌린 채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이성애자의 정체성 혼란은 이번에도 위기를 넘긴 모양이다.


천천히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으며, 존은 응당 그러하리라고 생각했었던 것보다 훨씬 마음이 차분함을 느꼈다. 그는 옷을 벗고 새 트렁크 팬티를 걸친 다음 침대에 걸터앉았다. 셜록에게 그렇게 화가 나고 원망하던 감정은 연기처럼 흩어지고, 미련을 남길 거란 마음과는 달리 그 녀석의 옆에 앉았던 순간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남김없이 흘러가버리고 없었다. 맞다. 셜록은 짜증나는 개자식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또… 음… 그 다음은 지금 당장 생각하지 말자.


적어도 다행인 건 셜록이 집에 돌아왔고 두 사람 다 MI5의 일에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젠 다시 ‘존과 셜록의 사이’다. 셜록이 오면 어떻게 대화를 풀어가야 할지 솔직히 난감했는데, 셜록이 돌파구를 만들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놀라운 남자다. 자신이 셜록의 입장에 있었어도 같은 일을 했을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셜록이 의심하는 대로 마이크로프트의 계략을 말해줬더라면, 그렇게 혼자 마음을 졸이고 있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러다 드는 회의감에 존은 얼굴을 찡그렸다. 셜록이 얘기해 줬다고 해서 이해했을까,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아니다. 존 왓슨이란 사람은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교훈을 먼 길을 돌아가며 어렵게 얻는 운명이라고나 할까. 이번에도 잔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나서야 제임스 본드는 판타지로 끝났어야 했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는가. 매혹적이고 흥미로울 거란 상상과는 달리 첩보원의 현실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오래도록 집에서 멀어져 있는 동안, 자신의… 대단하고, 이상하며, 소시오패스일지도 모르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심할 여지없는 남자인 자신의 플랫메이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마음 안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아버린 거다.


아무래도 다시 상담소에 나가봐야하는 걸까. 그렇게 싫어했던 상담을 스스로 떠올리다니. 확실히 생활이 엉망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머리맡의 스탠드 불빛을 올렸다. 책이라도 읽으면서 신경을 다른 데로 돌릴 요량이었다. 집이 조용한 게 다행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멀리서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셜록의 발소리다. 그가 여기로 올라오고 있다는 걸 알자,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댔다. 셜록은 단 한 번도 여기 온 적이 없는데? 적어도 존이 기억하기로는 그랬다. 이 시간에 셜록이 그의 방으로 온다는 건, ‘그것’ 하나밖에 없는 거였다. 그 생각에 짜릿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온 몸을 흔들었다.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는 벌떡 일어나 닫힌 문쪽으로 다가갔다. 발소리가 커지다가 반대편에서 멈췄다. 더 이상 마음 졸이는 건 끝이다. 참을 수 없는 긴장감에 문을 열어젖히자, 한 손을 들고 있는 셜록의 모습이 나타났다. 막 노크를 하려던 모양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는지 셜록의 눈이 커졌고, 나신에 가까운 존의 몸을 훑어보고는 얼굴을 피했다. 고개를 돌린 셜록의 얼굴은, 표정이 드러났던 것이 한 순간의 일일 뿐이었다는 듯이 냉담하게까지 보였다. 하지만 존에게는? 존에게 보였던 그 한 순간의 표정은 오해였을 수 있는 걸까?


거기까지 오니 생각할 틈도 없었다. 존은 손을 뻗어 셜록의 멱살을 쥐고 얼굴로 가져온 다음, 키스했다. 그게 다였다. 맞댄 입술 사이에서 놀란 셜록의 음성이 흘러나온 것도 잠시, 이내 두 손이 올라와 존의 얼굴을 붙들었다. 입술이 비벼지고, 존은 가늠해보듯 살짝 혀끝으로 셜록을 핥아봤다. 두 사람의 처음으로 한 키스는 아니었음에도 ― 이번엔 처음으로 진심이었고, 이건 ‘진짜’ 키스였다. 셜록의 입술이 갈라진 순간,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신음이 귓가에 울렸다.


셜록은 발로 문을 차서 닫고 존을 잡아 문으로 몰았다. 등에 문이 닿음과 동시에 다시 셜록의 입술이 부딪쳐왔다. 제대로 봇물이 터진 걸까, 셜록은 억눌렀던 흥분이 폭발하는 것처럼 열렬하게 입을 맞췄다. 그런 열정이 셜록에게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옛날의 오해는 산산히 무너지고, 그 자리엔 마침내 그에게 키스를 받는다는 게 지독히도 황홀하다는 깨달음만 남았다. 살아오면서 만나온 대부분의 파트너는 그다지 섹스에 열렬하지 않아서, 그가 상대방을 설득하는 입장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그의 쪽에서 부탁을 하면 상대방은 선심을 베풀어 그 부탁을 들어준다는 느낌이었다. 그네들은 존이 만지고 키스하고, 섹스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거고, 언제나 손길이 닿는 대로 수동적이기만 했다. 이렇게 더 닿고 싶고, 더 그를 원하는 것처럼 매달린 적은 없었다. 이리도 깊은 갈망을 느껴본 적이 또 언제 있었을까. 존은 그가 몰아넣는대로 문에 바짝 몸을 싣고, 자신의 몸을 끌어안은 사람에게 매달렸다.


입술을 뗀 셜록은, 존의 목으로 내려와 헤매지 않고 곧바로 귓불 밑에 딱 얹었다. 예전에 골목에서 은신하고 있을 때 발견했던 그 부분이었다. 그러더니 한참 귓불을 지분거리고 나서야 속삭이며 말했다. “사실은 네 폰을 가져다주려고 온 거였어.”


“맙소사, 진짜야?” 존은 웃음을 터뜨리며 등을 감쌌던 손을 내려 셜록의 엉덩이 위에 얹었다. 허리를 붙이자 닿는 셜록의 몸 역시 흥분해 있었다.


“마이크로프트가 전화했어. 네가 안 받으니까 나한테도 전화해서 물어보더라고.” 그는 말하면서도 입술로 존의 목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으으음, 그거 계속해봐. 그래서 뭐라고 했어?”


“우리가 지금 입이 좀 바쁜 상태라서 통화를 못 하겠다고 그랬지.” 그러면서 그는 다시 입술을 덮었다.


“거짓말.” 셜록이 하반신을 밀어붙여오는 통에 입에서 순간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왔기 때문에, 존은 한 마디 하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당연히 거짓말이지. 사실은 귀찮으니까 못해도 한 주는 전화하지 말고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했어. 아…”


기다리지 않고 입술 안쪽의 연한 살을 핥자 그에게서도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한 주라, 그거면 될 것 같아.” 


존은 잠깐 뒤로 물러나 셜록을 쳐다봤다. 


“잠깐, 마이크로프트의 메시지를 전해주려고 여기 올라왔다는 거야?”


셜록이 입을 비죽였다. “으음, 아니. 사실은 너하고 키스하러 온 거야. 분위기가 아니다 싶으면 전화기로 핑계를 대려고 한 거지.”


존은 다시 입을 맞췄다. “그럼 넌 이렇게 해도 괜찮아? 그런데 우리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우린 무슨 사이인 걸까?”


셜록은 입술로 존의 목줄기를 따라 문지르며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섹스 프렌드’라는 표현도 어울릴 것 같아.”


“그래, 뭐 그 정도면.” 갑작스레 안도감이 차올랐다. 어차피 지금 당장은 아무리 더 생각해봤자 이 이상의 것을 감당해 낼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 말 하니 생각났는데… 서로 도움이 되는 친구가 되면 좋을 것 같아서. 네가 해도 괜찮았다고 했던 그거 있잖아… 어때?”


흐음, 하고 알았다는 듯 대답한 셜록은 매끄럽게 몸을 훑고 내려가면서 존의 속옷도 같이 벗겨버렸다. “얘기하기만 기다리고 있었지.”


존은 웃었다가, 이내 속옷이 내려가고 끝부분에 입술이 닿는 감각에 달뜬 숨을 들이마셨다.


동공이 활짝 열린 눈동자로 올려다보는 그의 입술은, 은은한 불빛 속에서 체액으로 반들거렸다. 두 사람은 웃었고, 그런 후 한동안은 말을 잇지 못했다.




<사건을 위한 키스> 完

외전 →



역자의 말


;;....헤헤;;; 늦었지유. 사실 저번 주에 마무리가 다 끝났는데, 번역한 파일을 블로그에 올리지도 않고 그냥 컴퓨터에 모셔만 둔 채 왜 댓글이 안 올라오나.... 넘 늦어서 다들 화나셨나봉가 하고 혼자 시무룩해 있었던;; 요새 날이 추워서 머리가 바보가 됐나봐요.

암튼, 사건을 위한 키스는 이걸로 완결입니다. 다섯 번은 사건을 위한 키스였고 요번은 진짜 키스라고. (내 눈에는 그냥 다 좋아서 하는 키스였는데 이상허다...,) 

7편에 외전이 하나 준비되어 있으니 기대해 주시어요~




  1. ..그렇게까지 솔직하진 않아도 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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