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lude

[SH/JW] 빈사의 의사선생 │ The Case of the Uncommon Cold - 4 본문

Sherlock_중편/시리즈

[SH/JW] 빈사의 의사선생 │ The Case of the Uncommon Cold - 4

topsecretum 기밀선녀 2013.12.01 14:00
#, , ,

←Part 3






Part 4





일 년 전의 존이었다면 ‘살인사건보다 낫다’는 표현에 조금 위화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셜록이란 녀석이 존의 삶에 불쑥 자리잡은 후로, 신경쓰이는 일, 경계해야 할 일, 소름끼치는 일과 같은 데에 적용하고 있었던 예전의 기준점들이 모조리 뿌리뽑히고 정신 나간 소시오패스의 시선에 능숙한 살인자로 비춰지는 게 세계 제일의 찬사가 되는 것 같았다.


존을 꽁꽁 껴안은 셜록은, 존의 뒤통수를 감싸고 있지 않은 나머지 손을 벗은 가슴으로 내려 더듬었다. 녀석의 단단한 몸뚱이 아래 깔려 있는데 어떻게 이리 따스하고 편안하면서, 꼭 들어맞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지 이상해야 정상일 테다. 하지만 셜록이니까, 존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거였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펄떡였다. 얼굴이 뜨겁게 타올랐고, 땀이 배어나온 살결이 비벼지는 감각에 셜록의 몸 역시 반응하고 있었다. 셜록의 허리를 감싸안으려 올린 팔은, 감기에 맞서 싸우느라 힘을 다 소비한 탓에 살짝 떨렸고 그런 몸에게 계속 움직이라며 존의 안에서는 아드레날린을 마구 뿜어대고 있었다.


셜록은 맞댄 입술 사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무언가를 속삭였고, 그 말을 가늠해보기도 전에 성급한 혀놀림으로 다시 존의 숨이 차오르게 만들었다.


그러다 놀랍게도, 문득 깨달았다. 셜록의 말이 맞았어. 정말, 숨쉬는 건 지루한 거였다. 공기 따윈 필요 없었고, 그저 지금 필요한건 여기 이 남자 뿐이다. 셜록의 등을 감싸 더, 더 끌어당기자, 녀석은 목 깊은 곳에서 꿀같이 달콤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셜록… 나…”


“뭐든 좋아.” 셜록은 입술을 맞대고 약속했다. “하지만 오늘은 안 돼. 내일.” 그리곤 존의 위에서 내려와 옆에 파고들었다.


존은 믿기지가 않아 짐승이 보채는 것 같은 소리로 되물었다. “내일?”


“넌 지쳤어. 며칠 앓았으니까. 그리고, 나도 좀 연구할 게 있고.” 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셜록은, 말하는 것만 보면 별로 숨도 차지 않은 것 같았다.


입이 딱 벌어진다. 어떻게 저 녀석은 완벽하게 몸을 제어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 이쪽은 키스만으로도 거의 죽을 것 같은데. 하지만 허벅지에 닿아서 여실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그걸 보면 저쪽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머리가 어질거렸다. “진심이야? 연구할 생각이 나? 지금?


“지금은 쉬도록 해. 기운이 없을 테니.” 존의 심장이 여전히 펄떡대고 있는 게 다 누구 탓인데, 남 일인 양 셜록은 무미건조하기만 하다.


“그런… 셜록, 너 이…” 존은 빈둥빈둥 자신의 머리를 토닥이고 있는 학자님을 대차게 노려보며 불만스레 신음을 냈다. 존의 머릿속에서는 지금도 느껴지는 이 달콤한 감각을 어떻게 지나칠 수 있느냐면서 마구 반발이 일어나는 중이다. 아픈 거 따위야, 셜록이 입술을 떼기 전까지만 해도 아예 깨닫지 못한 사실이었으니 팔다리가 떨리는 것쯤은 그냥 무시해도 되는 거였다. 하지만 콩알만한 지분을 차지하는 나머지 의식은 셜록의 말이 옳은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 나쁜 자식.


존은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어쨌든 조금 진정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 여전히 실제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온통 새로운 경험을 한 터라 심장이 무리가 갈 정도로 세게 뛰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웬일로 셜록이 인내심이란 걸 발휘하려 하는 모양이니 이 순간만큼은 목을 쥐고 짤짤 흔들고 싶어진다 해도 앞으로 이 동거인이 참을성 있는 행동을 하도록 장려해줘야 할 성 싶다.


“도대체가 쉽게쉽게 가는 법이 없구나, 넌?” 마침내 그는 치솟는 호르몬을 잠재우려고 끙, 하며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다 널 위해서야. 완전히 낫기도 전에 기력을 쓰면 안 되지. 다시 감기가 도질 수도 있어.” 존이 말한 건 이런 뜻이 아닌데, 셜록은 이해한다는 듯이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가 먼저 시작했다구.” 존은 체념 끝에 기어코 한 마디 하고야 말았다. 셜록이 자신을 위해주고 있다는 데 기뻐해야 옳은 걸지도 모르겠다. 이 탐정 나으리께서는 감정적으로 되는 일이 극히 드문데다, 무려 참을성을 들여 남을 생각해준다는 건… 확실히 뭔가 있는 거겠지. 장담은 안 가지만 존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네가 먼저 키스했는데.” 거기에 인정사정없이 대꾸하는 셜록이다.


“넌 내 침대에 기어들었고.” 존도 지지 않고 맞받아 쳤지만, 왠지 셜록의 목소리가 동요되지 않고 그냥 웃기다는 투라 괜히 움츠러들었다. “화난 거 아니지?”


“화 안 났어.” 셜록은 그렇게 대답한 후 존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그러면서 한 손은 슬그머니 존의 속옷 밴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손가락 끝으로 골반을 어루만지는 간질간질한 감각 덕분에 점점 더 무시할 수 없이 존의 정신이 흐트러지는 중이었다.


“걱정 안 돼? 기분 나쁘지 않았어?”


“존.” 한 손을 남의 바지 안에 집어넣고 있는 주제에 녀석은 성마르게 대꾸했다. “네 통찰력이 나만큼 대단치 않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적어도 이건 알아야지. 설마 내가 싫은데도 너와 이러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는 은근슬쩍 허리를 낮춰 여전히 분명하게 드러나는 관심의 증거를 느끼게 해주면서, 어떻게 감히 날 방해할 수 있느냐는 듯이 존에게 한쪽 눈썹을 치켜올려보였다.


존은 침을 꿀떡 삼키고 천장을 향해 눈을 돌렸다. 부정할 수 없는 증거이긴 하지, 그래도… 끈질기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너 완전히 굳어버렸잖아. 그러니까, 내가 처음에 키스했을 때.”


손을 빼고 한숨을 쉰 셜록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꽤 딱딱하게 섰지.”


존은 놀란 웃음을 터뜨리며 셜록의 팔을 찰싹 쳤다. “야, 내 말은 그게 아닌 거 알잖아.” 무슨 이유로 이따금씩 셜록이 뜬금없는 농담을 던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요점을 잊어버리게 하는 데는 큰 효과가 있는 듯 하다. 녀석을 노려보며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완전히 긴장하면서 굳어버린 건 안 좋은 신호 아니였냐구. 그만 웃고, 좀.”


“장난으로 대답한 게 아니야, 존.” 눈에서는 짓궂은 빛이 반짝거렸지만, 그래도 셜록은 짐짓 진지하게 대답했다. “적어도, 일부는 그래. 내가…굳어버린 건, 그게 문제의 원인이지.”


무슨 뜻이냐는 표정에 셜록은 한숨을 쉬며 누워서, 녀석답게 멜로드라마틱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자세로 한 손가락을 들어 모호한 동작을 해보였다.


“난 그런 식의 신체적 자극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날씨에 대해 얘기하는 것처럼 단조로웠지만, 다만…흰 얼굴에 희미하게 떠오른 홍조라니 뭔가 생소했다.


“정말?” 존은 무슨 얘기인 걸까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믿기지가 않았다.


물론 셜록이 까칠하기 그지없는 녀석이긴 하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대단한 인물이고, 상류층 억양이나 형 마이크로프트의 우아한 태도로 보건대 어마어마한 부의 상속자이기도 할 테였다. 세상에는 부자라거나 매력적이거나 똑똑하다는 특징만으로(셋 모두를 합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남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니 분명 셜록의 삶 중 언젠가 녀석의 신랄한 독설을 견뎌내면서 잠자리를 같이 할 만큼 낯이 두꺼운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바츠에서 일하는 몰리도 늘 황홀한 눈으로 셜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저 녀석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자신에게 끌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런 반응에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관계란 걸 맺지 않아, 존.” 셜록은 날카롭기 그지없는 시선을 이쪽으로 향한 채, 약간 경직된 미소를 지었다. “한 번 시도해 본 적은 있어, 순수하게 실험적인 목적으로.”


“실험 목적이라고?”


“물론. 대학 다닐 때, 인간관계 전반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걸 알았어. 내 지식의 양을 늘릴 수 있는 합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지.”


“데이터를 얻을 목적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은 이 세상에 너뿐일 거다. 도대체가 비정상 덩어리구나, 넌. 너도 알지?” 


셜록은 아무 말 없이 존의 몸통에 올린 손으로 살며시 피부 위를 덧그렸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됐어?” 존은 애써 정신을 다잡으며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그 실험 결과.”


셜록은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대답을 포기해야 하나, 싶었을 때서야 녀석은 불쑥 입을 열었다. “처참했어. 나는 철저하게 적절한 실험 대상을 물색해서, 행동심리에 관심이 있는 물리학과의 3학년 학생을 선택했어. 실험은 순조로웠고, 내 가설을 입증할 만큼 근접해갔지. 그런데 함께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 때,” 이 부분에서 셜록은 머뭇거리며 눈썹을 찌푸렸다. “아마 내가 뭔가 부적절한 반응을 보였던 것 같아.”


“어…” 존은, 그런 말을 하는 여기 이 남자가 방금까지만 해도 자길 붙잡고 말 그대로 잡아먹을 듯이 덮치던 사람이 맞는지 살짝 당황스러워졌다. “부적절한 반응이라니? 그냥 그 여자애가 과민반응한 건 아니고?”


셜록은 고개를 저어 냉정하게 정정했다. “남자였어. 그리고 내 기억이 맞아. 그 놈은 평소에도 나더러 정확하게 ‘감정 없는 로봇’이라고 표현하곤 했지.” 그러더니 인상을 팍 구겼다. “극악하게 틀린 비유야.”


표현이 모욕적이었다고? 그 상황에서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비유가 틀린 게 기분나빴던 거야?”


“당연하지.” 녀석은 그게 세상에서 제일 당연한 일이라는 것 마냥 기세좋게 대답했다. “부정확한 언어는 오해를 부르고, 오해는 혼란을 야기해. 혼동이 되니까 결국 데이터의 착오를 빚는 거라고.”


“그렇긴 하지. 하지만 넌 늘 네 머리를 하드드라이브라고 하는데, 그거랑 뭐가 다른 거야?”


셜록은 짜증스레 대꾸했다. “완전히 다른 거지. 하드 드라이브는 도구야, 존. 데이터를 저장하고 정보를 정렬해서 체계적으로 수납하는 공간이라고. 내 머리를 도구라고 부르는 건 모욕적인 게 아니야. 사실이니까. 반면 로봇이라고 불리는 건 인간임을 부정당하는 거지. 내 의식이 로봇처럼 간단하기 그지없는 회로가 되는 거고 생각의 범위가 프로그래밍된 한도 내에서밖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잖아.” 분명 뇌에 제한선이 있다는 말은 셜록 버전의 신성모독이 되는 거였나 보다.


“그래, 그래. 어디서 핀트가 나갔는지 알겠네.” 존은 맞장구를 쳐 주고,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녀석의 말을 곱씹어 봤다. “그래서 섹스 해 본 적이 없어?”


“경험적 지식은 부족해. 아무래도 가장 기본적인 이론을 아는 것만으로는 실전의 자극에 충분한 준비가 되지 못하는 것 같군.”


“잠깐. 아까 연구할 게 있다고 한 건 설마…”


“게이섹스에 적절한 준비가 없으면 부상을 입을 위험이 있다고 들어서.”


태연자약한 목소리에 존의 몸은 파르르 떨렸다.


“확실히 더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야. 이론뿐만 아니라 경험적으로도.” 녀석의 눈에서 광기가 번쩍였다. 집착 증세를 경고하는 첫 번째 신호다. 익숙한 그 표정에 존의 미간 사이 골은 깊어져만 간다. 그는 이게 옳은 일인가 싶어 한 손으로 머리칼을 흩트렸다. 


“셜록. 만약에 이게…이게 그냥 네 변덕인 거면…”


어떤 표현을 써야 하는 걸까,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저어버렸다. 그건 너무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이다. 존은 셜록이 이해해 주길 바라고, 또 그래서 그가 보여줄 증거를 받길 원한다. 셜록 홈즈 식의 구체적이고 분명한 증거를. 존은 눈을 감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도 네가 보이는 단기 집착 증세 중 하나일 수 있어. 전에 네가 TV앞에 앉아서 일주일 내내 잠도 안 자고 바보같은 미국 토크쇼 재방송을 보고 또 보며 보냈던 거나, 아니면 전에 레고를 발견하더니 3주 동안 런던이랑 카디프와 죽음의 별[각주:1] 미니어처를 만들어서 거실 안을 완전히 꽉 채웠던 때처럼 말이야… 나중엔 질려서 TV를 조각조각 분해해버렸잖아. 레고도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그건 나중에 셜록의 방화 실험에 희생물로 사라졌다. 존은 그 때 새까맣게 타오르던 독한 냄새가 기억나 코를 찡그렸다.


“내가 하려는 말은, 텔레비전이나 레고 때처럼 그냥 기분전환이나 하려는 요량이라면 이해할 수 있어.” 놀라우리만치 흔들림 없는 목소리였다. 스스로도 믿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연한 거라 놀라면 안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이것도 또 하나의 전투라고 볼 수 있다. 존은 적군의 총을 마주하던 그 때보다 더 심지를 곧게 세우고, 스스로를 재촉했다. “이것도 네 실험인 거라면, 뭐 좋아. 난 괜찮아. 하지만 그런 거라면 지금 미리 말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너무 깊이 빠져버리기 전에. 왜냐면 난 너만큼 무언가를 쉽게 놓아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 나한테는…” 


“존, 나도 평소 같았으면 네가 깊이 사고하려는 시도를 장려했겠지만 지금은 너, 너무 생각이 많아. 일단 약도 먹어야겠어.” 셜록은 짐짓 엄한 말투로 말을 가로막고는, 머리맡 서랍에 놓여 있던 약통을 잡아 존에게 쥐어줬다. 그리곤 속옷 차림으로 부끄럼 한 점도 없이 불쑥 일어나더니 욕실로 들어갔다.


대답이 분명하게 나오지 않았다.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수작일 수도… 음, 살집도 없는 녀석이 엉덩이는 정말 죽이네.


존은 손 위에 올려진 감기약 통을 내려다보다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 물 흐르는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물었다. “아, 그렇지. 이제 생각났네. 이 약 대체 어디서 구한 거야? 사라한테 간 것도 아니던데.”


“걱정 마. 나쁜 짓은 안 했으니까.” 셜록이 방으로 돌아오며 부드럽게 일렀다. 그는 존에게 물을 주고 이불 안으로 쏙 들어와서, 존이 약을 먹고 컵을 내려놓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가 도로 존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달라붙었다. “바츠의 약사 중 하나가 내게 빚을 졌거든.”


존은 웃어버렸다. “안 그런 사람이 런던에 있긴 하나? 이젠 여왕이 네게 목숨을 빚졌다거나 해도 별로 놀랍지가 않을 것 같아.”


“사실…” 녀석은 존에게 다리를 얽으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농담이겠지.”


“농담이야.” 셜록은 간단하게 인정하고는, 이불 안에서 딱 엉겨붙은 몸 사이로 꼼지락꼼지락 팔을 꺼냈다. 긴 손가락이 존의 머리칼 사이를 파고들었다. “3년 전에 웨식스의 공작부인이 푸들을 납치당해서 찾아준 적은 있었어. 굳이 말하자면 당시의 일로 귀부인에게 한두 가지 신세를 졌다고 할 수 있겠군.”


“네가 푸들을 잡으러 갔다고?” 그게 중요한 요점은 아니지만, 왕족이 셜록에게 빚을 졌다는 얘기보다 더 설득력이 없기는 했다.


“아니. 공작부인 여동생의 약혼자를 살해하고 달아난 그 집 조카를 잡아줬지. 개는 그 범인이 데려간 거였고.”


늦은 밤이 되어 잠결에 마음의 장벽이 낮아질 때면, 이따금씩 존은 소파에 퍼질러 누운 셜록의 품에 파고들어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보곤 했다. 아마도 딱딱한 나무의자를 껴안는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다 ― 기다란 팔다리에 살집 없이 퍽이나 각진 녀석이니까. 하지만…현실은 전혀 달랐다. 셜록의 몸은 완전히 흐물흐물하게 녹아들어 이음새 없는 매듭처럼 존의 품에 꼭 맞아들었다. 마치 자석의 극과 극이 만난 것처럼, 존이 움직이면 셜록도 같이 자세가 변하면서 계속 서로를 끌어안은 채, 변화했다.


“아.” 존은 원래의 대화를 환기하려고 입을 열었다. “당시에 신문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 푸들을 구해줘서 공작부인이 아주 고마워했다고 그러던데.” 


“그랬지.” 평소보다 낮은 셜록의 목소리가 맞닿은 가슴 너머로 진하게 울렸다. “부인이 조카와 인연이 없었던 모양이야.”


“그럼 웨식스의 귀부인에다, 바츠의 약사며, 런던 인구의 절반쯤은 다 네게 빚을 진 셈이네. 난 왜 놀랍지가 않을까?” 존은 미소를 다 숨기지 못하고 웃었다.


어쩌면,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현직 약사에게 불법으로 약을 처방받는 일은 그나마 가장 양반이다. 셜록이라면 암시장에서 약을 구하거나 야드의 증거물 보관소를 터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더 불법인 일도… 제발 그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위험한 암시장에서 감기약 따위를 팔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을 가정한다면 셜록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셜록이 말이 없는 동안, 존은 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떠올랐다. “왜 사라를 미워해?”


순간 정적과 함께 손이 멈췄다. “멍청하니까.”


“음. 하지만 네 논리대로라면 나도 멍청한데, 네가 아직까지 날 참아내고 있잖아.”


“말도 안 되는 논리 펼치지 마, 존. 단순히 널 참아내고 있는 게 아니야. 난 너와 있는 거 좋아. 네가 주변에 있으면 확연히 세상이 덜 지루해진다고.”


“아. 음. 고마워.” 내심 깜짝 놀란 존은 눈을 깜박였다. “어, 고맙긴 한데, 내가 물은 데에 대한 대답은 아닌걸. 정말로 사라가 멍청하다는 것 때문에 그런 건 아닐 거 아냐. 사라는 바보가 아니니까. 똑똑하다고. 누구처럼 천재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똑똑한 여자야. 그리고 좋은 의사, 좋은 사람이고.”


“내가 연인들 간의 미묘한 뉘앙스에 그다지 정통하지 못하긴 하지만, 새 애인과 한 침대에 있을 때 이전 애인을 칭찬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은 행동이라고 봐.”[각주:2] 셜록의 검지손가락이 존의 옆구리를 타고 선을 덧그렸다.


“아, 이런. 그렇지. 미안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다름아닌 셜록에게 예의를 지적당하다니 솔직히 충격적인걸. “그냥…좀 이해가 안 가서. 알고 싶어.”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여자라구.” 셜록은, 늘상 명백한 사실을 진술할 때처럼 힘주어 말했다. “널 가져놓고도 놓아버렸으니까.”


“잠깐. 사라를 바보 취급하는 이유가 그거였어? 날 찼다는 사실 때문에?”


“그래.” 간단한 대답.


“그건 공평치 못한 처사라구, 셜록. 우리 때문에 사라가 일곱 번쯤은 죽었다 살아났어. 그것도 그 코끼리 사건을 뺀 게 일곱 건이야. 나랑 깨진 건 단순히 자기보호 차원에서였다고.”


“너와 헤어진 건 뼛속까지 완벽하게 아둔하기 때문이겠지.” 녀석은 고집스레 대꾸했다. “반면에 이 몸은, 천재거든.”


“그래서 너는 한동안 날 옆에다 데리고 있을 계획이다 이거야?” 존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 대뜸 묻자,


“아니. 영원히.” 녀석이 확실하게 정정했다.


순간 목이 콱 메었다. “넌 일과 결혼한 줄 알았는걸?”


“그래. 그건 지금도 변함없어.”


“아.” 얼굴에 실망이 그대로 드러났을 테지만 이건 솔직히 어쩔 수가 없는 거다.


“하지만 반려자가 한 명 더 있으면 훨씬 삶이 윤택해질 거란 사실을 깨달았지.” 무미건조한 말투와는 다르게, 셜록의 손은 욕심스럽게 존의 등을 꼭 끌어안았다.


“반려자?”


“으음.” 그러면서 셜록은 흡족한 듯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이 관계에서 ‘또다른 반려자’가 되는 게 옳은 일인건지 모르겠네.” 존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래도 저 말에 좀 더 좋아하는 반응이 나와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은, 가슴 속에서 조그만 행복이 마구 부풀어올라 마음속을 그득 채운 덕분에 걱정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셜록의 이마에 입을 맞춘 뒤 굽슬굽슬한 고수머리 안으로 코를 묻고 살결의 향기를 들이마셨다. “내일?”


“내일.” 약속하듯 셜록이 대답했다. “이제 그만 자. 힘을 보충해야지.”


존은 웃었다. “알았어. 그리고 너도 연구할 게 있을 테니까.”


셜록이 사악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후


“이건 말도 안 돼. 참을 수가 없어.” 셜록이 거친 목소리로 칭얼대자, 발그레하게 변한 녀석의 코에서 가르릉대는 바람소리가 새어나왔다. “다 네 잘못이라구.”


“그러게 경고 했잖아.” 존은 가볍게 대꾸했다. “옮는다고 말했는데 안 믿은 게 어디의 누구더라.”


쭉 째진 눈이 이쪽을 노려본다. 녀석이 숨을 쉴 때마다 코에서 그릉, 그릉 거리는 소리가 났다.


존은 웃음을 눌러삼키며 셜록에게 티슈 상자를 가져다 줬다. “열 다 내릴 때까지 수사 금지야.”


셜록의 반항적인 눈빛도 격한 재채기 앞에서는 잠시 무너졌다. 녀석은 휴지로 코를 닦아내고는 다시 방 안의 모든 것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말도 안 돼. 그렇게 오랫동안 여기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어. 며칠은 걸릴 텐데. 나 미쳐버릴 거라구!”


“나 아플 동안은 잘만 방에 틀어박혀 있더만. 그동안 미치지도 않았고 말이야. 뭐 물론 여기서 더 미칠 구석도 없긴 하지.”


“그런 다른 거지.” 녀석은 팔짱을 딱 끼고는 성마르게 쏘아붙였다. “나 일어났을 때 없던데. 아침에 어디 갔었어? 감기 나은 지도 얼마 안 됐잖아. 벌써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나 심통났다 이거지. 지금 달래주지 못하면 며칠간 배로 고생해야 할 거다.


존은 망설이며 헛기침을 하고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좀 가져왔어. 네가 아픈 줄 몰랐어. 미안해. 그래도 이걸로 흥밋거리는 될 거야. 감기가 나을 동안.” 책이 든 가방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셜록의 반응을 살폈다.


“책이라고? 책 따위로 날 며칠씩이나 잡아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존이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자, 셜록은 결국 포기하고 가방을 열어 안의 내용물들을 침대 위에 늘어놓았다.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서관에서 이걸 찾았어?”


“모두 다는 아니고.” 셜록의 기다란 손가락이 표지에 박힌 꽤나 노골적인 사진 위로 닿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네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너의 어…그 연구에.”


녀석은 손에 집히는 걸 홱 집어들어 안의 더 자세한 사진을 살폈다. 도표와 설명문이 있는 페이지였는데, 누군가가 고맙게도 몇 가지 중요한 부분에 강조를 해 놓고 사진에 동그라미를 쳐서 옆에다 추가로 주석까지 달아놓았다.


“흐으음…” 셜록은 유심히 내용을 들여다보고, 마침내 씩 웃으며 다른 한 권을 펴들었다. “내 랩탑.” 녀석이 손을 불쑥 내밀면서, 존이 가져온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명령했다.


존은 미소지었다. ‘내일’이라고 약속했던 건 아무래도 며칠 뒤로 밀려날 것 같지만 그래도 괜찮다. 시간은 앞으로도 충분히 남아 있으니까.


그래서 그는 셜록의 랩탑을 가지러 가기로 했다.







역자의 말


이걸로 '빈사의 의사선생'은 탐정 나으리에게 날름 잡아먹히는 걸로 완결이다.

기승전날름?

처음부터 끝까지 셜록, 셜록스런 냄새가 나서, 또다른 반려자니 새 애인 공표니 해도 밉지가 않은 건 나도 존 못지 않게 셜록을 좋아하기 때문인 듯.




  1. 영화 Star Wars에 등장하는 행성. [본문으로]
  2. 은근슬쩍 새 애인 포고-_-;; 재빠른 놈이로세 [본문으로]
신고